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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재앙의 원인을 생각한다
[삶과 영성] by 곽건용
2010년 01월 21일 (목) 22:30:48 곽건용 기자 Editor@Acropoli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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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간에 아이티에서 진도 7의 대지진이 일어나 TV와 라디오, 신문은 시시각각으로 그 소식을 전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말할 수 없이 참혹한 그곳 현실에 대해서는 뉴스를 통해 여러분도 잘 아실 터이니 제가 더 이상 무슨 말을 덧붙일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TV나 신문을 보기가 겁이 날 정도입니다. 사실 언론매체들은 지나치게 처참한 장면들은 거르고 덜 참혹한 장면들만 보여주기 때문에 실제 상황은 우리가 듣고 보는 것보다 훨씬 참혹할 것입니다.

‘지금 같은 급박한 현실 속에서 무슨 한가한 얘기냐?’라는 핀잔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지난 주간 내내 아이티 참사 소식을 접하면서 두 가지 질문이 제 머리 속을 맴돌았습니다. 첫째는 이런 천재지변이 일어났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묻는 질문으로서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라는 질문입니다.

둘째는 우리 기억에도 생생한 1994년의 진도 6.8의 노스리지 지진보다 조금 더 강한 진도 7.0의 지진이었는데 왜 아이티 사람들은 그때 이곳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피해를 당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불과 진도 0.2의 차이일 뿐인데 피해의 심각성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첫번째 질문은 종교적인 성격의 질문입니다. 종교의 종류가 다양하고 또 같은 종교 안에서도 믿음의 색깔이 다양한 만큼 이 질문에 모든 사람이 수긍할만한 정답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질문은 천재지변이 일어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묻는 질문이고 또 정답이 없다 하더라도 묻고 대답을 찾을 만한 필요와 가치가 있는 질문입니다. 한편 두 번째 질문은 매우 현실적이고 정치, 사회적인 질문으로서 정답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정답을 찾아야 합니다.

왜 그토록 피해가 클까?

왜 아이티 사람들은 이번 지진에 이토록 엄청난 피해를 입었을까요? 우리는 그 이유를 아이티 역사에서 찾아야 합니다. 지진이나 쓰나미 같은 자연재앙이 지구온난화 때문에 더 자주, 더 강하게 발생한다는 환경론자들의 주장은 지금 이 시간에는 논외로 하겠습니다. 노스리지 지진이 일어났던 16년 전보다 지구가 더 더워지긴 했겠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비슷한 강도의 지진이 일어났는데 아이티 사람들은 수만 명이 죽고 도시가 완전히 주저앉았는데 반해서 이곳 LA는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도 피해가 적었을까 하는 의문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답은 이곳 LA는 대부분의 건물들이 내진 설계도 잘 되어 있고 도시계획도 잘 되어 있기 때문에 웬만한 지진에도 큰 피해 없이 버틸 수 있지만 아이티는 너무 가난하고 건물들도 엉성하게 지어졌고 사람들도 다닥다닥 모여살고 있기 때문에 피해가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마디로 아이티 사람들이 가난하기 때문에 더 큰 피해를 당한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문제는 왜 그들이 그렇게 가난한가 하는 점입니다. 그들이 가난한 이유를 알려면 우리는 아이티 역사를 살펴봐야 합니다. 저는 이번 참사를 보면서 ‘왜 그들은 이렇게 가난한가?’라는 의문을 풀기 위해 아이티 역사를 살펴봤습니다. 이런 일이 없었더라면 아이티 역사에 관심을 갖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이티 역사는 한 마디로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강대국들과 미국의 식민지 지배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짧은 시간에 그 역사를 요약할 수는 없지만 대략 이렇습니다. 1700년대만 해도 아이티는 가장 부유한 식민지였습니다. 물론 상대적인 개념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아이티 노예들은 1700년대 말에 프랑스 혁명 사상에 고취되어 노예주들과 유럽의 강력한 군대와 싸워 이겨 독립을 이뤘습니다. 하지만 실질적인 독립의 길은 멀고 험했습니다. 노예해방과 독립의 기운이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갈 것을 두려워한 미국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은 아이티를 고립시키는 정책을 취했고 프랑스는 아이티를 독립시켜주는 대가로 엄청난 금액의 돈을 요구했습니다.

아이티는 이를 갚지 못해서 결국 오랫동안 프랑스의 금융지배를 받다가 20세기 초 미국에 의해 군사적으로 점령당한 이후로는 줄곧 독립 국가였지만 미국의 실질적인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1990년에 가톨릭 신부이자 유명한 해방신학자인 아리스티드가 대통령이 됨으로써 아이티 민중의 희망이 되살아나는 듯했지만 미국의 지원을 받은 군사 쿠데타에 의해 그는 1년도 못 돼서 대통령 자리에서 쫓겨났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은 1994년에 아이티에 미군을 보내서 그를 복권시켰지만 거저 그렇게 하지 않고 미국의 정책을 따르라는 조건을 붙였습니다. 그는 미국의 요구 중 일부에 대해서는 저항했지만 대부분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래서 아이티 사람들은 빈곤의 수렁에 점점 더 깊이 빠져 들어갔습니다. 그러던 중 미국은 2004년에 다시 한 번 아리스티드를 내쫓고 꼭두각시를 권좌에 앉혀놓아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신문을 보니 어떤 지진 전문가가 아이티에 대지진이 오리라고 2004년부터 예고했다더군요. 하지만 그 경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였어도 아이티 정부가 뭘 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이티 빈곤의 역사가 너무도 길고 구조적이므로 그런 예고를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돈이 없으니 아무 일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렇듯 아이티가 그토록 가난한 일차적인 이유는 그 나라 사람들이 무식해서도 아니고 게을러서도 아닙니다. 그들이 가난한 이유는 그들을 가난하게 만드는 사람들과 세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이티 사태를 보도하는 언론들은 이런 사정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말하지 않습니다. 지진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천재지변입니다. 하지만 천재지변의 피해를 어떤 강도(强度)로 당하느냐 하는 문제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지진은 피할 수 없다 하더라도 피해는 줄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다음으로 첫 번째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왜 이런 엄청난 천재지변이 일어나는 걸까요? 이번 일을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각자 자기가 믿는 신에게 기도했을 것입니다. 피해 당사자인 아이티 사람들은 물론이고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아이티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에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은 각자 믿는 신에게 그들을 도와달라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하소연도 해봤겠고 심지어 신을 향해 분노의 목소리를 높인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천재지변에 보이는 다양한 반응들은 대략 몇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우선 이런 일은 신의 뜻 같은 것과는 아무 상관없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연현상일 따름이지 그것을 의도적으로 일으키는 존재는 있을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무신론자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에게도 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자기는 신을 믿지 않지만 말할 때는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왜 이런 일이 생기는가?’라고 묻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왜 하필 아이티 같은 가난한 나라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이런 면을 보면 무신론자와 유신론자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다음으로 이와는 조금 다르게 ‘하늘도 무심하시지......’라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는 우리 옛 어른들이 오랫동안 해온 말입니다. 이 짧은 말에는 천재지변을 의도하고 주관하는 ‘하늘’이 있긴 한데 그 하늘이 무심(無心)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독특한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욥처럼 하늘이 어떤 사람만 꼭 집어서 괴롭힌다고 믿고 그런 하늘에다 대고 비난하고 삿대질할 마음도 없습니다. 그보다 훨씬 소극적입니다. 그냥 하늘이 무심하다고 생각하고 한탄할 따름입니다.

그 다음으로 하늘의 뜻이 있어서 이와 같은 천재지변이 일어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부류 안에는 사람이 지은 죄 때문에 그에 대한 벌로 재앙을 겪는다고 믿는 사람도 있고, 재앙은 신이 고통을 통해서 뭔가를 가르치려고 주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두 부류의 사람들을 우리는 기독교인들 가운데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양쪽 모두 얼른 보면 굉장히 신앙적인 사람 같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찾으려 하니 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 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 점은 하나님을 믿으면 믿을수록 하나님의 뜻을 쉽게 말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초상집에 가서 ‘하나님이 뜻이 있어 일찍 데려가셨다’라는 식으로 쉽게 ‘하나님 뜻’ 운운하지 말라는 이해인 수녀님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어린 자식을 잃은 어머니에게 어떤 속없는 목사가 “하나님은 감당할 수 있는 시련만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어머니의 믿음을 신뢰하고 계십니다.”라고 위로랍시고 했더니 그 어머니가 “그럼 내가 믿음이 부족했다면 내 아이가 죽지 않았겠네요.”라고 얘기하더랍니다.

이런 비교적 ‘순진한’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극우파 팻 로버트슨 목사도 이번 아이티 지진을 두고 하나님의 뜻 운운했다고 합니다. 그는 아이티 사람들이 악마와 거래를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벌을 받았다고 말했답니다. ‘하나님의 뜻’ 정도가 아니라 아예 ‘악마와 거래를 했기 때문’이라니, 이 정도 되면 ‘확신’이 아니라 ‘광신’이라고 불러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악마와의 거래’가 2백 년 전에 아이티의 당시 노예들이 혁명을 일으켜 해방과 독립을 이룬 일을 가리킨다니, 이 사람은 아이티 인들이 영원히 노예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는 모양입니다.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와 정의와 자비와 신의

구약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부르고 심지어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까지 부릅니다. 이 용어들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아닌 다른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고 심지어는 ‘버림받은 백성’이라고 오해할 여지 말입니다. 이는 크게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택 받은 백성이기는 하지만 그들이 다른 백성보다 잘났거나 미덕이 많아서 선택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선택하신 이유는 그들만 위해주고 그들만 구원해주시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해서 모든 족속이, 온 인류가 복을 받게 하시기 위해서 그들을 택하셨던 것입니다.

구약성경이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얘기들로 가득 차 있는 이유도 그들이 모범적인 신앙을 보여줬거나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모범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구약성경은 그들의 공적과 과오를 숨김없이 보여줌으로써 후대 사람들의 거울이 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세 사람이 걸어가면 거기서는 반드시 배울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잘 하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해야 잘할까를 배우고 잘 못하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함을 배운다고 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후자에 속합니다.

그들에게는 따를만한 좋은 점보다는 따르면 안 될 나쁜 점들이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그들에게도 배울 점이 있습니다. 이 점은 오늘날 우리 신앙에도 매우 중요합니다. 오랫동안 이민족의 침략을 받아 고난을 겪으며 살던 이스라엘은 결국 721년에 북 왕국이, 587년에는 남 왕국이 각각 아시리아와 바빌론에 의해 멸망당했습니다. 이 일로 인해 오랫동안 그들을 괴롭힌 신앙적 질문은 ‘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들이 이민족에 의해 망했을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하나님 야훼께서 자기들뿐 아니라 이민족들의 운명까지 좌우한다고 믿었으므로 자기들이 망한 이유는 자기들 신 야훼가 이민족의 신보다 힘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믿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이 망한 데는 야훼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하나님이 자기들을 멸망시켰는가 말입니다. 이스라엘은 그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궁극적으로 그들이 내놓은 대답은 이것이었습니다. 첫째로 자기들이 야훼 하나님만 믿고 따르지 않고 바알 신을 따랐기 때문이고, 둘째로 자기들이 율법이 명하는 대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가난한 사람들을 돌봐주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하나님의 벌을 받아 멸망했다는 것이지요. 보통 약소국이 강대국에게 망할 경우 그 이유는 힘이 없어서라거나 외교력을 발휘하지 못해서 등으로 보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비극이 일어났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가난한 사람들을 제대로 돌봐주지 않았기 때문에 망했다고 그들은 믿었습니다.

이런 믿음은 오늘 읽은 마태복음 23장의 예수님의 말씀과도 통하고 오늘날 아이티의 비극을 제대로 바라보고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3장에서 “너희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에 대해서는 십분의 일을 바치라는 율법을 지키면서 정의와 자비와 신의 같은 아주 중요한 율법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십분의 일세를 바치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지만 정의와 자비와 신의도 실천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사소한 것’의 대명사이고 정의와 자비와 신의는 ‘중요한 것’의 대명사로 해석합니다. 사소한 것에 마음이 팔려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지 말라는 뜻이라는 얘기지요. 하지만 이 말씀을 그렇게 이해하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과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사소한 것도 하고 중요한 것도 해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십일조를 바치는 일은 하나님께 대해서 하는 일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의와 자비와 신의라는 미덕은 누구를 향한 미덕입니까? 물론 하나님과도 전혀 상관없지는 않지만 이 미덕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향한 미덕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이 규정하고 있는 덕목이지만 이 덕목들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향해 지켜야 할 덕목들입니다. 따라서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에 대해서 할 일도 해야 하지만 사람에게 해야 할 덕목들도 소홀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나는 꿈이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이 오늘날 아이티 참사를 제대로 알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은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습니다. 지진은 예측이 불가능하므로 미리 대비하기도 어렵습니다. 말 그대로 불가항력입니다. 하지만 지진에 대한 피해는 줄일 수 있습니다. 한 공동체에 ‘정의와 자비와 신의’라는 미덕이 얼마나 깊이 뿌리내려져 있고 제도화되어 있느냐에 따라서 천재지변으로 인해 공동체 구성원이 당하는 피해의 크기가 결정됩니다. 피해자를 없앨 수는 없겠지만 크게 줄일 수는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LA가 정의와 자비와 신의로 연결되어 있는 공동체라고는 할 수 없고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풍요가 직, 간접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고통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기는 하지만 좌우간 공동체에 따라서 천재지변의 피해의 크기가 달라짐을 분명한 사실입니다.

지금부터 50년 전에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어느 날, 조지아에서 미시시피와 앨라배마에 이르기까지 옛 노예의 아들들이 옛 주인의 아들들과 함께 형제처럼 살게 되는 꿈입니다. 나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백인 어린이가 흑인 어린이와 형제자매처럼 손을 잡고 피부 색깔 대신에 인격을 기준으로 평가를 하며 평가를 받게 되는 꿈입니다.”라고 외쳤던 선지자가 있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이 바로 그분입니다. 그는 백인과 흑인이 평등하게 사는 꿈을 꿨습니다.

그런데 그 꿈은 백인과 흑인만 평등해지면 이뤄지는 꿈이 아니었습니다. 킹 목사님도 이 사실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는 꿈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아모스의 예언이 실현되고 정의가 강물처럼 흘러내리며 진리가 거대한 분류(奔流)처럼 흐르게 되는 꿈입니다. 어느 날,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태어났고 창조주로부터 생명, 자유, 행복추구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다는 제퍼슨의 말을 인정하게 되는 꿈입니다.”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민권(civil right)보다 더 중요하고 민권의 바탕이 되는 것은 인권(human right)입니다. 미국 안에서 누구나 평등하게 살 수 있는 민권은 온 인류가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인권이 없으면 결코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킹 목사님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모든 산골짜기가 솟아오르고 언덕과 산들이 주저앉으며 굽어진 곳이 곧게 펴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모든 인간이 함께 볼 수 있는 날이 오는 꿈입니다. 나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인간이 모두 형제가 되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아이들이 흑인이건 백인이건 유태인이건 비 유태인이건 개신교도이건 가톨릭신자이건 모두 손을 잡고 ‘자유가 왔다! 자유가 왔다! 하나님, 감사합니다!’하고 영가(靈歌)를 부를 수 있는 날, 나는 지금 그 날을 꿈꾸고 있습니다.”라고 외쳤습니다.

이런 참사가 왜 일어났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있는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저는 도무지 가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아이티 국민들이 겪고 있는 막대한 피해가 불가항력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피해를 훨씬 더 줄일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사정이 이렇게 된 데는 미국 정부의 책임이 크고 미국 정부가 그런 정책을 고수할 수 있었던 데는 미국 국민의 책임이 큽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표를 주어 국가권력을 맡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현실을 바로 인식하고 50년 전 킹 목사님이 꾸었던 꿈을 미국의 흑인뿐 아니라 세계의 모든 가난한 사람들이 인간답게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었으면 좋겠습니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공존한다는 아이티 국민들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시기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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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31)
  천지불인 회화나무 2010-01-23 22:23:45
저에게는 노자의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어쩌면 '하느님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신다'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무언가 하는 것은 사람이고요.
- 교회에서 한 번 뵌 적이 있는데 꼽아보니 벌써 4년이 되었네요. 기억하실른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뿌리를 찾아서 2편 무지 기다리고 있습니다. 송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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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XXX.XXX.119)
  기억하고 말고요... 곽건용 2010-01-24 08:47:49
제가 기억력이 참 빈곤하기는 하나 송호찬 님은 기억합니다. 그때 이충섭 님이 시인이라고 소개한 것도 기억하는데요. 물론 이걸 떠올리는 데 시간이 좀 걸리긴 했습니다. 편집진이 제목을 '....뿌리는 찾아서'라고 붙이셨지만 좀 부담스러운 제목이고 그보다는 차라리 '오다가다 만난 사람들'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너무 casual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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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XXX.XXX.29)
  아이티 국민이 겪고있는 고통을 보고 피아노 치는 여자 ^^ 2010-01-21 18:39:43
팻 로버트슨이 한 말과 같은 말(아이티는 우상숭배가 만연한 땅이라 그리 되었다는)을 하는 어떤 광신도에게, 잘못하면 그 얼굴에다 신발을 집어던지게 될 것 같아 제가 피해버렸습니다. 선배님의 말씀, 특히 마태오 복음 23장해석을 읽으니, 그때 받은 마음의 상처가 치유됩니다, 오늘도 좋으신 말씀에 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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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XXX.XXX.89)
  투신도 이시군요 스피노자 2010-01-22 18:24:57
악인에게 신발을 던지는 종교인을 뜻하는 말입니다. 너무 높은 하이힐은 던질 때 조심하십시오, 뺄때 고생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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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XXX.XXX.13)
  하이, 스피노자님~ Pianist 2010-01-22 22:16:49
제가 투신도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하이힐은 늘 신습니다, 그것도 킬힐로다가..맞으면 꽤 아프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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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XXX.XXX.89)
  이제 그 하이힐을 못본다고 생각하니 스피노자 2010-01-27 00:57:10
아쉽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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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XXX.XXX.87)
  광신이란... 곽건용 2010-01-22 07:15:55
많은 사람들이 광신을 '과다한 신앙'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광신은 '잘못된 신앙'이라고 봐야겠죠. 신앙의 크고 작음과는 상관 없죠. 별로 신앙이 크지도 않으면서 광신자인 사람도 있더라고요. 그나저나 제가 피아노 치는 여자분 좋아하는 줄 어떻게 아셨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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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XXX.XXX.58)
  어떻게 알기는요. 피아노 치는 여자 2010-01-22 21:24:45
아무리 싫다고 하셨어도 제가 그 말씀을 다큐로 들었겠습니까? 호호호
선배님, 그나저나 좋은 말씀들로 제 영혼 관리 정말 잘해주고 계십니다.꾸벅~
언제 점심모임에서 뵙고 또 인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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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XXX.XXX.89)
  미신과 광신 payton 2010-01-21 12:08:42
"하나님의 뜻을 나는 알고 있다고 믿고 있으면" 자기 혼자만 옳다고 믿는 그 믿음은 광신이 될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믿고 있으면" 모르는 것을 믿고 있으니 미신아닌가? 대부분의 종교적 질문들은 마치 "용의 눈썹이 있니? 없니? 넌 아니?" 라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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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XXX.XXX.5)
  선가에서는....... payton 2010-01-22 15:03:43
그래서 선가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하나님 뜻을 나는 알고 있다고 하면 그것은 오만이고 광신이다. 그러나 하나님 뜻은 나는 모른다라고 하면 그것은 모르는 것을 믿으니 맹신이고 미신이다" 그럼 당신은 하나님의 뜻을 아나? 모르나? "아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 것도 아닌가?" 혹은 "아는 것이기도 하고 모르는 것이기도 한가?".... 이 모두는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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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XXX.XXX.5)
  반갑습니다, 김판건님 ^^ 박승규 2010-01-22 17:45:54
"이 모두는 틀렸다"가 다시 용의 눈썹이 됩니다. 그래서 一切皆空이고, "一切皆空"도 다시 空이 되죠.
결국 無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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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35)
  인연따라 나타나겠지요. payton 2010-01-22 18:33:47
맞습니다. 틀렸다 또한 용의 눈썹입니다. 그러나 이 모두 또한 인연따라 다 나타나겠지요. 항상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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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XXX.XXX.5)
  항상 갖게 되는 궁금증인데 양민 2010-01-22 18:48:15
제가 이쪽으로 문외한이라서 여쭙는 것 이니 이해하시고...
그러면, 모두가 틀렸고....정답은 항상 모두 아니고....그런 겁니까?
답은 항상 없고...또는 네 맘 속에 있고...또는 다른 질문으로 이어지고....
어떤 때는 스승과 제자가 같은 마음이라...고 하는 데...
그런 때는 정말 그 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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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XXX.XXX.15)
  사랑이란... 종교란... 곽건용 2010-01-22 07:12:46
사랑이란 달라고 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갖고 있지도 않은 사람이 주려고 애쓰는 것이라던가요? 종교란 캄캄한 방 안에서 있지도 않은 것을 찾으려고 애쓰는 것이라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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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XXX.XXX.58)
  곽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payton 2010-01-21 12:13:52
참 와 닿았습니다. 위의 글은 곽목사님의 글을 외람되지만 저 나름 몇 글자로 줄여본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덕목... 그 꿈... 이러한 것들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살맛나게 만들지 않나 합니다. 하나님이 아이티와 함께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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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XXX.XXX.5)
  곽건용님, 고맙습니다. 박승규 2010-01-21 11:25:28
실은 이경훈님때문에 돌아왔습니다. 아래 '수유+너머' 글 때문에... 사실 어디 간건 아니었으니까요, 그냥 쉬었을 뿐.


최응환님, 위키피디아를 보셨군요. ^^ 저는 제가 대략 계산했습니다만, 평균을 낸 근사값이라 오차가 있습니다. '강도(intensity)'와'규모(magnitude)'는 구분을 해야 합니다. 아이티의 경우 큰 피해가 가난 때문만이라고 결정할 수는 없다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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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35)
  스프링클러가 있는 부자 동네와 빽빽히 모여사는 가난한 동네와의 차이군요 최응환 2010-01-21 11:05:50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결국 인간은 종교에서 자기가 원하는것을 보는것같습니다 복수를 하려는자는 vengeful god을 보고 자비를 원하는자는 merciful한 god을 보고 사랑을 찾는자는 god of love를 보고 신비함을 원하는자는 mysterious god을 보는것 아닐까요. 기독교의 "장점"은 신의 이런 모든 모습을 다 포함하고 있다는것 같습니다. 종교의 "힘"은 종교자체에서 나오는것이 아니라 믿는사람의 의지에서 나온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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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XXX.XXX.87)
  나도 고장났지만 곽건용 2010-01-21 11:16:19
스프링클러 시설이 되어 있는 집에 사는데... 8년 전 이사왔을 때도 자동장치가 고장나서 내내 손으로 켰다 껐다 하지만.... 2배? 3배? What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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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XXX.XXX.29)
  사람은 땅에 붙어 살아야 양민 2010-01-21 18:02:22
태초에 빌딩이 없었자누.
지진시 죽는 이의 대부분은 빌딩에 깔려 죽으니
결국은 자연재해라기 보다 인재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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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XXX.XXX.15)
  지진 규모는 로그 스케일입니다. 박승규 2010-01-21 10:15:12
노스리지 지진은 규모(magnitude) 6.7입니다. 0.3 차이면 에너지가 약 3배인데 전혀 비슷하지 않습니다. TNT 20만개와 60만개의 차이라고 할까요... 또 진앙의 위치에 따라 수신지역의 도착 강도는 어마어마하게 커질 수 있습니다. 아이티의 경우 지하 수km 정도의 진앙이라고 하니 지진 강도는 8~10까지 높아지는데, 이는 카리브해 섬 지역의 특성입니다. 물론, 같은 강도의 경우 가난한 지역이 피해가 더 크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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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35)
  그렇군요 곽건용 2010-01-21 11:03:53
고맙습니다. 제가 단순히 숫자만 갖고 얘기했네요. 그나저나 내 덕분에 승규 님이 돌아왔네. 그건 기분 좋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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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XXX.XXX.29)
  결국 유대인들은 문제의 해결을 이원영 2010-01-21 09:44:07
밖의 원인이 아닌 내부의 원인에서 찾았다는 얘기군요. 요즘 처세술 책을 보면 그와 같은 메시지가 많이 들리더군요. 문제의 원인은 환경이나 '너'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나'에게 있다는 시각, 그래야만 자기 변혁을 이룰 수 있다는 것, 환경을 아무리 탓해봐야 변화의 해답은 되지 못한다는 것, 자기 반성, 자기 변혁, 자기 혁명이 필요하다는 말씀으로 새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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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XXX.XXX.73)
  그렇다고 지금 유대인이 곽건용 2010-01-21 11:04:57
그렇다는 얘긴 아닙니다. 지금 유대인과 고대 이스라엘 백성은 다른 점이 많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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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XXX.XXX.29)
  순진한 생각 이충섭 2010-01-21 09:42:43
자기 손으로 열심히 일해서 얻은 것만으로 모두 제각각 평화롭게 살 수는 없을까요? 다른 사람들 노동의 결과물이 꼭 필요하면 나의 것과 서로 합의한 가격으로 맞바꾸면 되고요.

제국주의, 식민주의, 전쟁, 이윤... 이거 모두 남의 것 부당하게 빼앗자는 강도짓 아닌가요. 거대기업들의 제품들을 사용하면서 하루를 시작한 한 사람으로서 이미 공범이지만서두.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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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XXX.XXX.225)
  세상에는 곽건용 2010-01-21 11:12:39
칼 든 강도보다 더 무서운 강도들도 많데요. 강도는 분명 강도인데 뭘 갖다주는 강도가 더 무서운 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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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XXX.XXX.29)
  미국정부, 미국 국민의 책임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변홍진 2010-01-21 08:46:56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꿈을 아주 적절하게 표현해주었습니다. 그 분은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에게 그 의 꿈이 공유되기를 기원했습니다. 오늘의 아이티 참상은 미국정부와 국민에게도 큰 책임이 있겠지만 아이티 정부나 국민에게도 책임이 없었다고는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티 지진 참상에서 우리의 책임이 무엇인가를 느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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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XXX.XXX.113)
  그렇네요 곽건용 2010-01-21 11:08:31
아이티 사람들 책임이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크기로 보면... 전 여전히 유럽의 열강들과 미국의 책임이 크다고 보고요, 그리고 지금 미국에 사는 우리가 아이티 인의 책임을 묻는 것보다는 미국인과 미국에 사는 한인들이 책임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선배님도 글로나마 오랜만에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요즘 왜 화수점회엔 안 나오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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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XXX.XXX.29)
  제 성장기에 이렇게 말씀해주시는 분이 있었다면 이경훈 2010-01-21 05:53:31
저도 기독교인이 되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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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XXX.XXX.83)
  경훈님의 성장기 이충섭 2010-01-21 12:03:55
요즘 산악잔차, 아크로 등으로 워낙 바쁘게 사는 걸 보면 성장판이 계속 열려 있는 것 같던데... 지금도 늦지 않았다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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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XXX.XXX.225)
  이렇게 말하는 사람 곽건용 2010-01-21 11:10:32
찾아보면 적지 않았을 겁니다. 물론 많지도 않겠지만. 기독교인이 되면 좋겠지만 아니라도 좋습니다. 같은 뜻을 갖고 있다면. 새끼 댓글 빨리 달았습니다. 또 혼날까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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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XXX.XXX.29)
  그런 분이 많습니다만. 그러게요 2010-01-21 10:15:44
지금이라도 이렇게 말해주는 분이 있으니 늦지는 않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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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XXX.XXX.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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