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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아지지 않았다
[삶과 영성] 세밑에 생각하는 용서/ By 곽건용
2009년 12월 31일 (목) 21:41:29 곽건용 기자 Editor@Acropoli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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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2009년은 과거의 시간이 됩니다. 연말을 한두 번 지내본 것도 아닌데, 그리고 2009년이란 해가 10년 전처럼 새로운 세기가 열리는 해도 아닌데 한 해를 보내는 지금 기분이 참 묘합니다. 왜 그런가를 이리저리 생각해봤지만 마땅한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작년에도 그랬을 터이지만 말입니다.

이즈음에 자꾸 떠오르는 질문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어떤 것들일까요? 어떻게 사는 것이 제대로 잘 사는 걸까요? 우선 밥 먹고 살만은 해야겠지요. 너무 가진 것이 없고 하루 세 끼 끼니 걱정을 해야 한다면 그걸 잘 사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요. 얼마큼 가져야 먹고살만한 것인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우린 끝없이 가져야 한다고 믿는 탐욕의 노예는 아니니 나름의 한계는 분명히 있습니다. 

물론 먹고 사는 것만으로는 잘 산다고 볼 수 없고 제대로 살려면 그것 말고도 갖춰야 할 것이 많습니다. 잘 살려면 ‘알아야’ 할 것이 많습니다. 이 ‘알아야 할 것’을 지식이라 부르든 지혜라 부르든 간에 제대로 잘 사는 데는 어느 정도의 앎이 반드시 필요하고 그 앎을 주어진 상황에 제대로 적용하고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유대인이 들으면 싸우자고 덤비겠지만 그들이 현재 팔레스타인에서 벌이는 잔인한 일들 때문에 저는 유대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난주에 <Live and Become>이란 영화를 본 다음에는 유대인도 다 같지 않음을 알게 됐습니다. 

구약성경 열왕기상 10장을 보면 시바의 여왕이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친히 예루살렘까지 찾아와서 솔로몬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그의 지혜를 떠봤는데 솔로몬이 막힘없이 대답하자 이에 탄복하고 엄청난 선물을 내려놓고 돌아갔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성경에는 없지만 전설에 따르면 시바의 여왕은 이때 선물만 내려놓고 간 것이 아니라 솔로몬의 자식까지 잉태해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바, 곧 지금의 에티오피아에는 오랫동안 솔로몬과 시바 여왕의 후손 유대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들은 피부색이 검은 유대인입니다. 

사실 역사학으로나 고고학적으로 보면 이 얘기는 사실이 아니라고 합니다. 시바라는 지역도 아프리카 에티오피아가 아니라 아라비아의 남쪽 끝에 자리잡고 있다고 합니다. 역사와 전설은 이렇듯 서로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아프리카에도 유대인이 존재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다만 이들은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에서서 비롯되지 않고 고대 북 왕국 이스라엘과 남 왕국 유다가 각각 아시리아와 바빌론에게 멸망당했을 때 일군의 유민(流民)들이 아프리카로 이주해왔다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이외에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중 하나인 단 지파(Danite) 일부가 아프리카로 건너왔다는 설도 있습니다. 좌우간 에티오피아에는 스스로 모세의 후손이라고 믿는 검은 피부의 유대인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Live and Become

이들 에티오피아 유대인들은 ‘유배자’ 또는 ‘이방인’이란 뜻을 가진 ‘팔라샤’(Falasha)라고 불렸는데 이스라엘 당국에 의해 유대인으로 공인되어 1984년과 1991년 각각 ‘모세 작전’(Operation Moses)과 ‘솔로몬 작전’(Operation Solomon)이란 이름의 작전을 통해 이스라엘 땅으로 비밀리에 공수되어 왔습니다. 

영화는 수단의 한 난민 수용소에 있던 한 에티오피아 어머니가 우는 남자 아이를 떠밀어 팔라샤 유대인을 이스라엘 땅으로 실어 나르는 비행기에 태우는 데서 시작됩니다. 아이의 집안은 유대인이 아니라 기독교인이었는데 엄마가 아홉 살짜리 아들을 살리기 위해 유대인이라고 속여 이스라엘로 보냈던 것입니다. 

홀로 가게 된 아이는 한 유대인 여인을 만나 그녀의 아들로 탈바꿈되어 솔로몬이란 이름을 갖게 됩니다. 그는 절대로 자신의 정체를 밝히면 안 된다는 명령을 받았고 아버지는 모세, 할아버지는 야곱, 할머니는 한나 등등의 가짜 이름들을 줄줄이 외워야 했습니다. 영화 제목 <Live and Become>은 솔로몬의 어머니가 아들과 헤어지던 순간 절대로 아프리카로 돌아오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했던 말입니다. 솔로몬은 자라면서 수수께끼 같은 이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를 생각하고 또 생각합니다.

이스라엘에 도착한 솔로몬은 한 백인 유대인 가정에 입양됩니다. 그를 입양한 부부는 유대인이지만 종교가 없는 사람이었고 딸과 아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식구들은 솔로몬을 따뜻하게 대해줍니다. 하지만 그가 마음을 여는 데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이렇듯 집안에서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피부 색깔 때문에 솔로몬이 사회에서 당하는 차별은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솔로몬을 잘 키우려는 부모의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입니다.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솔로몬이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학부모들이 그를 딴 학교로 전학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을 때 솔로몬의 어머니가 보인 모습입니다. 그녀는 아이들과 부모들이 보는 앞에서 “내 아들이 왜 더럽다는 거냐? 내 아들도 너희 아이들과 똑같다.”고 외치면서 솔로몬의 얼굴을 혀로 막 핥습니다. 마치 동물이 자기 새끼를 핥듯이 어머니는 솔로몬을 그렇게 핥습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가슴에서 뭔가 울컥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한 장면만 더 얘기할까요? 솔로몬이 중학생 쯤 됐을 때 학교에서 디베이트 경연이 벌어졌습니다. 유대인 학교여서 디베이트는 성경구절을 나름대로 설득력 있게 해석해서 연설하는 경연인데 먼저 나온 백인 학생이 아담은 백인이었고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만들었다고 했으니 하나님도 백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노아의 아들 함을 얘기하면서 흑인은 저주받은 종족이란 말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듣고 있던 학생들이 환호성과 함께 우레 같은 박수를 보냈습니다. 

솔로몬의 순서가 됐습니다. 그는 청중들의 싸늘한 눈초리에 질려 처음에는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입도 잘 열지 못하다가 용기를 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흙을 빚어 아담을 만들었다고 했다. 흙이 무슨 색깔인가? 흙은 흰색도 검은색도 아닌 붉은 색이다. 따라서 아담의 피부는 붉은 색이었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면 하나님은 백인이 아니라 홍인이다.”

솔로몬은 많은 어려움을 겪지만 양부모의 깊은 사랑 덕분으로, 그리고 솔로몬과 똑같이 팔라샤인 한 랍비의 도움으로 잘 성장해서 결국 의사가 돼서 아프리카로 돌아갑니다. 솔로몬은 친어머니가 자기를 버렸다고 생각했고 아프리카로 돌아오지 말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자기를 버린 어머니를 가슴으로 이해하고 용서하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영화는 그가 어머니를 이해하고 용서하게 됐음을 암시하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그가 하루는 한 나이 많은 여인이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모습을 봅니다. 그녀를 보는 순간 솔로몬은 갑자기 그녀에게 달려가 그녀를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립니다. 그녀에게서 어머니를 봤던 것입니다.

이 영화를 통해서 알게 된 것이 앞으로 제 생애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떻게 내 삶을 변화시킬지 지금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유대인에 대해 전에 모르던 것을 알게 됐고 그들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게 된 것만은 분명합니다. 

≈용서하십시오

연말이 되면 떠오르는 우화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이가 들어 어린 시절을 보낸 시골집을 찾았습니다. 지금은 남의 집이 되어 버린 옛날 자기 집, 그러나 대문 앞 감나무는 그대로 있었습니다. 감나무를 보자 그는 문득 어린 시절에 그 나무 아래 뭔가를 묻어뒀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나무 아래를 파보았더니 마개로 막아놓은 유리병 하나가 나왔습니다. 어린 시절의 생각이 담겨 있는 작은 유리병, 그 안에 무엇을 넣어놨을까 궁금해 하며 마개를 열어보니 작은 종이쪽지가 하나 들어 있었습니다. 그 쪽지에는 ‘앞으로 형하고는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슬며시 웃음이 나왔습니다. 어린 시절 한 줌의 분노를 유리병 안에 오랫동안 가두어놓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된 지금, 그의 어린 분노는 병마개를 열자 씻은 듯이 흩어져 버렸습니다. 

교회 다니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용서’라는 말일 것입니다. 향린교회 주일예배에는 ‘죄의 고백’과 ‘용서의 선언’이라는 순서가 있습니다. 죄를 고백하긴 하겠는데 솔직히 말하면 용서의 선언이 가슴에 닿지 않는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죄를 고백한다고 해서 정말 용서를 받은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왜 용서의 확신이 생기지 않는가 하면 우리가 남의 잘못을 진정으로 용서해본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남을 진심으로 용서할 수 없는 이유는 남을 진심으로 이해해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남을 이해하는 데는 단계가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상상해보는 것입니다. ‘아마 그 사람은 이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했을 거야.’하는 식으로 상상으로나마 그를 이해해보는 것입니다. 둘째 단계는 얘기하는 것입니다. 상상에 그치지 말고 용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실제로 만나서 얘기해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그를 더 많이 이해하게 되고 이해하는 그 만큼 그를 용서하기가 쉬워집니다. 

마지막 단계는 그 사람이 되어보는 것입니다. 물론 이 단계를 실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남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남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 불가능성이 남이 되어보려는 노력을 무의미하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불가능하지만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이 가능성을 열어놓습니다. 솔로몬이 흙바닥에 앉아 있는 여인을 봤을 때 그는 그녀에게서 어머니를 봤습니다. 그가 그녀를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뜨렸을 때 그는 어머니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남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라도 남을 용서하라고 말합니다. 용서하는 길이 내가 사는 길이니 나를 위해서라도 남을 용서하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 말이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용서에는 나와 남의 구별이 없어야 합니다.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용서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가 모두 살 수 없기 때문에 용서하는 것입니다. 용서를 미덕이랄 수 없습니다. 용서는 종교적 선행일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살아가는 방식이고 살아남는 길입니다. 곧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용서하지 않고 사는 삶은 사는 것이 아니란 얘기입니다. 

요한일서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신다’가 아니라 ‘사랑이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행위의 주체가 아니라 사랑과 동격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이란 분이 계시는데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사랑이 곧 하나님의 존재이고 하나님이 존재하는 방식이 곧 사랑이다, 하나님은 사랑으로만 존재하신다는 뜻입니다. 용서도 이와 비슷합니다. 용서는 하나의 미덕이나 신앙의 실천 덕목이 아니라 사람이 존재하는 방식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용서하지 않으면 사람답게 살 수 없다, 용서하지 않으면 그것은 사람의 삶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용서하고 화해해야 할 대상은 우리 자신입니다. “최선을 다한 여러분, 이제 떠나십시오!”는 광고 카피이고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최선을 다한 여러분, 이젠 자신을 용서하십시오!”입니다. 어떤 시인의 노래대로 기대한 만큼 채워지지 않는다고 초조해하지 마십시오.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최선을 다한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더 사랑하지 못 한다고 애태우지도 마십시오.  마음을 다해 사랑한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완전히 용서하지 못한다고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아파하면서 용서를 생각한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입니다. 세상의 모든 꽃과 잎은 더 아름답게 피지 못 한다고 안달하지 않습니다. 자기 이름으로 피어난 거기까지 꽃과 잎의 한계이고 그것이 최상의 아름다움이기 때문입니다. 최선을 다한 여러분, 이제 여러문을 이해하고 용서하십시오. 그것만으로도 여러분은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여러분, 2009년 한 해를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사시느라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이제는 더 훌륭한 시를 쓸 준비를 할 시간입니다. 더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시간입니다. 더 먼 항해를 시작할 준비를 해야 할 때입니다.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어지지 않았고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리지 않았습니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아지지 않았고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으며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고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며 진정한 여행은 이제 막 시작되려 하고 있습니다.

(나짐 히크메트Nazim Hikmet의 시 ‘진정한 여행’The Best Journey을 변형했습니다.)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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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11)
  용서하는 사람의 행복 Payton 2010-01-04 02:48:12
산을 사랑하면 그 산을 사랑하는 내가 좋습니다. 꽃을 좋아하면, 그 꽃을 사랑하는 내가 좋습니다. 남을 이해하면, 그 이해하는 내 자신이 좋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이 세상 모든 종교인도 하나남의 사랑으로 모든 존재를 서로 사랑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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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XXX.XXX.247)
  양 선배님, 곽건용 2010-01-03 18:17:09
전혀 안 썰렁했습니다. 근데 "또" 라고 말씀하시니 언제 썰렁했던 적이 있었나 봅니다?? 전 기억이 없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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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XXX.XXX.6)
  용서합니다. 양민 2010-01-01 11:43:12
하나님은 이미 값을 치뤄놓고 언제나 그 것도 바로바로 용서한다지요.
그런데 용서받은 사람은 그 것을 잘 모른다지요,

그런데 사람은 남을 용서하기 위해 꼭 뭔가 치뤄야 하지요.
또 용서의 대상은 나름대로 꼭 뭔가를 치루지요.

사람에 대한 용서는 사실은 내 자신에 대한 용서일 뿐 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죄를, 하나님을 용서를," 이란 격언이 있는 것 같아요.

곽목사님 또 썰렁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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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XXX.XXX.154)
  Live and Become은 곽건용 2010-01-01 09:15:15
빌려 보려면 Netflix에서 빌리면 되고 사려면 Amazon에 가면 되겠지요. 전 빌려 봤습니다. 영화는 현대 히브리어와 불어로 진행되는데 당근 자막이 있습니다. 제기 설교한 다음에 한 교인이 "히브리어를 알아들으세요?" 하고 물어 웃었습니다. 미국 사람은 자막 읽는 걸 싫어한다는데 우린 자막에 워낙 익숙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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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XXX.XXX.6)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최강국 2010-01-01 00:32:13
오늘 하용조 목사님의 송구영신예배 설교를 CGNTV를 통해서 들었는데,
이사야 43장의 과거를 잊으라 + 새 일을 시작하겠다는 말씀 속에서
제게 용서에 대한 화두가 던져졌습니다.
그리고 나서 선배님의 글을 읽으니
많은 위로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추천0 반대0
(76.XXX.XXX.73)
  강국 님, 곽건용 2010-01-01 09:18:01
오랜만입니다. 잘 지냈습니까? 화수점회나 다른 모임에서 얼굴 한 번 봅시다.
추천0 반대0
(66.XXX.XXX.6)
  Live & Become을 김한신 2009-12-31 22:39:33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요? 영어로도 있겠지요?
추천0 반대0
(75.XXX.XXX.185)
  말씀 여몽 2009-12-31 13:23:50
고맙습니다. 다시 글을 올려 주셔서 더욱 감사합니다. 천천히 다시 한번 읽을겁니다.
추천0 반대0
(68.XXX.XXX.94)
  여몽 님 곽건용 2010-01-01 09:22:47
필명으로만 알아서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동부에 계신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습니다. 맞나요? 한 번 읽어주는 것도 고마운데 다시 한 번 읽으신다니...
추천0 반대0
(66.XXX.XXX.6)
  곽 선배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변변 2009-12-31 07:04:20
Live and Become 그리고 용서. 간디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진정한 변화를 원한다면 당신이 변화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진정한 용서를 원한다면 우리 자신이 먼저 용서를 해야하는데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명심하고 저도 변화와 용서를 시도해보겠습니다. 올해 선배님도 좋은 일 많이 생기기를 빌겠습니다.
추천0 반대0
(97.XXX.XXX.64)
  변변 님, 곽건용 2010-01-01 09:20:11
지난번 환영회 때 못 나갔습니다. 오라는 데는 없지만 갈 데는 많은 사람이라서...^^ 언젠가 또 기회가 있겠지요.
추천0 반대0
(66.XXX.XXX.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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