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1 금 18:48
> 뉴스 > 삶과 영성
       
성탄절은 기독교만의 축제가 아니다
[삶과 영성]-하나님이 사람이 된 이야기/By 곽건용
2009년 12월 25일 (금) 17:10:41 곽건용 기자 Editor@AcropolisTimes.com
곽건용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클릭!  

 

   
성탄절 이야기는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기독교는 단순히 하나님을 믿는 종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존재하고 있고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궁극적인 원인이라고 믿는 종교에 그치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고 믿는 종교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대로 있고 사람은 사람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하나님 안에서 사람을 보고 사람 안에서 하나님을 보는 종교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하나님을 말하지 않으면 사람을 말할 수 없고 사람을 말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말할 수 없다고 믿는 종교가 바로 기독교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고 믿는 종교입니다. 그리고 성탄절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날, 하나님의 생일입니다.
 
그런데 복음서가 전하는 예수 탄생의 이야기를 잘 읽어보면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고 하는 기독교 신앙의 정수(精髓)를 상당히 구체적으로, 살아 움직이듯이 생생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복음서의 예수 탄생 이야기는 처녀가 아기를 낳았다는 초자연적인 얘기를 믿으라고 윽박지르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탄생 이야기에서 이 점에만 집착하는데 안타깝게도 그 때문에 많은 중요한 얘기들을 놓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족보에 나오는 네 명의 여인
 
복음서가 어떻게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라는 기독교 신앙의 정수를 생생하게 전하는지를 살펴봅시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족보로 시작됩니다. 이 족보는 길고 지루하지요. 모르는 이름도 많습니다. 집에 족보를 갖고 있는 분들 중에서 그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사람은 단언하건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저 자기 이름이나 찾아보겠지요. 마찬가지로 아무리 예수님의 족보라지만 재미없고 지루한 족보를 세심하게 읽을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게다가 마태복음의 족보는 누가복음 3장 23절 이하에 나오는 족보와 많이 다릅니다. 역사적으로 신빙성이 있는 족보라고는 볼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걱정할 것 없는 것이, 이 지루한 족보를 성경학자들은 세심히 연구할 수밖에 없으니 우리는 그분들의 연구 성과를 가져다 쓰면 그뿐입니다.
 
마태는 이 족보에 네 명의 여자를 넣어놓았습니다. 유대인도 한국인 못지않게 가부장적인 문화를 갖고 있으므로 공식적인 족보에 여자 이름을 올리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마태는 예수의 족보에 여자 이름을, 한 명도 아니고 네 명이나 넣어놓았습니다. 유다와의 사이에서 베레스와 제라를 낳은 다말이 그 첫째이고, 살몬과 사이에서 보아즈를 낳은 라합이 그 둘째이며, 보아즈와 사이에서 오벳을 낳은 룻이 그 셋째이고, 다윗과의 사이에서 솔로몬을 낳은 ‘우리아의 아내’가 마지막입니다.
 
다말과 유다에 대한 이야기는 창세기 38장에 나오는 가히 엽기적이라 할 만한 얘기입니다. 그 얘기를 다 할 시간은 없고 간단히 말하면 다말은 유다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는데 이 유다가 다말의 시아버지라는 사실이 문제입니다.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합방을 해서 자식을 낳는 일은 요즘에나 옛날에나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고 율법에 따르면 그녀는 마땅히 죽어야 했지만 얘기는 반대로 시아버지 유다가 자기 잘못을 시인하고 며느리의 의를 칭찬합니다. 다말은 창녀를 가장해서 이런 일을 했고 죽을 위기에 몰려서 시아버지가 주고 간 정표를 내놓아 위기를 모면했을 뿐 아니라 시아버지로 하여금 잘못을 고백하게 만든 당찬 여인이었습니다. 마태는 이 다말의 이름을 예수님의 족보에 명시하고 있습니다. 무엇인가 중요한 뜻이 있다고 추측되지 않습니까?
 
그 다음은 라합과 룻입니다. 라합은 살몬과 사이에서 보아즈를 낳은 여인이라 했고 룻은 보아즈와 사이에서 오벳을 낳은 여인으로서 다윗 왕의 증조할머니가 되는 사람입니다. 둘의 공통점은 이들이 모두 ‘이방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라합은 여리고 성에 살고 있던 ‘이방인’ 창녀였고 룻은 이스라엘 사람과 결혼한 모압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인들도 우리 못지않게 핏줄을 중시하는 민족입니다. 요즘은 별로 강조하지 않지만 우리는 오랫동안 ‘단일민족’임을 강조해왔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단일민족이란 것이 어디 있습니까?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신화’입니다. 좌우간 핏줄을 중시하는 유대인의 족보에 두 명의 이방인, 바로 다음에 나오는 밧세바까지 하면 세 명의 이방인의 이름이 버젓이 올라와 있습니다. 여기에도 뭔가 중요한 뜻이 없을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윗과 사이에서 솔로몬을 낳은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입니다. 우리는 그녀가 ‘밧세바’임을 알고 있고 물론 마태도 알았을 텐데 그는 굳이 그녀를 ‘우리야의 아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다윗과 밧세바의 이야기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가장 유명한 스캔들입니다. 다윗이 자기 부하 장군의 아내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겨 그녀의 남편을 간접 살해하고 그녀를 차지했습니다. 이 사건은 다윗의 명예를 실추시켰을 뿐 아니라 밧세바에게도 오명을 씌웠습니다. 명예롭지 못한 사건이었습니다. 
 
너덜너덜한 포대기와 말구유, 구세주를 알아보는 표(sign)
 
다음으로 누가복음이 전하는 예수 탄생 이야기를 봅시다. 누가는 예수가 탄생했을 때의 주변상황을 비교적 상세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구세주로 오신 아기 예수의 탄생 소식은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처음으로 전해졌습니다. 
 
너희는 한 갓난아기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것을 볼 터인데 바로 그것이 그분을 알아보는 ‘표’이다.
 
구세주를 알아보는 표(sign)는 무엇인가 하면 아기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있는 사실이라고 했습니다. 대갓집 안방에서 비단 이불을 덮고 깨끗한 포대기에 싸여 숨소리도 고르게 쌔근쌔근 잠들어 있는 아기가 아입니다. 말똥이 여기저기에 널려 있고 말울음 소리가 요란한 마구간 한 구석에 있는 말 밥통에 누워 있는 아기, 바로 그 아기가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라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하늘로부터 비추는 한 줄기 빛도 없고 아기를 뒤에서 은은하게 비추는 후광 같은 것도 없었습니다. 구세주를 알아보는 유일한 표는 아기가 말울음 소리도 요란한 마구간에 너덜너덜한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다는 사실 그 하나밖에는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것이 사람이 되신 하나님을 알아보는 유일한 ‘표’입니다. 저는 이 얘기에서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예수의 최후 심판의 비유와 연결되는 끈을 봅니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이하였다. 또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으며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주었다.” 예수님은 굶주리고 목마른 나그네로, 헐벗고 병들고 감옥에 갇힌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사실이 기독교 신앙의 정수라고 제가 앞에서 말씀했는데 그 말을 좀 더 구체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냥 사람이 되신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절대로(!)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그냥 사람이 되신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이 되셨습니다. 누가는 이 사실을 추호의 오해도 있을 수 없이 분명하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가난하게 태어나 가난하게 살다가 가난하게 죽은 사람이 되셨습니다. 누가는 예수 탄생 이야기를 통해서 서두에서부터 이 사실을 분명히 했습니다.
 
성탄절, 모든 사람들의 축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저 하늘에서 리모컨으로 세상을 조종하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사람이 되어서 이 세상에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잠시 사람의 몸을 빌려 세상에 머물다가 할 일 다 하고 다시 하늘로 올라간 하나님이 아닙니다. 돌이킬 수 없이 사람이 되어 바로 지금 우리 곁에 계시는 분입니다. 사람이 되신 하나님, 가난한 사람이 되신 하나님, 이 하나님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입니다.
 
이런 하나님은 우리와 같이 웃고 울면서, 우리와 같이 기뻐하고 아파하면서 우리 삶속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다말, 룻, 아합, 밧세바의 하나님이기도 합니다. 성골과 진골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힘없이 주변으로 밀려난 사람들, 내쫓기고 무시당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하나님이기도 합니다. 가장 유대적인 복음서라고 하는 마태복음은 사람이 되신 하나님의 족보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뿐 아니라 이방인인 룻과 아합과 밧세바의 이름도 넣어놓았습니다. 누가복음은 구세주를 알아보는 표가 너덜너덜한 포대기에 싸여 말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라고 말합니다. 이 모든 사실은 성탄절에 사람이 되신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가를 잘 보여줍니다. 이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그 품에 안으시는 하나님입니다. 문화와 언어와 피부색과 성별에 상관없이, 빈부와 계층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은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시는 하나님입니다. 좁디좁은 사람의 생각에 매어 있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 사람들이 입맛대로 그어놓은 경계선 안에 머무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기독교라는 울타리도 하나님을 한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다 품으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이런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성탄절은 기독교인들만의 명절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명절입니다. 기독교인들끼리만 모여 축하하는 날이 아니라 문화와 종교에 상관없이 모든 이웃들이 함께 축하할 날입니다. Merry Christmas!
ⓒ 아크로폴리스타임스(http://www.acropolistime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의견쓰기
이름 비밀번호
제목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현재 0 byte/최대 400byte)
전체기사의견(32)
  개인 신앙 선택의 가장 중요한 요인은 출생지/주변환경이라는 연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최응환 2009-12-29 16:48:04
물론 많은 예외가 있겠지만 주변에 기독교인들이 많으면 기독교인이 될 확률이 많고 중동에서 태어나면 회교가 될 확률이 많겠지요. 어떻게 보면 당연한 얘기겠지만. 물론 한국에서 태어나도 한국말보다 영어를 잘할수도 있겠지만 주변에 영어를 하는 사람이 없고 인터넷이나 유사매체가 없다면 불가능하겠지요. 한국사람에게 한국어가 편한 이유는 한국어가 가장 좋은 언어라서가 아니라 어릴때부터 써서 그렇지 않을까요.
추천0 반대0
(198.XXX.XXX.12)
  최대 종파 이충섭 2009-12-30 09:18:01
도킨스가 그랬던가요? 가장 많은 건 무신론자들이라고.

말로서의 언어에는 차등이 없다고 봅니다. 단, 글로서는 한글이 최우수 그룹에 속하겠죠.
최우수 그룹: 한글, 핀란드어 표기, 프랑스어 표기
최악 그룹: 중국, 일본
중간 그룹: 영어
추천0 반대0
(99.XXX.XXX.225)
  언어의 진화에 대해 최응환 2009-12-30 13:11:23
재러드 다이아몬드 (아크로 최고인기 작가같음)가 분석한 것이 <제3의 침팬지>란 책에 나오는데. 함 보시길
추천0 반대0
(24.XXX.XXX.87)
  종교를 이야기 하는 것은 가능하나 신앙을 논리적으로 독고량 2009-12-29 14:13:49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세상의 눈으로는 불가능해보이는 것도 신앙의 힘으로는 가능한 것이 참 믿음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추천0 반대0
(99.XXX.XXX.210)
  예수님이 인도에 태어났으면 불교를 창시했을 것? 최응환 2009-12-29 11:24:21
이라고 생각도 됩니다. 부처님이 만든 (?) 불교와 동일하진 않더라도 브라만교를 바탕으로 했겠죠. 주변사람들의 신앙이 그러니까. 싯다르타가 팔레스타인에 태어났다면 유대교를 바탕으로 설법을 했겠죠? 진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려면 듣는사람의 frame of reference에 맞춰야 하는 제한성하에서 해야되는 것 같습니다.
추천0 반대0
(24.XXX.XXX.87)
  저는 민족마다 업으로 매인 바가 조금씩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이경훈 2009-12-29 11:44:37
예를 들어 유대인들은 신과의 관계가 아주 중요했던 민족이었고, 인도인들은 현실 집착에서 벗어남, 즉 해탈이었고, 중국인에게는 현실이 중요했다고 봅니다. 해서 궁극적으로는 기독교의 가르침과 불교의 가르침은 깨달음을 이해하는데 있어 근본에서 아주 다르다고 봅니다. 중국인들은 그래서 신이 없고 대신 공자와 제자백가가 있었다고 봅니다만...
추천0 반대0
(75.XXX.XXX.83)
  바로 그러니까 예수님이 인도에서 태어났으면 기독교가 지금과 다를 수있다는 말입니다 최응환 2009-12-29 16:29:18
예수님이 카필라성에서 태어났으면 유대교로 제자들을 어떻게 모았겠습니까...물론 이런 추론에 대한 반론은 하느님이 예수님을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나게 이미 계획하신 것이니까 네팔/인도에 태어날리는 없다는 것이겠죠. 메시아는 다윗의 자손이고 베들레햄에서 태어난다는 구약의 언급도 있고. 훌륭한 소설주제는 되겠네요. 그런데 예수님이 에쎄네 파의 일원으로 청년기를 인도에서 보냈다는 설도 있더라구요?
추천0 반대0
(198.XXX.XXX.12)
  아래 경훈 님의 댓글에 대해서... (2) 곽건용 2009-12-29 08:45:15
그것은 유대교라는 꽉 막힌 토양 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종교였음을 감안하면 이해할만한 일이라고 봅니다.(나만 그런가??^^) 그래서 예수의 족보에 비유대이면서 문제가 있는 여인들의 이름을 넣은 마태는 당시 상황에서 보면 혁명적인 짓을 한 거라고 보는 거죠.
추천0 반대0
(66.XXX.XXX.6)
  친절하게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그런데, 이경훈 2009-12-29 11:19:08
원래부터 기독교가 인터내셔널 의미를 가졌다기 보다는, 기독교 성장 과정에서 유대인을 뛰어넘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는 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사실 아닐까요? 마태가 한 혁명적인 일이라는 것도 유대인 문화 속에서 혁명적인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워낙 파격적인 말씀을 해주셔서 저도 마음 편하게 질문 드립니다.
추천0 반대0
(75.XXX.XXX.83)
  인터내셔널, 유니버셜..(2) 곽건용 2009-12-29 14:45:45
으로 보면 별로 그렇지 않지만 당시 기준으로 보면 그렇다는 얘기죠.
추천0 반대0
(76.XXX.XXX.153)
  인터내셔널, 유니버셜... 곽건용 2009-12-29 14:44:40
지금 같은 지구촌 시대에 인터내셔널, 유니버셜의 의미와 2천 년 전의 그것을 물론 같을 수는 없겠지요. 경훈 님이 '기독교의 성장과정'을 어느 시기를 염두에 두고 썼는지 모르지만(상당히 후대로 짐작합니다) 이미 복음서에 담긴 예수의 메시지에는 유대라는 울타리를 넘어서는 얘기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바울에게는 더 말할 나위 없이 그러합니다. 물론 마태가 혁명적이었다는 말은 산전수전 다 겪은 21세기 사람 기준
추천0 반대0
(76.XXX.XXX.153)
  이제 기독교와 인터내셔널의 관계를 이경훈 2009-12-29 15:20:55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다이아몬드와 비교하자면, 우선 좋은 원석이 있었고, 이를 후대 사람들이 잘 다듬어 빛나게 했다...이렇게 이해하면 되겠지요? 감사합니다.
추천0 반대0
(75.XXX.XXX.83)
  에비온파(ebionite)와 마르시온 (Marcion) 파에 대해서 한번 알아보세요 최응환 2009-12-29 16:36:43
두파 다 초기 기독교 형태입니다. 에비오나잇들은 기독교는 새로운 종교가 아니라 유대교 안에서의 발전으로 파악했습니다. 마르시온은 구약을 무시하고 유대교와의 연관을 끊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토대로 완전히 새로운 종교로 기독교를 생각했습니다. 이를 보면 기독교의 세계화 과정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느정도 지금 현재의 형태로 기독교가 정립된 것은 4세기 이후로 봐야합니다.
추천0 반대0
(198.XXX.XXX.12)
  로마제국의 선물 이충섭 2009-12-29 15:59:36
꽉 막힌 유대교와는 비교가 안 되는 보편성이 예수 자신과 초기 기독교에 존재했었고, 그랬기 때문에 로마제국이란 거름종이를 통과할 수 있었으며, 동시에 로마제국이란 도약대를 굴러 세계화할 수 있었다고.. 그래서 기독교는 로마제국의 마지막 선물 (또는 그 반대) 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추천0 반대0
(99.XXX.XXX.225)
  아래 경훈 님의 댓글에 대해서... 곽건용 2009-12-29 08:41:49
기독교가 비유대인'에게도'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본래 기독교는 유대인, 비유대인의 경계를 뛰어넘는 종교인데 예수가 혈통적으로 유대인이었고 유대인의 문화 속에서 자랐고 유대인 식으로 발언하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고, 또 그 유대 전통이란 것이 워낙 '선을 긋는 데 능한 종교'이므로 신약의 적지 않은 문서들이 유대인, 비유대인 또는 유대교, 비유대교 문제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바울도 그렇고... 하지만
추천0 반대0
(66.XXX.XXX.6)
  그래서... 곽건용 2009-12-29 08:35:23
우리 교회는 석탄일 즈음의 주일예배 때는 석탄을 축하하고 불교와 불교인을 위해 기도합니다.
추천0 반대0
(66.XXX.XXX.6)
  why not?? 곽건용 2009-12-29 08:32:33
모든 종교의 명절이 모든 사람의 축제가 되면 안 될 이유가 없는 거 같은데요. 특정 종교를 강요하자는 의미가 아니어도 말입니다. 예수든 부처든 기본적으로는 자기를 믿고 따르는 사람만을 위한 존재는 아니니 말입니다. 내가 그 종교를 믿지 않더라도 예수와 부처의 가르침은 보편적인 인류를 위한 것 아닌가요? 그래서 크리스마스나 석탄일에 기독교인이나 불교인에게만 노는 날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휴일이지 않습니까.
추천0 반대0
(66.XXX.XXX.6)
  제 말은 모두의 축제가 될 수 없다거나 취지에 반대한다는 뜻이 아니구요. 종선 2009-12-30 01:14:37
다른 종교나 저처럼 신앙이 없는 입장에서는 이글의 제목과 같은 명제가 일방적으로 다가 올 수 있다는 겁니다. 이글이 교회안에서 이루어지는 설교처럼 기독교인만을 위한 글이라면 몰라도 말이죠.
추천0 반대0
(68.XXX.XXX.123)
  본래가... 곽건용 2009-12-30 15:07:49
교회에서 2009년 12월 20일에 설교한 내용임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추천0 반대0
(76.XXX.XXX.153)
  부처님오신날이랑 기타 다른 종교의 명절도 그럼... 정종선 2009-12-28 21:38:10
모두의 축제가 되나요? 글의 의도는 이해가 되지만, 타 종교의 입장에서 보면 여전히 좀 일방적이지 않나 생각됩니다.
추천0 반대0
(68.XXX.XXX.123)
  정말 그렇군요 이충섭 2009-12-28 09:33:47
무턱대고 경배를 주문하는 신들, 왕재숩니다.
인간을 수단으로 보지 않는 유이한 경우가 부처님과 예수님 아닌가요?
추천0 반대0
(99.XXX.XXX.225)
  댓글에 대해 대답하려 했더니... (최종) 곽건용 2009-12-26 10:39:18
한 10년쯤 전에 미 중북부 지역의 한 교회에서 제 후배가 예수의 동정녀 탄생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설교했다가 그 교회 새 목사 후보자에서 탈락한 적이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꽤 지식인 교회라고 자부하는 교회였는데 그랬습니다. 요즘 교회 현실이 이렇습니다.성경은 역사적 사실의 힘보다는 '스토리의 힘'을 믿는 사람들에 의해 기록됐다고 보면 됩니다.
추천0 반대0
(76.XXX.XXX.153)
  한때는 마리아가 예수님 출산후에도 처녀막이 있었다는 설이 있었지요 최응환 2009-12-28 11:10:23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추천0 반대0
(24.XXX.XXX.87)
  Oh my god...!! 이경훈 2009-12-26 13:50:04
...성경은 역사적 사실의 힘보다는 스토리의 힘을 믿는 사람들에 의해 기록되었다...?!?!
추천0 반대0
(75.XXX.XXX.83)
  댓글에 대해 대답하려 했더니... (5) 곽건용 2009-12-26 10:36:08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객관적인 사실은 어쩔 수 업지요. 예수는 요셉 집안의 사람임에 분명하거든요. 그래서 탄생 이야기대로라면 생물학적으로 아무 상관도 없는 요셉 집안의 족보를 전한 거십니다. 하지만 이 족보도 역사적 사실 그대로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족보와는 크게 다르거든요. 결론은 동정녀 탄생은 예수의 특별함에 대한 신앙적 고백이고 족보는 역사에 대한 관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추천0 반대0
(76.XXX.XXX.153)
  댓글에 대해 대답하려 했더니... (4) 곽건용 2009-12-26 10:32:48
이들은 예수가 남과는 다르게 특별하게 태어났다고 말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동정녀 탄생은 그런 동기에서 비롯됐다고 보면 됩니다. 이들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예수는 처음부터 신과 특별한 관계를 갖고 있는 인물이고 특별한 임무를 띠고 이 땅에 온 인물이다, 그는 처음부터 신이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추천0 반대0
(76.XXX.XXX.153)
  댓글에 대해 대답하려 했더니... (3) 곽건용 2009-12-26 10:30:35
근데 이 얘기를 후대에 남기고 싶어했던 사람들이 얘기를 쓰려니 모델이 있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형식과 내용을 완전히 창작할 수는 없었을 터이고 또 그럴 필요도 없었지요. 그래서 따른 모델이 희랍의 영웅 이야기입니다. 그것도 비극적인 영웅 이야기 말입니다. 탄생 이야기뿐 아니라 예수의 생애 전체가 비극적인 영웅의 그것을 많이 닮아 있는 이유가 여기 있지요.
추천0 반대0
(76.XXX.XXX.153)
  댓글에 대해 대답하려 했더니... (2) 곽건용 2009-12-26 10:27:53
역사적으로 따져보면 예수의 탄생에 관한 얘기는 교회가 생긴 후 한참 지나고 나서, 그러니까 신약성경을 비롯한 문서들이 작성되기 시작한 후 한참이 지나서 고민되고 만들어졌다고 봅니다. '근데 이 어른이 어떻게 태어난 거지? 누구네 집안 사람이지??'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가장 처음 기록된 복음서에는 탄생 이야기 자체가 없고 복음서보다 먼저 기록된 바울의 서신에도 이 얘기가 눈꼽만큼도 안 나옵니다.
추천0 반대0
(76.XXX.XXX.153)
  댓글에 대해 대답하려 했더니... 곽건용 2009-12-26 10:21:40
그 댓글이 없어졌네요. 아마 댓글을 단 본인이나 편집진의 판단인 모양인데, 제 생각에는 누구에게나 생기는 의문이고 얼마든지 질문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봅니다. 다만 제가 설교에 대해서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겠다고 해서 내리신 모양입니다. 그런데 대답 안 하면 댓들 장사가 잘 안 될 것 같아서 제 나름의 생각을 밝히겠습니다.
추천0 반대0
(76.XXX.XXX.153)
  오래간만에 읽게 되어 반가왔습니다.... 이경훈 2009-12-25 07:37:20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가난한 사람으로 일관했다...는 것은 쉽게 다가오는데, 마태복음 족보 이야기는 조금...아래 Payton 지적에도 조금 공감이 가고, 이 대목만 떼면, 독자가 유대인인 것이 더 적절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조금 들었습니다. 요는, 기독교가 우리같은 비유대인에게도 해당된다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만.
추천1 반대0
(75.XXX.XXX.83)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 김지영 2009-12-25 04:22:49
Avatar와 통하는 말이네요. 하늘의 신이 지상에 내려와 사람이 알아볼 수 있는 모습으로 현신하는 것이 avatar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는 사람이 부처가 되든 종교의 궁극적 지향은 합일이네요. 하나님이 인간으로 되는 것이 쉬울 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 곽건영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신선한 명제를 던져 주십시요.
추천0 반대0
(68.XXX.XXX.141)
  외롭지만 뜻을 펴는 이원영 2009-12-25 00:36:09
그런 사람이 주목되는 것은 역사의 고금을 통하여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견고한 한국적 기독교 문화에서 님과 같은 주장을 하고, 그 신념을 펴는 각오와 신념은 대단한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영적 성장은 틀을 깨고 바깥 세상을 보는 그 태도, 그 노력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성탄의 의미를 새롭게 인식케 해주신 말씀 감사합니다.
추천0 반대0
(75.XXX.XXX.127)
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3600 Wilshire Blvd., #1214 LA, CA, 90010, USA|Tel 1-818-744-100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경훈
Copyright since 2009 by The Acropolis Times. All rights reserved. mail to Editor@acropolis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