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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몸짓이 꽃이 되려면, 의미가 되려면...
신복례의 내가 동문회를 사랑하는 이유
2009년 12월 04일 (금) 03:11:43 신복례 기자 Editor@Acropoli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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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에게 엄명을 받은 게 3주 전쯤 된다. 이제 엄명(?)을 받들려 하는데 그게 뭐였더라 가물가물하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나의 뇌 주름상태가 잡아당기면 그냥 한번에 쫙 펴지는게 아닐까. 불과 3주의 기억도 채 담아내지 못하고 흘려보내다니. 하지만 다시 묻지 않기로 했다. 그때 참 씩씩하게 “예 썰” 했는데 지금 와서…. 내가 서울대 동문회를 사랑하는 이유, 대충 뭐 그런 게 아니었나 싶다.

사실 나는 그런 내용의 글을 쓰기에는 적임자가 아니다. 동문회 행사 참여도가 매우 저조하고, 아크로에 글을 자주 올리지도 않고, 남들이 보기에 서울대 동문회를 사랑하는 대표주자도 아닐테고. 그럼에도 당시 별 생각없이 오케이를 했던 이유는 단 하나, 이원영 선배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글은 서울대 동문회가 아니라 원영 선배에 대한 용비어천가가 될지도 모르겠다.

   
사진 / 박찬민

나의 사주는 초봄에 태어난 꽃나무(을목) 일주라고 한다. 올해초 주식투자를 시작하기 전, 아는 분에게 올해 제 운이 어떻겠냐고 물었더니 그가 보내온 사주풀이의 첫 대목이 그랬다. 나무가 꽃을 피우듯 글을 쓰거나 자기를 드러냄으로써 인생의 목적이 만들어지는 사주라나, 이런 사람은 뭔가를 드러내고 세상으로부터 평가받는 그런 일에 치중해야 한다는 얘기를 늘어놓았는데 그가 완곡하게 말하고자 했던 건 아마도 돈버는 일은 내 사주랑 맞지 않으니 신경 끄고 하던 일이나 열심히 하라는 것이었으리라. 

그러나 마흔을 넘기고도 철이 없는 나는, 하고 싶은 일은 어찌되었든 해야하는 성정이라 그냥 고를 외쳤고 결과는 완전 피박이었다. 어찌 그럴 수가 있었을까…지금 돌아봐도 참…몰라도 몰라도…그런데 정말 겁도 없었지.

주식을 하면서 단 한순간도 잃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니, 시작하기 전 나는 너무나 행복했다. 6개월내에 투자금의 3배를 벌어서 여기 쓰고 저기 쓰고, 사용처 리스트를 적어가며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한국 가서 남편 생일 근사하게 차려주고, 고생하는 형제자매에게 얼마씩 나눠주고, 신세진 친구들에게 화끈에게 쏘고, 남편 차랑 골프채 바꿔주고, 좀 넓은 아파트로 이사가고, 만불은 나를 사람되게 만들어준 (당시는 내가 사람이 됐다고 착각했다) 단체에 기부하고, 양가 어머니와 박보살에게 만불 선물하고, 83동기들한테 술 한번 거하게 사고 그리고 남은 돈은 재투자의 종잣돈으로 삼아야지. 그리고 그 돈을 한 3년간 푹 묻어둬서 역시 3배로 불린 뒤 집살 때 다운페이하고 드디어 드디어 회사를 그만두고 자원봉사를 하면서 전업주부로 사는거야. 푸하하하~.

지금 다시 기억해도 몸에서 엔돌핀이 마구 도는 것 같다. 내 손에 쥐고 있는 돈처럼 쓸 궁리를 하면서 얼마나 좋아했는지, 회사를 그만두면 하게될 자원봉사 거리를 생각하며 또 얼마나 흐뭇했는지. 먹고 살기위해 하루의 대부분을 쓰는 일, 50대에는 그만하고 싶었다. 나도 누구처럼 그렇게 살고 싶었다. 먹고 살기 위한 노동은 하루의 3분의 1만 쓰고, 남은 3분의 1은 책, 음악, 영화와 더불어 수행하면서 보내고, 남은 3분의 1은 이웃과 세상을 위해서 쓰고 싶었다.

딱 6개월만 하는거다. 3배로. 내가 공부한 세계 경제 흐름은 그게 가능했었다. 사실 다우지수가 3월 최저점 대비 50% 가까이나 몰랐고 내가 손댔던 종목들은 3월보다 5~6배 가까이 올랐으니 가능할 수도 있었던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지난해 9월 리먼 브라더스가 망하기 전까지는 주식 시세판이란걸 쳐다본 적도 없고, 주식을 시작하기 전까진 엘리어트 파동이 뭔지도 몰랐던 사람이었다. 아니 여러 파동이론을 책에서 읽어 머리로는 알고 있었으나 내가 산 종목이 파도를 타듯 출렁출렁 움직일 수 있으며 그럴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준비가 돼있지 않았었다.

결과적으로 파도를 타면서 울렁증, 멀미에 시달리다가 방향감각을 잃고 롱과 숏을 오가다가 두어달만에 주력군을 다 잃어버리고 파도에 좀 익숙해졌을 무렵엔 몇 안되는 패잔병 무리를 이끌고 화력부족을 원망하며 주로 진지전을 펼치다 결국 8개월만에 손을 들고 말았다. 남편 말에 따르면, 선물도 옵션도 아니고 주식을 하면서 그렇게 짧은 기간에 그렇게 다 잃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며 내 경우가 증시사상 참 유례없는 케이스란다.

지금 말은 이렇게 하고 있지만 지난 4월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잔인한 4월이었다. 롱과 숏으로 다 먹겠다고 숏을 했다가 뒷덜미가 당겨진채 끌려 올라가는데 빠져나오지 못한채 투자금의 거의 반을 잃고 어찌할지 몰라 우왕좌왕, 살면서 그렇게 마음고생을 한 것도 처음이었고 내가 노트에 적었던 그 모든 희망사항들이 물거품이 되버린 걸 보면서 느꼈던 참담함에, 여기저기 빌려서 모은 돈을 되갚을 생각을 하니 얼마나 겁나고 막막했던지, 밥도 못먹고 잠도 못자고 한마디로 사는게 사는게 아니었다. 모래 위에 성을 쌓았으니, 디폴트 선언을 한 두바이월드 꼴이 난거였고 마음 한번 잘못 먹었다가 지옥 한가운데 떨어진 셈이었다. 내가 나 아닌 듯, 그렇게 몇개월을 살았다.

그때 손을 내밀어준 사람이 원영선배였다. 선배는 나에게 글을 쓰라고 했다. 아크로폴리스에다가. 글쓰는 사람은 글로써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며. 후배가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하며 매번 펑크를 내도 선배는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은채 또다시 글을 쓰라고 했다. 그리고 가끔 쓰는 글에는 꼭 전화를 걸어 잘봤다고, 댓글로는 숨은 명상가라고 치켜세우며 후배를 격려했다. 중앙일보에 기명칼럼을 쓰기로 결심하게 된 것도, 덕분에 내가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선배의 도움이 컸다. 또한 선배는 글 막힐 때 뛰어가면 담배도 무상으로 무제한 공급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천사 미카엘은 신의 명령을 거역했다 지상으로 쫓겨나서 사람에게 무엇이 있는지, 사람에게 무엇이 주어지지 않았는지,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지 세가지를 배워야했다. 그리고 그가 깨달은 건, 모든 사람은 그들 자신의 행복을 위한 생각이나 걱정 때문이 아니라, 사람에게 존재하는 사랑 때문에 산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사람은 분명 사랑을 먹어야 살 수 있고 사랑을 줘야 살 수 있다.
 
내가 서울대 동문회를 사랑하는 이유? 바로 동문들이 서로에게 관심을 보이고 신경을 써주고 그러면서 서로에게 존재감을 부여해주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떼거리로 몰려가 축하하거나 위로해주고, 아크로에 글이라도 올리면 댓글들이 주르르 따라붙고, 그런 관심과 사랑이 있어 동문들을 좋아한다. 아크로에 글 올린 뒤 따라 붙은 댓글을 읽어본 분이라면 그 흐뭇하고 따뜻한 느낌을 알 수 있으리라. 그러니 편집장이 누구를 만날 때마다 글을 쓰라거나 그게 힘들면 댓글만이라도 남기라는 말을 하더라도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드는 건 물론 그 너머에 담겨 있는 동문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 사랑의 실천으로 이해하기를 바란다.
 
돌아보니 그 아팠던 일도 이젠 기억이 됐다. 내 뇌의 주름이 신축성이 떨어지고 그리 깊지 않은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하나. 그리고 지금은 인정한다. 당시는 나의 원이라고 박박 우겼었는데 아니 그건 욕심이었다고. 마무리는 시 한편으로 대신하련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이름을 불러주고 그래서 앞으로도 쭉~ 서로에게 꽃과 같은 존재가 되었으면 싶다.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신복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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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11)
  우야던동2 신복례 2009-12-04 17:23:05
제영혜 선배님, 입이 열개라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저 고개만 떨구고 있습니다. 그래도 약간의 반박, 혹시 제가 2번은 나가지 않았나요. 우야던동 반성합니다. 차렷,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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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XXX.XXX.74)
  한번은 기억나네요. 제영혜 2009-12-13 00:02:51
말리부 캠핑 때 오셨댔지요. 그날 전 첨 뵌것 같아요. 그러고 신문사에서 자주 만났으니 여기서 봤나 저기서 봤나 혼돈될 수도 있어요. 어쨋든 이렇게 든든한 동문이 많아 행복합니다.
추천0 반대0
(76.XXX.XXX.220)
  주제만 볼래요. 제영혜 2009-12-04 09:39:32
이렇게 거의 한번도 행사에는 안 나타나는 동창까지도 동창회 찬가를 불러주는 우리 남가주동창회 홧팅!! 그리고 요즘 신문에서 동창님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그 글에 꼬여 음악회도 다녀왔다는 것 아닙니까? 또 하나, 세상에 돈으로 해결되는 일이 최고로 쉬운 일이라잖아요, 그 역도 마찬가지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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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220)
  우야던동 이상대 2009-12-03 20:20:50
신복례님 주제 파악은 왕년의 국어 시간에 무지하게 했죠. 그 정도면 됐습니다. 아직도 주제 파악 할려니 저 같은 경우는 에너지가 딸리네요. 그러나 저러나 세월은 흐르고 시간의 브레이크는 없고 종하님은 가슴이 벅차오르고 (걱정되네).
우야던동 한번 굴러 가보죠. 달마 대사 Jr. 의 가르침데로
"인생 뭐 있나?"

그리고 이 말이 너무 좋네요
"서로가 서로에게 꽃과 같은 존재가 되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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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17)
  주제파악 난 역시 안돼 신복례 2009-12-03 18:09:31
주제는 서울대 동문회 찬가이고 취지는 원영선배에 대한 용비어천가였는데 댓글은 불쌍한 중생에 대한 따뜻한 위안들이니 좀 쑥스럽네요. 제가 주제파악을 잘 못한다는 얘기를 자주 듣긴 했지만 여전히 주제를 살리지 못하고 있음을 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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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XXX.XXX.74)
  복례님 글 읽으니 김종하 2009-12-03 16:03:26
왠지 가슴이 벅차올라
아크로 님자 규정 살짝 무시하고
오늘은 그냥 한 번 불러보고 싶네요.
옛날 학교 때 과사무실서 부르던 그 이름. (우린 같은 영문과)

보래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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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XXX.XXX.91)
  꽃같은 순수함이.. 이병철 2009-12-03 15:21:47
배겨있는 글이네요. 마음이 순하고 착한 것 같아요. 세상에 쉽게 되는 일이 하나라도 있나요. 그래도 주변에 힘이 되는 사람들이 많아서 행복하실 것 같습니다. 내일 봅시다.
추천0 반대0
(99.XXX.XXX.225)
  주식으로 돈 날리는 한국 사람들 많습니다. 변변 2009-12-03 12:41:06
그런데 그거 전부 인생의 공납금 tuition 내었다고 생각하세요. 왜냐하면 교훈이 그 속에 있었으니까. 액땜 했다고 생각하세요. 내년에 좋은 일 많이 생길 꺼니까. 원영 군이 좋은 일 많이 하셨군요. 원영 군에게도 박수!
추천0 반대0
(97.XXX.XXX.64)
  공감~ 이종호 2009-12-03 11:49:20
"먹고 살기위해 하루의 대부분을 쓰는 일, 50대에는 그만하고 싶었다."
역시 저의 꿈입니다. 좋은 하루!
추천0 반대0
(66.XXX.XXX.90)
  그래서 망년회가 있고, 김지영 2009-12-03 11:46:23
망년회를 하기위해서
친구가 필요하고...
그렇게 인생은 흘러갑니다.
내년에는 더 좋은 일만.
추천0 반대0
(76.XXX.XXX.149)
  빨리 잊어버리자. 이경훈 2009-12-03 10:53:21
뭐 인생지사 새옹지마. 새해에는 더 좋은 일들이 있겠지. 우선 삼육구 박자는 잘못 맞추지만, 자식과 부인 알기를 최고로 하는 부군이 버티고 있고, 두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데. 하여간 그동안 돈 까먹느라 고생이 많았다.
추천0 반대0
(75.XXX.XXX.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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