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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당면한 정신 혁명
곽건용의 톡톡 튀는 설교
2009년 09월 25일 (금) 23:33:35 곽건용 기자 Editor@Acropoli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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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건용 동문
오늘날의 선견자

저는 오늘 설교 제목을 ‘조용한 혁명’이라고 정했는데 ‘마지막 혁명’으로 할까 ‘조용한 혁명’으로 할까를 두고 적지 않게 망설이다가 최종적으로 ‘조용한 혁명’으로 정했습니다. ‘혁명’이란 말 참 오랜만에 해 봅니다.
엊그제 신문에서 마이크로 소프트 빌 게이츠 회장이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현대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 ‘창조적 자본주의’(creative capitalism)라는 새로운 개념을 주장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는 정부나 비영리단체들뿐 아니라 기업들이 발 벗고 나서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면서 자본주의가 부자들뿐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기여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전 세계에 20억 명이나 되는데 이들을 도우려면 기업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답니다.

이와 같은 빌 게이츠의 주장에 대해 찬반이 엇갈리는 반응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 같은 억만장자가 자본주의의 축복에 냉담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위선이란 반응도 있고, 반대로 세계의 빈곤이 정부와 비영리단체의 힘만으로는 퇴치할 수준을 넘어섰으므로 기업이 힘을 보태 불평등을 완화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동의하는 반응도 있다고 합니다.

각 시대마다 최고의 부자들이 있어왔지만 이 빌 게이츠라는 사람에게는 확실히 남다른 데가 있습니다. 다른 최고부자들과는 좀 다른 사고를 하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는 대규모 자선단체를 이미 만들었고 올해 6월이면 마이크로 소프트 회장 직에서 은퇴해서 그 자선단체 운영에 전력할 것이라 했습니다. 이전에는 상속세 폐지를 반대한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습니다. 부자들은 대체로 상속세를 폐지했으면 하고 바랄 터인데 그는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고가의 미술품들을 사들여가면서까지 변칙상속을 하려는 한국의 어느 부자와는 확실히 다른 모습입니다. 그는 자본주의 체제가 지금처럼 빈부의 격차를 늘려나가는 방향으로 가다가는 스스로 무너져버릴 수 있음을 내다본 ‘선견자’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지난주에 저는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선지자’라고 불렀는데 선견자는 그와는 좀 다른 의미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내다보는 사람이고 선견자는 미래에 일어날 일은 내다보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구별해봤습니다. 옛날 선견자는 별을 살펴보거나 양(羊)의 내장을 들여다보거나 신으로부터 직접 신탁을 받아 미래에 대한 신의 뜻을 내다봤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 별을 살피거나 양의 내장을 살펴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신으로부터 직접 신탁을 받았다는 사람이 없지는 않지만 별로 신뢰받지 못하는 형편입니다. 오늘날의 선견자는 과학자이고 더 정확히 말하면 미래학자입니다.

우주의 진화라는 거대한 시나리오

인간이 지구상에 출현한 이후 인간은 빠른 속도로 진화해왔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진화하는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습니다. 인간은 불을 발견해서 사용하면서, 그리고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면서 진화의 속도를 가속화해왔습니다. 3천 년에 걸친 농경시대와 2백 년의 산업시대를 거쳐 지금 인간은 50년 째 정보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농경시대에서 산업시대로 넘어오면서 인류의 역사에는 엄청난 질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산업시대에서 정보화시대로 넘어오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미래학자들의 예측에 따르면 앞으로 일어날 변화는 앞의 변화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리라고 합니다.

미래학자들은, 인류가 아직까지 겪어온 진화는 생물학적 진화였지만 앞으로 일어날 진화는 과학기술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고안된 시행착오 없는 ‘인위적 진화’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현 인류를 ‘호모 사피엔스’라고 부르는데 인위적 진화의 결과로 등장할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와는 다른 종류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아직 이름이 붙어있지 않아 임시로 ‘신인류’(posthuman)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변화가 머지않은 미래에 일어나리라고 합니다. 앞으로 10년 안에 그 어떤 장기도 복제를 통해 대체 가능해진다고 합니다. 뇌세포의 뉴런(신경세포)까지도 교체할 수 있을 것이랍니다. 또 2020년에는 텔레키네시스(telekinesis), 곧 생각만으로 의사소통하는 일이 가능해진다고 하고 인간의 뇌세포보다 정보처리 속도가 빠른 컴퓨터가 2029년에 개발되리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더욱 놀랍고 믿어지지 않는 일은 신인류는 영원히 죽지 않고 영생하는 것도 가능하리라는 예측입니다. 인간이 정말 미래학자들의 예측대로 진화할지는 두고 볼 일입니다.

역시 인간의 진화에 대한 얘기지만 이와는 좀 다른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19세기 말에 태어나서 1955년에 별세한 떼이야르 드 샤르댕(Teilhard de Chardin)이란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은 아주 독특한 경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분은 예수회 신부로서 저명한 철학자이자 신학자였습니다. 여기까지는 별로 독특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독특한 점은 이 분이 지질학자이자 고생물학자라는 데 있습니다. 그는 북경원인(北京猿人)을 발견하고 연구하는 데도 참여했던 권위 있는 고생물학자였습니다. 그는 성경의 창조론을 좁고 고정된 교리로 받아들이지 않고 넓은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과학자로서 진화론을 받아들였는데 그의 창조와 진화에 대한 이해에는 독특한 점이 있습니다. 이분에게 가톨릭교회는 우호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교회로부터 활동에 제재를 받았고 그의 저서들은 생전에는 출판되지 못하다가 그의 사후에 교황 요한 23세의 허락 하에 비로소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습니다.

샤르댕 신부님은 우주의 내적인 구조와 진화에 대해서 깊이 연구한 과학자였으며 동시에 이 우주 안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와 임무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철학자요 신학자였습니다. 그는 진화를 세 단계로 나눠서 생각했는데, 첫째는 물질의 진화 단계이고 둘째는 생명의 진화 단계이며 셋째는 정신의 진화 단계입니다. 진화는 단순한 형태에서 복잡한 형태로 진행되는데 이런 복잡화의 과정에 의식이 증대되는 과정, 곧 정신화과정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거쳐서 출현한 존재가 인간입니다.

인간은 두 가지 점에서 동물과 차이가 있습니다. 첫째로 인간이 갖고 있는 의식적인 사고능력입니다. 인간은 의식하고 반성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동물과 다릅니다. 인간은 스스로를 의식하고 자신에 대해서 반성하는 유일한 생명체입니다. 동물과의 이 차이는 양적인 차이가 아니라 질적인 차이입니다. 둘째로 인간은 미래를 향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동물과 다릅니다. 수많은 생명체들 중에서 미래를 지향하는 존재는 오로지 인간뿐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미래에 대한 책임도 전적으로 인간에게 있습니다. 인류의 미래뿐 아니라 전 지구의 미래에 대한 책임이 인간에게, 오로지 인간에게 있습니다. 신부님은 하나님의 창조가 창세기 1장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진화과정으로 통해 계속적으로 창조하는 분이십니다.

교회는 방주가 아니라 주유소

저는 제가 이해하는 범위 안에서 샤르댕 신부님의 이론에 공감하고 동의합니다. 신부님은 우주의 진화 과정 안에서 인간의 위치와 임무가 무엇인지를 연구한 신학자였다고 했습니다. 저는 아마 신부님과 비슷한 심정일 것 같은데 인류의 진화, 온 우주의 진화라는 거대한 시나리오 안에서 기독교의 의미와 자리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갖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무엇을 하라고,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을까요? 우주의 진화라는 거대한 시나리오 속에서 도대체 기독교의 자리와 의미는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와 ‘교회’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오해입니다. 기독교는 고정된 제도종교나 체제가 아니라 하나의 ‘영성운동’입니다. 기독교의 생명과 정체성은 ‘운동성’에 있습니다. 기독교는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지 고정된 제도나 기관이 아닙니다. 반면 교회는 하나의 ‘기관’입니다. 교회는 기독교라는 영성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필요에 따라서 만들어낸 기관이고 집입니다. 교회는 기독교 운동을 벌이는 사람들의 성격과 목표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습니다. 교회는 기존사회의 가치관을 재생산하는 제도종교 기관이 될 수도 있고 기독교 영성운동을 하는 사람이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주유소 같은 곳이 될 수도 있습니다. 교회가 제도종교의 기관이 되면 사람들은 거기 머물고 싶어 합니다. 마치 노아의 방주처럼 그 안에 들어가 있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반면 교회를 주유소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기 머물러 있으려 하지 않습니다. 만일 자동차가 주유소에 머물러 있다면 그 자동차는 고장이 났거나 운전수가 없는 자동차일 수밖에 없습니다. 멀쩡한 자동차는 얼른 기름을 넣고 거리로 달려 나가야 맞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편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교회는 노아의 방주 같은 곳입니까, 아니면 주유소 같은 곳입니까? 여러분의 대답과 제 대답이 같으리라고 믿습니다. 교회는 방주가 아니라 주유소여야 합니다. 기독교라는 영성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잠깐 머물러 에너지를 충전하는 곳, 바로 이곳이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의 자리와 의미는 무엇일까요? 기독교는 공장처럼 재화를 만들어내는 곳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기독교에는 굴뚝이 없습니다. 기독교는 눈에 보이는 물건을 만들어내는 곳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입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기독교는 자선단체입니까? 기독교는 자선을 행하고 있고 행해야 하지만 그것이 본업은 아닙니다.

기독교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밀가루 반죽 속의 누룩이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하나님 나라를 무엇이 비길 수 있을까? 어떤 여자가 누룩을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 마침내 온 덩이가 부풀어 올랐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누룩과 같다.”

샤르댕 신부님에 의하면 인간은 우주의 진화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의식하고 반성하는 존재’입니다. 이 의식과 반성도 계속 진화해왔습니다. 스스로를 의식하고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능력도 계속 진화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한 마디로 의식과 반성이라고 말하지만 여기에는 여러 측면이 있습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의사소통을 한다는 텔레키네시스가 가능해진다고 하지만 가슴으로 사랑을 전달하고 영혼과 영혼이 소통하는 능력은 아직까지 얼마나 진화해왔고 앞으로 얼마나 진화할까요? 지금 인간은 몸과 머리는 크게 자랐지만 가슴과 영혼은 덜 자란 기형이 아닙니까? 지금 기독교가 해야 할 일은 누룩이 밀가루 반죽 안에 들어가 온 덩이를 부풀어 오르게 하듯이 사랑의 메시지를 갖고 인간의 가슴 속에 들어가 인간의 영적인 의식, 사랑의 의식을 일깨우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기독교가 할 일은 예수의 사랑의 정신이라는 누룩을 갖고 사람의 영혼으로 들어가고 사람 사는 세상 안으로 파고 들어가서 사람의 영혼과 세상을 부풀어 오르게 하는 일입니다.

마지막 혁명, 조용한 혁명

인류 역사에 여러 번의 혁명이 있었습니다. 당장 머리에 떠오르는 것들만도 산업혁명, 명예혁명, 시민혁명, 프랑스혁명, 사회주의 혁명 등등 여러 개가 있습니다. 그 중에는 떠밀려서 일어난 혁명도 있고 의식적으로 일으킨 혁명도 있습니다. 모두 나름의 의미와 가치가 있었고 인류의 삶을 크게 바꾸어놓았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혁명들은 스스로 내세웠던 혁명의 이상을 달성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혁명은 미완의 혁명 또는 실패한 혁명이었습니다.
혁명들은 왜 실패했을까요? 어느 지점에서 혁명은 실패했습니까? 타인 또는 제도와 체제를 겨누었던 혁명의 칼날이 혁명을 일으킨 주체를 향해서 겨누어졌을 때 혁명은 실패했습니다. 타인을 바꾸거나 제도를 바꾸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스스로를 바꾸는 일입니다. 혁명을 진행하다보면 어느 지점에서는 스스로 변해야 한다는 의식이 생깁니다. 이 지점이 결정적인 지점입니다. 혁명이 가장 어려워지는 지점, 성공과 실패가 갈라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예수운동은 하나의 혁명입니다. 그것은 의식의 혁명이고 사랑의 혁명입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혁명의 칼날을 스스로에게 들이댄 혁명입니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변화시킬 수 없음을 전제한 혁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혁명은 ‘조용한 혁명’이고 ‘마지막 혁명’입니다. 그리고 기독교는 바로 이 혁명을 수행하는 사람들의 영성 운동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의 사랑의 혁명의 전사(戰士)들입니다. 의식 혁명의 전위부대입니다. 여러분의 손에 사랑의 혁명의 성패가 달려 있습니다. 이 혁명은 밖을 향한 시선과 안을 향한 시선이 균형을 갖출 때만 성공할 수 있는 어려운 혁명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혁명인 것입니다.

♣ PS  안녕하세요? 동문 여러분, 곽건용입니다. 제가 담임하는 향린교회에서는 이번 가을 추석을 맞아 국악예배를 올립니다. 땀의 결실로 모든 것이 풍족한 이때, 우리가 떠나온 고국의 명절을 국악으로 같이 축하해보는 시간입니다.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일시: 2009년 10월 3일 (추석) 오후 7시
장소: 향린교회 예배실
주소: 1130 Ruberta Ave., Glendale, CA 91201
전화: 818-265-3046
누리집: www.goodneighborhood.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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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12)
  추석국악예배 - 3 켈리 2009-10-04 18:44:23
그리하여 우리가 이국땅에서 한국의 명절도 잘 챙기지 못하는 상황에서 추석만큼은 향린교회에서 매년 국악예배가 이루어질 것이랍니다. 향린교회는 환경보존을 위한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추석예배에 참석한 분들께 교회에서 제작한 시장바구니를 하나씩 나눠주었습니다.참석한 동문들 중엔 서치원님,양민님부부,교인인 이충섭님,그리고 처음 만나서 반가왔던 85-간호학과 허정희님;날 알아봐서 뜨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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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XXX.XXX.110)
  추석국악예배 - 2 켈리 2009-10-04 18:37:22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다시금 고향을 생각하게하는 예배였습니다.예배의 주제는(중간에 잠깐 딴 생각해서 맞는지 모르겠음)'소통'에 관한 말씀이었는데 하나님과의 소통 이전에 우리가 우리 자신(한국인으로서의 갖춤- i.e.)전통/문화 계승)과의 소통부터 이루어야 되지 않겠냐는 것과 음악이야말로 타민족과 언어의 Barrier 없이 서로 소통하고 느낄 수 있는 거란 말씀을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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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XXX.XXX.110)
  추석국악예배 - 1 켈리 2009-10-04 18:26:05
작년여름에 한국의 민속촌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사물놀이 공연을 보면서,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니면 이국에 살아서인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군요.모든건 생음악/공연이 더 좋게 느껴지는게 당연하겠지만 예전엔 시끄럽기만하던 꽹가리가,난잡하게만 들리던 국악의 리듬들이 신명나게 느껴졌습니다.아이들을 설득시키지 못하여 이번 국악예배에 혼자 갔는데 창,장고춤,가야금,앙상블,북(4명),그리고 사물놀이까지-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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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XXX.XXX.110)
  참 좋은 예배였습니다.--추석국악예배에 다녀와서 양민 2009-10-04 09:33:18
시종 마음이 즐거운 예배였습니다.
오늘날 예배가 이래야 한다고 느끼는 그런 예배였습니다.
축하와 즐거움, 덕담과 새로운 결심을 나누는 예배였습니다.
마음이 따뜻해 지고 용기가 생기는 예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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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XXX.XXX.122)
  연진님 혹시 스피노자 2009-09-29 13:04:44
교회는 전통이 없다는 말씀을 넌즛이 하는 건가요 (아니면 혹시 국악이 현대!)? 화가들이 예수님을 그릴때 유대인을 학살한 독일사람같이 노랑머리에 파란눈동자로 표현하고 교회당도 고딕식으로 지으니까 기독교가 서양종교처럼 느껴지기도 하네요. 물론 기독교가 도입될때는 서양문물로 받아들인측면도 많죠. 카톨릭은 나름대로 현지화에 노려했지만 개신교는 오히려 서양적인 것이 더 어필한것 같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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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XXX.XXX.12)
  국악예배 잘 되기를 김문엽 2009-09-29 12:38:46
곽선배님, 선배님 설교는 수준이 좀 높고 제 기존의 신앙관으로 이해 안되는 부분도 있어 제가 댓글을 남기기가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래도 항상 많은걸 배우고 갑니다. 이번주 국악예배도 관심도 많고 해서 참석하고 싶었는데 그날 집안일이 있어서 참석여부는 모르겠습니다. 가능하면 늦게라고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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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XXX.XXX.119)
  교회에서 국악을, 절묘한 기획 정연진 2009-09-28 18:47:23
교회에서 국악으로 추석을 맞이한다, 전통과 현대를 융합하는 절묘한 기획입니다. 모쪼록 행사가 성황리에 잘 되기를 빕니다. 그날 캠핑 일정으로 참석은 힘들 것 같고요, 그리고 요즘 영화 2012년이 여기 저기 광고 포스터가 붙어있던데 언제 한번 2012 년에 대한 해설도 해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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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XXX.XXX.171)
  기독교는 영성 운동이고 교회는 주유소와 같아야 한다 최강국 2009-09-26 23:05:17
깊이 공감가는 말씀입니다.
우치무라 간조,김교신 선생의 교회가 기독교의 본질이 아니며 교회 없이도 기독교가 가능 하다고 본 무교회주의가 생각납니다.
내 속에 예수님이 거하지 않으면-하나님 나라의 누룩이 없으면- 아무리 교회라는 사회생활을 잘 한다 한들 하나님 나라에 무익할 수 있겠지요 (내 도무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사목하는 분으로서 이런 말씀을 하기가 쉽지 않으실텐데, 존경심이 절로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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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XXX.XXX.44)
  주유소같은 주"누룩"소 양민 2009-09-26 10:19:28
곽후배님의 말씀에 동감합니다.
그런의미에서 사실 교회는
교인들을
자신의 습관과, 인생관으로 부터 새로와지고
적극적 사회참여도 해야할 사람으로 변화시키고
구제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시키고
미래를 준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시켜야 하겠지요.
요란하고 화려한 자기만족의 망상속의 집단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조용히 개혁하고 실천하는 혁명을 실천하는 교회가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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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XXX.XXX.154)
  제2의 종교혁명 - 이어지는 글 최응환 2009-09-25 09:28:41
신자들의 의식혁명은 윗글대로 교회의 역활을 변화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주입식" 교회가 아닌 "정신적 참여"의 교회로 바뀌는 것입니다. "참여"는 TV에 중계되는 맘모스교회 예배에서처럼 할렐루야를 소리높혀 외치거나 찬송가를 부르고 교회봉사활동에 참여하는 것많은 아닙니다. 목사님의 의견에 반론도 제기할수 있고 영적성장을 신자자신이 주도할 수있는 교회로 바뀌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의미에서 건용님을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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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XXX.XXX.87)
  제2의 종교혁명 최응환 2009-09-25 09:18:48
기독교역사 중 첫번째 혁명(예수님의 혁명은 기독교의 탄생을 이니까 제외하고)은 라틴어로 되어있던 공식적인 성경이 각국의 언어 (영어, 독어등)으로 번역되면서 일어났습니다. 지금의 제2의 혁명은 성경의 내용자체를 넘어서 성경이 단행본으로 확정되어진 배경과 과정 (어떤것이 성경에 포함되고 빠지고 등)에 대한 일반신자들의 지식확대에 기인한것입니다. 무조건 성경전체가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기 어려워진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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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XXX.XXX.87)
  그렇다면 전도의 슬로건은.... 이경훈 2009-09-25 09:04:57
교회 나오세요..가 아니라, 기독교와 같이 합시다..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잠깐 생각했습니다. 요즘 저를 전도하시려고 음식을 나눠주시는 고마운 분이 있는데...그분께 이 글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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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XXX.XXX.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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