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1 금 18:48
> 뉴스 > 삶과 영성
       
경제위기, 행복하게 건너뛰는 법
곽건용의 톡톡 튀는 설교
2009년 09월 04일 (금) 22:53:04 곽건용 기자 Editor@AcropolisTimes.com
곽건용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클릭!  

   
곽건용 동문
만약 빚만 남겨놨었다면

한때 ‘국민요정’으로 불리던 여배우가 자살한 후에 그녀의 전남편이 자녀들에 대한 친권을 주장했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구시대의 점잖음’을 지금껏 유지하고 있는 성균관 어르신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전남편의 주장을 비난해 마지않았습니다. 이를 못 이겼는지 그는 친권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사건은 일단락됐습니다.

저는 한번 거꾸로 생각해봤습니다. 만일 ‘국민요정’이 유산을 한 푼도 남기지 않고 죽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녀가 거액의 빚을 남기고 죽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재산뿐 아니라 빚도 대물림된다는데 그래도 전남편이 친권을 주장했을까? 만일 그랬다면 한국사회는 그런 그에게 ‘애비 노릇도 제대로 못 한 사람이 웬 친권?’이라며 비난했을까? 오히려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하다.’며 그를 칭찬하지 않았을까? 그의 친권 주장을 반대해서 시위까지 준비했던 단체들과 개인들은 ‘당연한 것을 갖고 왜 소란이냐?’는 반응을 보였을까? 만일 그가 친권을 주장하지 않고  머뭇거렸다면 성균관은 친권자로서 책임을 다 하라고 요구했을까?

별로 유쾌하지 않은 상상이긴 하지만 실제 일어난 일과는 정반대의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일은 실제와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 의미가 분명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 일이 여기 해당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해프닝의 관건은 친권이 아니라 결국 돈이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친권을 갖겠다는 측도 그걸 비난한 측도 관건은 친권 그 자체가 아니라 돈이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대공황에 비견될 정도로 혹독한 경제 불황을 겪고 있습니다. 이 불황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예측할 수 없다고도 말하고 올해는 시작에 불과하고 내년부터 정말 어려워질 것이라고도 말합니다. 언제부턴지 우리 예배기도에도 어려운 경제사정에 대한 기도가 거의 빠지지 않고 있습니다. 기도는 우리 사정을 하나님께 아뢰고 도움을 청하는 것이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도 됩니다. 기도를 드리면서 우리는 믿음과 희망을 키워갑니다. 하지만 기도가 기도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기도는 반드시 실생활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근래 가장 큰 기도제목인 경제 위기와 그것을 살아내는 기독교인의 삶의 자세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 첫 번째 대답

온 세상이 경제위기라고 야단인데 교회는 의외로 잠잠합니다. 온 세상이 다 겪는 위기를 마치 교회와 기독교인만 겪지 않는 듯 교회는 고요합니다. 사실 교회도 이 위기에 지대한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어떤 대형교회는 헌금이 40%까지 줄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현실을 직시하고 위기를 살아갈 올바른 길을 교인들에게 제시해주는 것 같지 않습니다. 세상이 다 어려워도 우리 교회 교인들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오히려 더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믿고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일까요? 정말 그럴 수 있겠습니까? 세상이 다 망하는데 나만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설령 세상이 다 망하고 나만 살아남는다 해도 그걸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겠습니까? 오늘의 경제위기가 왜 닥쳤는지를 정확하게 따져보고 어떻게 해야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며, 거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이런 위기 속에서 살아갈 바른 삶을 무엇인지를 생각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혼자 부자 되려고 애쓰는 것보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취해야 할 바른 자세라 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이것은 경제위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묻고 싶은 물음인데 요한의 군중들이 우리 대신 물어주었습니다. 이에 대한 요한의 대답은 실행하기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습니다. 세리가 정해진 세율대로 세금을 징수하고 군인이 협박이나 속임수를 써서 남의 물건을 착취하지 않고 자기 봉급으로 만족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은 극히 당연한 상식에 해당합니다. 세리와 군인은 당연히 그래야 합니다. 하긴 이 세상에서 자기 봉급에 만족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어떤 조사에 따르면 봉급생활자들은 현재 자기가 받는 봉급의 두 배 정도를 받아야 정당하다고 생각한답니다. 봉급을 주는 회사와 봉급을 받는 사람의 기대치에 이 만큼의 격차가 있습니다. 하긴 요즘은 봉급 주는 일자리를 갖고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라고 말들 하지만 말입니다. 속옷 열 벌이 아니라 딱 두 벌밖에 없는데 그 중 한 벌을 남에게 주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쉽지는 않지만 마음 굳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요한의 요구는 ‘탐욕을 버려라.’를 한 마디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인간이면 누구나 탐욕을 갖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의 탐욕은 자아 성장과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가르치는 경우도 있지만 어느 사회, 어느 종교와 사상이든 인간의 탐욕에 일정한 제동을 가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극단적으로 탐욕이 모든 인간 불행의 근원이므로 이를 없애지 않으면 불행을 벗어날 수 없다고 가르치는 종교도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탐욕에 대한 경계의 말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십계명의 마지막 계명은 법률로서는 별로 타당성이 없는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못한다.”라는 규정입니다. 탐욕은 외적인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는 마음의 일입니다. 법률이 무슨 수로 사람 마음까지 규제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 보듯이 십계명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의미의 법률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금지는 가장 강력한 유혹이다.’란 말이 있습니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다는 얘기입니다. 탐욕을 인간의 ‘본성’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본성까지는 아니더라도 탐욕은 인간 안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강력한 ‘성향’이므로 한두 마디의 말로 이를 없애거나 제어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반대로 많은 교회들이 탐욕과의 싸움을 포기하고 탐욕을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갈망’이란 말로 치장하여 오히려 이를 부추기는 형편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탐욕을 긍정하는 것! 전부는 아닐지라도 이것이 오늘날 교회들이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얼마 전에 한 교계신문에서 ‘오늘날 경제위기는 인간의 탐욕에 그 원인이 있다.’라고 주장하는 글을 읽었습니다. 이 글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주장을 내놓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경제위기의 주범이 인간의 탐욕이란 말에 여러분은 동의하십니까? 만일 그렇다면 위기를 벗어나는 길은 탐욕을 없애는 것일 텐데 과연 그럴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본성이라고까지 하는 탐욕을 어떻게 없앨 수 있겠습니까? 만일 탐욕이 인간의 본성이라면 그것 없이는 인간이 아니라는 얘기가 됩니다. 그렇다면 이 위기를 극복할 방법은 없고 그저 잠잖게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됩니다.

경제위기의 뿌리에 탐욕이 자리 잡고 있다는 말은 틀리지 않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말은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아무 대답도 주지 못합니다. 뜬 구름 잡는 것 같이 너무도 추상적이어서 그 어떤 해결책도 제시해주지 못한다는 얘기입니다. 인간의 탐욕을 없앨 수 있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어떻게 없앨 수 있을까요? 개개인이 각성해서 탐욕을 없애기를 기다려야 하겠습니까? 개개인이 모두 도인(道人)이 되기를 바라야 할까요? 그것이 과연 가능한 일입니까?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ane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탐욕을 적절히 제어하는 제도적 장치들

저는 어제 낮 내내 이 설교를 준비하느라 경제위기에 대해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옛날 같으면 자료가 없어 공부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요즘은 인터넷 덕분에 어렵지 않게 좋은 자료들을 찾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아 고생했는데 읽다보니 옛날 한때 열심히 경제학 공부를 했을 때의 기억이 흐릿하나마 남아 있어 나중에는 위기에 대한 전체적인 그림을 제법 그럴듯하게 그릴 수 있었습니다. 제가 열심히 경제위기에 대해 공부했던 것은 오늘 설교를 위해서였는데 막상 그 내용을 지금 얘기할 수는 없겠습니다. 제가 능력이 부족해서 쉽게 얘기할 수 없을 뿐더러 너무 건조하고 재미도 없는 얘기이기 때문입니다. 설교에서 무역과 재정의 이중적자니 자본수입이니 이윤율 하락이니 신자유주의니 모기기담보부채권(MBS)이니 부채담보부채권(CDO)이니 유동성 증가니 하는 말들을 쏟아놓으면 되겠습니까? 아마 ‘정신 나간 목사’란 말 듣기 딱 어울릴 테니 그 얘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중간에 있는 복잡하고 긴 얘기들을 다 생략하고 결론만 말하자면 오늘의 경제위기는 1980년 레이건 시대 때부터 시작된 일련의 조치들의 결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곧 오늘의 위기는 지난 2-30년 동안 인간의 탐욕을 적절하게 제어하는 제도와 장치들을 하나하나 없애버린 결과입니다. 어떤 사람이 살인을 저지르면 그를 잡아다 감옥에 집어넣습니다. 같은 죄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그를 제어하고 격리하기 위해서 그렇게 합니다. 인간의 탐욕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탐욕도 가만히 두면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므로 적절한 수단과 방법으로 그것을 제어해야 하는데 그것을 인간의 자율에만 맡겨서는 되지 않으므로 법적, 제도적 장치가 요구됩니다. 십계명에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못한다.”라는 규정이 있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십계명도 인간의 탐욕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제어되어야 한다고 본 것입니다. 탐욕을 제어하는 제도적 장치의 필요성을 인식했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일은 종교에만 맡겨서는 되지 않습니다. 종교는 인간 자율에 호소할 수 있을 뿐인데 인간의 자율적 의지는 탐욕을 이기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물론 탐욕을 이기는 사람도 있고 아예 탐욕을 버리는 사람도 없지 않지만 그런 사람은 극히 예외적인 소수이므로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할 수 있다고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탐욕을 제어하는 제도적, 법적 장치가 필요한 것입니다. 권위와 권력을 갖고 있는 공동체의 권력기관이 그런 제도를 만들어서 그것을 공동체 구성원에게 부과할 때 비로소 탐욕은 제어되고 조절될 가능성을 갖습니다. 한때 이 나라에 그런 제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제도와 법률들이 1980년대 이후 하나씩 폐지되어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요즘 한국에서 종합부동산세를 실질적으로 폐지하는 조치 때문에 말들이 많은데 이런 일들이 지난 30년 동안 이 땅 미국에서 지속적으로 벌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경제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길은 탐욕을 제어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들을 다시 살려내는 것이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지난 2-30년 동안 더욱더 교묘해진 탐욕의 분출구를 미리 차단하는 일입니다. 투기를 금지해야 하고 실체가 없이 가공에 불과한 금융상품들을 만들어내고 거래하는 행위를 금지해야 합니다. 이런 법적, 제도적 장치 없이 구제금융을 쏟아 부어 부실 금융기업을 살리겠다면 그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것입니다.

이런 길을 제시하고 이런 방향으로 노력하는 사람을 우리는 선거에서 당선시켜야 합니다. 어느 세월에 그렇게 하겠냐고요? 맞습니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오늘의 경제위기까지 오는 데 2-30년이 걸렸습니다. 그러니 방향을 제대로 잡는다고 해도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 그만한 시간과 노력이 드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 두 번째 대답

“그러면 당장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요?” 당연히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왜 없겠습니까? 있습니다! 대답이 없다면 제가 이 얘기를 꺼냈을 리 없지요.

첫째, 우리의 탐욕을 자극하는 온갖 사치스런 광고들에 대한 관심을 끊어야 합니다. TV를 틀면 광고의 홍수란 말이 공감될 정도로 쉴 새 없이 광고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특히 불경기라서 더욱 자극적인 광고들이 범람합니다. 광고는 정보를 얻는 수단이기도 하지만(자기 제어가 잘 되는 사람에게만!) 일차적으로 탐욕을 부추겨 소비를 조장하는 방법입니다. 특히 사치품 광고가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명품’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사치품’입니다. 우리는 우선 ‘사치품’을 ‘명품’이라고 부르는 습관부터 고쳐야 합니다. 세상 어느 나라 사람이 샤넬, 구찌, 루이뷔똥을 ‘명품’이라고 부릅니까? 오직 한국 사람들만 그렇게 부릅니다. 명품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사실 사치품이므로 그렇게 불러야 맞습니다. 이 얘기는 단순히 사치품만을 가리켜 하는 말은 아닙니다. 무엇이 됐든, 어떤 물건이 됐든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살 필요가 없고 필요 이상의 고가품 역시 살 필요가 없습니다. 소비를 늘려 위기를 극복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부시 정부가 그랬습니다) 그 말을 믿지 마십시오. 체제가 건강해야 소비가 미덕이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도 ‘미덕’이란 말을 본래의 의미로는 쓸 수 없지만 말입니다.

둘째로, 정당하지 않은 일을 하는 대가로 주어지는 보상은 바라지도 말고 주어진다 해도 거부하십시오. 탐욕을 부리는 일도 자꾸 하면 습관이 되어 더 하게 됩니다. 탐욕은 아예 싹부터 잘라내야 합니다. 부정한 행위는 애초부터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작은 일이라고 해서 옳지 않은 일을 용인하고 받아들이면 감각이 무뎌지고 감수성이 둔해져서 쉽게 타협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탐욕을 저지하기도 어려워지고 옳지 않은 일을 거부하기도 어려워집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끝없이 탐욕을 자극하고 불의에 눈감기를 바라는 사회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그래 봐야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아.”라고 하는 체념을 잘라내야 합니다. 이런 생각은 불의한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타협할 때 우리가 생각해내는 가장 쉬운 변명입니다. 이런 타협과 패배주의가 현실을 더욱 강화하는 역할을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타협하고 포기하면 모두 함께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나 하나쯤이야......’가 아니라 ‘나 하나라도......’라고 생각하고 현실에 좌절하지 말고 현실 너머를 바라보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현실 너머를 꿈꾸지 않으면 실제로 현실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현실을 극복하는 사람은 현실에 갇혀 있는 사람이 아니라 현실 너머를 꿈꾸는 사람입니다. 꿈이 꿈에 그쳐서는 안 되겠지만 꿈을 꾸지 않으면 현실을 바꿀 수 없습니다. 사람은 천사처럼 살려고 노력해야 사람처럼 살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천사처럼 살 수 없다고 애당초 포기하면 우리는 사람처럼도 살 수 없습니다.

이런 모든 얘기들이 현실성 없는 말로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세상 물정을 모르고 하는 얘기라고 생각할 분도 있을 것입니다. 당장 먹고 살기도 바쁜데 무슨 사치품! 부정한 일은 아무나 하나? 지금은 부정한 일을 하자고 부추기는 사람도 없는데 뭐! 부정한 일이라도 하라고 시켜줬으면 좋겠다는 위험한 생각까지 드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아무도 내게 그런 일 해달라고 하지 않는다며 뜬구름 잡는 얘길랑 하지도 말라고 볼멘소리 할 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직까지 해왔던 대로 똑같이 살면 우리는 결코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탐욕에 대한 제어를 포기하고 불의한 짓을 용인하며 살면 우리는 모두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기업들만 정상화하고 부자들에게서 더 많이 거둬들이면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탐욕을 제어하는 장치는 부자들과 기업들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일차적인 타깃은 그들이지만 동시에 내 안의 탐욕을 제어하지 못하면 언젠가 또 다른 위기가 닥칠 것입니다. 손뼉도 마주 쳐야 소리가 나듯이 탐욕을 제어하는 데도 제도적 장치와 인간 내면의 변화가 같이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살아남기가 어려운 시절입니다. 그럴수록 탐욕을 부리려 하지 말고 어떤 길이 올바른 길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모두가 사는 길인지를 진지하게 묻고 대답을 찾으며 이 추운 겨울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 아크로폴리스타임스(http://www.acropolistime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의견쓰기
이름 비밀번호
제목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현재 0 byte/최대 400byte)
전체기사의견(9)
  1달러에 빛나는 마야 이원영 2009-09-06 23:13:31
여인의 눈빛을 보고 왔습니다. 마야 유적지에는 가난해 보이는 마야 후손 여인들이 더운 날씨에 땀을 흘리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손바닥만한 손수건을 팔고 있더군요. 꼭 필요해서가 아니가 그냥 사주고 싶어서, 관광객을 응시하는 그 눈빛이 너무 깊어서 두 장을 2불을 주고 샀지요. 환하게 만족하는 그 얼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사실 우리도 전에는 많이 없었죠. 지금 만족의 기준이 너무 높아져서 더 힘든 건 아닐까요.
추천0 반대0
(75.XXX.XXX.146)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상대 2009-09-06 10:06:23
잘 읽고 갑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추천0 반대0
(76.XXX.XXX.60)
  답과 답사이-2 정종선 2009-09-05 20:13:23
댓글을 남겨놓고 생각을 계속 해봤죠. 내가 찾는게 무언가? 뭐가 연결이 안된다는 것인가? 다시 정리해보니, 첫버째 대답에 나온 정책들과 그런정책을 추진하는 정치인을 뽑아줄려면 결국 다수가 확보 되어야 하는데, 그게 두번째 대답에 나온 개인욕망을 제어하는 생활을 하다보면 그냥 되는 건가요? 시비를 걸자는 건 아니고, 그게 너무 어려워 보여 혹시 어떤 지혜를 얻을 수 있을까해서 댓글 또 남깁니다.
추천0 반대0
(68.XXX.XXX.123)
  진정한 도움 켈리3 2009-09-05 14:31:27
본문에서 속옷의 예와는 달리,내게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혹은 원하지 않기에 남에게 주면서(버리면서) 생색내는 경우들이 있습니다.나도 절실하게 필요하지만 나눠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고싶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좋은 글,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글,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추천0 반대0
(71.XXX.XXX.110)
  살아가는 방식의 세가지 유형 켈리2 2009-09-05 14:25:16
모든 이치는 수요와 공급에 맞아 떨어지니 정부나 금융회사들만 탓할 건 아니겠지요.
한 목사님이 그러시더군요. 인생은 세가지 유형으로 살 수 있다: 1) Surviving 2) Successful, and 3)Significant. 단지 살아남고 있는 건지, 단지 성공적(재정적으로)으로 사는 건지, 아니면 주위사람들에게 뜻깊은 영향을 끼치며 사는 건지를 생각하라시더군요.
곽건용님의 본문과 관련된 얘기라 떠올랐습니다.
추천0 반대0
(71.XXX.XXX.110)
  세번째 답 켈리 2009-09-05 14:17:16
개인적으로,이번 경제위기는 모두에게 조금씩은 책임이 있다고 보고, 특히 세번째 답에 말씀하신 불의의 타협이 각 개별로는 작을지 모르나 가장 넓게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주택 모기지를 no-down으로 혹은 3%로만으로도 구입할 수 있었을 때,이미 많이들 빨간불을 봤으리라 믿습니다. 또 집값이 치솟자 equity 뽑아 좋은 차 뽑고 집 한채 더 사고, 그동안 못 누렸던 사치를 봉급의 증가 없이 누린 사람들 많습니다.
추천0 반대0
(71.XXX.XXX.110)
  답과 답사이 정종선 2009-09-04 23:03:59
첫번째 두번째 다 좋은 답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 능력으론 두 답이 연결이 거의 되다가 안되는 군요. 두 답을 잘 연결하든지 하나의 답으로 잘 만들든지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쉽지 안겠죠? 좋은 글 감사합니다.
추천0 반대0
(68.XXX.XXX.123)
  아멘.. 양민 2009-09-04 14:55:41
돈보다 귀한 가치를 돈앞에 두는 일을 멈추는 날이 돈의 노예가 되는 날이지요.
손해가 꼭 손해가 아니고, 이익이 꼭 이익이 아닌 것을 잊어버리는 순간 돈의 노예가 되지요.
돈을 취하기 위해 핑계와 체념으로 정당화 할때 이미 돈의 노예이지요.
추천0 반대0
(99.XXX.XXX.93)
  좋은 글 감사합니다 김한신 2009-09-04 13:32:03
욕심을 버리는 일은..... 사실 쉽지는 않은것 같습니다.
추천0 반대0
(76.XXX.XXX.149)
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3600 Wilshire Blvd., #1214 LA, CA, 90010, USA|Tel 1-818-744-100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경훈
Copyright since 2009 by The Acropolis Times. All rights reserved. mail to Editor@acropolis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