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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죽는 것이 흐르는 물 같지는 않지만
곽건용의 톡톡 튀는 설교
2009년 08월 14일 (금) 16:55:54 곽건용 기자 Editor@Acropoli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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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건용 동문
곽건용 동문의 커리커쳐가 화사한 옷을 입었다. 흑백이라서 화면이 칙칙하다는 편집팀의 호소에 켈리박 동문이 집안식구를 총동원한 4가지 시안을 보냈고, 그중 하나가 채택된 것. 정작 당사자는 “그 친구는 본래가 칙칙해서 뭘 입혀도 안 달라질 걸요”라고 했지만, 보라. 정말 달라지지 않았는가? <편집자주>

어물어물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어물어물 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가 죽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 나오는 오보에 주자 김갑용 선생께서 말씀했습니다. 쇼의 말은 ‘후회’라는 말을 떠올립니다.

‘후회.’ 우리는 후회하는 삶을 살지 말라, 후회할 때는 이미 늦었다 등등 후회는 좋은 것이 아니므로 가급적 하지 말라는 뜻의 말을 많이 들어왔고 또 해왔습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는 제대로 후회를 하면서 살고 있습니까? 저는 ‘후회할 일을 하는가?’를 묻지 않습니다. 후회할 일을 했을 때 정말 진정으로 후회하는가를 묻고 있습니다. 우리는 복잡다단(複雜多端)한 일들에 얽매어서 정말 후회해야 할 일에 대해서도 제대로 후회하지 못하고 넘어가지는 않습니까? 우리로 하여금 후회하지도 못하게 만드는 그 복잡다단한 일들은 사실 대단히 가치 있는 일들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런 일들이 얽매어 정작 후회해야 할 일도 후회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버나드 쇼의 말마따나 우리는 별 것 아닌 일들 때문에 어물어물하다가 정말 해야 할 일도 못하고 후회해야 할 일도 후회하지 못하고 생을 마치게 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은 이렇게 후회도 제대로 못하고 어영부영 살다가 죽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살아온 날들을 후회합니다. 저는 지난 주간을 죽음을 앞둔 두 분과 만나는 것으로 보냈습니다. 죽음을 앞두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이 두 분은 말 그래도 죽음이 코앞에 다가와 있는 분들입니다. 주중에 두 분에 비하면 나중에 후회도 하지 않을 일 갖고 고민하는 사람들을 만나긴 했지만(알아듣는 사람은 알아들을 것입니다!) 죽어가는 두 분과 많은 시간을 지냈습니다. 그 중 한 분은 이미 먹지도 말하지도 못하고 의식도 없는 분이므로 그분의 아내와 시간을 보내며 많은 얘기를 나눴고 다른 한 분은 유동식이지만 먹기도 하고 말도 하며 의식도 또렷했으므로 직접 얘기를 나눴습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말하기를 싫어합니다. 마치 죽음에 대해서 말하면 죽음이 더 빨리 오기라도 하듯 가급적이면 죽음에 대해 말하려 하지 않습니다. 죽어가는 사람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하지만 인생에서 죽음만큼 분명하고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죽음은 피할 수 없습니다. 보기 싫은 사람이 교회에 있으면 교회를 옮기면 되고 마주치기 싫은 이웃이 있으면 이사를 가버리면 되지만 죽음만큼은 어떻게도 피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는 한 죽음을 일찍 오게 할 수도 없고 반대로 늦출 수도 없습니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밋치 알봄(Mitch Albom)은 디트로이트의 한 신문사에서 일하는 유명한 스포츠 칼럼니스트입니다. 그는 일이 좋아 쉬지 않고 일하는 워코홀릭(workaholic)으로서 자기를 알아주고 자기 글을 즐겨 읽는 사람들의 좋은 평판에 행복해 하며 열정적으로 일하는 전형적인 전문직업인입니다. 그에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애인 재닌(Janine)이 일에만 몰두하는 그를 참지 못해서 헤어질 작정을 한다는 것이었는데 밋치는 이 문제도 잘 해결되리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밋치는 우연히 TV 프로그램 ‘나이트라인’(Nightline)을 보다가 거기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합니다. 앵커 테드 카플(Ted Koppel)이 인터뷰하는 사람은 대학교 때 은사로서 그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모리 슈월츠(Morrie Schwartz) 교수였습니다. 휠체어에 앉아 인터뷰를 하는 모리는 루 게릭 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루 게릭 병은 모리의 표현대로 초가 녹듯이 하반신에서 시작해서 상반신을 향해 몸이 녹아들어가는 병입니다. 미치는 모리의 인터뷰를 보면서 과거에 그와 했던 약속을 떠올립니다. 그는 모리에게 졸업한 후에도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었는데 워낙 일 년 내내 바쁜 스포츠 칼럼니스트이기에 모리를 잊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를 다시 떠올린 후에도 밋치는 디트로이트에서 보스턴까지 날아가 모리를 만날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그러다 작가 노조가 파업을 하자 밋치는 7백 마일을 날아 모리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들은 학창시절 매주 화요일에 만나 학과목 이외에 인생의 여러 주제들을 갖고 대화를 나눴었습니다. 그들은 화요일의 대화를 20년 만에 재개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나눈 대화를 묶어 만든 책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무려 205주 동안이나 올라 있던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Tuesdays with Morrie》입니다. 이 책은 1999년에 TV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잭 레먼이 모리 역을 맡았습니다.

모리와 밋치는 화요일마다 만나 세상에 대해서, 후회와 죽음에 대해서, 가족과 감정, 나이 먹는 데서 오는 두려움에 대해서, 사랑과 결혼과 용서에 대해서, 그리고 작별에 대해서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 대화 속에는 수많은 주옥같은 말들이 있습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되돌아본 인생의 의미와 소중한 가치에 대한 깊고 영감 넘치는 지혜의 말들이 들어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를 알 때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Once you know how to die, you know how to live.)
사랑은 유일무이한 이성적 행위이다(Love is the only rational act).
죽음은 생명을 가져간다. 그러나 관계까지 앗아가지는 못한다(Death takes away life, not relationships).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사랑을 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The most important thing in life is to learn how to give out love, and to let it come in).

모리는 사랑을 주는 일뿐 아니라 사랑을 받아들이는 일도 배워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긴 사랑을 받고 있음을 알지 못하거나 그것을 받아들일 줄 몰라서 사랑이라는 큰 축복을 그냥 흘려보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모리와 그의 가족과 친구들이 ‘살아 있는 장례식’(living funeral)을 치르는 장면입니다. 한 화요일에 모리는 아내와 자녀들, 그리고 친구들을 집으로 초청해서 자신의 장례식을 갖습니다. 거기서 참석자들은 미소를 지으며 기도를 하고 영감 깊은 노래를 부릅니다.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참석한 모든 사람과 모리가 껴안고 작별인사를 나누는 장면입니다.

제가 지난주 초에 의식이 있는 분과 만나 얘기할 때 그분이 자신의 장례식과 시신 처리 문제에 대해서 얘기하려 했습니다. 그때는 제가 말을 막았습니다. 그런 것들은 남아 있는 사람들이 다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말고 건강을 회복하려 노력하라고 말입니다. 저도 죽음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거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을 보고나서 제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병상에 앉아 장례예배 순서를 짰습니다. 기도를 맡을 사람과 추모의 노래 부를 사람을 정했습니다. 그리고 시신은 화장해서 바다에 뿌리기로 했습니다. 순서를 다 짜고 나서 저는 살아 있는 장례식을 떠올렸지만 그 얘기는 꺼내지 못했습니다. 제가 죽을 때는 살아 있는 장례식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의식이 있고 말을 하고 들을 수 있� 때 사랑하는 사람들과 작별인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성경은 죽음을 어떻게 볼까?

흡연을 지극히 혐오하는 어떤 사람이 성경에 금연하라는 말씀이 없어서 매우 섭섭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제가 성경에 대해 섭섭하고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것은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을 성경에서 찾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구약성경은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 그가 몇 명의 아들딸을 낳고 살다가 몇 살에 죽었다고 무미건조하게 설명하는 것이 거의 전부입니다. 그런 구절을 읽을 때마다 저는 아쉽습니다. ‘사람의 죽음에 대해 할 말이 이게 전부인가?’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그런데 예외가 있는데 에녹과 엘리야가 바로 예외적인 인물입니다. 성경은 이 두 사람이 죽음을 보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창세기 5장은 에녹에 대해 이렇게 전합니다. “야렛은 백육십이 세에 에녹을 낳았다. 야렛은 에녹을 낳은 다음 팔백 년 동안 살면서 아들딸을 더 낳았다. 야렛은 모두 구백육십이 년을 살고 죽었다.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다.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다음 삼백 년 동안 하느님과 함께 살면서 아들딸을 더 낳았다. 에녹은 모두 삼백육십오 년을 살았다. 에녹은 하나님과 함께 살다가 사라졌다. 하나님께서 데려가신 것이다.” 에녹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설명에는 없는 ‘하나님과 함께 살면서’라는 말과 ‘하나님과 함께 살다가 사라졌다. 하나님께서 데려가신 것이다.’라는 말이 거기 더해져 있습니다. 유독 에녹만 하나님과 함께 살았기 때문에 이런 말이 붙은 것은 아닐 것입니다. 더 기이한 점은, 그가 하나님과 함께 살다가 사라졌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다는 뜻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모세의 마지막에 대해서는 오늘 읽은 신명기 34장이 전하고 있습니다. 에녹과 달리 그는 분명 죽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단순히 무덤의 지리적 위치를 모른다는 뜻보다는 더 깊은 뜻을 갖고 있다고 보입니다. 어떤 뜻인지를 확실하지 않지만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열왕기하 2장을 보면 엘리야는 엘리사와 함께 길을 가다가 난데없이 나타난 불 말이 끄는 불 수레에 태워져 회오리바람 속에서 하늘로 올라갔다고 했습니다. 그 역시 통상적인 죽음을 보지 않았습니다.

이 중 가장 신비한 인물은 에녹입니다. 단 몇 줄만의 기록을 남긴 에녹이기에 사람들은 그에 대해서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쳤습니다. 성경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에녹서》라는 책이 있을 정도입니다. 구약성경은 이와 같이 죽음을 보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남겨놓음으로써 희미하게나마 생물학적 죽음이 사람 생의 끝이 아님을 보여주려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많은 경우에 예수님과 제자들, 또는 예수님과 군중들 사이에 전혀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봅니다. 비록 사용하는 단어는 같을지라도 그 내용이 달라 전혀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경우는 예수께서 당신의 죽음에 대해서 얘기하실 때입니다. 우선 제자들은 메시아가 고난을 받아 죽는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읽은 요한복음 12장에서도 군중들은 “우리는 율법서에서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사시리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사람의 아들이 높이 들려야 한다고 하시니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높이 들려야 한다고 말씀했을 때 거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들어 있었습니다. 하나는 십자가에 높이 달린다는 뜻이었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로 올라가신다는 뜻이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우리 모두 짐작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아마 제자들도 짐작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물음에 대해 예수님은 전혀 엉뚱한 말씀으로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메시아가 죽느냐 영원히 사느냐 하는 문제에는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빛이 너희와 같이 있는 것도 잠시뿐이니 빛이 있는 동안에 걸어가라. 그리하면 어둠이 너희를 덮치지 못할 것이다. 어둠 속을 걸어가는 사람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그러니 빛이 있는 동안에 빛을 믿고 빛의 자녀가 되어라.

인생은 길을 걷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걸음걸이가 빨라졌다 늦어졌다 하는 변화는 있지만 우리네 인생은 아직까지도 줄곧 걸어왔고 앞으로도 걸어갈 것이라는 점에서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지는 못합니다. 죽음조차도 이 걸음을 멈출 수 없습니다. 문제는 내가 어디를 걷느냐 하는 것뿐입니다. 빛 가운데 걷느냐, 아니면 어둠 가운데 걷느냐, 중요한 것은 이것뿐입니다.

저는 8월 24일에 “존엄하게 죽기”라는 설교에서 전신마비 환자 라몬 삼페드로가 존엄하게 죽기 위해 몸부림치는 영화 《바다 속으로 The Sea Inside》를 얘기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숨을 거두는 마지막 모습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고로 죽든 병으로 죽든 아니면 늙어서 죽든 겉으로 나타나는 모습이 그 사람의 죽음의 존엄성을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타살이냐 자살이냐 여부도 죽음의 존엄성을 결정하는 결정적인 요소는 될 수 없습니다. 존엄하게 죽기를 원하는 라몬의 죽음이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결국 존엄한 죽음의 결정적인 요소는 그 사람이 어떻게 존엄하게 잘 살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존엄하게 잘 산 사람은 존엄하게 잘 죽게 되어 있다고 말해도 틀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모리에 기대서 여기에 한 마디를 덧붙여야 하겠습니다.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를 알 때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고 말입니다. 모리는 인생에서 진정으로 소중한 것은 돈이나 명성 같은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는 후회가 좋은 일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극히 사소한 일들에 사로잡혀서 진정으로 후회해야 할 일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안에 있는 사랑을 주는 법과 다른 사람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인생이 후회나 회한이 없을 수 없다면 정말 후회할 가치가 있는 일을 후회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가장 가치 있는 일을 하지 못해서 후회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한 화요일에 밋치가 모리에게 물었습니다. 만일 건강하게 살 수 있는 24시간이 주어진다면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겠느냐고 말입니다. 모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눈을 감고 이렇게 말합니다. “잠을 푹 자고 아침에 일어나 셀러드로 아침 식사를 하고 운동을 한 다음 점심으로 파스타를 먹은 후 친구들과 만나 얘기를 나눈 후 산책을 한 다음에 와인을 곁들인 푸짐한 저녁 식사를 한 후 일찍 잠자리에 들겠다.”

평범하지만 복된 하루의 가치를 모리는 죽음의 문턱에서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그 깨달음이 그에게 늦어버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너무 늦게 깨닫게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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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9)
  오랜만에 김승진 2009-08-14 23:33:31
꽤 오래전에 무척 감동적으로 읽었던 책인데, 다시 한 번 감동으로 찾아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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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XXX.XXX.190)
  칠하면서 즐거웠습니다 켈리3 2009-08-14 10:32:02
아이들이 신나 하던데요. 덕분에 저도 오랜만에 아이들과 함께 그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른 색 계통으로 아무리 하려해도 자꾸 초록빛쪽으로 가게 되는 것이
아무래도 곽건용님께는 초록이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이어서 인가 봅니다.
사실, 제 다섯살배기가 칠한 라임그린이 가장 좋았는데 메인그림상으로는 좀 너무 흐리고 가벼워보여서 짙은 초록이 채택된 듯 싶습니다. 맘에 드셔서 다행이고 올려주셔서 황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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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XXX.XXX.43)
  장례식 준비를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켈리2 2009-08-14 10:25:36
내 장례식 차례며 누가 어떤 노래를 불러줄 것이며, 어디에서 치뤄질 것이며, 누가 초대될 것 등등을 내가 준비할 수 있다면 굉장한 축복일 것 같습니다. 의사/간호사도 치료에 들어가기 전에 손에 든 기구가 무엇이며 이것이 몸에 닿으면 어떤 느낌일 것을 미리 알려줄 때, 맘에 준비가 되었을 때 우린 더 편안해지듯이. 유서에 이런 내용들을 미리 적어두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추천0 반대0
(71.XXX.XXX.43)
  생명보험 켈리 2009-08-14 10:11:57
제 일이 재정관리이다보니 생명보험은 빠질 수 없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사람이 죽는 것처럼 확실한 것도 없는데 보험을 재정관리의 옵션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차별화하려는게 아니라 단순한 제 경험에 비추어볼 때, 한인 남성들로부터 한번도 아니고 몇 번 들은 반응 --- "나, 안 죽어. 필요 없어."
혹은 "누구 좋으라고?" --- 암담해집니다.
추천0 반대0
(71.XXX.XXX.43)
  살았을 때 장례식.. 이종호 2009-08-14 10:11:29
힘들겠지만 생각해 볼만한 것 같습니다. 빛 가운데서의 삶....도전을 주는 말씀 감사합니다.
추천0 반대0
(66.XXX.XXX.111)
  한결 덜 칙칙하네요 곽건용 2009-08-14 10:09:25
고맙습니다. 켈리 님과 가족들!

초록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색깔이기도 합니다.
추천0 반대0
(76.XXX.XXX.181)
  Mitch Albom 김지영 2009-08-14 04:29:43
제가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죽음을 스토리 텔링의 틀로 쓴 작품들이 감동적입니다.
For One More Day 그리고 Five People You Meet in Heaven.
추천0 반대0
(68.XXX.XXX.141)
  아참,곽건용님에 날개를 편집장 2009-08-14 01:16:24
달아준 켈리님은 천사. 아크로가 날아갈 것 같네요.
추천0 반대0
(75.XXX.XXX.248)
  어제 메멘토 모리 워낭 2009-08-14 01:14:12
에 대한 글을 읽었는데 오늘 곽건용님의 글을 읽으니, 이걸 와러코인시던스라고 하나요?
묵상할 수 있는 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0 반대0
(75.XXX.XXX.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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