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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마음, 아름다운 바보
곽건용의 톡톡 튀는 설교 9
2009년 06월 24일 (수) 23:03:24 곽건용 기자 Editor@Acropoli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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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건용 동문
아름다운 마음(A Beautiful Mind)

미 전국의 수재들이 모인다는 프린스턴 대학원에 사회성도 없고 적당히 안하무인이고 대단히 엉뚱한 한 청년이 입학했습니다. 수재나 그 위의 천재들 중에는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그는 수업에도 들어가지 않고 혼자 연구에 연구를 거듭합니다. 가까운 친구도 없습니다. 룸메이트인 찰스가 그의 유일한 친구입니다. 그런 그가 알리샤를 만나 그녀와 결혼한 것은 그에게는 행운이요 알리샤에게는 잘못된 선택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잔 네쉬는 졸업한 후 MIT 교수가 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국방성 소속의 윌리엄 파쳐(William Parcher)라는 사람이 나타나 국가안보가 걸린 문제라며 적국 러시아가 대중잡지 속에 감춰둔 암호를 해독하라는 부탁 아닌 명령을 내립니다. 그는 열일 제쳐두고 그 일에만 몰두합니다. 그는 일이 진전되는 대로 보고서를 만들어 비밀건물의 우편함에 넣곤 했습니다. 한편 아내 알리샤는 남편의 행동이 점점 이상해져가는 것을 보고 이 사실을 정신병원에 알렸고 그는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합니다. 그에게 내려진 진단은 심한 환각 증세를 동반하는 정신분열증이었습니다. 그는 그 동안 자기가 암호 해독 일을 해왔음을 아내에게 ‘고백’하고 병원에서 내보내달라고 간청하지요. 하지만 알리샤가 알아보니 국가안보도 암호해독도 룸메이트 찰스도 모 두 실제가 아닌 환각 속의 일이요 환각 속의 인물들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병원에서 치료받은 후 네쉬는 치료약을 먹기로 하고 퇴원합니다. 그러나 그 약은 지적, 감정적, 성적 능력을 현저하게 감퇴시키는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켜 네쉬는 약을 먹지 않고 몰래 내버리곤 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환각 속에서 살아갑니다. 파춰는 계속 나타나 그를 위협하고 찰스와 그의 조카 말시도 문득문득 나타나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네쉬는 그들 모두가 환각 속의 인물임을 깨닫습니다. 말시를 만난 지 십여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말시가 십여 세의 나이에서 전혀 자라지 않았음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 후 네쉬는 그들을 철저하게 무시하기로 작정합니다. 분명 눈에 그들이 보이고 그들이 말을 걸어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대꾸도 하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그는 프린스턴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학과장이 되어 있는 친구 마틴의 도움으로 도서실 출입증을 얻어 거기서 연구에 몰두합니다. 환각 속의 인물들에 대한 네쉬의 ‘막무가내 무시 작전’은 비교적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그는 현실에 적응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도서관에서 학생들과 더불어 토론을 벌이고 가르치기 시작했으며 마침내 정규 클래스를 이끌며 존경받는 교수가 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낯선 사람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네쉬가 노벨상 후보에 올랐는데 과연 그가 상을 받을 만큼 정상적인 사람인가를 확인하러 왔던 것입니다. 그에게 네쉬는 “나 미친 사람 맞다. 시상식장에서 의외의 행동을 할 가능성도 있다. 지금도 실제가 아닌 사람들이 내 눈에 보인다.”고 대답합니다. 그는 1994년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됐습니다.

이 영화의 제목이 <A Beautiful Mind>입니다. 아름다운 마음이라…. 과연 아름다운 마음은 누구의 마음인가를 생각해봤습니다. 천재는 결코 홀로 서지 못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 영화는 그 사실을 확인시켜줬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의 가족이 그를 가리켜 이렇게 얘기하더군요. “걔는 피아노나 칠 줄 알았지 나머지는 바보나 다름없어요.” 세상은 참 공평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이런 의미에서 공평한 분이란 생각이 듭니다. 천재는 곁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면 천재성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만일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데도 잘 하면 그는 천재 같아 보여도 천재가 아님에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알리샤가 네쉬 곁에 없었더라면 그가 어떻게 됐을까를 생각해봤습니다. 아마 그는 평생을 정신병원에서 지냈을 것입니다. 그런 네쉬가 알리샤를 만나 그의 사랑과 돌봄을 받아 어려움을 극복하고 큰 업적을 남기는 학자가 됐고 존경받는 교수가 됐으며 노벨상 수상자가 됐습니다. 피아노 치는 것 외에는 바보라는 피아니스트도 아내를 잘 만나 지금도 전 세계로 연주여행을 다니며 활약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듯 아름다운 마음은 천재 곁을 지켜주고 그의 모난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어주어 천재성을 제대로 발휘하도록 돕는 마음입니다. 극도의 정신분열 증세를 보이는 남편의 곁을 끝까지 지키면서 그를 도운 알리샤야말로 아름다운 마음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의 제목은 주인공 네쉬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알리샤를 가리키는 말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그런지 네쉬 역을 한 러셀 크로는 오스카 상을 못 받았고 알리샤 역을 한 제니퍼 코널리가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받았습니다.

네쉬는 노벨상 수상연설에서 알리샤의 아름다운 마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찬사를 보내와 감사의 표현이었습니다.

나는 늘 숫자를 믿으며 살아왔습니다. 이성(reason)으로 이끌어주는 방정식과 논리의 숫자를 믿고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평생 숫자를 추구하며 살아온 끝에 저는 묻게 됐습니다. 논리란 것은 무엇인가? 누가 이성을 결정하는가? 물리학과 형이상학, 그리고 심지어 환각을 통한 평생의 탐구를 통해 나는 결국 돌아왔습니다. 드디어 나는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모든 논리적 이성은 사랑이라고 하는 가장 신비한 방정식 안에서 발견될 수 있다는 진실이 그것입니다(It is in the mystery of love that any logical reason can be found). 이 밤에 내가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은 오로지 당신 덕분입니다. You are the reason I am. You are all my reasons.

바보

오늘 설교 제목이 “아름다운 바보”입니다. ‘아름다운’이란 형용사는 영화 <A Beautiful Mind>에서 가져왔습니다. 그러면 ‘바보’는 어디서 왔을까요? 여러분의 추측이 맞습니다. 그것은 고 김수환 추기경에게서 왔습니다. 소박하다 못해 유치하기까지 한 자화상 밑에 추기경은 ‘바보야’라고 적어 넣었답니다. 거기서 ‘바보’를 가져와 ‘아름다운 바보’란 제목을 만들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종교가 있든 없든, 그 종교가 어떤 종교든 지난 주간을 ‘김수환 추기경 추모주간’으로 지냈습니다. 저도 다른 사람들처럼 애도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신문과 라디오, TV 등 미디어의 보도를 보면서 적지 않게 놀랐습니다. 제가 과문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한국 현대사에서 반 강제로 군중이 동원된 대통령 장례를 제외하면 이토록 전 국민이 애도하는 장례는 전무후무할 것입니다. 수십만 인파가 조문하기 위해 맹추위에도 불구하고 두세 시간씩 길거리에서 줄을 서서 기다렸습니다. 추기경의 유지를 따라 장기기증 서약자도 급증했다고 합니다.

한국 가톨릭교인 수는 전체 인구의 6~7%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김수환 추기경 신드롬’은 가톨릭이 만들어낸 현상이 아닙니다. 물론 여기에는 미디어의 역할이 컸음을 감안해야 합니다. 신문은 일주일 내내 온통 추기경 이야기로 가득 채워졌고 한국 TV 뉴스는 매일 서너 꼭지 이상을, 장례식이 있었던 그제는 무려 열 꼭지 이상을 추기경에 관한 보도에 할애했습니다. 신문 방송 미디어란 것이 참 묘합니다. 연쇄살인범 사건을 용산 참사를 덮는 데 쓰라는 보도지침처럼 미디어가 특정 사실을 부풀리기도 합니다. 심지어 의도적으로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있는 사실을 없애기도 하면서 억지로 여론을 조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미디어는 사회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고 사회 구성원들이 무엇을 바라는지를 드러내 보여줍니다. ‘김수환 추기경 신드롬’도 지금 한국사회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한국 사람들이 무엇을 갈망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봐도 틀림이 없습니다.

종교 없는 사람들도 함께 슬퍼한 김수환 추기경은 이미 한 개인이 아닙니다. 그분은 ‘종교 그 자체’를 상징합니다. 종파의 차이를 막론하고 사람들이 ‘종교’라고 하는 것에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이번에 추기경께서 잘 보여줬습니다. 세상은 종교더러 천재가 되라고 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종교가 천재가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복잡하고 대단한 법칙을 발견해내고 기발한 물건을 발명해내서 사람들의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켜주는 천재의 역할을 종교가 해줄 것으로 세상은 기대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종교더러 바보가 되라고 합니다. 세상은 종교가 바보가 될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천재가 아니라 ‘아름다운 마음’을 종교에 기대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은 종교가 ‘아름다운 바보’가 되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반짝이고 기발한 천재성을 발휘할 때뿐 아니라 정신분열증을 보이고 환각에 사로잡혀 있을 때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켜주고 함께 있어주는 ‘아름다운 마음’이 되어주기를 세상은 종교에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상한 행동을 해서 세상의 조롱을 받을 때나 까만 턱시도를 입고 노벨상을 받을 때나 변함없이 그의 곁을 지켜주고 온 마음으로 그를 도와주고 사랑하는 ‘아름다운 마음’이 되어주기를 세상은 종교에 바라고 있습니다.

바보 그리스도

그런데 종교에 대한 세상의 이런 바람은 오늘날의 현상만은 아닌 모양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 진실을 이미 2천 년 전에 깨닫고 다음과 같이 썼으니 말입니다.

멸망할 사람들에게는 십자가의 이치가 한낱 어리석은 생각에 불과하지만 구원받을 우리에게는 곧 하느님의 힘입니다. 성서에도 “ 나는 지혜롭다는 자들의 지혜를 없애버리고 똑똑하다는 자들의 식견을 물리치리라.” 하는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제 지혜로운 자가 어디 있고 학자가 어디 있습니까? 또 이 세상의 이론가가 어디 있습니까? 하느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가 어리석다는 것을 보여주시지 않았습니까? 세상이 자기 지혜로는 하느님을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지혜로운 경륜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전하는 소위 어리석다는 복음을 통해서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유다인들은 기적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지만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바보) 그리스도를 선포할 따름입니다(고린도전서 1:18-23).

세상이 물질적 가치로만 움직일 때, 제어되지 않는 탐욕의 소용돌이 속에서 모두가 미쳐 돌아갈 때, 너도나도 세속 권력의 한 자락이라도 쥐어보려고 눈 뒤집고 달려들 때 종교는 어떤 일을 해야겠습니까? 그럴 때 종교가 해야 할 일은 탐욕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삼박자 축복’이나 외치는 일이 아닙니다. 물질에 대한 무한정의 탐욕을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갈망이라고 공인해주고 거기 도장 찍어주는 일도 아닙니다. 권력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모두 복종해야 한다고 비굴한 순종을 외치는 일도 아닙니다. 세상이 온통 탐욕에 휩쓸려 한 생명의 가치가 무참히 짓밟혀도 아무도 외치지 않을 때 종교는 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한 사람의 생명의 가치를 역설하고 몸을 던져 그 생명을 감싸주어야 합니다. 어딜 가도 하소연할 데 하나 찾지 못하는 가난하고 짓밟히고 소외된 사람들의 말을 온 마음과 온 귀를 기울여 들어주고 그들과 함께 하는 친구가 되어주어야 합니다. 종교는 아름다운 마음이 되어야 하고 바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이 종교에 대해서 바라는 바일 뿐 아니라 종파를 막론하고 모든 종교의 본질이기 도 한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바보가 되십시오, 부드러운 바보가 되십시오. 아름다운 바보가 되십시오. 높아지려 하지 말고 낮아짐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중시하는 바보로 사십시오. 성취의 효율보다는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아름다운 덕을 지키는 아름다운 바보로 사십시오. 너도나도 너무나 영악하고 똑똑한 세상에서 어렵고 복잡한 모든 논리는 사랑의 신비 안에서 발견될 수 있음을 믿고 그 믿음 안에서 아름다운 바보로 살아가십시오. 그 길이 유다인들이 원했던 기적도 마다하고 그리스 인들이 구했던 지혜도 뒤로 하고 십자가의 길을 가셨던 ‘바보’ 예수를 따르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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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15)
  무심(無心)과 멍청함 김판건 2009-06-25 12:21:19
어떤 사람이 서옹 스님께 물었습니다. "저... 우리는 가끔 차를 타고 가다가 아무 생각도 없이 멍할 때가 있는데, 그 때가 무심인가요?" 그러자 서옹 스님이 "그건 멍청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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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XXX.XXX.237)
  다시 과객님 박승규 2009-06-24 22:27:23
간단하게 얘기하겠습니다: 저에게 원글은 "설교"가 아니고 "글"일 따름입니다.

다른 글에 신경 쓰시지 마시고 편하게 글 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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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35)
  나도 바보가 될테야... 켈리 2009-06-24 21:50:25
아랫댓글은 글을 다 읽기 전에 쓴 것입니다. 반장하던 버릇에...^^

오늘 수점회에서 뵙고나서 읽으니 더 와 닿습니다. 좋은 설교/글 계속해서 기대하구요.

***공고: 곽동문님의 바울에 대한 얘기 듣고픈 분들은 주일 14:30에 곽동문의 교회로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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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XXX.XXX.252)
  존/잔 켈리 2009-06-24 19:55:09
"존"으로 표기할려면 "죤"으로 해야하고, "내쉬"도 "나쉬"로 해야지요.

우리 곽동문의 좋은 글에 너무 쉬끄럽다... 글 좀 읽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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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XXX.XXX.91)
  대충 넘어가세요 과객 2009-06-24 19:00:04
박승규님! 한글표기 꼬치꼬치 따지시면 나같은 사람 댓글 하나 달기도 힘듭니다. 그리고 설교 한편을 만드는 분에게 그런 지옆적인 지적은 그야말로 자기과시 같읍니다. 그야말로 업을 만드는 것 같군요. 대충 지나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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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XXX.XXX.94)
  최응환님 박승규 2009-06-24 18:31:32
한글표기는 “프린스턴”이 맞습니다. 너무 신경 쓰시는 것 같은데요... :) 제 말은, 한글을 올바르게 사용하고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한국어와 외국어를 섞어 쓰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이지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특히 미주 한인들의 경우 한글 표기를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은데 우리 동문들이라도 잘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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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35)
  과객님 박승규 2009-06-24 16:56:38
과객님/여몽님(?)/ 제 얘긴 한글표기법에 의하면 "오렌지"와 "내쉬"가 맞다는 말입니다. 어차피, 인용구는 영화에서 내쉬의 노벨상 수상 소감인데, 영화에서 만든 말이고 실제로 수상 소감은 없었습니다. 어떤 말씀이든 받아들이는 사람의 업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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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35)
  글 존내 쉬를 이원영 2009-06-24 16:31:19
글 돈내 쉬로 읽었습니다. 원고료 달라는 소린가 했음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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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XXX.XXX.79)
  기껏 바보스러우라고 했건만. 과객 2009-06-24 15:40:11
사랑에 공식 (등식?)이 있으나 없으나 신비스럽기는 마찬가지 인것 같은데 무슨 하늘과 땅 차이? 나느 아직도 아린지 보다는 오렌지라고 발음하는게 편하더구만....ㅉ ㅉ 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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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XXX.XXX.94)
  좋은 말씀 김성수 2009-06-24 15:39:24
항상 좋은 말씀 잘 듣고 있습니다. 매주 저의 삶의 자세를 다시 한 번 점검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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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XXX.XXX.52)
  존 내쉬 2 박승규 2009-06-24 11:26:15
3. 영화에 나오는 내쉬의 말은 "It is only in the mysterious equations of love that any logical reasons can be found."입니다. "equations"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죠. 이 말의 의미는 내쉬의 게임이론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고, 그것을 종교와 바로 연결시키는 것은 지나친 비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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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35)
  존 내쉬 박승규 2009-06-24 11:24:57
1. Nash의 한글 표기는 "네쉬"가 아니고 “내쉬”라고 해야 합니다. 또,"잔"보다는 "존"이 좋습니다.

2. 수업에도 들어가지 않고 혼자 연구하는 것은 내쉬가 천재이어서가 아니고, 프린스턴 대학원의 "모든" 수학 물리학 수업은 출석/시험/과제에 대한 의무가 없습니다. 수업에 "전혀" 들어가지 않는 것은 누구에게도 가능한 아주 정상적인 생활일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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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35)
  오늘 설교 말씀 흥부 종하 2009-06-24 11:13:15
정말 은혜롭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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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XXX.XXX.91)
  제가 좀 주제넘은 소리를 해도 될까요? 음...참 만나기 힘든 컨텐트라는 것을 잘 압니다...이런 전제 하에서.. 이경훈 2009-06-24 09:49:14
도입부가 좀 긴 것같애요. 그러니까 오늘보면 뷰티풀 마인드 부분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도입인데...이게 좀 긴 것같애요...그래서 읽다보면 잠깐 섯갈립니다...그러다가 중간을 넘어가면 아, 이 이야기를 하려고...합니다. 설교를 원고로 옮겨서일까요? 하여간 좋은 말씀에 늘 감사드립니다. 불교, 천주교 이야기를 거침없이 해주셔서 읽는 사람 마음이 편해요. 나도 이분에게 말을 걸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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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XXX.XXX.83)
  저녁에 차분하게 이원영 2009-06-24 09:14:44
읽겠습니다. 매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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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XXX.XXX.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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