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9.6 금 20:04
> 뉴스 > 인터뷰
       
한 우물 파는 삶... 결국 꽃을 피우네
한국 전통음악 전파에 평생... 김동석 회장 인터뷰
2019년 09월 07일 (토) 12:45:56 홍선례 기자 sunryehong@gmail.com
홍선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클릭!  

8월의 어느 날, Buena Park에 위치한 김동석(음대 64, 2007년 남가주 총동창회장) 회장님 댁을 찾았다. 정원의 꽃들과 날아 온 새들이 반겨준다. 현관문을 열자 2층 발코니가 보이는데, 가야금, 거문고, 해금, 장고 등 각종 국악기들이, LA 한인들을 위해 국악을 전파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김동석 회장의 연륜을 말해 준다.

-시간을 내어 인터뷰에 임해 주시어 감사합니다. 학창시절 이야기부터 해 주시겠어요? 전공이 국악이론인데 LA에서 가야금, 장고, 사물놀이 등을 지도하시는 걸로 압니다.

가야금은 대학 들어가기 전 국악고등학교에서 전공이었어요. 그 당시 음대 입학생들을 가르쳐 서울음대에 입학시키기도 했지요. 국악이론은 장사훈, 이혜구 박사, 작곡은 김달성, 정회갑씨가 지도교수였어요.

-음대 재학 시절, 연극부를 창설하셨다고 들었는데요

1965년 음대 2학년 때, 조영남, 김재향, 이길주, 그리고 이건용, 문호근씨와 함께 서울음대 연극부를 창설했어요. 초대회장을 맡아 “Our Town, Bus Stop” 등 연극 활동을 시작하여 서울대학교 전체 연극 동아리회원으로 되었지요. 후에 문호근씨는 연극 연출, 오페라 연출 등 연극계의 유망주가 되었습니다. 조영남씨는 유명가수로, 이건용씨는 한국종합예술학교 총장이 되었고, 문호근씨는 음악사 책 저술을 많이 했습니다.

   
음대 연극반 창립공연: 조영남, 문호근 이건용과...

-한국에서의 연주 및 강의 활동상황을 설명해 주세요.

1967년, 68년 음대 재학시절, 2년 간 서울 중앙여고 특별 음악강사로 있었어요. 1학년 전체 학생이 매주 2시간씩 가야금을 통한 국악교육을 시작한 것이지요. 그것이 이후 추계예술대학이 설립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70년 ROTC 6기로 전역 후 Little Angels of Korea 합창 지휘자 겸 음악 반주자로 그해 9월부터 12월까지 3개월 간 미국 순회연주 중 닉슨 대통령의 초청으로 백악관 East Room에서 연주회를 가졌습니다. 귀국 후 박정희 대통령 초청으로 청와대를 방문하였고, 그것이 선화 예술학교가 창립되는 계기가 되었어요.

-미국에 오시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1971년 6월 UCLA Department of Ethnomusicology Graduate 학생으로 도미하였어요.

-LA에서의 연주 활동에 대해 들려주세요.

1973년 Los Angeles에서 현지에 있던 현 국립국악고등학교(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사양성소) 졸업생 7명이 중심이 되어 재미국악원을 창립했습니다. 동포사회의 크고 작은 행사에, 우리 전통음악을 소개하게 되었지요. 1975년 이후 매년 Wilshire Ebell 극장에서 정기연주회를 시작하게 되었고, 미주 최초로 전공자들에 의한 한국전통 음악과 무용을 소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73년 가을, 미주 최초로 ‘한국의 날 행사’에 현지 학생 20여명으로 구성한 농악대를 만들어 학생들과 함께 올림픽가에 우리 풍물소리와 함께 한국인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는 계기가 되어 2018년 Korean Parade까지 45년 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자라나는 2세 3세 학생들과 함께 올림픽가를 뛰고 있습니다. 지금도, 2019년 9월28일 46회 퍼레이드 참석을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후 현재까지 인근 도시들의 축제마다 풍물팀과 무용팀을 데리고 참석하고 있어요.

   
Korean Parade: 45년간 올림픽거리 행진(1973- 2018)

-Pasadena Rose parade에 참석하셨지요?

1988년 한국인 최초로 꽃차와 농악대를 만들어 참석했고, 88 서울올림픽을 홍보했습니다.
 
-Korean Ethnic Heritage Group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1978-1980년 까지 2년간 초대 Director로 연 30만 달러의 Federal CETA Fund를 받아서 한국 전통 음악 무용을 전공한 20명의 단원에게 매월 $850 상당의 급료를 지불하여, 우리 전통음악과 무용으로 미 주류사회에 봉사하며 공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어요. 이 기금은 민주당 Carter 대통령에 의한 소수민족 우대정책 중 하나였는데 공화당 Reagan 대통령이 기금을 중단하여, 단체가 해체되었습니다.

-한국음악무용예술단을 설립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1978년 한국음악무용 예술단을 설립하여 LAUSD ICAP(Inter-Cultural Awareness Program) Performing Tree 등에 Roster Member로 LA 인근 초,중,고등학교를 방문하며 Korea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했어요. 1982년 이후에는 L.A. Music Center, Orange County Performing Arts Center(현 Segerstrom Center for the Arts), Young Audience in San Diego County 등 Education Department에 정규멤버로 California 전역의 학교 Assembly 수업을 통해 한국의 전통문화를 통한 World Music Culture교육을 했습니다.

   
1999년 Life Time Achievement Award

-공연 회수는 어느 정도 되는지요?

현재까지 대략 5천회 이상의 학교 공연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1984년 LA Olympic에 자랑스러운 소수민족 예술단체에 선정되어 Japan-American 극장에서 공연하였고, 1984년 Olympic Closing Ceremony에 참석하게 되었어요.

-국악을 소개하는 방송 프로그램을 맡으셨지요?

80년대 국악소개 프로그램을 시작하여, Radio Korea 개국 후 18년 동안 Radio Seoul 등에서 '우리가락 좋을시고' '국악의 향기' '우리가락 한마당' 등을 맡았습니다.

-UCLA에서 어떤 강의를 하셨나요?

1997년 UCLA Department of Ethnomusicology, Music of Korea 초빙교수로 부임, 2004년 Full Time Assistance Professor로 재직하다가 2014년 은퇴하였어요. 과목은 가야금, 거문고, 대금, 소금, 해금, 단소, 장고, 북, 사물놀이 등이었습니다.

   
UCLA 한국음악과 정기공연

-LA Fair Fax High School에 국악 프로그램을 만드셨지요?

1999년부터 2019년 봄 학기까지 20년 동안 미국 고등학교 최초로 LA Fair Fax High School Korean Drumming Classes를 개설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밖에 행사가 많으셨던 걸로 압니다.

1997년부터 Korean Music Symposium을 UCLA와 한국 단국대학교 주최로 13년 동안  UCLA Campus, LA 한국문화원, Wilshire Ebell 극장 등에서 학술대회 겸 한국의 인간문화재 초청공연을 가졌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보람 있었다고 하면 어떤 것일까요?

누가 한국음악을 들려 달라고 하던지, 함께 가야금이나 다른 우리 소리를 연주하자고 할 때,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평생 한 우물만 파고 살아온 내 삶이 그래도 나쁘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과 내 것을 좀 더 아낄 줄 아는 우리 한국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생각은 아마 내가 이 땅에 사는 한 끊임없는 바램이 될 것 같습니다.

-현재도 활동하시지요?

2014년 은퇴 후에도 계속하여 Fair Fax High School에서 강의, LA 와 Irvine에 사물놀이 학교를 개설하여 100여 명의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한국 음악무용 예술단의 학교 Assembly와 국악을 전공하고자 하는 학생들을 개인지도하고 있어요.

-그외에 세계를 두루 다니시며 여행을 하시지요?

틈틈이 시간 나는대로 세상 안 가본 곳을 여행하면서 바람과 구름과 내 피 속에 잠자고 있는 우리 소리와 흥을 섞는 재미로 하루하루를 매우 소중하게 보내고 있지요.

-동문들에게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

글쎄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무엇을 하든지 한 우물만 파는 삶은 초기에는 힘들지 몰라도 결국 끝 무렵에는 한 송이 꽃을 피우고, 이것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홍선례 (음대 70, 미주동창회 문화국장, 미주동창회보 편집위원)

ⓒ 아크로폴리스타임스(http://www.acropolistime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의견쓰기
이름 비밀번호
제목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현재 0 byte/최대 400byte)
전체기사의견(0)
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3600 Wilshire Blvd., #1214 LA, CA, 90010, USA|Tel 1-818-744-100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경훈
Copyright since 2009 by The Acropolis Times. All rights reserved. mail to Editor@acropolis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