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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의 동생들과의 연주, 가슴 속 한이 녹듯 눈물이...
첼리스트 이방은 인터뷰
2019년 05월 12일 (일) 12:42:31 홍선례 기자 acroedito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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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자리에 첼리스트 이방은 선배님을 모시게 되어 기쁩니다. 먼저 다니신 학교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서울예술고등학교(1960~62)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기악과에서 첼로를 전공했어요.(1962~66)

<음악콩쿨 등에서 수상하신 경험이 있으십니까?>
동아일보 주최 전국 음악콩쿨에서 1등 없는 2등을 했어요. 상을 탄 건 이것이 전부입니다.

<한국에서의 연주활동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1965년부터 1970년까지 서울시립교향악단 단원으로 있었습니다. 그 당시 지휘자는 김만복씨였어요. 그리고 1968년에 나운영 작곡 “Cello Concerto”를 초연했습니다.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협연이었는데, 지휘는 나운영씨가 맡았지요.

<음악가 가족이라고 들었습니다.>
피아노를 전공하신 이인형 아버지 외에 동생 이방희(음대 67)가 바이올린을 전공했습니다. 현재 Mannes음악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사촌 이방숙(음대 61) 언니는 연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피아노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연세대학 학장까지 지냈어요. 지금은 정년퇴직했지요.

   
동생 이방희, 사촌 이방숙과

<대만에 가시게 된 경위를 듣고 싶습니다.>
대만에 처음 가게된 동기는, 1970년 대만에서 주최한 ‘화강 Music Camp’에 참가하기 위해서였지요. 그 당시 중국에서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던 Helen Quach라는 여류지휘자가 주최한 Camp였습니다. 그 곳에서 학생들 첼로도 가르치고 연주도 했지요. 그것을 계기로 Taiwan Provincial Orchestra에 수석주자로 초청 받았어요. 그리고 Chinese Cultral College에서도 첼로 교수를 부탁하는 초청을 받았지요. 거기서 1973년까지 활동했습니다.

<그럼 대만성 국립교향악단과의 협연에 대해 들어 볼까요?>
대만에 체류한 1970년에서 1973년 사이에 여러 차례 협연했어요. 대만에서 처음 연주한 곡은 Saint-Saens의 Cello Concerto였고, Taipei와 대만의 여러 도시를 오케스트라와 함께 순회공연을 다녔습니다. 1971년 Edouard Lalo Cello Concerto를 협연했어요. 장소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대만에서의 마지막 연주는1972년 5월10일에 동생 이방희(Violin, 음대 67)와 C.A.F.C.A. Center, Taipei에서 였습니다. 곡목은 Haydn Concerto in D major, Op.101과 Beethoven Triple Concerto in C major op.56 for Piano, Cello, Violin이었습니다.

   
1972년 동생 이방희와

 <미국 오시게 된 경위를 듣고 싶습니다.>
항상 꿈은 음악공부를 외국에서 계속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1973년에 미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다니신 학교와 연주활동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요.>
1973년에 Honolulu 심포니 오케스트라에 들어 갔어요. 1974년에는 뉴욕 Mannes 음악대학(Post Graduate Diploma)에 입학하여 1978년에 졸업했습니다. 첼로는 Claus Adam 교수에게서 사사(1974~78)했습니다. 졸업 후 Downey Symphony Orchestra, Burbank Symphony Orchestra, Santa Cecilia Orchestra 등에서 활동했습니다.

<6.25 전, 부친의 젊은 시절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아버지는 목사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어요. 그 당시 교회에 피아노가 있었는데, 아버지는 교회 피아노 덕분에, 피아노를 늦은 나이인 16세 때에 시작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후 일본으로 유학가서 ‘쿠니다지’라는 일본 동경에 있는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하셨고, 한국으로 돌아간 후에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셨습니다. 지금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매일 아침 피아노를 치시던 아버지의 넓은 등 뿐입니다. 육이오 사변이 나고 나는 아버지와 이별하게 되었고 그 이별이 마지막이 되었어요.

<그때 이방은 선배님은 아주 어린 시절이었겠네요.>
제가 1944년 생이니까 6살이었어요. 
 
<부친이 월북하시게 된 경위를 들어 볼까요?>
전쟁 때 서울이 북한에 점령당했을 당시 교향악단이 생겨서 많은 음악가들이 조인해서 활동했고 아버지도 단원이었어요. 연합군이 들어와서 서울 탈환할 때 많은 인재들을 데리고 북으로 후퇴했다고 하더군요.

<부친 생존시 북한 대학에서 강의하셨다고 들었어요.>
평양 음악 무용대학 피아노과 교수로 재직하셨어요. 어린아이부터 대학생까지 다니는 음악과 무용을 가르치는 대학교지요.

<언제 사망하셨습니까?>
북한의 동생들 통해서 들었는데, 1983년에 병환으로 사망하셨다고 합니다.

<이제 이방은 선배님 북한에서의 연주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1990 가을, 범민족통일음악회에 초청 받아 남가주 대표로 참가했고, 그 곳에서 처음으로 동생들을 만났습니다.

   
1990년 처음 만난 동생들과.

피아니스트인 남동생 리민섭과 함께 평양에서 연주를 했어요. ‘노을 비낀 바닷가’라는 서정적인 곡을 처음으로 연주했습니다. 그 이후 1991년 4월 봄, 예술축전에 참가해서 동생 리민섭과 함께 연주를 계속했는데, 2001년까지 모두 10번 참가했습니다.

   
1990년 동생 리민섭과 협연.

<평양 국립교향악단과 협연은 몇 차례 하셨나요?>
1995년 4월17일에 평양 만수대극장에서 Lalo Concerto in D minor를 협연했습니다. 그 후 1997년 4월20일에 모란봉 예술극장에서 Dvorak Concerto in B minor op.104를 협연했어요. 또 1998년 4월10일에는 모란봉 예술극장에서 Tchaikovsky Rococo Variation op. 33을 협연했지요. 그 외에 날짜가 기억 안 나는데, Saint-Saens Concerto A minor Op. 33과 Gabriel Faure 작곡 Elergy, Op.24 등도 협연했습니다.

<지휘자는 누구였는지요?>
협연 당시 평양 국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김병화씨입니다.

<동생들 만났을 때의 소감은 어떠셨나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지도 몰랐던 동생들을 처음 만나면, 어색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동생들을 보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마치 가슴 속에 차곡차곡 쌓여 있던 얼음이 녹아내리듯 눈물이 한없이 흘러 내렸습니다. 남동생은 아버지처럼 피아니스트이기에, 우리는 같이 연습도 하고 연주도 하면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어요. 동생들을 통해서, 내가 알 수 없었던 아버지의 삶을 조금은 느낄 수 있었고 그 분이 피아노 교수하시던 교수실도 들어가 창문 밖도 내다볼 수 있었고, 항상 다니시던 거리도 걸었습니다. 통일을 염원하는 우리 민족이 모인 "범민족통일음악회"에서 우리 남매가 함께 마음을 모아 연주할 수 있었다는 것은 나에게는 한풀이 같은 것이었습니다.

<음악은 이방은 선배님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비록 첼로를 늦게 시작했지만, 나에게 음악은 마치 당연히 내가 해야 할, 나의 삶의 목적이라고 나는 믿었습니다. 그 맹목적인 믿음이,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로 부터 물려받은 음악에 대한 열정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매일 같이 아침에 일어나시면 아버지는 피아노를 점심때까지 치셨지요. “점심 잡수세요"하고 조심스럽게 아버지 등을 두드리던 생각이 지금도 새삼스러워요. 그렇게 열심으로 피아노에 매달리셨으니 늦게 시작했음에도 우리나라에서는 그 시대 제일가는 피아니스트라는 칭송을 들으실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에 대한 그 칭송은 아버지없이 자라나던 나에게 한없는 위안이였고 사랑이었어요. 전쟁나기 전 아마도 내가 3살 쯤 됐을 그 시기에 아버지는 서울교향관현악단과 여러 차례 협연을 하셨습니다. Edward Grieg Concerto, Beethoven Concerto No 3, Tchaikovsky Concerto 등이지요.
지금도 가슴 아프고 생생한 기억은, 아버지에게 내가 무대 위로 뛰어가서 드린 꽃다발의 국화꽃 향기입니다. 지금도 내가 연주 후 꽃다발을 받으면 가슴이 뭉클해지곤 해요. 음악은 내가 받을 수 있는 신의 은총이고 아버지의 숨소리이며 나에게는 한없는 영광입니다.
1991년11월2일, 연세대학교 백주년 기념관에서 '소나타의 밤'을 사촌언니 이방숙 교수와 함께 연주했습니다. 그 이후 햇수는 기억을 못하지만 금호아트홀에서도 이방숙 교수와 소나타 연주회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1992년 남편이 심장마비로 돌연히 사망했습니다. 큰 딸이 14살, 아들이 9살이었어요. 여러 면에서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나에게 음악의 세계가 없었다면 지탱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어려운 시기에 나는 더 열심히 연주 생활을 했습니다. 1993년에는 한국에서 독주회를 하는 등, 연주생활의 끊임없는 연속이었습니다.

2004년에는 이방숙, 이방희와 함께 피아노 삼중주 콘서트를 금호아트홀에서 했습니다. 음악은 나의 심장을 벅차게 그리고 뜨겁게 해주는 힘이고 , 그 벅찬 가슴을 터놓고 큰 숨을 쉴수 있게 해주는 힘이 연주였습니다. 천재들이 신의 성령을 받아 작곡한 그 많은 아름다운 음악을 세상에 알리는 것은 연주자 들이 반드시 해야 할 목적이 아닐까 나는 생각합니다.

나의 음악회에 오신 어떤 분이 말했어요. “다음에는 더 크고 더 좋은 곳에서 더 많은 청중 앞에서 연주하셔요. 아깝습니다.” 그 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고, 이렇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나에게 있어서 음악이란, 장소나 청중의 숫자를 가리지 않습니다. 음악은 마냥 아름다운 것이며 인간을 승화시키고, 하늘을 훨훨 나르게 한다는 것을...”

또한 이방은 동문은 최근에 그동안 연주한 실황연주 등에서 선곡해서 CD를 만들었는데, 이 음반에는 북한에 있는 피아니스트 동생과 함께 연주한 '노을비낀 바닷가'도 수록되어 있다.
위진록 수필가는 Valley Korea News에 기고한 글에서 “내가 아직 밸리에 살고 있을 때는 그런 여류 첼리스트가 같은 동네에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랑스러웠다. 그 풍요로운 음량과 뛰어난 기교가 자아내는 서정성은 그대로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그 안타까울 만큼 깊은 서정성은 첼리스트 자신의 곡절 많은 인생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1990년 가을 평양에서 열린 ‘민족통일음악회’에서 그 곳에 사는 이복동생인 리민섭과의 듀오를 직접 들은 필자는 그 날의 감동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홍선례 (음대 70, 미주동창회 문화국장, 미주동창회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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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3)
  독재의 길 궁민이라는개돼지 2019-06-24 13:44:01
민족이라는 개념이 결국 독재를 불러오고 온갖 불합리 부조리를 생산..
도대체 왜 꼭 통일을 해야 한다고 그 난리를 떠나?
반대하시는 분들 제발생각 좀 해보세요
추천0 반대0
(77.XXX.XXX.185)
  저의 외삼촌도 월북한 음악인입니다 김문엽 2019-05-23 09:04:58
저의 외삼촌도 월북한 음악인입니다 바이올린을 하셨고 성함은 이계성으로 80년대 일본에 공연 오셔서 객석이란 잡지에서 인터뷰도 하셨습니다. 아마 이방은 선배님 부친과도 잘 아셨겠네요 외삼촌도 이곳에 46년생 딸과 48년생 아들을 남기고 북으로 가셨습니다. 저희 외삼촌에 대한 이야기는 이곳 아크로에 제가 "60년 부른 내 외숙모의 망부가" 란 글로 자세히 남겼습니다.
추천2 반대0
(216.XXX.XXX.18)
  그런 사연이... 편집자 2019-05-31 01:16:24
김문엽님이 2009년(벌써 10년이 흘렀네요) 쓰셨던 '60년 부른 내 외숙모의 망부가' 글은 다음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acropolis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435
추천1 반대0
(172.XXX.XXX.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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