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4 월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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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걷는다... 버려야 할 때를 위해
[오달 에세이] 절친과 다시 걸은 56년 고향길
2017년 11월 15일 (수) 14:05:44 김지영 기자 acroedito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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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걷는다.

오십 육년 전에 걷던 길을 간다. 추석 다음 날.

출발. 아침 9시 사십분. 삼바실, 맨 꼭대기 집. 삼바실은 내가 태어난 동네 이름이다. 삼대가 많아서 삼바실. 일제시대 행정 구역을 조정한 답시고 “전평(田坪)”이라는 뜻 없는 이름을 붙여서 전평리가 되었다. 그 동네 맨 꼭대기 집은 작은 집, 나의 작은 아버님께서 사시던 집, 이제는 사촌 동생이 산다. 내가 태어난 집터가 지금은 그 집 뒷마당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두 번째로 친한 친구 최 교수와 나. 최 교수의 마지막 직함은 총장이지만, 발음상 교수가 더 듣기 좋아 최 교수라 부른다. 그는 나와 초등학교 같은 학년, 같은 반, 이제 60년 지기 친구다.

우리는 초등학교 5학년 때 걸었던 길을 다시 걷는다. 석송 초등학교 – 삼바실 – 달월 고개 – 달월 – 질월 고개 – 무성산 – 월가리 – 명가울 – 마곡사. 11마일 대략 18킬로 거리. 56년 전 하룻밤 자고 오는 수학여행을 같던 그 길이다. 그 때 마구 들떠서 신나게 출발했지만, 달월 고개, 질월 고개, 무성산 길에 녹초가 되었던 멀고 험한 산길의 기억이 선명하다.

출발 10분 후, 달월 고개 밑. 그런데 달월 고개는 이제 없다. 그 자리에 우리 6대조부터 작은 아버지까지 누워 계신 가족묘가 있다. 고개 넘어 달월에 자동차 길이 열린 다음부터는 이 고개를 넘나드는 사람들이 없어졌다. 그래도 우리는 달월 고개를 넘는다. 길이 아닌 길, 옛 고개 길을 흔적을 따라 길을 만들며 비장하게 올라간다. 그런데 허망하다. 고개 밑에서 옛 고개 마루까지 겨우 15분. 초딩 5년 때 좀 보태면 에베레스트 같던 그 고개가 한 다름에 올라오는 작은 등성이일 뿐. 우리가 그동안 많이 컸구나.

밤나무 밭을 지나 달월 마을로 들어선다. 다랑이 논들이 황금빛으로 변할 준비를 하고 있다. 옛날 논두렁 길들이 자동차가 다닐 만한 포장도로로 변했다. 사륜 오토바이를 타고 오던 농부가 말을 한다. “글리 가면 안되유. 농로유. 절리 가야 되유.” 우리 초등 같은 학년 100여명 중 이 동네 아이들이 7명 있었다. 그 중 네 명은 초등학교 졸업하고 한 번도 본적이 없네. 달월 애들은 학교까지 애들 걸음으로 족히 한 시간을 걸어왔을 터이다.

달월, 이 좋은 동네가 쌍달리(雙達里)라는 엉뚱한 행정 이름을 갖게 되었다. 달월의 “달”도 달이요, “월”도 달이라서 달이 두개라고 “쌍달”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필자가 국어 학자가 아니라 단언을 할 수 없지만, “달”은 “뜰” 또는 “장소”를 나타내는 우리말이고, “월”은 “골”에서 “ㄱ”이 떨어져 나가서 생긴 말이다. 이런 식으로 사라진 우리 말 고운 동네 이름이 뜻 없는 한자어로 바뀐 곳이 얼마나 많을까?

   
달월 논 길. 달월은 아직도 다랑이 논. 황금빛으로 변하는 벼 사이로 사람이 간다.

달월 마을을 지나 질월 고개로 올라간다. 여기는 좀 쎄다. 무성산 8부 능선까지 약 4킬로. 자동차가 다닐 만큼 넓혀 놓았지만 경사가 만만치 않다. 그래도 산세에 따라 갈짓자로 흐르는 듯 이어진 이 길이 느릿한 충청도 마음이다. 고향 길, 기억의 길, 위로의 길, 치유의 길, 안정의 길이다. 길가에 만발한 쑥부쟁이 하얀 꽃, 호랑나비 한 마리가 꽃향기를 즐기고 있다. 우리도 나비를 따라 산의 향기를 맡는다.

“무성산 장엄히 뻗치어 있고…” 우리가 다니던 석송국민학교 교가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 노래 속 무성산 이다. 해발 614미터, 공주시 정안면, 우성면, 사곡면에서는 제일 높은 봉우리이다. 홍길동이 성을 쌓았다는 전설과 성터까지 있는 산이다. 지금은 8부 능선을 따라 일주 도로가 생겼다.

“나의 살던 고향 꽃 피는 산골” 삼바실에서 보면 막상 무성산이 보이지 않는다. 숫돌봉이 무성산 앞에 있기 때문이다. 홍길동이 칼을 갈았던 자리라서 숫돌봉이다. 질월 고개를 올라 무성산 자락에서 보니 숫돌봉은 두 개의 봉우리이다. 무성산에서 동쪽으로 내려 뻗은 산자락에 두 개의 봉우리가 나란히 있다. 그 봉우리 남쪽 골짜기에 평정리, 가운데 고랑에 삼바실, 북쪽 계곡이 달월 마을이다.

늦은목이 살던 이현구 생각이 난다. 늦은메기(우리는 그렇게 불렀다), 평정 골짜기의 가장 위쪽, 무성산 자락에서 가장 높은 동네다. 하도 산골이라서 해가 늦게 뜬다고 “늦은목이.”  현구는 우리 학년 아이들 중에 가장 멀리서 다니던 친구다. 고갯길을 세 개 넘어 학교까지 장장 10킬로. 그는 그래도 학교에 다녔다. 초등학교 어린이 걸음으로는 세 시간쯤 걸렸을 게다. 매일 첫 시간이 끝나고서야 학교에 왔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4년 후 동창회를 한다고 주최 측이었던 최 교수와 내가 늦은목이까지 걸어서 이 친구를 찾아간 적이 있다. 육년 동안 학교에 그 멀고 험한 산길 돌길을 걸어 다녔던 그 친구를 다시 보게 되었다. 무성산 중턱에서 보니 늦은목이 가는 길이 지척이다. 현구는 아직 거기 사는지?

마곡사 가는 길은 무성산 일주 도로까지 올라가서 반대 쪽 월가리로 내려간다. 질월 고개 넘어 올라오는 길과 일주 도로가 만나는 곳에 원두막 모양의 쉼터가 있다. 그 쉼터에서 공주 파리바께뜨에서 사온 샌드위치를 먹는다. 56년 전 이 고개를 넘을 때는 우리는 쌀을 한 되박 차고 왔다. “차고 왔다”라는 말은 보자기에 쌀 주머니를 둘둘 말아서 긴 끈처럼 만들고, 그 끈을 어깨 한 쪽으로 넘겨 가슴 부분에서 끈 양쪽 끝을 붙잡아 매고 왔다라는 뜻이다. 당시 책보를 메던 방식이다. 그때는 돈 대신 하룻밤 잘 비용으로 쌀을 가져왔다. 참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파리” “바께뜨” “샌드위치” -- 그 때로 돌아간다면,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였을 터이다. 요새는 “책보” 이런 말을 하면 별나라 말처럼 들리겠지. 그 당시는 99% 책보에다 책을 싸가지고 다녔다. 1%의 예외는 최 교수였다. 공주 읍내에서 2학년 때 전학 오면서 양 어깨에 메는 가방을 메고 왔다. 그래서 그는 한동안 놀림거리가 되었다.

월가리에서 마곡사까지는 포장된 차도를 따라 간다. 시골길이라서 이정표조차 없다. 길가에서 들꽤를 베고 있던 아저씨에게 묻는다.

“마곡사까지 얼마나 걸려유?”

“쪼꼼만 가면 되유.” 아저씨가 대답한다.

“쪼꼼이 얼마유?”
“젊은 사람 걸음으로는 한 반 시간 걸릴거유.”

최 교수가 나에게 말한다. “한 시간이 넘게 걸린다는 말이군.” 정말로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충청도 맘도 말을 닮아 느릿하다.

저만치 마곡사 주차장이 보인다. 지루한 포장도로를 버리고 논둑 지름길로 들어선다. 두발을 일직선으로 걸어야 갈만 한 길이다. 반쯤 걸었는데 발밑으로 뭔가 스르르 지나간다. 비~얌이다. 한자 반은 되어 보인다. 캘리포니아에서 방울뱀을 많이 본 터라 놀랍지도 않다. 오히려 반갑다. 어릴 때 많이 보던 물뱀. 요즈음 논에 농약을 덜 써서 깨구락지(개구리)가 많아지고, 따라서 비~얌도 많아 졌다고.

절로 들어가기 전에 좁쌀 막걸리 한 되, 밤 막걸리 한 되, 더덕구이 정식 2인분으로 우리 자신에게 공양을 먼저하고, 얼굴이 벌개져서 마곡사로 간다. 입구 매표소에서 표를 사란다.

“우리 65세 넘었유.”

“그류, 그냥 들어가유.”

고참 시민(senior citizen) 대접이 괜찮다. 뭐 “쯩”을 보 잔 말도 없다. 약간 서운.

일주문을 지나서, 개울을 건너, 해탈문을 지나 천왕문에 다다른다. 마곡사 천왕문은 바닥을 잘 보아야 한다. 네 분 천왕이 사람을 밟고 있다. 밟힌 사람들은 눈이 툭 튀어 나왔다. 그리고… 좀 말하기가 어려운 상황. 외할머니가 어릴 적에 하신 말씀으로 대신 한다. “그 놈들은 살아생전 술장사를 하면서 술에 물을 많이 타 팔아먹어서 벌을 받는 겨. 천왕님이 배때기를 밟아서 창새기가 삐져나온 겨.”

   
마곡사 천왕문. 일주문을 지나 해탈문을 거쳐 천왕문에 이른다. 사천왕 발에 밟힌 나쁜 놈들. 이생에서 술장사를 하면서 술에 물을 타서 팔았다고. 술장사가 문제가 아니라 소비자를 속인 죄를 받고 있다.

대적광전 비로자나 부처님이 동쪽을 향해 앉아 계시다. 정면 어간문 앞에 서양란 하나 소담하게 피어 있다. 어둠 속에 부처님은 잘 왔다고 한 찰나의 미소를 짓는다. 그렇게 우리 기억 여행은 끝을 맺는다. 뿌듯 덤덤하다. 오래 묵은 숙제 하나를 한 기분. 기억 속을 걸어서 현실 속으로 돌아온다.

   
마곡사 대적광전 앞. 서양란이 있는 자리는 어간. 큰 절집 앞문이다. 신도들은 옆에 있는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예의. 뒤 쪽에 비로자나 부처님이 동쪽을 향해 앉아 계신다.

다섯 시간 동안 걸으며 무슨 이야기를 했느냐고? 대략 통계를 내보면 이렇다. 여자 이야기 30%, 북한 이야기 20%, 카즈오 이시구로 이야기 10%, 루미 이야기 10%, 옛날 친구들 이야기 10%, 옛 선생님 이야기 10%, 헛소리 10%. 북한 이야기는 주로 최 교수가 했다. 그는 북한 전문가이다. 나는 이시구로와 루미 이야기를 주로 했다. 여자 이야기, 옛날 이야기, 헛소리는 둘이 같이 했다.

기억의 길을 다시 걷는 것은 그 기억마저도 버려야 할 때가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가는 기억이 외롭지 않도록 그 기억과 오늘 하루 동행을 한다. “녹는 눈처럼 되어보자. 눈 녹은 물이 눈을 씻어서 눈마저 사라지게 한다. (Be like melting snow. Wash yourself of yourself)” -- 루미의 시를 읊어본다. 아직은 온갖 아쉬움과 바램으로 범벅이 된 눈이 무성산만큼 쌓여 있네. 이제 그 눈 산을 허물어 그 녹는 물에 스스로를 깨끗이 씻어내어 마지막 정화수 한 방울로 흘려보내야지.

다시 56년이 지나면 우리는 바람이 되어 아는 듯 모르는 듯 무성산 고개를 넘어 가리라. 한가위 보름달 휘영청 밝은 밤이면 더욱 좋고.

다음 날 아침 부여 무량사에서 이런 글을 본다.

“빈 배 가득 달빛만 싣고 돌아간다. (滿船空載月明歸)”

이번 여행에서 만난 가장 유쾌한 헛소리.

   
부여 무량사 극낙전 주련. 주련은 절의 중요한 건물 기둥에 쓰여 있는 글귀. 무량사는 아미타 부처님이 주불이시다. 아미타라는 산스크리스트어는 무량수(infinite life) 또는 무량광 (infinite light)이란 뜻이다.

   
육십년 지기 최 교수와 필자.

오달 김지영 (영어교육 69, 변호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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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2)
  아직 청춘이십니다. 변변 2017-11-15 16:37:43
여자 이야기가 두분 대화의 30% 씩이나 차지하다니 아직도 두분은 청춘이십니다.
추천0 반대0
(73.XXX.XXX.89)
  말이 많아 지는 건... 오달 2017-11-27 18:49:58
한 물 갔다는 증거이지요.
청춘은 말보다 행동.
추천0 반대0
(216.XXX.XXX.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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