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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을 추듯 신나게 강의하시던 큰 선비
[오달의 살며 살아가며] 피천득 선생님을 추억하며
2017년 06월 17일 (토) 12:40:05 김지영 기자 acroedito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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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아(琴兒) 피천득 선생. (출처-나무위키)

피천득 선생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자랑스럽다. 1971년 대학 3학년 때 선생님께 영시 강의를 들었다. 어느 시인의 어떤 시를 배웠는지는 까마득하다. 그러나 춤을 추듯 신나게 강의하시던 피 선생님의 모습은 생생하다.

'수필은 청자 연적이다'로 시작하는 '수필'이라는 제목의 선생님 수필이 있다. 그 글 말미에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이란 말이 쏙 마음에 든다. 덕수궁 박물관에 있던 청자연적, 거기에 새겨진 질서 정연한 꽃잎, 그 속에 하나가 그 질서를 깨고 약간 꼬부라져 있다. 그러한 균형 속의 파격이 수필이라는 이야기이다.

'파격'이라는 말은 인생에도 해당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심한 삶을 산다. 그들의 인생에도 질서를 깨는 일탈이 있을 수밖에 없다.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이기를 바라지만 때로는 큰 틀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 삶의 품격이 높아지는 발전의 기회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있는 것조차 다 잃어버리는 퇴락의 길이 되기도 한다.

선생님의 '인연'이라는 수필도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다. "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이 글을 읽으면 누구나 한 사람쯤 떠오르는 얼굴이 있을 것이다.

피 선생님께서 돌아가신 지 10년이 지났다. 지난 5월19일 서울 문학의 집에서 열린 '그립습니다. 피천득 시인-수필가'라는 모임에 참석했다. '피천득 평전'을 쓴 대학 동기 정정호 중앙대 명예교수가 시인이며 수필가로서의 선생님 인생이야기를 했고, 나는 선생님께서 가르친 마지막 제자들 중의 한 명으로 선생님을 회고했다.

"선생님 과목에서 좀 과분한 학점을 받았다. B플러스인지 A마이너스인지. 그 후에 선생님을 뵈었더니 저를 빤히 보시면서 '김지영이 여자인 줄 알고 끗수를 잘 줬더니 남자구나'라고 말씀하셨다. 선생님께서 이름은 기억하지만, 얼굴은 아직 선생님 머리 속에 등록되지 못한 학생이었던 듯하다." 이런 일화를 소개했다.

선생님 강의를 들은 제자들은 행복한 인연을 가졌다. 그 제자들 중에는 영문학자가 된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영시를 다시 생각할 틈이 없는 삶을 산다. 그런 사람들은 피천득 선생님을 지식의 전달자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작은 거인, 큰 선비, 착하고, 행복한 사람으로 마음 속에 남는다.

'산호와 진주'라는 책을 가지고 있다. 피 선생님의 수필과 시 모음집으로 1969년에 출간되었다. 이제는 낡아서 장정도 떨어져 나갔지만 가끔씩 꺼내 본다. 그 동안 한국에서 미국으로 미국에서 한국으로 다시 미국으로 여러 번 이사를 하며 용케 간직했다.

"깊고 깊은 바다속에/ 너의 아빠 누워 있네/ 그의 뼈는 산호 되고/ 눈은 진주 되었네."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Tempest)에 나오는 말이다. 이 구절에서 피 선생님을 책 제목을 따오셨다. 선생님의 꿈은 산호와 진주가 되는 것이었으리라.

그 꿈은 피 선생님의 독자들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오달 김지영(영어교육 69, 변호사, 수필가) *LA 중앙일보 칼럼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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