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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들의 다리’에선 그날 무슨 일이…
[박변의 영화 내 멋대로 보기 30] Bridge of Spies
2017년 02월 23일 (목) 13:10:47 박준창 기자 acroedito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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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Steven Spielberg 감독을 좋아한다. 그의 영화는 오락적인 재미가 너무나 좋다. 적당한 한국말이 생각이 안 나는데, 영어로 얘기하자면 참으로 entertaining 하다. 30여 년 전 Indiana Jones 시리즈의 첫 번째 영화인 Raiders of the Lost Ark를 보고 나서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그때의 감흥을 아직도 난 잊지 못한다. 숨 한번 돌릴 사이 없는 액션의 연속. 어쩌면 그렇게 쉴 새 없이 액션으로 엮어 놓았는지. 그런가 하면 Jaws, E.T., Jurassic Park은 어떠한가? 한결같이 재미있는 영화들이다. 오락 영화의 황제라고나 할까?

그런 오락 영화의 대가가 얼마 전부터 그가 공언한대로 정말 그가 만들고 싶어 하는 영화들을 만들고 있다. Schindler’s List를 비롯해서 Amistad, 그리고 최근의 Bridge of Spies에 이르기까지. 이 영화는 뭐라고 콕 집어 얘기하기 힘든데 은근히 재미있다. 은근히 우려 나오는 연한 녹차 같은 맛이라고나 할까?

   
영화 포스터. 2015년 개봉. 2시간이 넘는 긴 영화이지만 흥행에도 성공했고 비평가들에게서도 좋은 반응을 받았다.

배경은 1957년 뉴욕. 미국은 소련 영공에서 정보를 수집할 CIA 정찰기 파일럿들을 훈련시키고, 독일에서는 베를린 장벽이 쌓이는 미-소 냉전시대가 한창일 무렵. Rudolph Abel 이란 자가 소련 측 간첩 혐의로 체포된다. 미 정부는 Abel을 이미 감옥에 보낼 준비가 되어 있지만, 공정한 재판을 부여한다는 점을 과시하기 위해 그를 변호할 변호사를 찾고, 주인공 James Donovan (Tom Hanks 분)이 그를 변호하게 된다. Donovan은 예전에는 Nuremberg 2차 대전 전범 재판에도 관여했지만 지금은 보험회사를 전문으로 변호하는 민사 변호사. 별로 내키지 않아하는 그를 그의 법률회사 파트너들이 강권, 결국 그가 사건을 맡게 된다. 일단 사건을 맡게 되자 그는 열심으로 변호를 한다. 하지만 이미 유죄 마음이 굳어진 판사는 냉정하기만 하고, Donovan과 그의 가족들에게까지 군중의 협박이 가해진다. 미국의 적을 어떻게 변호할 수 있냐면서.

그러나 그가 만나 본 간첩 Abel은 의외로 악독하거나, 냉정하게 보이는 그런 자가 아니다. 언제 죽어도 준비가 되어 있는, 생을 달관한 둣한 사람. 그림을 그리고 사형마저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차분한 중늙은이다(체포 당시 그의 실제 나이 54세). 그는 CIA 의 전향 권유도 뿌리쳤으며, 전기의자로 갈 수 있다고 하는 변호사의 말에도 차분하고 담담하다. “별로 놀라와하지도 않는군요”라는 Donovan의 말에도 그냥 그는 이렇게 말한다. “Would it help? (그게 도움이 되나요?)” 엄청나게 cool한 사람이다.

재판 결과는 보나 마나 유죄. 그러나 사형을 면하게 노력하겠다는 Donovan 변호사의 말에 그는 어릴 때의 기억을 얘기해 준다. 어릴 때 죽이려고 때리는데도, 넘어지면 일어서고 넘어지면 일어서는 사람을 보았다면 그렇게 자꾸 일어서니 때리는 자들이 그를 살려 주었다면서. 그를 “스토이키 무지크”라고 불렀는데 그 뜻은 러시아어로 standing man이라고. Donovan 변호사가 그에게 이 standing man을 떠올리게 한다면서 그는 간접적으로 변호사를 칭찬을 한다.

이 말을 들은 Donovan은 형량 선고를 앞두고 판사의 집으로 찾아가 판사를 설득한다. Abel을 살려 두는 것이 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 소련에서도 미국 간첩을 잡을 텐데 후일의 간첩 교환에 쓰자. 상호 간첩의 체포와 교환은 충분히 일어 날 수 있는 일이다. 자신의 전문 분야가 보험인데, 살려 두는 것이 미국의 보험이다. 또한 인도적인 면에서 볼 때도, 그는 자신의 조국을 위해 일을 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꼭 죽여야 하느냐고. 이렇게 해서 설득을 당한 판사는 사형 대신 30년 형을 언도한다. (사족을 하나 달자면 이런 식의 판사와의 만남은 변호사 윤리 위반이다. 변호사는 상대방 동의나 참석 없이 판사를 접촉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이 장면은 영화 장면이고 이런 내용의 변론을 Donovan 변호사는 실제로는 법정에서 했다고 한다).

한편 장벽이 쌓이고 있던 베를린에서 미국의 한 유학생이 동독 경찰에게 구금이 된다. 그런 후 Abel의 아내에게서 Donovan 변호사 앞으로 동독으로부터 편지가 한 통이 배달이 된다.  Donovan 변호사의 도움에 감사한다는 그런 편지인데 Abel에게 보여 주었더니 아내의 편지가 아니란다. 전혀 비슷하지도 않은.

그런데 Francis Gary Powers라는 이름의 파일럿이 조종하던 CIA 정찰기가 소련에서 격추가 되고 파일럿은 CIA에서 훈련을 받았지만, 자살을 못하고 체포가 된다. 그는 형식적으로 치러진 소련 법정의 재판에서 유죄를 언도 받는다.

이쯤이면 독자들이 짐작할 것이다. Donovan 변호사는 CIA의 부름을 받는다. Abel과Powers를 맞교환하는 협상을 해달라는 것이다. Abel은 Abel대로 1급 정보들을 가지고 있고 아직 미국 측에 건네 준 정보가 없으며, Powers는 Powers대로 1급 정보들을 가지고 있으니 서로 정보가 주어지기 전에 빨리 맞교환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련 측에서는 공식적으로 Abel을 소련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고, 미국은 동독을 합법적인 정부로 인정 않고 있으니 정부 대 정부 협상은 없다는 것이다. Donovan 변호사는 누구의 대표도 아니며 혹시 어떤 불상사가 생기더라도 미국 정부는 일체의 관여를 부인할 것이라는.

Donovan 변호사에게는 생사가 걸린 중대한 문제. 하지만 그는 협상 역을 맡기로 한다. 아내에게는 영국 출장이 있다고 속이고. 베를린에 도착한 Donovan 변호사. 하지만 누구를 접촉해야 할 지, 어떻게 해야 할 지도 모른다. 아내라고 사칭하는 편지를 받았을 때 Abel이 한 말이 있다. What’s the next move when you don’t know what the game is(게임이 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다음 수를 놓겠는가)? 딱 그런 상황.

어쨌거나 그는 KGB 책임자를 만나고 또한 동독에 있는 Abel의 아내와 딸들을 만난다. 하지만 그들은 물론 실제 Abel의 가족이 아니다. 그러면서 Abel 가족의 변호사라고 하는 Vogel이란 사람을 만난다. 그는 동독 정부의 대리인이란다. 그러면서 그가 원하는 것은 미국 유학생을 풀어 줄 테니 동독을 합법적인 정부로 인정해 달라는 것. 그러나 CIA는 이 유학생에는 관심이 없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Powers가 정보를 주기 전 빨리 그를 받아 오는 것. 소련 또한 동독이 원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나 Donovan 변호사는 결심한다. 2대1 맞교환을 하기로. 그리고 강수를 던진다. 2대1 교환이 아니면 없던 일로 하자고.

최후통첩을 던져 놓고 전화를 기다리는데 고뇌와 고통의 시간이다. 마침내 전화벨이 울리고 2대 1 교환에 동의한다는 전갈을 받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은 팽팽히 계속되는데… 포츠담과 베를린을 잇는 Glienicke 다리 위에서의 맞교환까지 가는 마지막 부분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 하는 영화를 보면서 직접 즐기시기를 바란다.

   
교환이 끝난 후에도 Donovan 변호사는 자리를 뜰 수가 없다. 과연 Abel은 소련 귀환 후에도 무사할까 하는 착잡한 심정에 사로잡혀서.

Jason Bourne 같은 액션은 없다. 총 한 번 쏘지 않는다. 살인의 장면도 없다. 쫓고 쫓기는 장면도 없다. 그렇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더 현실감이 있고 진지하게 다가온다. 그러면서 관객들에게 생각할 것들을 던져 준다. 바로 Donovan 변호사도 가진 걱정인데, Abel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Powers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하는 것이다. 미국은 미국대로 Powers가 이중간첩이 되지 않았을까 의심하고, 소련은 소련대로 같은 의심을 가지고 있고. 더더구나 소련이 Abel을 죽여 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말이다. 나름대로 조국을 위한 애국 행위를 한 어떻게 보면 영웅인 두 인간. 가혹한 냉전 체제 속에서, 이렇게 애국 행위를 하고서도 두 사람은 목숨마저도 그저 조국의 처분에 맡겨야 하는 상황. 체제가 무엇이길래, 이념이 무엇이길래 인간은 이렇게 제 할 일을 다 하고도 그저 정부의 폐기품이 되어야만 하나? 한국에 비하면 그래도 미국이나 소련은 낫다. 같은 언어, 같은 민족의 남한과 북한은 다른 이념과 체제 때문에 그 얼마나 많은 사람의 희생이 있었던가? 서로가 서로를 죽였던 끔찍한 전쟁을 치렀음에도, 그 희생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지 않은가?
 
다행히 Abel과 Powers 두 사람은 본국에서 이중간첩이 아니고 기밀을 넘겨주지도 않았음을 인정받아 영웅으로 대접받고 불행한 종말은 없었다 한다. (그러나 Abel은 비공식적으로는 큰 환영은 못 받았다고 하고, Powers는 업무 수행 중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하긴 했지만). 영화는 일부 장면만 빼고 실제 사건을 영화화 한 것이다. Donovan 변호사는 이후에도 쿠바 사태 때 피델 카스트로와 협상, 1만 명을 쿠바로부터 빼내어 오는 수완을 또 한 번 발휘했고 1970년에 사망했다. Abel은 이듬해 1971년에 사망했고.

박준창 (영문 79,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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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4)
  변호사라서... 크산티페 2017-05-22 22:51:38
글은 잘쓰네.
말만 잘해가지고스리...
추천0 반대0
(24.XXX.XXX.143)
  덕분에.. 김충진 2017-03-15 08:06:14
좋은 영화 잘 보았습니다. 냉전 도 지나고 보면 추억거리 밖에 않되고 카스트로도 이미 죽었는데 자그만 한 반도는 언제나 제 모습을 찿을 지 ...
추천0 반대0
(73.XXX.XXX.250)
  갑자기 오달 2017-02-23 13:21:57
이 영화가 보고 싶어지네.
보고 나서 박변의 글 솜씨에 속았다는 말이 나올까봐
걱정이 되기는 한데...
추천0 반대0
(104.XXX.XXX.245)
  오랜만의 박변 영화 칼럼 김종하 2017-02-22 20:18:55
진중한 영화를 잼있게 써주셨네요... 감사!
추천0 반대0
(12.XXX.XXX.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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