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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시계와 기억의 매듭
새해에는 하루하루가 새롭고 에너지 넘치기를...
2017년 01월 01일 (일) 08:49:59 이상희 기자 acroedito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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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내미가 어렸을 때 소꿉놀이를 하곤 했다. 딸내미는 “엄마”를 자청하고, 나보고는 “아기”를 하라고 했다. 그러면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계속 피곤하던 나는 아기 노릇을 하면서 먹고 자고 싶었으니까. “아기가 잘 시간이야. 엄마랑 같이 잘래!” 나는 의기양양하게 말하고 딸내미와 같이 누웠다. 내가 자려고 눈을 감자마자 딸내미는 환호하면서 소리 지른다. “일어날 시간!!”

어린 딸이 생각하기에 잠을 잔다는 것은 눈을 감은 다음에 곧바로 눈을 뜨는 일이다. 눈을 감은 다음부터 깨어날 때까지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웃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어른인 나도 마찬가지이다. 잠에서 깨어나 시계를 들여다 보아야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있다. 내가 감지하는 시간은 내가 주변의 정보를 수집해서 내면화시켰을 뿐이다. 나의 몸 안에 지구의 자전과 싱크로가 되는 시계는 없다.

벌써 연말이라고 놀라고 억울해 하는 소리가 주변에서 많이 들린다. 나이가 들면서 시간이 점점 빨리 가는 것 같다는 얘기도 들린다. 시간이 가는 속도가 5살 때에는 시속 5마일이지만 50살 때에는 시속 50마일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지구가 도는 속도가, 도는 지구가 태양을 도는 속도가 그렇게 달라진 것은 아닐 테다. 그렇게 느낄 뿐이다. 그러면 나이가 들면 왜 시간이 더 빠르게 가는 것처럼 느껴질까? 같은 1년이라도 살아온 세월에 비해 차지하는 비율이 다르기 때문에 다르게 느낀다는 주장도 있다. 10살짜리에게 1년은 생애의 10%를 차지하는 시간이지만, 50살짜리에게 1년은 생애의 2% 밖에 차지하지 않는다. 대수롭지 않은 시간인 것이다.

그럴듯하지만 별로 설득력이 있는 설명은 아니다. 어차피 우리는 절대적 시간을 감지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24시간도, 1년도 감지할 수 있는 시계가 없는 우리가 어떻게 10년 대비 1년, 50년 대비 1년을 비율대로 감지하겠는가.

그보다는 우리의 몸이 시간을 느끼는 방법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다. 우리의 몸이 시간을 느끼는 방법은 뇌에서 기억을 저장해 두는 방법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우리가 느끼는 시간은 초 단위, 분 단위, 혹은 년 단위로 지구의 움직임과 연결되어있지 않다.

우리 안의 시계는 초침 대신에 기억의 매듭으로 시간을 표시한다. 초침이 10번 움직이면 10초가 지나간다. 그런데 기억의 매듭은 대중없다. 매듭이 열 개쯤 만들어지는 시간이 하루가 될 수도 있고, 일 년도 더 지나야 겨우 열 개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기억의 매듭은 살아가면서 두뇌에서 만들어진다. 익숙한 일, 쉬운 일에는 매듭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최소한의 에너지를 써서 오토 크루즈처럼 넘어가면 매듭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매듭은 생소함에서 나온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자극을 받고 그 자극에 대해 신경을 써서 반응을 하면 매듭이 생긴다.

어린이에게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고 기억할 만하다. 그래서 하루에도 기억의 매듭이 많이 만들어진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기억할 만한 일들이 줄어든다. 겨우 열 개의 매듭을 만들려면 일 년도 더 지나야 한다. 그래서 어린이에게 하루의 느낌이 늙은이에게 일 년의 느낌과 비슷해진다.

나이가 들면서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고, 어려운 일도 하지 않게 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어떤 면에서는 그것이 성숙함의 표현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무리한 노력을 하여 자신을 닦달하지 않는 법, 신경 끄고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능력. 어른스러움, 성숙함이다.

“성숙함”이라는 동전에는 뒷면도 있다. 어려움에 부딪히면 그냥 넘어가고 굳이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어려운 사람과 만나면 굳이 맞추려 들지 않고 말 섞지 않고 그냥 넘어간다. 코드가 맞는 사람하고만 만나고 입맛에 맞는 음식만 먹는다. 그렇게 해서 평안하고 무난한 일상을 영위해나간다. 그리고 기억이라는 노끈에는 매듭이 거의 지어지지 않는다. 하루가, 일 년이, 십 년이 언제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른다.

그 반대의 경우 역시 매듭이 지어지지 않는다. 너무 바쁘고, 스트레스가 쌓이면 매듭을 지을 일이 없이 닥친 일을 처리하기 바쁘다. 쉬지 않고 정신없이 일하면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는 경우이다.

기억의 매듭은 아무런 자극이 없이 평온한 상태에서도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2017년에는 하루하루 기억의 매듭을 짓기를, 그 하루가 연이어 일 년이 되기를 바란다.

이상희(고고미술사 85, UC 리버사이드 인류학 교수)   * LA 한국일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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