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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행의 전모를 알았다고 생각한 순간...
[박변의 영화 내멋대로 보기 27] '용의자 X의 헌신'
2015년 11월 30일 (월) 17:23:37 박준창 기자 acroedito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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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프가 재미있다고 권한 일본 영화가 있었는데 기회가 없어 못 보다가 지난 주말 마침내 봤다.  살인사건을 덮으려는 천재 수학자와 이를 밝혀 내려는 천재 물리학자의 두뇌 대결을 그린 영화인데, 곳곳에 복선을 깔아 두고 전개시키면서 반전을 시도한다.   

하나오카 야스코라고 도시락 집을 운영하는 여자가 있다. 전직 호스테스 출신으로, 형사 말을 빌리면 “야리야리하고 섹시한” 35살 미녀 (내 눈엔 별로 미녀 아닌데, 여자 형사가 훨씬 예쁜데).  인간 쓰레기 남편과 이혼을 하고 미사토라는 중학생 딸과 함께 산다.  야스코는 평소 도시락 집을 내는 것이 꿈이어서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며 사는데 어느 날 이 개 같은 전 남편이 야스코를 기어코 찾아내어 집에까지 온다.  할 수 없이 돈을 주며 돌려 보내는데, 이 전 남편 미사토 방문을 함부로 열며, 크면 술집에 내 보내어야 한다고 한다. 이 말에 격분한 미사토가 돌아서는 전 남편 머리를 유리 공으로 내려치고 전 남편은 미사토를 때리기 시작한다.  야스코와 미사코는 함께 전 남편과 싸우다 급기야 전기 담요 줄로 전 남편의 목을 죄어 죽이고 만다.

이 모든 소리를 바로 옆 아파트에 사는 고등학교 수학 교사 이시가미가 듣게 된다.  이시가미는 야스코의 도시락 집에서 매일 도시락을 사 가는 야스코의 충실한 고객이기도 하다. 이시가미는 야스코의 아파트 문을 두드리고 야스코는 바퀴벌레 때문에 딸과 소란을 피웠다며 둘러 댄다.
이시가미: “죽였나요?”
야스코: “예?”
이시가미: “바퀴벌레 말입니다.”
죄송하다며 서둘러 문을 닫는데 이시가미는 가지 않고 있다가 닫힌 문을 사이에 두고 말한다.  “바퀴벌레가 아니죠?”
이 말에 야스코는 문을 열어 주고 이시가미는 야스코의 아파트로 들어 간다.

그리고 장면은 바뀌어 시체가 발견이 된다. 옷은 불에 타 있고 지문은 태워져 있고 얼굴은 둔기로 짓 뭉겨진 채로. 심한 안면 손상으로 치아로도 신원 확인이 불가능할 정도. 살해 시간은 12월 2일 6시에서 10시 사이. 그런데 놀랍게도 쉽게 신원 파악이 된다. 시체는 바로 야스코의 전 남편. 이 친구가 돈이 없어 여관에 묵고 있다가 열쇠를 돌려 주지 않고 사라져 버려 여관 주인이 경찰에 신고를 했던 것.  여관 방안에 남아 있던 모발의 DNA 와 시체 발견 현장에 있던 자전거에 남은 지문이 전 남편 것들과 일치했던 것.

형사들이 바로 야스코의 아파트로 들이 닥친다. 여 형사 우츠미 (우츠미가 야스코보다 시원시원하게 훨씬 더 예쁘다) 는 전기 담요 줄을 슬쩍 보는데 꼬여 있지 않다. 전 남편을 최근 만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야스코는 부정한다.  그리고, 살인이 일어났던 12월 2일 밤에 어디에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딸과 함께 영화를 봤다고 대답한다.  형사들은 나오면서 집에 돌아 오던 이시가미와 맞닥뜨리는데 이시가미는 12월 2일 옆집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고 대답한다.

야스코를 범인으로 지목했던 형사들은 난관에 봉착한다. 야스코의 알리바이는 완벽했던 것.  극장 표도 있고, 극장에서의 증인도 있고. 영화 구경 후 라면 집, 노래방 갔다는데 다 증인이 있었던 것.

그런데 수사가 어려울 때마다 우츠미가 도움을 구하는 천재 물리학자가 있었으니 이 친구가 젊어 보이는데다 인물까지 꽃 미남인 물리학과 교수 유카와. “과학으로 증명 안된 것, 예컨대 사랑 같은 것은 전혀 이해를 못하는” 남자, 우츠미가 은근히 사랑하고 있는데 이를 몰라주어서 우츠미는 약이 오른다. 처음 전혀 이 사건에 관심이 없던 유카와는 용의자가 미녀라는 말에 갑자기 관심을 갖는다. 그리고 이웃이 이시가미라는 말을 듣고서는, 자신은 천재라는 말을 함부로 쓰지 않는데 이시가미야 말로 천재라고 한다.

사건에 흥미를 느낀 유카와는 20여년만에 이시가미를 찾아 온다.  둘은 오랜만에 이시가미 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는데…… 천재가 대학에 남아 교수를 할 줄 알았다는 유카와의 말에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져서 공부를 더 할 수가 없어 교사가 되었다고. 수학 연구는 어디서나 할 수 있다며. 그리고 이시가미는 등산이 취미인데, 유카와가 말한다.

등산은 수학과 비슷하다며, 정상은 하나인데 정상에 오르는 몇 갈래 길 들 중 가장 심플하고 합리적인 길을 찾아 내는 것이라서. 그러면서 유카와는 어려운 수학 문제를 하나 준다. 누군가 증명했는데 맞는지 보라면서. 이시가미는 밤을 새긴 하지만 달랑 6 시간 만에 이를 풀어 낸다.

   
영화의 두 주인공 유카와와 이시가미—창과 방패의 대결이 가히 천재들 답다.

아침에 두 사람은 이시가미가 출근하는 길로 같이 걸어 가며 대화를 하는데 유카와가 넌지시 물어 본다. 아스코와 친하냐고. 그리고 덧붙인다. 미인이지? 그들은 노숙자들이 기거하는 곳을 지나간다. 이시가미가 말한다. 언제나 같은 광경이고, 이 노숙인들은 시계처럼 정확하게 살고 있다고. 사람들은 시계에서 해방되면 더 시계처럼 정확히 산다고. 그러면서 노숙자들이 끌고 다니는, 주인 없는 짐 카트와 빈 벤치를 하나 보여 준다. 뭔가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데 영화에 등장하는 많은 복선 중의 하나. 헤어지면서 이시가미가 말한다. 유카와가 언제 봐도 젊다고, 부럽다고. 이시가미 답지 않은 말이라 유카와에게는 조금 뜻 밖. 그런데 몇 분 후 이 말에 유카와는 선뜻 또 하나를 깨닫는다.  그리고 우츠미에게 수사가 잘못 가고 있음을 알려 준다.  하나 하나를 보면 가해자가 유도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이쯤이면 짐작하시겠지만 이 모든 것은 이시가미의 연출에 의한 것. 경찰이 앞으로 할 모든 수사에 대해 정확히 예측하고 이에 대해 두 모녀를 철저히 대비시킨 것. 알리바이를 만들고 어떤 질문에는 어떻게 대답하고 어떤 시점에서 어떤 증거를 내 놓을지를. 공중전화로 그는 야스코에게 대응 방법을 지시한다.  유카와는 이시가미의 연출임을 눈치채게 되었고. 일부러 유카와는 이시가미를 앞세워 불시에 야스코의 도시락 집에 들르는데, 어떤 남자가 도시락 집에 와서 야스코에게 친한 척을 한다. 물론 이시가미는 이를 그냥 넘겨 보지 않는다.  그리고 이 남자의 출현이 이시가미의 심경에 변화를 주게 된다.

유카와는 도시락 집에서 나와 헤어지면서 이시가미에게 한 마디 던진다.
“아무도 풀지 못하는 문제를 만드는 것과 그 문제를 푸는 것 중 어느 게 더 어렵지?” 이시가미에 대한 도전이다.

완벽한 모녀의 알리바이에 유카와는 한때 좌절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틀린 적이 없었던 유카와를 믿는 우츠미는 기어코 학교로 가서 이시가미를 조사한다. 
우츠미: “선생님은 문제를 어렵게 낸다면서요?”
이시가미: “어렵지 않습니다. 단순한 함정 문제입니다. 기하 문제로 보이지만 실은 함수 문제라든가 조금만 시각을 바꾸면 풀 수 있는 문제입니다.” 물론 또 다른 복선. 그런데 이 말을 전해 들은 유카와. 갑자기 생각이 나, 사건 해결에 한 걸음 다가선다. 만나자고 하는 유카와에게 이시가미는 등산을 제안하는데…… (혹시 이시가미는 유카와를 죽이려고?)

그런데 이시가미는 관객이 보기에 아주 엉뚱한 짓을 한다. 야스코를 도시락 집으로 찾아 온 남자를 미행하고, 뒷조사를 하고 그에게 야스코를 만나지 말라고 협박을 한 것. 야스코에게도 그 남자를 만나지 말라고 하고. 그와 야스코가 연인이라면 그건 철저한 배신행위라고.

그리고 산장에서 유카와를 만난 이시가미는 등산을 지금 안 하면 영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유카와를 등산에 초대했다고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경찰이 자기를 찾아왔었다며. 경찰이 의심할 근거가 없다는 유카와의 말을 이시가미가 반박한다. “의심은 네가 하고 있잖아?” 유카와는 함정문제와 노숙자 얘기를 꺼낸다. 함정문제란 생각의 맹점을 만들어 내는 것이고, 시계처럼 정확하게 산다는 말은 시계 부품처럼 제 역할이 있다는 뜻이었는데 자신이 못 알아 들었다며. 유카와가 이젠 끝이다 라고 하니 이시가미는 실상 문제를 못 푼 것 아니냐며 응수한다. 다음 날 둘은 눈 속에서 등산에 나서는데, 등산에 서툰 유카와는 거의 죽을 뻔 한다. 이시가미가 유카와의 죽음을 유도한 것 아닐까라고 관객이 생각하는 순간 이시가미가 구해준다.  그리고 정상에서 이시가미는 또 한 마디를 던진다. 그 문제를 풀어도 아무도 행복해 지지 않는다고. 이제 그만 잊어달라고.

그리고 이시가미는 자수한다. 살인의 공범이 아닌 살인자로…… 야스코에게는 두 장의 편지를 남긴 채. 자수 소식을 들은 유카와는 망연자실.

그러면 도대체 이시가미는 왜 이렇게 철저히 야스코를 보호하는 것인가? 자신을 버려 가면서까지.  이시가미는 남몰래 야스코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 그가 절망에 빠져 자살을 시도 했을 때 이사 왔다며 그의 아파트 문을 두드려 주었었기에 그는 절망에서 빠져 나왔었던 것. 그래서 이 영화도 범죄 영화 같지만 시각을 바꾸면 실은 헌신적인 사랑 얘기?

   
이시가미는 외로운 천재. 그의 외로운 삶에 희망을 준 사람을 위한 헌신이 정도를 벗어나 안타깝다.

그런데, 이 사건을 반추하고 있는 유카와,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사건의 전모를 밝혀낸다.  유카와는 야스코를 만난다. 그리고 말한다. 전 남편을 죽인 날이 12월 2일이 아닌 12월 1일이었다고. 형사들이 12월 2일에 대해서만 물으니 사실만 얘기해도 넘어 갈 수 있었지 않았느냐고.

한편, 구치소로 이송되기 전 이시가미를 다시 한번 조사하겠다고 어떤 방으로 이시가미를 데려 가는데 거기에 유카와가 앉아 있다.  등산을 못 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한 이유를 알겠다며. 그때 다 못한 얘기를 하자고. 전 남편을 살해한 것은 야스코이고, 살해 장소도 그녀의 방이다.  이렇게 유카와의 말로 시작해서 영화는 관객들에게 사건의 전모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사건의 전모는? 전혀 관객이 예상하지 못할 반전이다. 먼저 영화를 보고 난 와이프가 결말을 끝까지 얘기해 주지 않았는데 왜 안 해 주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도대체 이 수학선생은 어떻게 이렇게 완벽하게 은폐를 할까 계속 궁금하게 만들면서 엄청난 결론이 나오기에.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부분들은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영화를 보실 분들의 마지막 surprise 를 위해서.

내가 원래 추리물을 좋아하는데 결말을 보고서는 내가 기분 좋게 농락당한 느낌. 장소의 변화가 별로 없어 연극으로 만들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고, 어딘가 추리 소설 같은 냄새가 난다 했더니 역시 소설이 원전이었다. 나 같은 관객들의 알량한 짐작을 비웃는 훌륭한 추리물이다.  히가시노 게이고 라는 작가의 유카와를 주인공으로 한 연작 소설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를 영화로 만든 것. 2008년도 작품. 일본, 한국, 싱가포르에서 개봉되어 히트했다.   2012년 이 영화를 리메이크한 “용의자 X” 라는 한국 영화도 나왔단다. 그리고 영문으로 번역된 소설 (The Devotion of Suspect X)도 나와 있다. 유카와 역의 후쿠야마 마사하루의 꽃 미남 얼굴을 보는 것과, 여 형사 우츠미 역의 시바사키 코우의 큰 눈과 시원한 목소리를 보고 듣는 것도 영화의 재미 중의 하나. 

박준창 (영문 79,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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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8)
  가슴아픈 사랑 이야기 양민 2015-12-02 18:59:37
반전이 대단합니다.
추천0 반대0
(108.XXX.XXX.145)
  잘썼네.... 크산티페 2015-12-02 01:11:47
대충 넘어가던 장면도 박변의 영화평을 읽고나면 ..명장면화되어지는!!
추천0 반대0
(138.XXX.XXX.53)
  이 영화 나도 봤는데... 오달 2015-11-30 21:33:57
마지막 반전 까먹었네.
비행기 안에서 재미있게 본 기억만
추천0 반대0
(104.XXX.XXX.245)
  재미있게 보셨다니 박변 2015-12-01 22:40:59
그걸로 되었는데요...그래도 결말이 안 궁금하신가용?
추천0 반대0
(138.XXX.XXX.53)
  마지막 반전을 남겨두는 매너, 글쓰는 선배님의 넉넉함을 보여줍니다. 변변 2015-11-30 11:34:48
마지막 반전을 보기 위해서라도 영화를 꼭 봐아겠습니다. Kazue Fukiishi 와 결혼하면서 Fukuyama 는 최근에 품절남이 되었습니다. 노래면 노래, 연기면 연기, 기타면 기타 정말 못하는 것이 없는 친구입니다.
추천0 반대0
(184.XXX.XXX.12)
  언제나 해박한 변변 박변 2015-12-01 22:39:45
이 배우가 그런 배우였군요. 전혀 몰랐습니다.
추천0 반대0
(138.XXX.XXX.53)
  X의 비극 김종하 2015-11-30 00:40:09
저도 추리소설이나 추리영화라면 사족을 못씁니다만... 제목이 X의 비극이라는 유명 추리소설을 연상케하기도 하네요. 이 영화 어디서 볼 수 있나요?
추천0 반대0
(107.XXX.XXX.123)
  Ellery Quinn 의 박변 2015-12-01 22:37:17
X의 비극, Y의 비극, Z의 비극을 기억하시는군요. ikoreantv.com 에서 저는 봤습니다.
추천0 반대0
(138.XXX.XXX.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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