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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나쁜 남자'를 좋아한다고?
[이상희의 사람과 세상] '폭력의 진화설'에 숨은 내막은
2015년 09월 23일 (수) 12:42:39 이상희 기자 acroedito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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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원숭이 암컷은 털을 골라주는 수컷하고는 교미를 하지 않지만 공격적으로 덤비는 수컷하고는 교미를 한다. 최근에 읽은 책에 나온 내용이다 (“폭력은 어디서 왔나” 야마기와 주이치 지음, 한승동 옮김, 곰출판). 일본원숭이 암컷들은 나쁜 수컷을 좋아하는 것일까?

때마침 주로 남성을 독자층으로 확보하고 있는 어떤 잡지가 표지에 내건 문구 “여자들이 ‘나쁜 남자’캐릭터를 좋아한다고? 진짜 나쁜 남자는 바로 이런 거다. 좋아 죽겠지?”는 여자의 유괴-살인 등 폭력적인 상황을 암시하는 표지 사진과 함께 큰 논란이 되었다가 결국 전량 폐기 처분되어 희귀본이 되었다. 여자는 잘해주는 남자보다는 못되게 구는 남자에게 더 매력을 느낀다는 “나쁜 남자 콤플렉스”는 피할 수 없는 사실일 수도 있지만, 폭력을 정당화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얄팍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만약 여자가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만큼 일본원숭이 암컷도 나쁜 수컷에게 끌린다면 여기에 진화적인 의미가 있을까? 근래 유행하는 진화 심리학 혹은 행동 생태학은 행위나 감정 등이 일시적이고 즉흥적인 현상이 아니라 유전자를 퍼뜨리는 데에 유익한, 진화적으로 중요한 재료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특히 인간에게만 있다고 여겨지던 특징이 다른 동물들에게서도 보인다면 더더군다나 유전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같은 조상에게서 같은 유전자를 물려 받아, 자손을 퍼뜨리는 생식에 유익했다는 이야기이다. 설령 “나쁜 남자 콤플렉스”처럼 언뜻 보기에 불쾌한 유전자라고 해도 말이다.

그런데 일본원숭이의 이야기를 더 읽어 보면 다른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일본원숭이에게 털을 골라주는 관계는 친밀한 사이이다. 이 친밀한 사이는 새끼 시절부터 익숙한 사이이며 많은 경우 혈연으로 이어진 관계이다. 따라서 암컷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의 털을 골라주는 수컷은 친형제, 배다른 형제, 외사촌, 혹은 아빠일 수도 있다. (아들은 알아보므로 아들일 가능성은 적다.) 털을 골라주는 수컷과의 교미를 회피하고 공격적인 수컷과 교미하는 행위는 “나쁜 남자가 왠지 좋아”라기 보다는 오히려 “가족끼리 왜 이래”에 가까울 수도 있다.

친숙한 사이에서 교미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동물들에게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누가 엄마인지는 쉽게 알 수 있지만 누가 아빠인지는 알 수 없는 사회에서 근친 교배를 회피할 수 있는 손 쉬운 방법은 친밀한 관계끼리의 교미를 피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별의별 행위가 진화의 포장을 덮어 쓰고 마치 자연적인 행위인 것처럼 단차원적이고 단순하게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세계적으로 보수화가 진행되는 근래에는 어떤 행위가 ‘원래 그랬다’’자연스러운 행위이다’라는 식의 설명을 방패로 사람들에게 소화되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았다. 언뜻 보면 비슷한 폭력, 살생, 강간은 영장류 사회에서는 그들 나름대로의 속사정이 있다. 그리고 그 속사정은 인간과는 다를 수도 있다.

어떤 행위가 비슷한 점이 있다고 해서 단순하게 그 행위의 유전자가 있어서 유전이 되고 진화되었다는 논리는 더더욱 경계해야할 접근법이다. 언뜻 보면 비슷한 행위가 전후좌우의 맥락은 아주 다를 수도 있다. 속사정을 알아야 한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현상에서 좀 더 깊이 들어가서 장기간의 관찰을 통해 행위의 배경과 역사를 이해하면 다른 세상이 보인다.  어떤 동물을 오랜 기간에 걸쳐 관찰한 내용을 주골자로 하는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이상희 (고고미술사 85, UC 리버사이드 인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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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8)
  발견의 기쁨 최운화 2015-10-08 08:53:54
이상희 교수님이 저희 동문인지 처음 알았네요. 참석 불량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ㅉㅉ 학교 때 인류학을 전공하려고 잠시 시도했던 적이 있어서 관심이 많은데 이 동문의 글을 읽으면서 어쩌면 이렇게 글을 잘쓰시나 하고 감탄해 이미 팬이 되어있읍니다. 작년 연말 중앙일보 행사 때 외부컬럼니스트 테이블에서 보려니 기대하고 갔다가 안오셔서 아쉬웠는데, 여기서 보니 매우 방가. 계속 좋은 글 부탁과 기대합니다.
추천0 반대0
(12.XXX.XXX.242)
  이런 팬클럽회장 2015-09-28 14:22:08
미친 글빨! 이렇게 잘 쓰시면 팬클럽 감동합니다.
추천0 반대0
(138.XXX.XXX.152)
  결국 오달 2015-09-27 04:00:13
여자한테 너무 잘해주면
돌아오는게 없다는 이야기?
추천0 반대0
(221.XXX.XXX.2)
  글은 읽으셨는지.. 글을 2015-09-29 15:09:22
하신 말씀이 근거 없다는 글이네요
추천0 반대0
(114.XXX.XXX.158)
  제 말은 ... 오달 2015-10-01 14:12:08
남자가 여자에게 너무 잘 해주어서 아주 친밀해지면,
여자가 그 남자를 혹시 형제나 가까운 혈연으로 오해를 해서,
애인으로서 결격 사유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라는 뜻입니다.
추천1 반대0
(104.XXX.XXX.245)
  생각해 보지 못한 시각이네요 김삿갓 2015-09-24 19:54:19
가족끼리 왜이러냐고....ㅎㅎ
추천0 반대0
(104.XXX.XXX.70)
  '좋은 남자' 캐릭터인 김종하 2015-09-23 21:40:19
편집자로서는 안심이 됩니다. ㅋㅋ 최근 '인류의 기원'이라는 책을 출간해 선풍적 인기를 끌며 매진 사태를 일으키고 있는 필자의 두 번째 책에 반드시 포함돼야 할 내용입니다.^^
그나저나 출판기념회 함 해야죠. (아크로 주최로?)
추천0 반대0
(107.XXX.XXX.123)
  자존감! 이상희 2015-09-24 10:04:48
자칭 '좋은 남자' 캐릭터인 편집자 같은 분들이 이 사회에 많이 퍼져야 할 텐데요! ㅋㅋ

출판 기념회,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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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XXX.XXX.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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