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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는 싸워도 동족 전쟁엔 못간다”
[한신의 세계 출장기 #5] 조선족 동포들의 아픔 서린 ‘대련’
2015년 09월 10일 (목) 12:22:17 김한신 기자 acroedito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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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련(Dalian・大連)

만주의 출구. 중국 북동지역의 수출항. 만주철도의 시발점이며 러일전쟁의 격전지. 그리고 안중근 의사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여순감옥이 있는 도시 대련은 19세기 배경 속에 21세기 중국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대련은 중국어로 ‘다롄’이라고 발음하며 요동(랴오둥) 반도 서남쪽 끝에 자리 잡은 항구 도시다. 그렇다. 국사 교과서에 끊임없이 나오는, 고구려의 옛터 요동반도에 자리하고 있다.  천오백년전 고구려의 유적을, 그 흔적을 느껴보고 싶었지만 대련 시내에서 그것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의 근현대사와는 많은 부분 교차하는 도시가 대련이다.

*만주의 수출항

대련은 요동 반도 끝에 위치하고 있고 부동항이여서 해상 교통의 요충지다. 이 지리적 특성으로 러일전쟁 시에는 러시아와 일본간 격전이 벌어진 무대이기도 하다. 현재는 중국 북동부, 만주 지역의 공산품들을 수출하는 수출항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어 상업과 공업 단지가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하늘에서 바라 본 대련항의 모습이 이러한 대련의 상황을 잘 설명해 주는 듯 했다.

   
대련항.

대련항을 하늘에서 바라보면 수많은 배들이 줄지어 서있음을 알 수 있다. 과거 만주라 불렸고 동북 3성이라 불리는 랴오닝성(遼寧省), 지린성(吉林省), 헤이룽장성(黑龍江省) 등 3개 성(省)의 해상 물동량 90% 이상을 처리한다고 하니 그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컨테이너 물동량이 이미 2003년의 167만 컨테이너에서 2012년의 806만 표준 컨테이너로, 10년간 근 5배의 성장을 이루었다고 한다. 수출입 등의 물류뿐 아니라 정유, 화학, 조선 등의 중화학 공업의 중심지라 하는 것을 하늘 사진을 통해 실감할 수 있었다.
 
만주의 수출항이기에 하얼빈으로 연결되는 만주 철도의 종착/시발점이기도 하다. 대련역은 일본이 설립한 만주철도주식회사가 일본 도쿄의 우에노 역사를 본따서 건설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그랬듯이 일본이 만주 침략을 위해 부설한 철도를 보고 있노라면 힘들었을 선조들의 삶이 느껴진다. 한국인이건 중국인이건 수탈을 당하는 자들의 삶은 편안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정학적 위치 – 이국적 느낌의 도시를 만들다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대련은 동북아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지도 출처: 구글맵.

청일전쟁을 통해 일본은 대련을 포함한 요동반도를 점령하였다. 하지만 청일전쟁 승전국 일본에 대해 러시아, 독일, 프랑스 3국이 1898년 ‘삼국간섭’을 해서 요동반도에서 일본군을 철수시켰고 러시아는 그 대가로 대련을 포함한 지역을 청나라에게 조차하게 되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숙원이던 부동항을 얻을 수 있었고 동청 철도를 부설함으로 만주지역을 장악할 목적이었다. 러시아 조차지 시절 부설한 동청철도의 종착역을 대련에 설치하고 러시아어로 ‘따르니’(Дальний: ‘멀다’)로 명명했다고 한다. 이 ‘따르니’가 대련의 어원이라고도 한다.  이때 러시아에 의해 유럽풍의 도시가 건설되었고 그 흔적이 ‘러시아 거리’와 같이 아직도 도시 곳곳에 남아있다.

삼국간섭으로 의기소침하던 일본이 러시아와 한판 붙은 러일전쟁. 풍전등화였던 대한제국의 운명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 그 러일전쟁에서 승전한 일본은 승전물로 한반도와 요동반도를 거머쥐게 되었고 대련은 그때부터 1945년까지 일본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일본 점령시 대부분의 도시 형태가 완성되어서 현재의 구시가 중심부를 구성하고 있다. 구시가 공공건물들을 보면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본 일제시대 건축물들이다.

부동항에 대한 집념, 그리고 러일전쟁 패전의 트라우마였는지, 아니면 순수한 지정학적 이유에서였는지, 소련은 1945년 일본 철수 이후에도 대련과 여순 지역을 중국에 반환해 주지 않고 1951년까지 직접 관리했다. 참 기구한 땅의 역사다. 지정학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이 그곳에 사는 보통 사람들의 삶에는 그다지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을 때가 많은 것 같다.

*조선족 동포의 아픈 역사

‘조선족’이라 불러야 하는 것인지 ‘중국 동포’라 부르는 것이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 어떠한 표현이 ‘Politically Correct’한 용어인지는 모르겠으나 필자가 ‘조선족 동포’라 부르는, 최근 중국으로 이주한 교포들이 아닌, 주로 해방 전부터 거주하던 ‘조선 사람들’의 후예를 말한다. 대련 출장기에서 굳이 ‘조선족 동포’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이곳에서 만난 사업가의 가족 이야기를 듣다가 눈물을 참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련에도 조선족 동포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한 동포 사업가를 만났는데, 이분의 할아버지와 작은 할아버지들은 독립군, 그리고 중국 공산당 ‘팔로군’ 출신이라고 한다. 당시 중국 만주 지역에 거주하면서 항일 무장 투쟁을 하던 많은 젊은이들이 중국 공산당 팔로군에 속해 중일전쟁을 치룬 것은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하지만 일본이 패전으로 철수하고 국공 내전도 공산당의 승리로 끝나 집으로 귀향을 했건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곧 한국전쟁이 시작되고 중국군이 북한을 원조하기 위해 군인들을 다시 징집하는데 ‘항일 전쟁의 영웅들’, 즉 전쟁이 이골이 난 베테랑 병사들을 찾다보니 이미 군에서 예편한 할아버지, 작은 할아버지들에게도 징집 명령이 나왔다고 한다. 이 형제분들은 ‘일본인과 싸울 수는 있어도 조선인들 간의 전쟁에 갈 수 없다’고 버티다가 결국 할아버지는 참전하지 않고 빠졌으나 작은 할아버지들은 한국 전쟁에 (우리가 아는) ‘중공군’으로 참전해 한 분은 전사하시고 다른 한 분은 귀환하셨다고 한다. ‘무찌르자 오랑캐~’라는 노래를 부르며 치를 떨게 하던 그 적, ‘중공군’들 중에 이러한 동포들의 아픔이 있었구나 하는 것을 알고 나니 참, 아픈 시대였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명품 점포와 뒷골목의 국수 가게

대련으로 향할 때만 해도 기대치가 아주 낮았다. 그래봐야 베이징도, 상하이도 아닌 지방 중소도시 아닌가 하고. 그런데 도시 중심가에 솟아있는 마천루들을 보면서 대련의 경제 규모에 놀랐다. 그리고 (약간은 어설프지만) 화려한 쇼핑센터들과 그 안의 가격들을 보고 기겁을 하기도 했다. 혹자는 중국의 버블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중국의 변화, 발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흥미로운 점은 화려한 명품점 바로 뒷골목으로는 서울의 청진동, 다동 등지의 뒷골목 맛집  골목들을 보는 것과 같은 허름한 가게들이 줄지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맛은 정말 괜찮았다. $1-$2 정도의 국수를 먹어도 아주 훌륭한 식사를 할 수 있다. 다만 중국어를 유창하게 하거나 아니면 눈치와 함께 손짓 발짓에 뛰어나야만 그 현지식을 경험 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지만. 뭐 서울 뒷골목에서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고풍스러운 백년 역사의 건물들과 현대식 고층 빌딩들이 조화를 이루는 대련은 아주 ‘역사적’인 도시였다. 고고학적이지는 않지만 근현대사의 모습을 담고 있으며 급속도로 발전한 중국의 산업화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곳 가운데 하나로 우리의 역사와도 밀접히 연관된 도시다.

김한신 (서양사 92, 변호사)

   
Clockwise from top: Dalian skyline, Citibank at Zhongshan Square, Dalian International Conference Center, Tiaoyue Bridge at Xinghai Square, in Dalian, Liaoning Province, China. [출처: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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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17)
  화석처럼 남아있는... 이상희 2015-09-26 12:51:59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본 일제시대 건축물" 그리고 "러시아 거리" 그 위에 덧입혀진 21세기의 중국이라니, 현대인의 DNA에 남아있는 고인류의 유전자와도 같이 현재와 과거가 함께 있군요. 역시 사학계열 전공의 과거(?)가 빛나는 글입니다!
추천0 반대0
(138.XXX.XXX.160)
  "과거"라서 김한신 2015-09-28 07:51:13
아쉬워요. 현업이면 좋겠는데 말이죠
추천0 반대0
(104.XXX.XXX.70)
  한신씨 글좋네요 김인종 2015-09-21 21:12:25
세계 방방곡곡 우리 '조선족'이민자들의 풍운의 삶를 기록할 수 있다면. '미국 조선족'을 포함해서.
추천0 반대0
(97.XXX.XXX.151)
  그게 제 꿈이었는데... 김한신 2015-09-22 12:11:50
한때는 한국/조선 이민사를 전공하고 싶었거든요. ㅎㅎ
추천0 반대0
(38.XXX.XXX.58)
  대련도 가볼 곳 이네요 양민 2015-09-14 11:01:17
김변덕에 리스트에 넣습니다.
추천0 반대0
(108.XXX.XXX.145)
  유럽여행은 잘 다녀오셨어요? 김한신 2015-09-21 10:17:23
양 선배님 유럽 여행기도 기대합니다~
추천0 반대0
(38.XXX.XXX.58)
  역사 공부를 하고 글을 써야할 워낭 2015-09-13 22:43:52
사람이 다른 일을 하고 있음을 보네요. 적당히 한 다음에 돌아오삼.
추천0 반대0
(23.XXX.XXX.144)
  생계를 해결하고 나서는 김한신 2015-09-21 10:16:49
그런 일을 해보고 싶은 맘이 있습니다만 현실로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네요 ㅎㅎ
추천0 반대0
(38.XXX.XXX.58)
  와우 변호사가 이렇게 멋진 글을 스피노자 2015-09-13 11:31:43
역사의식이 튼튼한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추천0 반대0
(68.XXX.XXX.158)
  '역사의식'이라 하시니 김한신 2015-09-21 10:15:52
부끄럽군요....하지만 칭찬이라 생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추천0 반대0
(38.XXX.XXX.58)
  여순감옥 김한신 2015-09-10 22:26:39
다음 기회가 된다면 꼭 여순감옥을 들려보고 싶습니다. 혹시 다녀오신분이 한말씀 해주시면 좋겠네요....
추천0 반대0
(104.XXX.XXX.70)
  오랫만에 아크로에 이종호 2015-09-10 09:21:07
멋진 여행기가 실렸네요. 역사와 현재를 아우르는 재미 감사! 지도를 보니 대련에서 심양까지가 서울 평양보다 훨씬 더 멀군요. 또 대련에서 조선족 자치주 수도인 길림까지는 평양-부산보다 훨씬 더 멀고...정말 대륙은 대륙입니다. 바쁜 출장길에 이렇게 사진 찍고 메모까지 해 와서 함께 나눠주는 자상한 배려심...고맙습니다.
추천0 반대0
(74.XXX.XXX.108)
  이번 출장기는 사진도 못찍어서 김한신 2015-09-10 22:25:43
면목이 없네요. ^^
추천0 반대0
(104.XXX.XXX.70)
  글... 이경훈 2015-09-10 07:20:09
잘 쓰시네요...^^
추천0 반대0
(182.XXX.XXX.231)
  그리 읽어주시니 감사.... 김한신 2015-09-10 22:18:20
글로 (요즘은 디베이트로 ^^) 먹고사시는 (!) 분께서 그리 말씀하시다니....영광입니다.
추천0 반대0
(104.XXX.XXX.70)
  역사와 현재를 한 눈에 김종하 2015-09-09 19:30:53
마치 러시아에서 만주철도를 타고 달려 대련에 다녀온 기분... 역시 역사학도 변호사는 달라요.^^
출장기 좀 더 자주 씁시다.
추천0 반대0
(76.XXX.XXX.131)
  편집의 힘인듯 김한신 2015-09-10 22:17:15
글보다 편지의 힘이 더 큰듯 합니다. ㅋㅋ 감사~
추천0 반대0
(104.XXX.XXX.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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