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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붙어 살던 그들은 지금도...
[이종호의 풍향계] 부원배와 친일파
2015년 08월 21일 (금) 03:21:10 이종호 기자 acroedito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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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살'의 포스터.

뜨거운 한 주일이 지났다. 날도 뜨겁고 광복 70년 축하 물결도 뜨거웠다. 극장에선 독립군의 활약과 친일파 응징을 그린 영화 ‘암살’이 관객 1100만을 돌파했다. 인터넷에선 친일 청산 실패에 대한 성토와 자성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반면 친일파 후손들은 대를 물려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다는 특집 기사였다.

700년 전 고려 때도 그랬다. 13세기 초 고려는 몽골의 침략을 받았다. 한두 번이 아닌 무려 일곱 번에 걸친 대침략이었다. 고려는 강화도로 조정을 옮겨가며, 팔만대장경을 만들어 불력(佛力)에 호소해 가며 저항했다. 삼별초를 비롯해 온 백성들이 목숨 내놓고 싸웠다. 하지만 역부족. 이미 세계제국이 된 몽골군의 말발굽 아래 결국 무릎 꿇을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장장 98년, 시시콜콜 원나라의 간섭을 받았다.
 
당장 영토부터 빼앗겼다. 평안도 지역에 동녕부, 함경남도에 쌍성총관부, 제주도에 탐라총관부가 세워져 원나라 직할지가 됐다. 임금 이름도 원나라에 충성한다는 뜻의 충(忠)자를 붙여야 했다. 충렬왕-충선왕-충숙왕-충혜왕-충목왕-충정왕 6대 70년 가까이 그랬다.

왕실 용어도 제후국 수준으로 격하됐다. 짐(朕)이 고(孤)나 과인(寡人)으로, 폐하가 전하로, 태자가 세자로, 칙서가 교서로 바뀌었다. 세자는 왕이 되기 전에 원나라에 볼모로 가야했고 몽골 여인을 왕비로 맞아야 했다. 젊은 처녀가 공녀로 바쳐졌고 몽골인들이 제집 드나들 듯 고려를 드나들었다. 이렇게 풍습이 바뀌고 언어가 물들었다. 피가 섞이고 민족정신도 희미해져갔다. 일제 36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런 세월을 되돌려 바로 잡으려 한 사람이 공민왕(재위 1351~1374)이다. 그의 꿈은 ‘자주 고려’였다. 이를 위해 기철 등 친원세력부터 척결했다. 원나라 풍습과 제도를 철저히 금했다. 철령 이북 쌍성총관부를 공격해 빼앗긴 땅도 되찾았다.

하지만 개혁은 벽에 부딪쳤다.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부원배(附元輩)들의 필사적 저항 때문이었다. 결국 개혁은 실패했다. 공민왕은 좌절했고 고려는 멸망의 길로 내닫고 말았다. 그럼에도 부원배는 건재했다. 권문세족이라는 이름으로 끝까지 영화를 누렸다.

역사는 되풀이됐다. 36년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던 날, 모두가 새 나라를 꿈꿨다. 그 첫걸음이 민족반역자 처단이었다. 이를 위해 제헌국회에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금세 흐지부지됐다. 분단이 핑계였다. 친일청산보다 좌익 견제가 발등의 불이 됐다. 친일 전력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일제의 경험이 요긴한 무기가 됐다. 결과적으로 친일파 대부분이 신생 대한민국의 중추세력으로 다시 편입됐다. 그리고 그 아들, 손자들이 좋은 교육 받고 좋은 직장 물려받아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이끌어 오고 있다.

친일의 역사는 분명히 기억돼야 한다. 70년이 아니라 100년, 200년이 가도 망각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한번 잘못 끼워진 첫 단추를 바로 잡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버렸다. 더 결정적인 것은 지금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정치계, 법조계, 재계, 언론계의 내로라하는 사람(기업) 치고 친일 선조의 후광을 입지 않은 이가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솔직히 한국은 더 이상 친일청산을 해 낼 역량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말이다. 안타깝지만 이게 현실이다.

부원배는 ‘원나라에 빌붙어 사는 놈들’이라는 모욕적인 말이었다. 하지만 조선이라는 새 시대의 도래와 함께 이 말은 사라졌다. 그렇다고 그 후손들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태종 이방원의 시조에 나오는 구절 그대로 '만수산 드렁 칡같이 얽혀' 조선의 지도층으로 대부분 수평 이동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도태되지 않고 이름만 바꿔 살아남는 지배층의 끈질긴 생명력이었다.

친일파도 그렇다. 친일-우익-보수로 이어지는 줄을 타고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며 일제 식민지 상층부에서 대한민국 상층부로 아주 성공적으로(?) 이동했다. 이제 ‘친일파 후손’이라는 수치스러운 딱지 털어내는 일만 남았다. 모르긴 해도 저들은 머지 않아 그것마저 기어코 이뤄낼 것이다. 우린 한 배를 탔다, 자칫 소모적인 친일청산 논쟁만 하다보면 배 자체가 가라앉을 수도 있다는 협박 아닌 협박 앞에 순박한 민초들이 먼저 물러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재차 말하지만 안타깝지만 이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과거 역사까지 없었던 걸로 할 수는 없다. 부원배 청산에 실패한 고려는 끝내 망했다. 이 시대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의 교훈이 아닐 수 없다. (2015.8.18)

   
영화 '암살' 주인공들. 왼쪽부터 하정우, 전지현, 이정재. LA에서도 상영 중이다. 처절했던 독립운동사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는 영화다. 현실에서 청산하지 못한 친일 오욕의 역사를 상상으로나마 응징하는 후련함도 있다. 하지만 정의가 이기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시대적 대의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어쩔 수 없이 현실과 타협하며 사는 필부필부(匹夫匹婦)의 나약함을 확인하는 착잡함도 느끼게 한다.

   
고려 공민왕이 회복한 영토. 그 위 함경북도 쪽은 조선 세종대왕 때 가서야 되찾았다.

이종호 (동양사 81,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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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6)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스피노자 2015-08-23 09:46:13
우리 민족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말 뼈저리게 느낍니다. 과거청산없이슨 미래도 없는데...
추천1 반대1
(200.XXX.XXX.188)
  참 의미심장한 글입니다. 박찬민 2015-08-21 10:47:39
외세의 침략으로 시작된 근대화, 그후의 압축 경제 성장,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것이 너무 많은 데, 그 사이에 매국노들이 날뛰는 군요.
추천2 반대1
(108.XXX.XXX.61)
  저는 어릴 때 몽고 간장만 먹고 컸습니다. 변변 2015-08-21 06:09:48
몽고 간장, 몽고 반점, 몽고어가 한국어에 끼친 영향 등등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몽고가 한국에 남겨놓은 유산은 막대합니다. 일본도 한국에 많은 것을 남겨놓고 갔습니다.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잘 청산/정리하고 수용하느냐인데 안타깝게도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지도층은 오늘 현재 한국의 힘으로는 청산이 안되는군요. 부디 부원배/친일파 청산해서 한국도 새로운 민족 중흥을 이루었으면 하는 간절한 염원입니다.
추천2 반대1
(75.XXX.XXX.22)
  마산 회현동은... 필자 2015-08-21 14:11:23
몽골군이 주둔했던 곳이지요. 합포라고...일본 정벌을 위한 정동행성이란 관청이 있었고 몽골군들이 마시던 우물 몽고정도 있었고...그 우물로 만든 간장이 물좋은 마산의 몽고간장. 참고로 요즘은 몽고라는 말은 '어리석고(蒙) 낙후되고 덜떨어진(古)'이란 의미여서 몽골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랍니다. 실제로 중국이 몽골을 비하해서 한자로 그렇게 옮겼다지요. 요즘 공식 명칭은 몽골.
추천1 반대1
(74.XXX.XXX.108)
  일본 정벌은... 필자 2015-08-21 14:16:13
모두 2차례 있었는데 두번 다 태풍을 만나 실패로 끝납니다. 일본이 가미가제라고 말하는 바로 그 바람이죠. 신이 보내준 바람...神風. 몽골의 일본원정대는 사실은 고려와 몽골 연합군이었는데 주력은 대부분이 고려군사였죠. 결론적으로 고려군 수만명이 희생된 안타까운 역사입니다.
추천1 반대1
(74.XXX.XXX.108)
  고려와 조선, 역사의 거울 김종하 2015-08-20 10:32:27
그 교훈이 여전히 절절함을 느낍니다. 영화 '암살'을 보고 나오며, 가슴이 무거웠습니다.
추천2 반대1
(76.XXX.XXX.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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