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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처녀는 알고 있었다, 그가 돌아갈 것을
[인종의 노스탤지어] 살아나는 과거들 (2)
2015년 06월 05일 (금) 12:09:54 김인종 기자 acroedito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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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서 계속)
어줍지도 않게 여공들을 가르쳐 보겠다고 나선 시절. 우리는 입술부터 정화해야 했다. '공돌이' '공순이' - 이들을 비하하던 단어부터 우리 입에서 뗐다. 첫날 여공들의 자취집을 방문하던 날 이른 아침. 차가운 겨울바람 아래 마당 수돗가에서 찬물로 민낯을 씻던 여고생 나이의 여공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수건을 잡은 그녀의 손은 터서 짝짝 갈라져 있었다. 반길 줄 알았던 그녀는 무표정했다.

그 3개월간 내가 배운 것은 나는 그들과는 다른 외계인이라는 것. 그들이 리차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이기적 유전자와 이타적 개체)설'을 알지도 듣지도 못했어도, 자하비, 그렌팬의 '핸디캡 원리'를 정확히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 '우리는 너희 여공들을 도울 수 있다. 우리가 너희보다 우월하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우리는 엘리트의 사치를 깨달았다. 섬마을 처녀는 '섬마을 선생님'이 곧 육지로 돌아갈 것을 알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섬처녀들이 이 사기꾼(?) 육지 선생님에게 순정을 바쳤을까.

우리가 좋아하는 가수들은 사이먼 앤 가펑걸, 비틀즈, 레드 제플린이었지만 그들의 입에서는 나훈아와 남진의 뽕짝이 흘러나왔다. 우리의 자취방 사면 벽을 꽉 메운 책들(당시 책을 얼마나 많이 읽고, 가졌는가가 민주투사? 로서의 지위를 말해주었다)은 그들에게 이방지대였다(자주 책들을 빌려가서 보기는 했지만).

여공들은 언젠가는 우리가 그들을 떠나 우리의 엘리트 사회로 다시 돌아갈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성심껏 우리의 비위를 맞추었다. 번갈아가며 연탄불을 갈아 주었고, 빨래도 해주려 했다. 우리는 그들에게 '의식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그들 대분분이 배우고 싶은 것은 '잘사는 길'이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우리의 '지식'이 아니라 우리 '자체'였다.

우리들 중 고민을 하던 한 친구는 결단을 내렸다. 그는 학교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공장에 취직을 했다(자주 위장취업으로 몰렸다). 그는 여공들을 가르치려던 '의식화 운동'을 접었다. 그는 '공돌이'로서 그들과 같은 방법으로 인생을 다시 살기로 했다. 그는 스타트 라인부터 그들과 같이 출발해 그들과 같은 취미와 관심을 가지고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말하며 인생을 가기로 했다. 그는 철저히 '속물'이 되어서 요즘도 부지런하고 재미난 인생을 살고 있다. 그의 '공돌이' '공순이' 친구들은 다른 어느 엘리트 친구들보다 그의 평생 인생의 동반자들이다.

중간 보스급의 친구는 방을 자주 옮겼다. 미행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수배중인 어떤 이는 차를 여러 번 갈아타고 골목길을 이리저리 돌다가 약속장소로 오곤 했다. 어떤 다른 그룹들을 만날 때 서로 이름을 주고받지 않았다. 지하세계와 지상세계가 따로 노는 시절이었다. 그즈음 마하무드라를 만났다. 그는 나에게 "네 춤을 추라. 네 노래를 부르라"고 충고했다. 나는 내 인생을 살아야 했다. 나는 누굴까.

다시 수원의 자취방으로 돌아온 어느 해, 서울로 올라온 고속버스 터미날. 시내버스를 갈아탔을 때 두 명의 공수부대원들이 버스에 올라 내 앞자리에 앉았다. 눈가에 살기가 있고 몸에서 피 냄새가 난다고 느꼈다. 버스를 타고 가며 내릴 때까지 서로 한마디도 안하는 그들은 무지 슬퍼보였다. 문득 특전사에 가있는 친구가 생각났다. 지난 휴가 때 본 그의 눈이 유난히 반짝였었지. 그는 이 시대에 어느 쪽으로 난 길에 서 있을까. 그 시대 나의 모습은 술, 노래, 책이었고 그 후에 시간이 남으면 수업에 들어갔다. 대학원 들어가기 전까지 학점은 바닥을 기었다.

나의 노래를 좋아하며 쫓아다니던 후배가 노래를 가르쳐 주었다. 후배는 술만 먹으면 이 노래를 불렀다. 어느 때는 부르다가 울기도 했다. 어디서 이런 애절하고 섬뜩한 노래가 나왔을까. 멜로디는 너무 아름다웠다. 가사는 가슴을 아리게 했다. 형 따라해봐요... "꽃잎처럼 금남로에 떨어진 너의 붉은 피..."

(...이야기를 계속해야 할지... 이것저것 까발려질까봐 두려워진다. 별 것도 없지만)

   
농대 캠퍼스 말라푼다 시화전. 술이라는 제목의 자작시 앞에서

   

캠퍼스에서. 군대 휴가 나온 친구와. 맨발이나 스렛빠로 캠퍼스와 전국(?)을 다니던 시절이다.

   
대학원 시절 정신 있던 날, 농업교육관 앞에서. 맨 오른쪽 필자 빼고 모두 교수들이 됐다.

김인종 (농대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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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2)
  꽃미남의 추억...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김종하 2015-06-04 19:20:10
근데 술이라는 제목의 자작시 내용이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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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131)
  김인종 2015-06-09 20:51:53
취해서 쓴 시라 횡설수설
추천0 반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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