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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라 백작같은 인간의 두 얼굴…
[이상희의 인류학 산책] 몸에 새겨진 폭력의 흔적
2015년 05월 30일 (토) 13:03:31 이상희 기자 acroedito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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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세기 남미 안데스 지역 잉카 문화에서는 목을 베고 살을 도려내고 눈을 파내는 등 고문과 처형의 장면들이 벽화나 조각 예술품에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인골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몸에 새겨진 폭력의 흔적은 올 가을에 우리 학과에 새로 부임하는 B교수의 연구 주제이다.

목을 쳐서 벤 경우 목뼈(경추)와 뒷머리뼈(후두골)에 칼자국이 나 있다. 살을 도려낼 경우 근육이 뼈에 붙어 있는 부분에 칼자국이 난다. 의도를 가지고 낸 칼자국은 우연히 돌끝에 긁히거나 갉아먹은 동물의 이빨 흔적과 뚜렷이 다르다. 얼굴 광대뼈 위쪽으로 칼자국이 나있는 경우 눈을 파내는 일이 토기나 벽화에서 나오듯 상상에 불과한 장면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런데 놀랍게도 눈이 파인 인골은 여자다. 인골은 머리뼈 등을 보면 성별을 추측할 수 있는데 특히 골반뼈가 남아있으면 꽤 높은 정확도로 성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참혹한 고문의 흔적을 통해 폭력에는 잦은 전쟁에 연루된 전사들인 남자뿐 아니라 여자도 깊이 연루되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폭력은 당시 불안정했던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정권의 정당성과 권력을 사람들에게 뚜렷하게 인지시키려는 행위였다. 그런데 이런 일들은 3~9세기 안데스 지역에서만 일어나지 않았다. 눈 주위를 싸고 있는 광대뼈에 나 있는 날카로운 칼자국은 수십만년 전 고인류 화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칼자국이 식인행위를 의미하는지, 2차 장(葬)을 의미하는지 논란이 되어 왔는데, 혹시 폭력을 통한 죽음을 의미할까?

무력에 의해 정권이 교체된 최근에도 고개를 돌리고 싶은 참혹한 일들은 일어났다. 지구 어디에선가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9세기 안데스와는 달리 지금은 세상의 눈을 피할 수 없을 뿐이다.

같은 종끼리 서로 죽이는 행위는 인간 외 자연 세계에서는 극히 드물다. 자연 세계에서는 주로 어르기만 하면서 강자와 약자를 가르지 서로 죽이거나 크게 다치게 하는 일은 흔하지 않다. 물론 육식 동물은 자기가 먹기 위해 다른 동물을 죽이지만 그 상대는 일정한 다른 종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게 가장 가까운 친척종인 침팬지에게서 서로 죽이는 행위가 관찰되었을 때 큰 논란이 되었다. 과연 서로 죽이는 행위는 인간 아닌 동물에게서도 존재하는지, 아니면 침팬지가 인간과 같이 지내다가 배워서(?) 서로 죽이게 되었는지 의견이 분분하다. 그만큼 같은 종끼리 죽이는 것은 엄청나고 흔치 않은 일이다.

미국에서는 그 동안 가장 인도적이고 고통을 줄일 수 있는 사형 방법이었던 독극물 주사가 실제로는 실패 확률이 생각보다 높다는 점이 발견되어서 큰 논란이 되고 있다. 사형수가 인간으로서 마지막으로 지킬 수 있는 존엄성이 제대로 약효가 듣지 않아 겪지 않아도 될 참혹한 끝을 맞게 되는 것이다. '가장 인도적이고 고통이 없는' 사형 방법을 찾는 노력보다 오히려 사형제도가 인도적인지 생각해 볼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는 매일 살인과 전쟁과 사형에 대한 뉴스를 아무렇지도 않게 보고 듣는다. 잠깐 눈살을 찌푸리고 혀를 차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서로 죽이는 다양한 방법을 골몰하여 연구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도 인간이고, 한편으로는 모르는 이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내놓을 수 있는 것도 인간이다. 아수라백작 같은 인간의 두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오늘은 메모리얼데이 그리고 부처님 오신 날이다.

이상희(고고미술사 85, UC 리버사이드 교수) *LA 중앙일보 칼럼-필자가 지난 25일자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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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2)
  43만년전 김종하 2015-05-31 23:16:07
고인류 화석에도 살륙의 흔적이 있다고 하네요. '살인의 추억'이라기에는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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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XXX.XXX.123)
  살인의 추억... 이상희 2015-06-01 15:44:53
석기를 만들어 먹을 것을 마련하기도 했지만 서로 죽이는 일에도 사용되었으니.. 역시 '인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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