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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공들은 대학생 오빠들 왔다고...
<인종의 노스탤지어> 살아남는 과거들(!)
2015년 05월 28일 (목) 13:01:36 김인종 기자 Editor@Acropoli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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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스토리에 가끔 올리는 글을 이번에는 facebook에서 동문들과 한번 나눠보려고 부끄럽지만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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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는 과거들 (1)
   
세운상가 아마존 나이트클럽 고고타임 공연중에: 오른쪽 째려보는 청년이 필자.

과거들은 후회와 미련에 남겨져 있다. 그 후회와 미련이 아름답건 추하건.
젊은 날의 삶이 '지독'할수록 과거들은 살아남는다. 상처로서...
요즘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재밌는 이름들중에 '이학교교수'라는 분이 있다.
이름이 이학교, 직업이 교수란다. 재밌으라고 꾸며낸 이름이지? 한국의 후배에게 물었다.
형, 내 친구여. **대학에서 교수여. 곧 이어 또다른 후배가 내역을 적어보내왔다.

대학교때  운동권 학생이었어요. 수배받아 도망다닐 때 모교수님이 자신의 농축연구소에 숨겨줬죠. 이 연구소에 숨어있으면서 할일이 공부와 연구밖에 더 있어요? 그러더니 박사되고 교수 됐어요. 지금은 ##대학교에 있어요. 운동권이라는 말에 문득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대학시절. 
나는 운동권이 아니었다. 딴따라였다. 그런데 주변에는 운동권친구들이 많았다. 그들은 나를 잘 끼워 주었다. 쌈잘하고 술 잘하는 시인 딴따라라고. 그리고 나의 폭발하는 과격한 성격을 높이(?) 평가했다. 그들이 밤새 해방신학 이바구(혹은 노가리라고 했다) 하다가 지치면 나는 기타를 쳐주었다. 가끔  그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했었다.

어느해 유신독재가 떠나가고 대학가에 잠깐 봄이 왔을 때 기숙사로 돌아온 친구가 있었다.  반독재 투사(딱 이표현이 맞다)로서 군대에 끌려갔다가 복학한 친구다. 정확히 말자하자면 고등학교 1년 후배다. 그는 고문을 많이 당한 후유증으로 바닥에 누워 잘수가 없었다. 기숙사 침대에 앉아서 잠을 잤다. 나는 그를 사랑했다. 그는 나를  좋은 선배로서 따랐다. 성격이 부드럽고 치밀했다.  조용한 목소리와는 달리 군부 독재타도에 삶을 걸었었다. 복학 직후 그가 '어용교수 퇴진 운동'에 나섰다. 나의 지도교수도 그 리스트에 포함됐다. 나는 후배의 반대편에 서서 어용교수 퇴진 운동을 비난하는 '격한' 대자보를 붙였다.  학내에 논쟁이 가열될 때, 몇시간후 그 후배와 기숙사 방에서 만났다.  그는 잠잠히 웃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형..".  그는 나를 비난하거나 피하지 않았다. 그후배에게 말했다. "허리 고치고.. 졸업은 해야지". 

그 몇해전인가.  학생들은  모두 캠퍼스 본관앞 잔디에 모이자는 통신이 돌았다. 별생각없이 끼리끼리들과 본관앞 잔디에 모였다. 그날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라는 플래카드가 휘날렸다. 그리고 모인 학생들 앞에서 축산과 김상진선배는 칼로 배를 그었다.  낭자한 선혈 속에서 여학생들이  비명을 지르며 울부짖었다. 도축용 칼이었단다. 김상진선배는 죽었다. 나는 그때 분노도 슬픔도 느끼지 못하는 나자신이 이상했다. 오히려 머리는 맑아지며 인생이 내가 생각하는 것, 살아온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임을 뚜렷이 깨달았다. 어느 순간 교문 기둥위에 올라서서  전경들과 마주서 있는 나를 보기도 했고(누군가가 사진 찍히니 빨리 내려와 라고 말한 것이 기억난다)  최루탄 터지는 수원시내를 끼리들과 뛰는 나를 보았다.

그해인가? 우리는 또 잔디에 모여 끼리끼리 어깨동무를 하고 스크럼을 짠 후 구호를 외치면서 교문으로 달려나갔다. 굳게 닫힌 교문과 그 앞에 곤봉을 들고 막아서 있는 전경들.  교문 수위실 앞에서 한 어머니가 학생을 붙들고 애원하고 있었다. 학생회장과 그의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아들을 붙들고 눈물로 설득하고 있었다. 그냥 집에 가자고. 학교 안다녀도 좋다고. 엄마랑 집에 가자...아들은 어머니를 조용히 밀치고 스크럼대열에 다시 앞장을 섰다. 그 학생회장은 이념도, 이데올로기도 그렇게 투철하지는 않았지만(공부를 매우 잘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자신의 소임이 피할 수 없는 것임을 알고 그 십자가를 졌다. 그 학생회장도 결국 내 고등학교 후배 투사와 같은 시련, 같은 길로 들어섰다.  교문 앞에서 수많은 아들 학생들 앞에서 인격, 체면 모두 버리고 자기 아들의 허리춤에 매달리며 애원하던 어머니. 지금은 이세상에 안계실게다. 아 인생이여. 얼마나 불쌍한 행진들인지. 어느때 부턴가 나는 노래에 이런 것들을 넣고 싶었다.
   
 70 년대 나팔바지 쓸고 다닐 때: 공릉동 공대 캠퍼스 방문. 왼쪽서 두번째가 필자.

우리는 그때 니힐리즘에 빠졌다. 그때 나의 신은 이세상 것들에 관심이 없는 신이었다.
몇년전 혼자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4,300Km 를 완주한 미친(?) 여자 세릴 스트레이드(베스트셀러 'wild'의 저자)는 그녀의 간절한 기도에도 어머니가 비참하게 병사하자 소리쳤었다. 그녀는 자기 어머니만 살려준다면 어느 신이고 믿겠다고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고통속에서 죽어갔다. 어머니의 시신앞에서 세릴 스트레이드가 외친 말 - 신은 있다! 정말로 신은 있다. 그 신은 개자식이다.  대학시절 우리의 신도 그랬다.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하고 한국에서 교수를 하는 모후배가 요즘 카톡으로 연결됐다. 킥킥거리며 옛날 얘기들을 한다. 니가 교수라니 참 대단하다!  학생시절  우리는 구로공단의 여공들을 가르치는 (일명 의식화운동) 야학운동을 했다. 한 친구는 자취방을 그 동네로 옮겼다. 여공들은 대학생 오빠들이 왔다고 성심으로 대해주었다.  - 우리들의 또다른 슬프고 모순된 이야기들을  가물가물한 기억속에서 찾아가 보며(continued_

김인종<농대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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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12)
  피를 더 흘려야 할것 같습니다, 허허 2015-08-12 08:39:36
김대중씨가 미국을 방문하여 연설할때에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 라고 하는 것을 들은일이 있지요.
그런면에서 한국에 이루어졌다는 민주화는 분명히 피를 먹고 된것이 아닌것이 분명합니다.
아니면 앞으로 더 많은 피를 흘려야 하던지... 정말로 많은 피가 흘러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맞아죽고 굶어죽고 얼어죽고 고문당해 죽고 할 자신도 없으면서 길거리에 나와앉아 악쓰는 자들을 보니 한심해서 하는 말입니다
추천0 반대0
(73.XXX.XXX.242)
  시대가 불러낸 영웅들, hanthony@gmail.com 2015-05-31 05:33:29
한국의 역사가 불러낸 새로운 자각의 새시대를 연 영웅들이 아니고 무엇이었겠습니까?
추천0 반대0
(76.XXX.XXX.39)
  잡초 김인종 2015-05-31 18:37:48
당시 영웅이라는 표현보다는 민초, 잡초로 불리워지는게 좋았죠..
추천1 반대0
(97.XXX.XXX.151)
  옛날 생각이 새록새록... 곽건용 2015-05-30 09:26:59
의상과 걷는 모습... 옛날 생각이 새록새록 나네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추천0 반대0
(24.XXX.XXX.213)
  나팔바지의 소화.... 이상희 2015-05-30 17:22:37
아니... 선배님도 그 당시에 나팔바지를 입고 다니셨는지요? 소화하기 힘든 스타일이었을지도 모르는데... 상상이 잘 안 됩니다. ㅋㅋ
추천0 반대0
(138.XXX.XXX.22)
  오늘 향린교회에서... 김인종 2015-05-31 18:28:02
곽훈장님 '진보적 교회'에 대한 명설교. 멤버들 보고 싶었는데...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곽훈장님이 12인치 바지폭의 나팔바지(공식명칭 판탈롱), 깃 5인치 허리 확 파인 셔츠(엘비스 프레슬리 스타일), 그리고 맥시 코트(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망또 스타일) 입고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를 출렁이며 설교를 하는 모습이라면...진보? 70년대초 스타일인데
추천0 반대0
(97.XXX.XXX.151)
  사실은 그 당시 저도... 곽건용 2015-06-02 08:39:30
장발에 나팔바지 입고 다녔습니다. 입학식 날 검정 바바리 입고 긴 머리에 나팔바지 입고 참석했었죠. 사진이 있었는데 미국 오면서 안 가져와서리... ㅠㅠ 입학 면접시험에 복장이 많이 불량했었는지 면접교수님들이 "학생은 깡팬가?"라고 묻기에 저는 "깡패가 이 학교 오는 거 봤습니까?"라고 대꾸해놓고는 떨어질까봐 잠도 잘 못 잤다는... ㅎㅎㅎ
추천0 반대0
(24.XXX.XXX.213)
  그모습 한번 김인종 2015-06-02 22:10:50
봤으면...
추천0 반대0
(97.XXX.XXX.151)
  역시 또 한번 무서운 내공이 박변 2015-05-27 23:26:18
보이는 글...지난번 sound of silence 글에서처럼 어두운 듯 무거운 듯 침잠한 듯 그러면서도 인생을 바라보는 중량감있는 ...사진 속 금방 김인종 선배인줄 알았슴
추천0 반대0
(138.XXX.XXX.53)
  댓글 내공이 더 무서워 김인종 2015-05-31 18:14:17
아크로를 지키며 항상 격려해주는 박변의 마음. 부끄런 선배.
추천0 반대0
(97.XXX.XXX.151)
  아크로 사상 가장 워낭 2015-05-27 20:07:29
드라마틱, 다큐멘터리, 솔직, 솔까말, 감동, 형언할 수 없는 역작!!!
추천1 반대0
(74.XXX.XXX.71)
  ㅋ 과장도 심하셔 김인종 2015-05-28 23:53:43
진짜 역작이 나오면 그땐 뭐라고 쓸겨?
추천0 반대0
(97.XXX.XXX.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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