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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에 탐닉하다
아크로 인문강좌 후기-셰익스피어 강의 후
2015년 01월 26일 (월) 17:54:52 AcropolisTimes Editor@Acropoli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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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kespeare-
지난 겨울 폭설과 한파가 미 동부지역을 강타했을 때 TV 앵커가 “the winter

of our discontent” 라는 구절로 뉴스를 시작한다. 오래 된 서부영화에서는
전직 치과의사인 총잡이가 술집 카운터에서 위스키 잔을 기울이면서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의 대사를 지루하게 늘어놓는다. 신문기사에서도
“the fault is not in our stars” 또는 “fair is foul and foul is fair” 등의 구절이
나온다. 우리가 이런 구절들을 접했을 때 꼭 셰익스피어를 생각하지 않아도
LA에서 살아가는 데 별 문제가 없다.

셰익스피어 원본 영문은 두시언해처럼 수 세기 전의 글이라서 매우 난해하고
배워도 영어회화 실력의 향상에 별 도움이 안 된다. 그의 비극보다 원한치정에
의한 살인, 직계 존비속간의 송사 등의 뉴스가 더 비극적이고, 그의 희극보다
TV talk show가 더 희극적이다. 처세의 비법을 얻자면 오히려 동시대인
Francis Bacon의 수상록을 읽는 것이 낫다.
   

전문가는 세부분야를 깊이 분석할 수 있지만,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master
plan을 짜는 일은 지식인의 몫이다. 우리는 지식인이 되기 위하여 인문과학을
공부하고 셰익스피어를 읽는다. 콩 심은 데 콩이 나지만 인문과학은 콩이 아니고
오히려 거름이다. 토양에 거름을 아무리 주어도 콩은 나지 않는다. 단시간에
결과를 원한다면 거름을 주기보다는 차라리 콩을 심어야 한다.

셰익스피어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서 급하게 읽을 필요가 없고 시간이 날 때
토양에 거름 주는 기분으로 읽으면 된다. 작품의 줄거리만 읽거나 유명한 대사만
골라서 읽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그리고 인문과학이란 탐닉하면 현실에서의
나태 sloth가 되고, 남용하면 허세 affectation가 되고, 맹신하면 현학 pedantry,
the humor of a scholar이 된다.

시대를 초월하는 천재들이 있다. 이들은 작은 천재들의 언덕을 넘어 높은
봉우리를 형성한다. 이들이 빛을 발하면 시공을 초월하여 그들을 닮은 또 다른
봉우리들이 서로 응답한다. 그 중에서도 최고봉은 단연 셰익스피어다. 그의
봉우리 위에 서면 우리는 플라톤, 호머, 단테, 괴테, 다빈치 등의 봉우리를 볼 수
있고 그들의 선명한 흔적까지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18세기 Vienna와 19세기 Montmartre Hill의 천재들 그리고 이름없는

도시에서 한 시대를 살았던 이름없는
천재들도 이 위대한 작가의 빛과 열기를 겸허하게 나누고 있다. 물론 천재들뿐만
아니라 우리와 같이 흑암에 사는 보통 사람들도 이 빛을 볼 수 있다. populus qui
sedebat in tenebris lucem vidit magnam. 그러나 우리는 슬프게도 천재들과 달리
받은 빛을 반사할 능력이 없다.

프랑스 파리에서 살고 있는 한 친구는 자신의 딸이 다니는 고등학교의 학기말
논술고사의 제목이 “맥베스의 희극적인 요소에 대하여 논하라.” 라고 이야기 해
준다. 우리 나라에서는 대학을 졸업해도 맥베스를 읽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프랑스처럼 문화적 자존심이 강한 나라도 영국의 셰익스피어를 고교생의
필독서로 간주하고 있는 것 같다.

-Cultural Science-
인문과학은 현재 그 대표주자, 문사철의 몰락이 논의되고 있는 실정이고 그
귀염둥이, 문학마저도 각 대학의 해당학과들의 인기가 하락하고 있다. 젊은이들은
오히려 Mint의 생산품을 갖고 싶어하고 Morgan과 Midas의 비밀을 알고 싶어
한다. 영문학도들은 셰익스피어보다는 Maecenas가 되려고 한다. 이것은 우리
나라의 이야기지만 아마 북미 대륙에서도 사정이 별로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자연과학으로 인류는 굶주림과 추위의 고통에서 벗어났다. 수명도 늘어났고
많은 사람들과의 대화도 할 수 있고 생활도 무척 편리해졌다. 하지만 이전보다
더 외로워지고 더 부자유스럽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회과학 역시 많은
법과 제도 및 체제로 우리를 보호하려 하지만 사회적 불안과 법정소송은 계속
늘어난다. 출산율 자살률 및 이혼율 등의 객관적인 수치로 보아도 인류의
행복지수는 오히려 내려간다. 모든 조건을 갖춘 21세기에 인류가 당연히 누려야
할 행복이 이렇게 흔들리고 있다.

15세기, 이탈리아인들의 마음도 역시 흔들리고 있었다. 이성을 지배하는
유일신과 감성을 자극하는 올림포스 다신들의 어울리지 않는 공존--Moses와
Homer의 불편한 동거……. 영원히 지상에 머물고 싶지만, 집행유예가 끝나면
결국 떠나야 하는 수인의 슬픔……이들은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고대희랍의
Acropolis 광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 찬란한 문예부흥의 업적을 이룩했다.

386컴퓨터는 486으로, 혹은 3G통신은 4G LTE로 수정 보완된다. 그러나
셰익스피어가 James Joyce로, 혹은 괴테가 Thomas Mann으로 수정 보완되지는
않는다. 자연과학에서는 신형모델이 개발되면 구형모델은 시장에서 사라지지만
인문과학에서는 수십 세기 전의 플라톤과 호머도 여전히 생명을 가지고 있다.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연인의 밀어뿐만 아니라, 숨죽이며 귀 기울이는 무녀의
신탁에 이르기까지…… 꿈꾸고 갈망하는 것들뿐만 아니라, 헛되이 시간과 열정을
쏟는 것들에 이르기까지…… 지식과 예술품뿐만 아니라, 기이한 빛과 소리와
향기에 이르기까지…… 모두 인문학이 될 수 있다. 인문학은 우리 삶의 아름답고
빛나는 순간들, 만남의 기쁨과 이별의 슬픔, 열정적 행위와 고매한 생각 등을
우리에게 숨김없이 이야기 해 줄 것을 공언한다. 그것은 또한 덧없이 짧은 우리
인생의 span 속에서 우리가 아무런 사심 없이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사랑은
우리가 사랑하고 후회하고, 후회하고 눈물짓는 그런 사랑과는 다르다.

비록 인문학이 우리의 아픔을 완벽하게 치료할 수 없고 결코 우리의 빵이 되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우리를 위한 한 잔의 포도주는 될 수 있고 앙리 마티스
Heinri Matisse가 그의 작품에서 추구하는 지식인을 위한 안락의자 정도는
충분히 될 수 있다. 19세기 영국의 문예 비평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지혜 중에서 poetic desire, the desire of beauty, the love of art 등이 으뜸이고,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자는 시와 예술 song and art에 시간을 투자한다.”

고대 아테네를 비추던 장엄한 태고의 태양은 일년 내내 캘리포니아의 대지를
황금빛으로 수놓고 포도밭을 붉게 태운다. 지중해의 Crete섬을 닮은 롱 비치의
Catalina섬은 사계절 바다의 훈풍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그리고 15세기의
Florence시민들처럼 LA시민들 역시 순량하고 발랄하다 chastened and debonair.
그러나 모든 것이 갖추어진 이곳에서도 슬픔은 존재한다.

Vixi! 뒤돌아보면 분명 화려하고 성공한 인생이지만 다시 생각하면 그저
소란스러움과 무의미한 격정 밖에 없었던 어리석은 인생! a tale told by an idiot,
full of sound and fury, signifying nothing! 인생에서 성취한 것들과 잃어버린 것들
모두에 대한 회오! Bene qui latuit, Bene vixit. 우리는 중세 Florence시민들 그리고
고대 Athens시민들의 슬픔과 갈망 그리고 그 업적에 한껏 공명한다. 그리하여
지금 LA의 Acropolis 광장에 모여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우리들만의 작은
르네상스를 구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Lecture-
1월 16일 저녁, 나란다 강의실에서 김지영 강사님이 주관하시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Hamlet”에 관한 강의가 있었다.

햄릿은 12세기경 덴마크 궁전을 배경으로 왕과 왕비와 햄릿 왕자 등이 등장하는
비극으로, 우유부단한 성격의 대명사로도 사용되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설명할 때 인용되기도 한다.

비극의 장면들 가운데 우리가 실제로 겪게 될 것 같은 장면은 없다. 그러나
햄릿의 독백을 들으며 장면에 몰입하다 보면 우리 자신이 지금 Hamlet의 갈등을
겪고 있다는 환각에 빠진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독백을 시작한다.

…….때로는 중대한 선택이 우리를 기다린다. 우리가 선택의 결과를 상상하면 심적
부담을 극복할 수 없다. 마치 운명이 어둠 속에서 생사의 갈림길로 우리를 몰고
가는 것 같다. 경험과 지식은 믿을 수 없고, 결정을 내리기는 정말 어려운데, 좀
더 생각해 볼 시간조차 없다.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는
원형경기장의 외로운 검투사gladiator일뿐이다. 환성을 지르는 관중들이나
응원하는 친구들은 오히려 우리의 외로움을 더해 준다. 우리는 이런 절대절명의
순간에 비로소 운명의 가혹함을 느끼고 햄릿 왕자의 독백을 이해한다. 그 누가
왕자를 우유부단하다고 말할 수 있나? 그는 다름아닌 고독과 번뇌에 시달리는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다……

김강사님은 햄릿의 5막극의 15장면들을 하나하나 집어가며 주인공의 처한
환경과 심리적 갈등에 대하여 강의했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유명한 대사에
대하여 해설했다.

텍스트로는 원본영어와 현대영어의 판본을 같이 공부했다. 두 판본의 영어를
비교하면 수 세기 동안 정말 영어가 상당히 달라진 것을 알 수 있다. 아래에
원본영어의 대사를 실었다. 우리말 부분은 정식번역이 아니고 필자의 간략한
해석이다. .

O God, I could be bounded in a nutshell and
count myself a king of infinite space,
내 비록 좁은 공간에 존재하지만
나 자신을 무한한 세계의 왕으로 여긴다.

Be thou familiar but by no means vulgar
But do not dull thy palm with entertainment
Of each new-hatched, unfledged comrades.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해야 하지만 너무 지나치지 마라.
새로 만난 사람들과 모두 친하려고 하지 마라

Give every man thy ear but few thy voice.
Take each man’s censure but reserve thy judgment.
모두의 말을 듣지만 소수에게만 말해라.
모든 의견을 듣지만 항상 비판을 유보해라

Costly thy habit as thy purse can buy,
But not expressed in fancy—rich, not gaudy,
For the apparel oft proclaims the man,
의상은 가능하면 최고급으로 입어라.
--훌륭하게 그러나 결코 화려하지 않게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Whether 'tis nobler in the mind to suffer
The slings and arrows of outrageous fortune,
Or to take arms against a sea of troubles,
And by opposing end them?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다.
포악한 운명의 장난을 참고 견뎌야 하나?
아니면 숱한 고통에 대항하여 한 번에 끝내야 하나?
그 중에서 어느 것이 더 고귀한 것인가?

To die, to sleep;
To sleep: perchance to dream: ay, there's the rub;
For in that sleep of death what dreams may come

죽는다는 것은 잠드는 일
아, 그것도 문제가 있다.
죽음의 잠 속에서 도대체 어떤 꿈을 꾸게 되나?

********사족

우리 국민은 노래와 춤을 좋아하고 문학을 사랑한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자살률,
이혼율, 노인빈곤율 그리고 행복지수 등이 왜 OECD 국가 중 최악의 수준인가?
이것은 21세기 최대 미스터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미스터리가 있다. 연방통계국에 의하면, 미국에 사는 여러 종족
중에서 Hispanic히스패닉은 소득수준 저축률 교육수준 보험가입비율 등이
최저수준이고, 음주율 비만율 당뇨확률 살인사망률 등이 최고수준이다. 그런데
자살률은 최저수준이고 행복지수는 무척 높다. 이들의 평균수명은 80.6세로
백인의78.1세보다 높고 흑인의 72.9세보다 훨씬 높다. 그리고 그들은
인문학이나 셰익스피어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사회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Hispanic Paradox”라고 이름 지었다. 사회학자들은 잘 모르는 것이
있으면 paradox라는 말을 붙인다.

20세기 초 독일 과학자 “하이젠베르크 박사”는 전자의 위치를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전자현미경은 광선을 많이 발사할수록 대상물의
위치파악이 정확해 진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전자의 질량이 너무 적어 광선을
발사할수록 그 광선의 영향으로 전자가 위치 이동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결국
연구는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너무 유명한 박사라서 실패란 단어를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박사는 그 실패를 불확정성의 원리 uncertainty
principle라는 멋있는 이름으로 승화시켰다. 그것은 마치 사회학자들이 잘 모르는
것을 paradox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박사는 자신이 잘 모른다는 사실을 연구를 통하여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기원전 5세기, 희랍의 유명한
인문학도가 이미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너의 무지를 아는 것이 곧 앎의
시작이다.” 그는 겸손하게도 자신의 이론을 theory 혹은 principle 등으로
치장하지 않았다. 그리고 12세기경, 덴마크 왕자도 이렇게 말했다. “호레이쇼,
세상에는 우리들의 학문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 많이 있네.”

There are more things in heaven and earth, Horatio,
Than are dreamt of in your philosophy.

이 불확정성의 원리는 오히려 사회학자들이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느라고 더
유명해졌다. 월남전 당시의 이야기다. 현지 사정을 파악하려고 신문사에서
사진기자를 파견했다. 그런데 기자를 적게 파견하면 지역이 너무 넓어 객관성이
떨어졌고, 기자를 많이 파견하면 기자들의 존재 때문에 현지 미군들이 미리
대비를 하여 상황이 이미 많이 바뀐 상태가 되어 버렸다. 사회학자들은 이
현상을 보고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 때문에 정확한 취재가 어렵다고 꽤
유식하게 느껴지는 설명을 했다.

신종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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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3)
  인문학이 빵은 아니고 포도주라면 김삿갓 2015-02-12 04:41:11
(이종호님의 글에서 처럼) 사치품이고 먹고살만한 사람이 해야 하는건가요? ㅎㅎ. 제가 오달님의 인문학 강좌를 가고 싶어도 못가는 이유는 바로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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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XXX.XXX.70)
  오시는 분들 오달 2015-01-27 13:49:17
모두 감사합니다.
후기를 써 주신 신종필님
저녁을 준비해주시는 황진이님
특별히 감사합니다.

저도 덕분에 섹 스피어를 즐겁게 다시 읽고있습니다.
추천0 반대0
(108.XXX.XXX.241)
  우리가 왜 인문학에 갈급하는가 이원영 2015-01-26 01:01:30
많은 이해와 도전을 던져줍니다. 앞으로 많은 기고 부탁드립니다.
추천0 반대0
(23.XXX.XXX.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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