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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통한 신비한 교감과 사랑, 그리고 짠함
[박변의 내멋대로 영화평 22] 볼리우드 수작 The Lunchbox
2015년 01월 24일 (토) 04:36:47 박준창 기자 Editor@Acropoli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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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변의 영화 내 멋대로 보기 22: The Lunchbox

주말 또 한번 우연히 좋은 영화를 TV에서 보고 영화가 너무 좋아 곧 바로 DVD를 구해서 한번 더 보았다.  음식을 매개로 한 남녀의 사랑 이야기인데 진부하지 않다.

배경은 인도의 뭄바이(우리가 어릴때 봄베이로 배웠던 곳). 주인공 싸잔 페르난데스 (Saajan Fernandes)는 외모부터 뚱하고 정이 없는 중늙은이. 그는 아내와 사별하고 다른 가족도  없는 독신으로 이제 한달도 안되어 35년간 일해왔던 직장에서 은퇴를 한다. 나이가 얼마인지는 나오지 않는데 35년을 일했다니 적어도 50중반은 되었을 것 같다.  얼마나 그는 까탈스러운지, 은퇴 후 그를 대신할  후임이 약속 시간에 1분 늦게 나타났다는 핑계로 직무 훈련도 안 시켜주고 그대로 퇴근해 버릴 정도이며 애들이 공놀이 하다 공이 그의 집으로 들어가자 돌려 주지도 않는다. 자신은 애들의 하인이 아니라며.

그도 다른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식당에서 점심 도시락을 배달시켜 먹는데 인도 특히 뭄바이는 직장인들이 점심 도시락 배달을 시켜 먹기로 유명하다. 대개 아내들이 정성스럽게 만든 점심을 "dabbawalas" 라는 배달 시스템을 통해 남편의 직장 책상까지 배달해 주는데, 영화 속 배달원 말이 “하버드 대에서 와서 연구해 가고,  영국의 왕까지도 친히 와서 볼” 정도로  절대 배달 사고가 없는 완벽한 배달 체계란다. 영화의 시작도 뭄바이의  도시락 배달 장면부터 보여 준다.
The Lunchbox
 

   
[2013년 개봉.  주연 Irrfan Khan (싸잔 페르난데스 역) . Nimrat Kaur(일라 역)영화 포스터.]

그런데 어느날 도시락이 그에게 잘못 배달된다. 여 주인공 일라 (Ila)는 딸을 하나 둔 주부.  위층에 사는 할머니가 가르쳐 준 요리법으로 남편의 점심을 준비했는데 이 음식이 남편에게로 안 가고 싸잔에게로 간 것. 위 층에 사는 할머니는 영화 끝날때까지 단 한번도 얼굴은 안 나오고 목소리만 나오는데 15년째 혼수 상태에 빠진 남편을 수발하고 있다. 일라가 아줌마 (고모? 이모?—Auntie)라고 부르는 이 할머니는 일라에게는  mentor이다.  음식재료나 조미료를 주고 받을때도 할머니는 내려 오는 법이 없고 바구니를 위, 아래층으로 올리고 내려다 보낸다.  그런데 이 점심이 기가 막히게 맛이 있다.  “한번만 깨물어 보면 타지 마할이라도  너에게 지어 줄걸 (One bite of that and he will build you a Taj Mahal).” 이라고 위층 할머니가 장담한대로. 그는 마치 핥았을 것 같은 정도로 깨끗이 음식 전부를 먹어 치운다.

너무나 깨끗한 빈 도시락 통을 보고 감격하는 일라.  실상 그녀의 결혼생활은 재미가 없다. 관심없는 남편에게 그녀는 사랑을 못 받고 있기에 이렇게 남편이 자신이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 주었다는 사실이 그녀에게는 무척 반갑다. 그래서 그녀는 그날 화장도 예쁘게 하고, 옷도 예쁘게 차려입고 남편을 맞이하지만 남편은 여전히 무덤덤하게 대답한다. 엉뚱한 음식을 대며 맛있었다고 건성으로.  도시락이 엉뚱한 사람에게 갔음을 알게 되는 순간이다. 

일라는 위 층 할머니의 충고대로 다음 날 도시락 통에 쪽지를 넣어 보낸다.  깨끗이 비워 줘서 고맙다고. 남편이 먹은 줄 알고 몇 마디 말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아무 말이 없었다며.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진정으로 마음에 다가가는 길은 위장을 통해서라고 몇 시간 동안 그렇게 생각했었노라고 (For a few hours, I thought that the way to the heart is really through the stomach).” 이 대목에서 내가 얼마 전에 썼었던 영화 Babette’s Feast 가 다시 생각난다. 맛있는 음식이 사람들의 생활에 얼마나 지대한 공헌을 하였는지를 보여 주었던 영화. 예술의 경지에 오른 음식이 척박한 땅에서 , 척박한 사람들의 마음의 문을 열게 해 준다는 것을 잔잔하지만 강렬하게 그려 주었던 그 영화말이다.  일라는 그날 남편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으로 도시락을 만들어 보낸다.

일라는 이렇게 타인에게 쪽지를 보내는게 불편하지만 위 층 할머니는 먹은 사람이 감사해야 하며 혹시 남편에게 가더라도 남편이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내가 해 준 음식인지 아닌지도 모를 정도라면.
그런데 싸잔의 고약한 심성이 또 드러나는데 음식은 또 다시 깨끗이 비워 놓고 보낸 쪽지에는 음식이 너무 짜다는 불평뿐이다. 감사나 맛있었다는 말은 없고. 분개한 위 층 할머니는 일라에게 매운 고추를 내려 보내며 내일 점심에 넣으라고 일라를 채근한다.  일라는 할머니 시키는대로 아무런 쪽지없이 음식만 보낸다.

이번엔 싸잔이 쪽지를 보낸다.  매워서 바나나를 두 개를 먹었다고. 이렇게 두 사람은 쪽지에 그들의 삶과 생각을 얘기하기 시작한다. 일라는 위 층 할머니 얘기, 남편 얘기, 싸잔은 아내와의 사별 얘기, 요즘은 차나 기차에서도 앉아서 갈 자리가 없고, 죽어서도 누워 묻히지 못하고 서서 묻혀야 한다는 얘기 등.  웃기는 얘기, 심각한 얘기,  과거 얘기, 그리고 그런 쪽지를 주고 받으면서 일라는 싸잔의 나이가 무척 많다는 것을 알게 되고 흡연을 한다는 것도 알게 된다. 일라 아버지는 폐암으로 죽어 가고 있는데 어머니는 약 값이 없어 TV도 판다. 일라가 아버지의 폐암 얘기를 하며 담배를 끊으라고 하자 싸잔은 금연까지 시도한다. 

두 사람은 쪽지를 주고 받으며 서로에게  인생의 교훈을 가르친다. “누군가 얘기할 사람이 없으면 우린 망각하게 된다 (We forget things if we have no one to tell them to)”는 싸잔의 말에 일라는 딸에게 자신이 어릴 때 놀았던 인형 놀이를 가르치기도 하고.
   
[어느 순간 두 사람에겐 상대방에게서 온 쪽지를 펴 보는 순간이 제일 즐거운 시간이 된다.]-그림 박준창 화백

일라는 남편이 바람을 피고 있음을 알게 되고 이 사실을 싸잔에게 얘기하면서 떠나 가고 싶은 곳으로 부탄을 얘기한다. 부탄이란 나라는 국내 총생산 (gross domestic product)은 없고 “국가 총 행복 (gross national happiness)”만 있다고. 싸잔이 놀라운 응답을 한다. “What if I came to Bhutan with you?”  싸잔은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사랑에 빠지고 즐거움이 얼굴에 묻어난다. 귀찮기만 했던 후임이 하는 말 (“가끔씩은 잘못 탄 기차가 바른 역으로 데려다 주기도 한다 [sometimes the wrong train will get you to the right station]”)이 옳게도 들리고, 버스 안 애들에게 미소도 지어 준다. 아이들 공도 안 돌려주던 그가.

마침내 일라가 만나자고 연락한다. 관객들이 오랫동안 예상한 대로인데 싸잔은 한없이 들뜬다.  그는 후임이 집으로 저녁 초대한 자리에서 여자친구가 있다고 까지 얘기한다. 그는 직장에서 은퇴도 안 하기로 마음을 바꾼다.

그는  만나기로 한 당일 안 매던 넥타이까지 매고 거울을 보고 또 보고서 출근한다. 그러나…
약속한 식당에 끝내 싸잔은 나타나지 않는다. 화가 난 일라는 다음날 점심 도시락을 쪽지도 없이 빈 통으로 보낸다. 싸잔의 회신. 만나기로 한 아침 화장실에 뭔가를 빠뜨려 다시 돌아 갔는데 거기엔 돌아가신 할아버지 냄새가 남아 있더라는 것. 그것은 바로 자신의 냄새였다고. 늙은 노인의 냄새. 그날 아침 노인이 되었는지 오래 전에 노인이 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그리고 그 식당에 그는 갔었다고. 하지만 일라에게 갈 수 없었다고. 일라는 젊고, 예쁘고, 꿈을 꾸고 있는데. 잠시나마 그 꿈속에 자기를 넣어줘서 고맙다고. 아무도 지난 복권은 사지 않는다며(No one buys yesterday’s lottery ticket).

그 사이 일라의 아버지가 죽는데 아버지 병 수발에 지친 어머니의 말은 뜻밖이다. 아침을 안 먹어 배가 고프다고.  음식 영화라서 그런가? 남편 사망 후의 느낌이란 것이 고작 배가 고픈 것이라고. 사랑도 없는 남편. 그와의 생이란 것이 아침식사 준비, 투약, 목욕,… 아침식사 준비, 투약, 목욕의 반복이었다고. 항상 남편이 죽으면 자신은 어떻게 될까를 걱정했는데 막상 죽으니 배만 고프다고… 그러면서 허탈하게 웃는 어머니.
일라는 도시락 배달원에게서 싸잔의 직장을 알아내어  싸잔을 찾아간다. 그러나 그 자리엔 싸잔은 없고 그의 후임이 앉아있다. 싸잔은 은퇴했다며…
일라는 싸잔에게 편지를 쓴다. 가지 않을 편지인줄 알면서. 그 날 오후 기차로 딸을 데리고 부탄으로 떠난다고. 가끔씩은 잘못 탄 기차가 바른 역으로 데려다 주기도 한다며.

한편 마음이 다시 바뀐 싸잔은 도시락 배달원에게 수소문하여 일라를 찾아간다.  도시락 배달 기차 한 구석에 앉아서, 노래하는 배달원들 사이에 앉아 …배달원들의 노래가 자기 방에서 서있는 일라에게 들리는데 둘의 재회 (싸잔에게는) 를 암시하는 것인지 아닌지 알쏭달쏭하게 만들면서 영화는 끝난다.
Babette’s Feast처럼 다시 한번 음식이 주는 위력이랄까 신비한 작용이랄까 를 그린 영화다. 얼굴도 모르는 남녀가 나이를 뛰어 넘어 교감을 하고 사랑을 한다.  싸잔이 식당에 가지만 젊고 예쁜 여자를 보고 다가 가지 못하는 장면에서는 가슴아픈 동병상련을 느낀다. 자신이 안 나타나는게 그녀의 행복일 것 같아서.

앞서 말한대로 난 이 영화를 두 번 보았는데 처음 볼 때는  바른 결정이라고 생각했지만 두번째 볼 때는 그냥 가슴 아픈게 밀려왔다. 이제 나 자신이 중늙은이가 되어 젊은 여자는 애써 외면하게 되는 나 자신을 보는 것 같아서.

사족으로 여 주인공 역의 Nimrat Kaur너무 예쁘다. 내가 본 인도 여배우, 인도 여자들 중에서 제일 예쁜 것 같다. 시원하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흠 잡을 곳이 없다. 왕족같은 기품도 갖추었다.  이 배우 나오는 영화있으면 또 보고 싶다. 
2013년 개봉 인도 영화. 영어와 힌두어가 섞여 나온다. 인도 또한 할리우드 못지않게 영화 산업이 잘 발달되어 있고 특히 뭄바이를 중심으로 한 힌두어 영화 산업이 잘 발달되어 뭄바이 영화계를 할리우드를 빗대어 Bollywood (Bombay [뭄바이의 옛 이름] + Hollywood) 라고 부른다. 때로 사람들이 인도 영화 산업 전체를 부르는 말로 잘못 알고 있다고 위키피디아는 쓰고 있다 (필자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박준창<변호사, 영문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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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12)
  젊은 여자는 애써 외면 하는 나 자신? 크산티페 2015-01-25 22:26:14
참 씁쓸도 하겠네요....
추천0 반대0
(138.XXX.XXX.53)
  영화 이야기 신이 2015-01-23 20:01:03
항상 좋아요.
직접 보기 전에 읽으며 상상하는 재미도 쏠쏠하지요.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
추천0 반대0
(129.XXX.XXX.223)
  동감입니다 박변 2015-01-24 00:58:46
영화 얘기는 안 보고도 재미있는 것 같아요.
추천0 반대0
(138.XXX.XXX.53)
  중 늙은이는 오달 2015-01-23 17:59:29
젊은 여자를 외면한다?
상 늙은이는 ...

영화 주인공들, 다 외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네요.
외로워도 먹어야 하고...
추천0 반대0
(108.XXX.XXX.25)
  상 늙은이는 박변 2015-01-24 00:57:23
젊은 여자를 더 쫓아가야 한다...인 것 같은데요.
추천0 반대0
(138.XXX.XXX.53)
  새삼 느끼는 건데 김종하 2015-01-23 15:12:08
박변님은 영화 스토리텔링에 천재적 소질이 있으신 거 같아요. 읽고 있으면 진짜 영화가 눈앞에서 상영되고 있는 듯한 느낌... 그래서 다 읽고 나면 영화 다 본 것 같아서 실제 영화는 안 보게 된다는 게 함정 ㅋㅋ (Just kidding)
이번 삽화는 포스터 속 인물들하고 어찌 그리 똑같은지요. 감탄 감탄...
추천0 반대0
(76.XXX.XXX.131)
  또 한번 띄워주시네요 박변 2015-01-24 00:56:00
아무튼 감사합니다
추천0 반대0
(138.XXX.XXX.53)
  선전만 봐서는 그다지 보고 싶단 생각을 못했는데 김삿갓 2015-02-12 04:50:12
박변님의 글을 일고는 영화가 보고 싶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추천0 반대0
(104.XXX.XXX.70)
  우리 나이에 딱 맞는 영화네요. 오늘 집에 가자마자 봐야겠습니다. 변변 2015-01-23 14:00:11
현대인은 하고싶은 일을 할 수도 없고 가고 싶은 곳을 갈 자유도 없어서 매일 일상의 탈출을 꿈꾸지만 거대한 기계같은 현실은 나사못 하나의 일탈도 허락하지 않아서 거의 매일 좌절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영화가 있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좋은 영화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Babette's Feast 는 제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는 대단히 인기있는 영화입니다.
추천0 반대0
(65.XXX.XXX.143)
  근데 일탈이 안 되네요 박변 2015-01-24 00:54:45
잍탈까지는 안 가도 어디론가 한번씩 떠나기라도 했으면...
추천0 반대0
(138.XXX.XXX.53)
  와 이 영화 진짜 재밌겠다 워낭 2015-01-23 11:44:26
좋은 영화 소개해주심을 감사. 본판에 소개 못하더라도 추천 영화 게시판에 자주 올려주세요. 영화 박사님.
추천0 반대0
(74.XXX.XXX.3)
  살인과 폭력 박변 2015-01-24 00:53:13
자극둘만 판치는 영화에 질려았다가 모처럼 괜찮은 영화였습니다. 강추합니다.
추천0 반대0
(138.XXX.XXX.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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