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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서 곪으면 어찌 長城으로 막으랴
김한신의 베이징 르포-세계의 중심 도시임을 느끼다
2015년 01월 21일 (수) 16:15:26 김한신 기자 Editor@Acropoli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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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 세계의 중심으로 건설된 도시, 다시 세계의 중심을 향해 움직이다
중국 상하이를 여성적이라 표현한다면 베이징은 단연코 남성적이라 할 수 있다.  크고 굵은 선, 넓게 직선으로 뻗은 대로들, 바둑판 같은 도시. 그리고 (무엇이든) 엄청난 규모! 엄청난 인파!

그 남성성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 천안문 광장을 방문했다.  천안문 광장은 중국 저녁 TV 뉴스 때 배경 화면으로 나오고 특히 베이징의 날씨 순서에서 꼭 등장하는 배경으로, 한마디로 중국, 베이징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은 필자가 중국 방문에서 꼭 가보고 싶은 장소였고, 천안문 광장은 그 기대를 실망 시키지 않았다. 1989년 천안문 사태를 기억하는 독자들은 (달리 말해 ‘연식’이 좀 되는 독자들은 ^^) 중국인민해방군의 탱크가 그들이 지켜야 할 인민을 향해 돌진하고 급기야 그를 밟고 지나가는 영상을 상기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 민주화 운동의 상징처럼 느껴졌던 그 천안문 광장을 꼭 방문하고 싶었다. 
이 천안문 사태에 얽힌 친구의 이야기가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천안문을 방문하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친하게 지내던 중국 여자 변호사가 있었다.  베이징 대학교 화학과를 나온 친구였는데, 그 친구는 이 천안문 사태 직후 베이징 대학교에 입학했고 급기야 군대 훈련소에서 1년을 보내게 되었다.  중국공산당은 당시 시위를 주도한 베이징 대학생들의 당성이 약해졌다고 사상 무장을 위해 베이징 대학교 신입생 전원을 1년간 시켜 군사 훈련을 시켰다고 한다. 

그 결과로 이 친구를 비롯한 많은 베이징 대학교 학생들은 당성이 강해지긴커녕 중국이 지긋지긋해 결국 중국을 떠났고 화학과  동기들 가운데 중국에 남아 있는 과동기가 한명도 없다고 하니, 이 또한 중국의 시대의 아픔이라 하겠다. 

   
‘무찌르자 오랑캐, 몇천만이냐…”를 노래 부르며 자라고 ‘중공’을 그리고 ‘인해전술을 두려워 하며 자랐던 필자가 마오 주석 사진 앞에서 웃으면서 사진을 찍을 줄 누가 알았으랴!

 천안문에 걸린 마오쩌뚱의 사진은 반공교육을 받은 필자에게는 아직도 낯설다.  필자 세대에게 마오쩌뚱 주석이란, 압록강까지 치고 올라가 거의 통일을 이룰뻔 할 때 인해전술로 밀고 내려와 1.4 후퇴라는 아픔을 남긴, 한국 전쟁의 ‘원수’ 중 하나이며 문화혁명 같은 무지막지한 만행을 저지르고  마오이즘이란 주체사상의 형님뻘 되는 사상을 설파한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필자가 중국에서 만난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마오 주석을 중국 역사에 길이 남을 위인으로 삼고 있다는 것은 일종의 문화적 충격이었다.  어쨌거나 중국을 통일했고, 마오 주석이 아니었으면 중국은 더욱 부패한 사회였을 것이라는 생각, 그리고 그의 과오는, 업적에 비해 용서해 줄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임을 확인할 때 중국인들과 중국 역사, 사회, 문화에 대해 더욱 궁금해짐을 참을 수 없었다. 

문화혁명을 ‘그땐 그랬지’ 정도로 넘어가는 중국인들의 태도에, 1988년 천안문 사태는 ‘장강의 흐름’을 바꿀수 없는 작은 회오리 정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회오리에 수많은 비참한 인생들이 있었고, 필자 친구의 경우처럼 중국을 등지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지나간 과거는 모두 아름다운 추억이라 믿고 싶은 것일까?

마오 주석의 사진이 걸려있는 천안문 광장에는 이전에는 장제스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천안문의 장소에 지어진 최초의 성문은 자금성을 건설한 명나라의 영락제 시대 1420년에 건설된 ‘승천문’(承天門)이다. 이 문은 1644년의 이자성의 베이징 공격으로 명조가 멸망했을 때 같이 소실되었다. 현재의 천안문은 청나라 때 재건된 것으로, 이 때에 현재의 천안문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즉 천안문은 자금성 ‘Forbidden City’로 들어가는 입구인 것이다.  천안문, 천안문 광장의 규모가 놀라울뿐 아니라 그 광장을 둘러싼 ‘인민영웅 기념비,’ ‘마오 주석 기념관,’ ‘인민대회당,’ ‘중국 국가 박물관’ 등이 이곳이 중국, 베이징의 중심임을 알려준다.  천안문 광장에는 천안문과 마오 주석 사진만 있는 줄 알았던 필자에게는 큰 수확이 아닐 수 없었다.

자금성 - 9999개의 방. 그 옛날 우리 조상들은 규모에 기가 죽었을까?
자금성은 천제 (하느님)이 아닌 인간으로서 가장 많은 방을 지을 수 있었던 황제의 집으로 9,999개의 방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실제로는 8,000여개의 방이라고도 하는데, 아기가 태어나서 하루에 한 방씩 잔다면 모든 방에서 다 자려면 27살이 된고 한다.  필자가 계산한 것은 아니고 여행 안내자의 소개다.  뭐 단순히 9,999/365 하면 27.3945…이렇게 나오니 맞겠거니 한다. 어쨌거나 그 규모는 직접 보지 않고서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여기 저기 들르지 않고 천안문에서 곧장 북쪽으로 걸어서 북문으로 나오는데 2시간 이상 걸리는 규모니 상상에 맡긴다. 

관광객으로 지친 다리를 쉬느라 석조 난간에 걸터 앉아 어마 어마한 자금성을  올려도 보고 내려다 보니 문득 수백년전 이 자리에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내디디며 찾아왔을 우리네 선조 사신들의 모습이 눈 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21세기에 관광객으로 방문해도 그 규모에 놀라는데 조선에서 몇달을 거쳐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산과 강을 건너 이곳에 도착한 사신들이 자금성 밖에서부터 머리를 조아리고 황제를 만나러 가는 길을 상상하니, 수백년이 지난 지금에도 마음이 짠하다.  매일 조선의 궁전을 보던 사신은 자금성에 도착해 아마 기가 죽지 않았을까?

조상들이 중국 자금성에서 느꼈을 그 느낌이 지금은 없을까?  수십년 전 미국을 방문하거나 이민 온 선배들도 미국의 ‘선진 문명’에 비슷한 느낌을 가지지 않았을까? 최소한 필자가 처음 미국을 방문한 1990년대에 타겟이나 월마트에서 엄청난 물건의 양에 기가 질리고, 혹은 차로 달려도 달려도 평지가 펼쳐지는 광활한 넓은 대지에 기가 질린 적이 있었음을 기억한다.  ‘크기’는 의식하지 않아도 부지불식 중에  사람을 주눅들게 만들 수 있는 것 같다.

바둑판 같은 계획 도시 – 그 속에서 찾은 먹자 골목
베이징 지도를 들여다 보면 참 보기 편하게 계획적으로 설계된 도시임을 금세 알 수 있다.  거의 모든 길들은 직선으로, 그리고 작은 사각형 밖에 큰 사각형, 그 사각형들을 가로 세로로 지르고 환상으로 감싸고 지나는 도로들.  간자체(한국서 배운 한자가 번자체고 중국에서 약자체로 만든 것이 간자체다)만 조금 더 익숙해지면 여행자도 스스로 운전을 해도 될 수준인 것 같다.  물론 사람과 자동차들이 뒤섞인 복잡한 골목을 들어가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그런데 그 뒷골목으로 들어간 것이다! 다행이 걸어서.  일정이 변경되는 통에 반나절 시간이 나서 스스로 중국을 탐험해 보기로 했다.  중국어를 못하면서 안내자 없이 호텔 밖으로 혼자 길을 나선다는 모험을 택한 것이다.  구글 검색이 않되는 지역 특성상 여기 저기 여행 블로그들을 뒤진 후 숙소를 나섰고, 근처의 먹자 골목을 찾을 수 있었다.  인터넷 세상이 좋긴 하다.  그리고 그 먹자 골목에서 생전 처음보는 다양한 음식들을 볼 수 있었다. 음식이라 하지만 아직 용기가 부족해 음식을 음식으로 대하지는 못했으나 사진을 찍어 왔으니 대신 감상해 주시라.  전갈 꼬치다! (고백하건데 먹을 용기는 없었다)

   
전갈꼬치

만리장성 – 장성은 적을 막지 못한다
만리장성은 정말 만리일까? 10리가 4km라고 배웠으니 10,000리이면 대략 4,000km일 것이다.  실제 길이를 찾아보니 그 통계도 여러 곳에서 여러 수치를 보여주는데, 2012년 중국 국가문물국 발표에는 21,196km로 약 4 .2만리가 된다.  아마도 진시황제가 계획했을 때 길이가 만리였다고 하는데, 중국인들은 만리장성이 아닌 장성이라고 부른다.  만리던 4만리던 간에 길긴 무지하게 긴 성곽임은 분명하다.  다행히 베이징에서 1시간 거리에도 만리장성이 있다고 해서 길에 올랐다.  중국까지 갔는데 만리장성을 보고 가야겠다는 다부진 각오로.
“만리장성을 밟아보지 않은 사람은 진정한 장부라 할 수 없다”라는 마오쩌뚱의 시가 만리장성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 만리장성을 밟아본 필자는 진정한 장부인가? 갑자기 수학 명제의 ‘역’, ‘이’, ‘대우’가 생각나며 머리에 쥐가 나기 시작한다….

   
   
만리장성

아무튼 만리장성은 험한 산세에 길고 끝이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험한 산에 인간의 힘으로 수만리의 견고한 성을 쌓았다는 것은 정말 경이로운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돌을 지고 날랐을 수많은 필부들에게는 어떠한 고통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을, 그리고 수많은 아픔을 간직한 채 세워졌을 그 ‘장성’이 과연 그토록 막으려 했던 북쪽의 적들을 막아내지 못했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외적을 막기 위한 장성도 철책도 아닌 우리 자신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안에서 곪은 사회, 나라는 어떠한 장성으로도 외적을 막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아무튼 장성은 정말 길고 험하다.  장성 오르다가 숨차서 죽는 줄 알았다.

비교적 일정이 자유로웠던 출장에서 발견한 ‘세계의 중심’으로 계획된 도시.
두차례의 베이징 출장길은 다른 출장에 비해 비교적 일정이 자유로운 편이였다. 특히 그 중 한번은 컨퍼런스 참석이어서 참석자들과 단체로 ‘관광’ 일정을 가질 수 있어서 이곳 저곳 들러볼 수 있었다.  역시 투자한 시간만큼 많은 곳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특히 서태후가 재건했다던 이화원에서 마지막 밤을 지내면서, 베이징은 중국인들이 엄청난 노력과 땀으로 세운 계획 도시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필요하다 생각하면 호수도 파고 산에 성도 세우고 인공 산도 세우는 중국인들.

자금성에는 인공으로 만든 산이 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누각이 그 위에 위치하고 있다.  베이징은 정말 평평한 곳이어서 산도 인공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베이징은 정말 잘 계획된 도시고,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자신감이 느껴지는 도시였다.  그리고 21세기 중국이 정말 세계 중심이 될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베이징은 정말 크고 장대하였다.

김한신<서양사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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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16)
  수학 명제의 ‘역’, ‘이’, ‘대우’ 혜원 2015-01-29 06:10:17
‘역’, ‘이’, ‘대우’의 한자표시는?
추천0 반대0
(76.XXX.XXX.39)
  저한테 물어본거.... 김한신 2015-01-29 15:34:33
아니죠? ㅎㅎ
추천0 반대0
(175.XXX.XXX.238)
  역시 중국은 양민 2015-01-23 22:33:38
대륙 스케일이지요?! 자금성 짓느라 길에 물을 뿌려 얼려서 돌을 밀고 내려 왔다든데...ㅋ
추천0 반대0
(108.XXX.XXX.12)
  그보다 더한 것도 했을것 같아요 김한신 2015-01-29 15:34:08
곳곳에 인공 호수 인공 산 만든 것을 보면....
추천0 반대0
(175.XXX.XXX.238)
  역이대우 ㅋㅋ 이상희 2015-01-22 02:57:04
그 와중에 역-이-대우를 생각하는 글쓴이의 사차원 머리에 감탄합니다! 여행기 또 기대합니다.
추천0 반대0
(138.XXX.XXX.67)
  태어나서 첨으로 김한신 2015-01-22 16:28:38
사차원이라는 '칭찬'을 듣는군요. 칭찬 맞죠? (긍정적 사고~)
추천0 반대0
(38.XXX.XXX.58)
  자금성 오달 2015-01-21 14:49:23
중요 건물 이름 마다 만주어로 작은 현판이 있지만
아무데에도 설명이 없더라. 오늘의 중국 기본틀을 만들어준
청 건륭제, 강희제가 여진족 출신이라는 사실을
오늘 중국인들은 굳이 알고싶지 않겟지.
또하나, 영어로 된 안내판이 American Express카드 회사 후원으로
제작되었다지. 근데 문제가 되니까 그 부분만 살짝 가렸다고.
그런데 사진으로 자세히 보면 지운 부분이 나온다나.
추천0 반대0
(108.XXX.XXX.241)
  역시 날카로운 눈매 김한신 2015-01-22 16:27:43
어찌 그리 자세한 것들을.....ㅎㅎ
추천0 반대0
(38.XXX.XXX.58)
  마오 쩌둥은 배를 타고 대만으로 필사적인 탈출을 하는 장개석을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지만 살려줍니다. 왜냐하면, 장개석이 탄 배에는 중국 왕실의 보물 수십만 점이 변변 2015-01-21 12:20:15
함께 타고 있었기 때문이고 마오 쩌둥도 감히 고대 중국 왕실의 보물을 모두 수장시킬 용기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장개석이 빼돌린 보물은 루브르 박물관 소장품의 약 두배가 넘는 엄청난 양으로 일년에 5천점씩 전시를 해도 무려 30 년 이상이 걸리는 방대한 양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중국의 손에 넘어갈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여기 함 들어가 보세요. http://news.donga.com/List/3/all/20131103/58644466/1
추천0 반대0
(65.XXX.XXX.143)
  저도 비슷한 내용의 글을 어디선가 읽고 김한신 2015-01-22 16:26:56
아~통 크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추천0 반대0
(38.XXX.XXX.58)
  중국, 가보고 싶은 곳 이종호 2015-01-21 10:57:55
20여년 전 베이징 방문 때가 생각납니다. 만리장성 입구 문 없는 황당 화장실도 기억나고요. 지금은 그렇지 않겠지요? 마오 주석에 대해 과오는, 업적에 비해 용서해 줄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한다는 중국인들의 통 큰 용납과 긍정의 태도는 아직도 과거 인물 평가를 두고 죽일x, 살릴X 해가며 아웅다웅 다투며 한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우리를 돌아보게 합니다.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추천0 반대0
(74.XXX.XXX.3)
  황당하지는 않지만 김한신 2015-01-22 16:26:10
여전히 뭐 그리 가고 싶은 수준은 아니라 물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
추천0 반대0
(38.XXX.XXX.58)
  부럽네 2015-01-21 10:42:05
일정이 자유로웠던 출장이라니... 난 베이징 올림픽 출장갔다가 빽빽한 일정에 자금성 구경을 천안문에서 북문까지 40여분만에 주파하는 기록을 세웠다는...ㅠㅠ 베이징 옆 팔달령 장성도 곤돌라 타고 휘리릭... ㅎ
아래 워낭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 역사학도 변호사의 관점 있는 출장기 넘 재밌어요. 나도 담번에는 주마간산 하지 않으리라 다짐
추천0 반대0
(76.XXX.XXX.131)
  역사학도... 김한신 2015-01-22 16:25:18
라 하시면 정말 역사 전공하시는 분들이 화내실듯. ㅎㅎ. 쫑님이 베이징 출장 가셨던 것이 벌써 몇년이 지났는지...그때 받은 마스코트 기념품 아직도 있는데, 시간이 참 빨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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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XXX.XXX.58)
  학구적 여행가 김한신 변호사 워낭 2015-01-20 23:24:06
변호사라는 건조하기 쉬운 직업을 수행하면서 이렇게 역사적 감수성을 유지하는 여행을 한다는 것이 더없이 멋져 보입니다. 한번의 여행도 깊고 지식이 되는 여행으로 몸과 머리로 담아 오는 필자의 여행기는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과 교훈을 줍니다.
추천0 반대0
(23.XXX.XXX.229)
  건조하긴 해요.... 김한신 2015-01-22 16:22:59
역사적 '감수성'이라 표현하시니 부끄럽기도 하고 기분이 up 되기도 합니다. ㅎㅎ.
추천0 반대0
(38.XXX.XXX.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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