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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레가토’를 찾아서
[이상희의 사람과 세상] 놓아줘야 이어지는 게 어울려 사는 비밀인 것을
2015년 01월 08일 (목) 12:51:06 이상희 기자 acroedito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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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서 레가토(legato)는 음이 끊어지지 않고 고른 소리로 이어지게 연주하는 것을 말한다. 노래를 부르거나, 입으로 부는 관악기나, 활로 현을 긋는 현악기에서는 레가토가 가능하다. 숨을 멈추지 않고 계속 내쉬면 되고, 활을 현에서 떼지 않고 계속 그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악기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레가토가 힘들다.

현을 망치로 두드려서 소리를 내는 피아노는 한 음 한 음이 끊어질 수밖에 없다. 피아노에서 어떻게 레가토를 칠 수 있을까? 한 음을 치고 그 다음 음으로 이어지는 듯하게 하려고 나는 고심했다. 페달을 누르면 여러 음이 뭉개지기 십상이었다. 레가토처럼 들리게 하려고 음을 꾹꾹 눌러서 다음 음으로 이어지도록 했다. 다음 음을 치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지게 하려고 안 놓았다. 그런데 아무리 꾹꾹 눌러도 이어지지 않았다. 고른 음을 내려고 하는데 여기저기서 툭툭 튀는 소리가 났다.

피아노를 배울 때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은사님은 피아노를 가르치면서 인생을 가르치셨다. 그 중 잊을 수 없는 교훈은 레가토에 대한 가르침이었다. 레가토를 치느라 고심하는 나를 보다 못한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피아노에서 레가토는 환상일 뿐이야. 레가토가 아니지만 레가토처럼 들리는 환상. 피아니스트는 레가토의 환상이 현실인 듯이 연주해야 한다. 이어질 수 없는 음들이 이어지는 듯이 들려야 해. 그러려면 음을 붙들고 있으면 안 된다. 이으려고 하면 안 되고, 놓아야 돼. 놓아야 이어진다."

가장 그럴 듯한 레가토는 적절한 순간에 이전 음을 놓아주어야 한다. 적절한 순간 보다 일찍 놓으면 스타카토처럼 끊겨서 들린다. 그보다 늦게 놓으면 두 음이 뭉개지고 겹쳐서 고르게 이어지지 않는다. 이전 음을 놓아주어야 하는 적절한 순간이 언제인지는 피아노를 치는 사람만이 알 수 있다.

레가토에 대한 선생님의 설명을 듣던 나는 아득해졌다.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비밀을 터득한 느낌이었다. 개미나 벌처럼 서로 유전자가 복제된 '클론'인 무리에서는 생식을 하는 것이 여왕개미나 여왕벌 하나이기 때문에 모두 같은 유전자를 나누고 있다. 나의 유전자가 복제된 것이 너이고, 너의 유전자가 복제된 것이 바로 내가 된다. 내 이익을 찾는 것이 곧 너를 위한 것이고 집단을 위한 것이다. 나와 너 사이는 구분 없이, 온전히 이어져 있다.

그런데 사람은 이렇게 온전히 이어져 있는 관계를 이룰 수 없다. 친구이든 애인이든 우리는 서로 이어져 있지 않다. 가족과 친족 역시 유전자를 어느 정도 공유할 가능성이 생판 남보다 단지 조금 높을 뿐이지 이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무리 생활에서는 ‘내가 곧 너’가 아니고, 내 이익이 곧 너의 이익이 아니며 집단의 이익으로 곧바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어떤 때는 내 이익을 포기해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내 이익을 포기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것은 내가 아닌 '너'를 놓아주는 일이다.

본질적으로 이어져 있지 않은 사람들끼리 우정을 나누고 사랑을 하고 관계를 이어 가려면 적절한 때에 서로를, 그리고 자신을 놓아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적절한 때가 언제인지는 나 자신만이 안다. 우리는 올해에도 많은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고르게 음율이 이어지는 연주를 할 수 있도록 적절할 때 놓아주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이상희 (고고미술사 85, UC 리버사이드 교수) *LA 중앙일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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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12)
  감사합니다. 이국재 2015-01-17 04:19:01
레가토 배우던 중 또 하나를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추천0 반대0
(223.XXX.XXX.20)
  멋진 글입니다. 만인이 읽어 양민 2015-01-11 19:28:48
볼 수 있도록, 퍼다 나릅니다. 또 기대합니다.
추천1 반대0
(108.XXX.XXX.12)
  든든한 팬 이상희 2015-01-11 20:58:06
이렇게 든든한 팬이 되어주시니 어깨에 힘이 들어갑니다. ㅋㅋ 감사합니다!
추천0 반대0
(138.XXX.XXX.192)
  let go의 지혜 오달 2015-01-10 14:46:18
let go의 지혜를 깨치기 전에
let go를 당하는게 인생이지요.
추천0 반대0
(76.XXX.XXX.166)
  이상희 2015-01-11 13:58:06
팽 당하기 전에 놓을 수 있는 현명함을 구해 봅니다.
추천0 반대0
(138.XXX.XXX.12)
  격한 감동 JB 2015-01-09 14:46:31
먹었슴다.
추천0 반대0
(107.XXX.XXX.64)
  이렇게 격한 반응을... 이상희 2015-01-09 15:10:07
이런 격한 반응을 받자옵기 황송하옵니다. ㅋ
추천0 반대0
(138.XXX.XXX.154)
  피아노 치는 미모의 인류학 여교수 워낭 2015-01-08 13:31:34
영화 제목이네! 이 교수의 문장 자체가 레가토네!
추천0 반대0
(74.XXX.XXX.3)
  영화 찍습니다... 이상희 2015-01-09 09:49:14
영화로 만들까요? 그럼 피아노 치는 인류학 교수 역할을 맡을 배우를 섭외해야겠습니다. ㅋㅋ
추천0 반대0
(138.XXX.XXX.17)
  캬~ '레가토'가 삶 속으로... 김종하 2015-01-07 20:05:34
피아니스트이자 인류학자인 필자가 던지는 새해 화두!
추천0 반대0
(76.XXX.XXX.131)
  화두를 계속 이어나가야...? 이상희 2015-01-09 09:37:16
새해 화두를 던졌으니까 그 다음으로 이어지기 위해 한번 모여야하지 않을까?
추천0 반대0
(138.XXX.XXX.17)
  일단 놓아야 ㅋ 2015-01-10 09:37:19
2월에 다들 함 보자
추천0 반대0
(162.XXX.XXX.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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