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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을 가르치는 '사탄'
[이상희의 사람과 세상] 믿던 세계관이 흔들릴 때의 두려움
2014년 11월 19일 (수) 04:31:01 이상희 기자 Editor@Acropoli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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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프란치스코 교종이 진화론과 빅뱅이론을 수용한다는 입장을 발표하자 사회 곳곳이 술렁거렸다. 그 중에서 특히 나의 눈에 띄는 반응은 동일업종 종사자라고 할 수 있는 과학자들에게서 나왔다. 과학적이고 엄격한 검증 과정을 걸쳐 입증된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지동설을 생각한다. 지동설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학설이다. 지구를 중심으로 천체들이 돈다고 주장하는 천동설이 정설이었던 중세 유럽에 몇몇 과학자들이 사실은 지구가 돌고 있다는, 천동설에 반대되는 가설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코페르니쿠스는 지동설을 낸 지 얼마 안돼 죽었으며 무서운 것이 없었던 갈릴레오는 종교재판에 부쳐져 죽도록 고생을 했다. 하늘이 움직인다고 생각하든 땅이 움직인다고 생각하든, 그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종교재판에 부쳤을까?

그렇지만 지동설이 가져온 파장은 엄청나게 컸다. 천동설은 하늘이 움직인다는 단순한 주장이 아니었다. 천동설이 지지하는 세계는 움직임이나 변화가 부정적으로 보여지는 세계, 동적이기보다는 정적인 세계였다. 이상(이데아)은 그 자체로 완벽한 제자리를 찾았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인다는 것은 완벽한 제자리를 아직 찾지 못한, 미비하다는 뜻이었다. 아마도 중세의 정착 농경생활과 딱 들어맞았을 것이다. 인간은 창조된 세계에서 가장 완벽했고, 그 인간이 살고 있는 지구 역시 완벽했다. 그 완벽한 지구는 제자리를 지키고 있고 해와 달과 별들은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천동설이다.

따라서 천동설에 정면으로 맞선 지동설은 단순히 지구가 움직인다는 주장에서 끝나지 않는다. 지동설의 밑바탕에는 '세상의 중심'인 인간이 사는 지구가 완벽하지도 않고 우주의 중심도 아니라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다. 중세의 세계를 뒤흔들어 놓을, 신에게 감히 도전하는, 매우 무섭고 위험했던 생각이었다.

진화론 역시 마찬가지이다. 진화론의 배경에는 지동설도 힘을 보태주었다. 인간이 살고 있는 땅이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생각은 인간이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인간이 살고 있는 땅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갈릴레오에게 종교재판이 열렸듯, 인간은 만물의 중심이 아니라는 다윈에게도 또다른 형식의 종교재판이라고 할 무수한 논쟁과 비판이 뒤따랐다. 지동설에서 흔들리기 시작했던 중세의 세계관은 다윈의 진화론으로 뿌리부터 흔들리게 됐다.

 다윈 스스로가 '종의 진화' 원고를 써 놓고도 상당한 시간을 두고 망설였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이 만물의 중심이라는 생각에 도전을 던지고 내세워진 대안은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것,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 따라서 '종' 역시 변한다는 것이다. 굳게 믿고 있던 세계관이 뿌리째 뒤흔들린다는 것은 원초적인 두려움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교수님은 (진화론을 가르치는) 사탄이래요. 수업도 듣지 말고 아예 가까이 가지도 말랬어요"하던 학생의 말을 듣고 젊은 교수였던 나는 마치 중세 시대 드라마를 보는 듯 경악했었다. 그러나 10년도 지난 지금은 긍휼한 마음으로 그렇지, 두려울 만도 하다고, 그렇지만 같이 공부해 보자고 달랜다.

이상희<UC리버사이드 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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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7)
  자신이 거부하는것도 문제인데 최응환 2014-11-29 20:25:56
남들도 못배우게 아예 가르치지 못하게 하는 사람들도 많으니 어떻게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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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XXX.XXX.219)
  이 교수님 글을 읽으니 대학 때 박성래 교수에게서 들었던 과학사 수업이 갑자기 생각나네요. 변변 2014-11-19 07:48:45
박성래 교수는 그당시 몇안되는 [과학사] 교수로, 한번에 수강신청자가 500 명이 넘을 정도로 유명했습니다. 그런데 학기가 끝날 쯤 이분 말씀이[과학사] 공부하면 딱 굶어죽기 좋다는 이야기를 해서 다소 의외였던 기억이 납니다. 뭐든 좋아서 해야하는 것 같습니다.
추천0 반대0
(65.XXX.XXX.143)
  밀려서 해도 합니다 이상희 2014-11-19 18:22:47
좋아서 하면 제일 좋지만, 저처럼 밀려서 해도 그럭저럭 하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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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XXX.XXX.129)
  졸지에 2014-11-18 18:56:19
사탄(?)이 된 필자, 무척 억울하겠습니다.^^ 대학생이 진짜로 그런 말을 했다니 깜놀.
추천0 반대0
(76.XXX.XXX.131)
  대학생 이상희 2014-11-19 18:24:00
대학생이니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겠죠? 한국어, 영어 두가지 버전으로 모두다 들었으니까 아마 오래 살게 될 것 같습니다. ㅋ
추천0 반대0
(169.XXX.XXX.129)
  고정관념 워낭 2014-11-18 11:36:04
한번 입력된 고정관념을 수정하는 것은 참 힘들지요. 거기에 신앙적인 요소까지 가미되면 더욱 어렵지요. 마지막 문장에서 필자의 넉넉하고 여유있는 마음씨를 읽습니다.
추천1 반대0
(74.XXX.XXX.3)
  산-수-공중 이상희 2014-11-19 18:25:28
산전-수전-공중전까지 겪고 나니 배째라(?)는 심정이 됩니다.
추천0 반대0
(169.XXX.XXX.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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