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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서 친구 만들기 쉬운가요...동문회로 내 인생 더 풍성해져"
이원영의 인물 오디세이 2 – 2005년 총동창회장 김영 동문
2009년 06월 03일 (수) 21:58:28 이원영 기자 Editor@Acropoli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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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 동문(2005년도 남가주 총동창회장, 수의대 63)을 만나면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왜 그럴까. 그의 표정이 그렇고, 그의 말이 그렇고, 그의 생각이 그렇다. 그래서 그를 만나는 사람들은 그에게서 ‘평화’를 전염 받는다. 느릿한 말투, 항상 미소를 머금은 얼굴, 그의 얼굴에선-죄송스런 표현이지만-아기 동자의 얼굴이 오버랩된다.
그의 해맑은 얼굴은 어쩌면 달관과 해탈, 그리고 낙천적인 성격이 어우러져 나오는 빛깔 때문이 아닐까.
2005년 남가주 동창회장을 맡아 동창회를 활성화 시키는데 남다른 애정을 쏟았다. 그가 취임하면서 관악패의 첫 연극 공연이 이뤄졌으며 합창단 창단의 기초를 닦았다.
회장직을 마친 다음해 합창단 이사장을 맡아 월트 디즈니홀에서 첫 공연을 성황리에 끝내 지금의 자랑스런 합창단의 초석을 닦았다.

세 아들 공립 고교∙∙∙하버드∙예일 나와

현재 샌퍼낸도 밸리의 카노가 파크에서 ‘Roswinn Pet Hospital’을 운영하면서 노스리지에서 20년째 같은 집에 살고 있다. 주말이면 부인(김양자, 동갑)과 함께 등산이나 낚시를 떠나는 자유인이다. 아들이 셋 있다. 큰 아들 데이빗은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현재 연방환경청 검사로, 둘째는 예일과 UC샌프란시스코를 거쳐 UCSF의대 교수로, 세째도 하버드 로스쿨을 나와 샌프란시스코에서 집단소송 전문 재판 변호사로 활약하고 있다. 듣는 이들의 입이 떡 벌어지는 자식 농사다.

   
후배가 부르는데 안 올 수가 있냐며 주말에 기꺼이 LA한인타운을 찾은 김영 동문. 그와 얘기를 나누면서 시종 동문사랑, 후배 사랑이 넘쳐났다.

돈을 많이 들이며 아이들을 사립학교에서 공부시켰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일부러 공립학교를 보냈다”고 했다. 이유인 즉, 그래야 사람을 더 알게 되고, 세상을 더 폭넓게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 였다고 했다.
인터뷰 동안 김 동문은 독서, 여행, 종교, 등산, 동문회, 문화, 인생 등 다양한 분야에서 거침없는 소회를 풀어 놓았다. 3시간의 밀착 인터뷰는 ‘인간 김영’을 제대로 알게한 귀중한 시간이었다. 

고교 졸업후 한 때 교사도

-오늘 LA에서 볼 일이 있으셨나 보죠?
“아니, 그냥, 아크로 기자가 보자고 하는데 안 내려올 수 있나요, 요새 아크로 기자 파워 막강하던데요…하하하…동문과 후배들을 위하는 일이라면 천리라도 가야죠.”

-아이쿠, 그렇게 일부러 내려오시란 말씀은 아닌데,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나도 후배가 불러주니 반가워서 즐거운 마음으로 내려 왔어요.”

-회장 하실 때 접하지 못한 후배들은 선배님을 잘 모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자질구레한 것까지 여쭤보겠습니다.”
“하하, 그렇게 하세요.”

-요즘 젊은 동문들은 인터넷을 많이 활용합니다. 인터넷은 얼마나 이용하세요?
“하하..뭐 여행갈 때 날씨 사이트나, 비행기 예약 같은 거 할 때 주로 해요. 이젠 앞으로 아크로 때문에 더욱 자주 이용할 것같아요.”

대학서 전과 안돼 전화위복

-우선 미국 오기 전 한국에 계실 때 얘기 좀 해주세요. 고향은 어디세요?
“전남 해남이에요. 목포 사범고를 졸업하고 한 때 초등학교에서 3년 정도 선생 노릇을 했어요.”

-아, 옛날에는 고등학교만 졸업하고도 교사를 할 수 있었다고 하던데, 그랬군요. 그런데 대학은 어떻게 가실 마음이 생기셨어요?
“주위에서 서울대를 일단 들어가면 원하는 과로 전과(전공과를 바꿈)를 해도 된다는 말에 솔깃 했어요. 그래서 수의사를 한다는 생각 전혀 없이 당시 농대 수의대에 입학하게 됐죠. 그래도 내가 수석입학했다고, 하하하.”

-그럼 입학 후에 전과를 시도 하셨나요?
“그럼, 1년 후에 농경제학과로 전과를 하려고 했는데 그쪽에서는 받아주겠다고 하는데 수의과에서는 반대를 하는거야. 그래서 뜻을 이룰 수가 없었지. 지금 생각하면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전화위복? 전과를 하지 않았던게 너무 잘된거지. 전과했으면 직장이나 고시를 봐서 벌써 은퇴하고 놀고 있겠지. 지금처럼 아직 일할 수 있었겠어? 돌이켜 생각하면 그때 전과가 안된 것이 나한테는 너무 다행이야.”

공군서 군견 담당 수의 장교

-졸업후에는 뭐 하셨어요?
“공군에 수의 장교로 갔어요.”

-수의 장교요? 그것도 공군에요? 수의 장교란 것이 이전부터 있었나요?
“그 때까지는 몇명 없었어요. 대부분은 식품 위생관리 쪽에 근무를 했죠. 그런데 내가 수의장교로 갔을 때 김신조가 침투한 그 당시였거든요. 그래서 온갖 시설물에 경비가 강화됐어요. 주요 시설같은 데는 군견을 배치했는데 바로 그 군견을 위한 수의 장교가 필요했던 것이죠. 나는 수원 공군 기지에 배치돼 그곳의 경비 군견 수의사 역할을 하게 된거죠.”

-아~, 그렇군요. 군 생활은 편하게 하셨겠네요.
“하하..솔직히 편하게 했죠. 제대를 하려는데 윗 분이 자꾸 군에 남으라고 붙잡았는데, 뭐 수의 장교를 해서 어디까지 가겠어요? 군견 대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하하, 그래서 복무 기한 마치고 바로 제대를 했지요.”

-제대 후에 수의사 오픈을 하셨겠네요?
“그렇죠. 그런데 그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개 수의사는 별로 수요가 없는 시절이었어요.  돈벌이가 안되는 거죠. 그래서 나는 개를 전공했지만 젖소 쪽으로 바꿔서 광주에서 오픈을 했어요.”

- 와, 정말 재밌네요…오픈해서 잘 되셨나요.
“아, 정말 잘 됐어요. 돈도 많이 벌었어요. 그런데 나는 원래 돈 버는데는 별로 취미가 없어요. 내 인생의 우선순위를 따지자면 돈은 상위권이 아닙니다. 돈은 잘 벌었지만 원래 내가 수의사를 꿈꾼 것도 아니고, 고시를 볼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수의사를 그만 두고 고시공부를 했어요.”

   
김영 전 회장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아크로 편집장 이원영 동문. 김영 동문은 평생 이렇게 즐거운 취조(?)를 당하긴 처음이라고 했다.

행시 합격해 복지부 사무관으로

-돈을 잘 버는 걸 포기하고 합격 여부도 불투명한 고시에 뛰어든다는 것이 참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 같은데요.
“글쎄요…그런데 난 항상 자신감을 갖고 살려고 해요. 난 할 수 있다, 뭐든지 도전하면 해낸다는 그런 자신감을 갖고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당시 몇백대 일의 경쟁률이 있었지만 1년 반 공부해서 행정고등고시(14회) 합격했습니다. ”

-야, 정말 대단하시네요. 어디서 근무하셨습니까?
“수의과 나왔다고 보사부 장관이 끌어가데요. 그 바람에 보사부에 근무하게 됐지요. 식품위생과 사무관으로 일하게 됐는데, 그때 끗발이 보통이 아니었어요. 나는 그때 독과점 기업 가격 산정을 담당했는데 기업들 로비가 엄청 났어요.”

-접대 유혹도 많이 받으셨겠네요.
“생각해 보세요. 칠성사이다가 한달에(?) 몇천만병 팔리는데 예를 들어 가격을 1원만 올려도 그게 얼맙니까.  그러니 그 기업에서 목을 걸고 공무원을 회유하려고 하지 않았겠어요. 그 때 내가 딴 마음 먹었다면 아마 지금끔 감옥에 갔다와서 폐인이 됐거나, 큰 부자가 됐거나 했겠죠. 하하하,  솔직히 술은 좀 얻어 먹었지만 돈 유혹은 다 뿌리쳤어요.”

-그렇게 끗발도 있고 장래가 보장된 그런 공직 생활을 왜 그만 두셨습니까.?
(이 질문에 김 동문은 웃으며 자세한 얘기는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아크로 기자의 집요한 질문에 조각조각 답했다. 조합하면 이렇다.)
“뭐, 박정희 정권 유신하고…김대중 미운 털 박히고 그럴 때 아닙니까. 내가 전라도  목포 출신이지 않소. 대충 짐작이 되지 않아요? 공직에도 정치적인 바람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지요. 비전이 보이지 않고, 심리적 압박감도 많이 느꼈지요. 아이들 장래도 걱정되고..무엇보다도 난 자유롭게 살고 싶은 맘이 컸고…뭐, 쉽게 합격한 거니까 쉽게 버릴 수 있더라고요.”

출신 지역 한계 느껴 사표, 미국행

-그럼 공직을 그만 두고 미국에 오시게 된 계기는 언제 입니까.
“76년에 미국 방문할 계기가 있었어요. 미국 FDA와 같은 곳을 방문하고 견학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그 때 처음 미국에 와서 수의사들의 위상을 보고 마음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참 존경받는 직업이더군요. 나도 미국에서 수의사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군요. 그래서 한국에 들어온 다음에 미국행을 결심했죠. 당시 아내가 간호사라서 이민 비자가 쉽게 나왔어요. 고심끝에 사표를 내고 우여곡절 끝에 79년 이민을 오게 된거죠.”

-평소 미국에 대해 관심이 있었습니까.
“어릴 때부터 미국광이었죠. 중∙고등학교 때부터 웨스턴 영화를 거의 다 보고, 영문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읽었어요. 그 책에 보면 unforgettable characteristics 라는 코너 가 있었는데 그걸 읽으면 미국 생활이 다 보이더라고요. 그러다보니 영화와 책을 통해서 미국 생활을 많이 간접경험하게 되고, 아, 나도 이런 나라에서 한번 살고 싶다, 그런 생각을 품었던 것 같아요.”

-책을 많이 읽으셨나봐요?
“그래요, 여러가지 책을 닥치는대로 읽는 편이었어요. 특히 철학책을 좋아해서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칸트 이런 책을 탐독했어요. 행시에 합격한 것도 아마 책을 많이 읽었던 것이 큰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다독을 하는 편인데 행시 수험서를 읽으니까 쑥쑥 들어오더라고요. 당시에는 문리대, 법대 출신들이 판을 치는 행시에서 이과 출신인 내가 공부 1년 반만에 합격한 것은 순전히 독서 탓일 겁니다.”

 -미국 와서 바로 개업하셨나요?
“수의과 병원에서 한 5년 정도 일하다가 87년쯤 지금 위치에 개업을 했지요.”

-그동안 30여년 수의사 생활을 하셨는데 어떻습니까.
“나는 정말 내 직업에 대해 만족합니다. 지금도 여러가지 의료기술을 접목시키는 게 너무 익사이팅하고 도전적입니다. 사람이 무언가 자꾸 호기심을 가지고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이 그리 즐거울 수가 없어요. 직업을 즐기는 것으로 갖는 것이 참 행복인 것 같아요.”

-그럼 자제들에게 수의사를 권하지 그러셨어요?
“하하하…아, 이놈들이 어릴 때는 수의사를 하겠다고 하더니, 머리가 크더니 생각이 달라지더라구. 뭐 자기 인생인데 내가 어쩌겠어”

-취미생활은 어떻습니까.
 “뭐 취미랄 건 없고요. 그냥 주말마다 아내와 함께 등산하고, 낚시하러 다닙니다.”

-골프는 안치세요?
“하하하…아직 골프는 못배웠어요. 지금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꽉차는데 골프 배울 시간이 언제 있겠어요?”

부부는 함께 취미생활 가꿔야

-여행은 항상 부인과 함께 가세요?
“당연하죠. 참 미국생활이 좋은게요, 아내와 함께 컴패년(companion)이 될 수 있는 조건이 너무 좋다는 거죠. 늙을수록 부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취미를 개발하는게 참 중요한 것 같아요. 늙어서 부부가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건 참 좋은 것 같아요.”
(김 동문은 틈만 나면 여행을 한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당신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느냐는 말도 듣는다고 했다. 버는 걸 저축하기 보다는 그냥 쓰는 타입이라서 그런 말을 듣는단다. 툭하면 몇주씩 가게를 닫고 여행을 떠나는 그를 두고 하는 말이다. 유럽은 한 10번 정도 다녀왔는데 이태리는 지역을 나눠 4번이나 다녀왔을 정도다.)

-유럽 다녀온 사람들은 거기가 거기같고 다 비슷하다고 하는 말도 하던데요?
“진정한 여행을 하려면 공부를 해야 합니다. 지식을 갖고 하는 여행은 매번 달라요.
그 지역, 그 문화 유산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고 가면, 하나하나가 추억이고, 감동이죠. 공부를 하지 않고 겉만 보면 다 비슷하다고 하죠. 여행은 바로 그 시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공감을 해야 진정한 여행이 되는거죠.”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산도 등정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하하, 그건 내 인생에 지울 수 없는 한 장면이죠. 2000년도에 3주 일정으로 아내와 함께 올랐는데 5일을 오르고, 이틀을 내려오는 강행군이었죠. 캠프를 6번이나 쳤고요. 그런 도전하고 고생한 경험은 참 잊혀지지 않고 인생의 큰 자국으로 남아 있어요.” 

   
강아지 환자를 돌보고 있는 김영 동문. 늘상 머금은 미소와 친절함 때문에 지역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유명인사다. 아직도 강아지 치료 신의술을 배우느라 스릴을 느낀다는 열혈 청년이다.

 

“갈수록 발전하는 동문회 자랑스러워”

-동문회 얘기 좀 해주시죠.
“미국에 온 직후인 80년 초반에 동문회에 첫 발을 담궜죠. 그 때만 해도 총동창회라고 해야 40~50명 모일 정도였어요. 나는 수의대 총무를 맡아서 처음으로 동문회에 나갔는데, 지금하고 분위기가 많이 달랐어요. 그 때만 해도 단과대별로 따로 어울리는 분위기가 많았어요.”

-지금하고는 많이 달랐군요.
“수의대 총무라서 할 수없이 동문회에 관여를 했는데 별로 재미가 없더라고요. 그 다음엔 발걸음을 끊었다가 90년대 초반에 수의대 회장을 하면서 다시 참여하면서 지금까지 이르게 됐죠. 갈수록 우리 동문회가 너무너무 발전했어요. 정말 좋은 것 같아요.”

-그동안 동문회 쭉 지켜보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아, 처음에는 이런 데 왜 나오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솔직히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지금와서 생각하니 내가 동문회에서 얻는게 너무 많았어요, 정말 좋은사람들, 재능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내 인생이 더욱 풍성해졌다는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미국에서 어디 친구 만들기가 쉽나요? 그런데 우리는 동창이라는 울타리로 쉽게 친구가 될 수 있잖아요. 얼마나 좋아요. 그리고 해가 갈수록 발전하고, 특히 재능있는 후배들이 동문회를 이어가는 모습을 보니 너무 기쁩니다. 아들이 아버지보다 잘 낫다고 하면 아버지가 흐뭇하다고 하잖아요? 내가 요즘 꼭 그런 기분을 느낍니다. 동창회가 내 인생을 훨씬 더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해요.”

-남가주 회장 하실 때 어떤 게 기억에 남으세요?
“후배들이 그 때 연극 처음 했잖아요? 그것도 동창회 활성화에 너무 큰 도움에 됐던 것 같아요. 그리고 합창단도 생기고…관악연대 덕분에 단과대학끼리 모이는 그런 분위기가 많이 없어지고, 서울대의 integrity에 후배들이 큰 역할을 한 것 같아요.”

-종교생활은 어떠신지요?
“하하, 그 부분은 내가 좀 약하지요. 아내 따라서 성당을 가끔 나가고 있지만 아직은 종교가 나에게 팍 다가오지 않아요. 그런데 조금씩 바뀌고 있어요. 앞으로는 아마 신자라는 소리를 듣게 될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러면 이제는 종교를 갖겠다는 것에 대해 적극적이란 말씀이군요.
“아무래도 나이가 들어가니까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내가 이해가 안되면 안믿는 타입이었거든요. 그런데 그런 말이 있잖아요. 이해하고 나서 믿으려 하면 절대 믿지 못하지만, 일단 믿고 나서는 이해하려 하면 그렇게 된다고 하지요. 그러니까 진리와 믿음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을 요즘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신앙은 인생을 건강하고 쉽게 만들어

-후배들에게 신앙에 대해서 말씀해 주신다면.
“신앙, 종교는 어떤 종류든지 갖는 게 좋다, 종교는 인생을 더욱 편하게, 건강하게(much easier, much healthier) 해준다고 확신합니다. 안 가질 이유가 없죠.

-아참, 이건 꼭 여쭤보고 싶었는데, 자녀들을 어쩌면 그렇게 다 잘 키우셨어요?
“뭐 별거는 없고,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가르쳐 주는데 주력을 했어요. 학교를 꼭 어디를 가야 한다는 걸 주입하지 않고 있는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도록 가르쳤어요. 또 내가 선생을 해봤기 때문에 아이들이 다양한 환경을 경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가 알거든요. 그래서 일부러 공립을 보내서 여러 인종과 섞여 생활하고 그들을 이해하도록 했어요. 온실에서 키우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러니까 저희들이 알아서 좋은 학교를 가더라고요.”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형으로써 한말씀 해주신다면.
“허허, 내가 뭐 할 말이 있나. 굳이 한다면 이런 말을 해주고 싶어요. 서울대 출신 그것만으로도 여러분들의 재능은 prove 됐다., 그러니까 항상 자신감을 가지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자신감이 없으면 인생이 비참해 집니다. 그러나 자신감을 가지면 항상 긍정적이 되고, 어떤 장벽이 닥쳐도 이겨나갈 수 있을 겁니다. 나는 후배들의 재능을 보면서 깜짝깜짝 놀라고 있어요. 충분히 미국에서 성공 인생을 펼 수 있는 탤런트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세상이 정해주는 가치를 좇기 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라고 조언해 주고 싶네요. 그래야 후회없는 인생이 될 겁니다. 나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해 왔어요. 오늘 아크로에 초대해 줘서 정말 고맙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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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14)
  선배님, 처음 뵙겠습니다. 이 경희 2009-06-06 18:47:04
선배님, 83학번 이경희라고 합니다. 제가 동문회에 합류한지가 얼마 되지않아 선배님을 직접 뵙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언제 뵙고 좋은 말씀 많이 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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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XXX.XXX.145)
  보잘 것 없는 내인생을 김영 2009-06-05 12:14:38
보잘 것 없는 내 인생을 이렇게 화려하게 꾸며주신 아크로 편집팀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저에게 과분한 덕담을 해주신 많은 후배님들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살금살금 얘기를 나눴더니 여기에 내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다들어 있네요...좋은 시도를 하신 후배님들을 격려하기 위해 작은 금일봉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기분 좋습니다. 생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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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XXX.XXX.50)
  선배님 잘 계시죠 김성엽 2009-06-05 03:01:24
선배님 안녕하세요 토목 82 김성엽입니다. 언제나 인자한 웃음으로 후배들을 대해주셔서 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다음달에 미국에 가면 한번 찾아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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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XXX.XXX.223)
  선배님, 뵙고 싶습니다. 이상실 2009-06-03 22:35:19
김영 선배님, 건강하시죠? 소리없이 저희 관악연대 후원해주시고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집팀에서 정말 좋은 선배님 인터뷰 하셨네요. 역시 최고의 팀!!
추천0 반대0
(69.XXX.XXX.49)
  비전을 제시하는 지도자! 강신용 2009-06-03 17:29:31
재무국장으로 가까이서 배운 여러가지중에 가장 귀한 것은 회장남으로써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참모가 일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을 많이 배웠읍니다. 합창단, 가족행사, 연극같은 서울대의 놀이문화를 시작하셨지요. 특히, 레익 타호 별장이 불난 것때문에 가슴이
아픔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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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XXX.XXX.18)
  Forever Young 김종하 2009-06-03 16:08:23
김 Young 선배님, 함자 처럼 늘 젊게 사시는 것 같습니다. 부러버요~
추천0 반대0
(12.XXX.XXX.91)
  선배님! 최용준 2009-06-03 12:18:12
선배님의 삶의 철학,그리고 가치관 베푸며 나누는 삶의 모습들이 저뿐아니라 모든이에게
귀감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더욱더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고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선배님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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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124)
  도전정신 부럽습니다 박원득 2009-06-03 11:36:29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습니다. 역시 우리보다 인생을 많이 사신 선배님들의 스토리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
특히나 취재를 위해 투 잡을 뛰고 있는 이원영 동문의 노고에 다시한번 박수를 보냅니다. 짝 짝 짝.....
추천0 반대0
(66.XXX.XXX.245)
  멋있게 사시는 모습 아름답습니다. 제영혜 2009-06-03 08:52:35
항상 많이 베푸시면서 또 즐기시면서 살아가시는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특히 사모님과 등산복 차림으로 산위에서 뵌 모습이 가장 더 멋있었지요. 두번째 아크로의 인물이 되신것 축하드려요.
추천0 반대0
(76.XXX.XXX.220)
  회장님, 고마우신 회장님 정연진 2009-06-03 08:52:17
관악연대가 처음으로 연극무대를 마련하던 2005년 2월 함박웃음 속의 회장님과 함께 찍은 사진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합창단도 창단하시고,..총동창회 회장하실 때 동문회의 활동무대가 크게 넓어졌어요. 생각해보니, 관악연대 몇몇 멤버들이 처음 열었던 사진전도 회장님께서 많이 후원해 주셨어요. 4명의 사진작을 모두 골고루 사주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인터뷰에 귀한 주말 저녁 할애해 주셔서 더욱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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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XXX.XXX.38)
  참 좋은 기획기사입니다. 이경훈 2009-06-03 08:45:19
이렇게 장로선배님과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기가 쉽지 않은데...아크로가 그 대신을 해주니 참 좋습니다. 전에 김영 선배 댁에 가서 선배께서 잡아오셨다는 참치 회를 잔뜩 얻어먹은 기억이 나네요. 이렇게 좋은 기사를 써주신 이원영 아크로 편집장에 대한 존경심을 누를 길이 없습니다. 사방으로 막 삐져나옵니다.....다음을 기대합니다!!!
추천0 반대0
(75.XXX.XXX.83)
  주옥같은 말씀 이충섭 2009-06-03 08:44:17
개인적으로 뵌 적은 없지만, 다음번에는 10분 정도는 빼앗고 싶어집니다. 여행 많이 하신다는 것은 따라해야겠습니다.
추천0 반대0
(38.XXX.XXX.34)
  자신감 배가 김성수 2009-06-03 08:36:06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선배님 가르침대로 더욱 자신감을 갖고 앞일을 헤쳐 나가겠습니다. 아크로에서도 자주 만나뵙길 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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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XXX.XXX.52)
  김영 선배님 고맙습니다. 김지영 2009-06-03 06:33:01
김 선배님은 말보다 실천이 앞스시는 분입니다. 후배들에게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선배님의 자신감 그리고 인생의 우선 순위를 알고 실천하는 자세 존경스럽습니다. 훌륭한 선배님들의 말씀을 듣는 이런 코너를 마련한 아크로의 편집의도가 돗 보입니다.
추천0 반대0
(24.XXX.XXX.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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