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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비극이라고, 그래도 사랑밖에
[아크로 인문강좌]오달 선생의 '사랑, 그 아픔에 관하여'
2014년 08월 19일 (화) 01:46:17 김지영 기자 Editor@Acropoli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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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원의 별이 된 사랑의 이야기


안현의 아내는 예뻤고 노래소리도 곱고 빼어났다.  그 아내를 몽고 왕족이 빼았아갔다. 
안현은 시인.  세상살이에 어리숙해  과거에 급제를 하고도 10년이 넘어서 지금의 대청도 역참관리로 임용된다.  고려 충렬왕 때, 대청도는 원나라의 왕족이나 귀족의 유배지.  고려인 하급 관리보다는 귀양온 몽고 귀족이 실세인 상황.

원나라 황제 쿠빌라이 칸의 아들이 대청도로 귀양온다. 우연히 안현의 아내를 본 그가 아내를 내놓으라고 한다.  안현 부부는 몰래 배를타고 탈출, 그러나 바다에서 잡힌다. 아내는 끌려가고 안현은 머리가 터진 채 바다에 던져진다. 겨우 살아서 개경에 돌아온다. 

죽었다 살아나서 겨우 몸을 추스리게 되자 그는 떠난다. 아내를 찾아서. 지금의 북경 당시 대도까지 걸어간다. 그의 아내는 이미 거기 없다. 황제의 아들은 벌써 그녀가 싫증이 나서 몽고 귀족에게 하사한다. 이 귀족은 몽고 땅으로 돌아갔다. 안현은 다시 걷는다.  바람에 날리고 모래에 묻히고 그래도 연명한다. 때로는 들쥐를 잡아 먹으며.

몇년, 또 몇년 만에 아내를 데려간 귀족의 영지에 다다른다.  그리고  귀족 부인이 된 아내를 만난다. 서로 말을 주고받을 계제가 아니다. 아내는 귀족 남편에게 고려에서 온 사촌오빠이고 한문을 잘 한다고 소개한다.  그 배려로 그 집의 집사 서기가 된다.

그렇게 또 세월이 간다.  아내보다 설흔이나 위인 몽고 귀족이 죽는다.  아내가 낳은 후계자는 아직 미성년. 그 아이가 성년이 되어야 그 집안이 영지를 다시 돌려받는단다.  아내가 지나갈 때 안현이 혼잣말 처럼 말한다.  “고향의 고모 못에는 연밥이 한참이겠습니다.” 신혼시절 박연폭포 및 고모 못에서 연밥을 따며 채련가를 부르던 기억.

아내를 본 안현의 감회:
“빛과 향기로 엮어진 듯 사랑스런 아내의 눈길을 마주보자 세속에서의 삶은 죽어버리고 시간의 흐름은 멈추었다.  … 시경의 시들이 영원으로 봉인해 버린 사랑의 메아리, 부부의 다정한 눈동자에서 태어나 모든 살아 있는 것들과 하나가 되는 사랑… 시인들이 그려왔던 그 아득한 길 … 젊은 날의 별이 다시 보인다. “

 그러나 아내는 단호하게 말한다. “철새는 날아갔다 돌아오지만 인연은 한 번 끊어지면 다시 잇기 어렵습니다.” 아내는 이미 몽고 귀족 부인으로 어린 아들이 성년이 되어 영지를 돌려받고 가문을 다시 일으키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안현은 다시 그렇게 아내 곁에서 존재한다. 살아있는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고.   먼 옛날 아내가 부르던 채련가를 기억하면서. 

안현의 마음: “요즘도 잠자리에 누우면 그노래가 귓전에 울립니다. 그러면 연뿌리 끊기듯 애간장이 끓고 연밥알인양  눈물이 방울방울 흐릅니다.” 
드디어 아내의 아들이 성년이 되고 몽고 귀족으로 영지를 돌려받는다. 초원에서는 그 축하 잔치가 크게 벌어진다.

그 날 밤…
안현이 본것은:
“황야는 세상 끝까지 뻗어 가지만 그 위에는 억만 년 저런 별이 빛나고 있다… 그러나 그 때 북풍이 말로 표현랄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맹수처럼 응응 대면서 질주해 왔다.  안현은 일수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선 듯 했다.  지평선의 끝에서 끝까지 세계는 온통 모래들이 우수에 찬 외침, 휘어져 신음하는 나무들의 울음, 흩날리는 티끌과 지푸라기들의 슴품으로 가득찼다. “

안현은 아내가 있는 게르로 간다. 그리고 비명 소리. 아내는 죽고 안현은 칼을 들고 서있다.
몽고 귀족의 부인을 죽였으니 당연히 즉결 처분 감이다.  그러나 안현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 안현은 자신의 이야기를 “채련가”라는 글로 남기고 사형을 당한다.  별이 빛나는 벌판, 황야에 뭍힌채로 매장된다. 몽고에서는 최고의 예를 갖춘 사형방법.

시인의 별, 이인화 2010년

   
 맘자욱



2. 폭풍같은 복수, 그것도 사랑일러라.
캐서린은 같은 집에서 자란 히스클리프를 사랑한다. 히스클리프는 아버지가 주어온 검은 얼굴의 집시 고아.  아버지는 친자식처럼 기른다.  캐서린의 친오빠 핸들리는 히스클리프를 미워한다. 아버지가 죽자 핸들리는 히스클리프를 하인으로 만들고 구박한다. 그럴수록 캐서린과 히스클리프,  더욱 사랑하게된다. 황량한 늪지대, 폭풍의 언덕에 있는 고풍의 저택, 그들이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곳은 많다.

폭풍의 언덕 밑에 가장 가까운 이웃에 린튼 일가가 살고있다.  아들 에드가, 딸 이사벨라.  부자고,  캐서린 집안보다 귀족이고.  히스클리프, 검은 얼굴그리고 무식하다.  캐서린은 에드가아 가까워진다.  그리고 결혼을 한다. 히스클리프는 폭풍의 언덕을 떠난다.

삼년후 히스클리프는 부자가 되어 돌아온다. 폭풍의  언덕 저택을 물려 받은 핸들리는 놀음꾼 술주정뱅이. 히스클리프는 그에게 돈을 빌려주고 서서히 그 집을 차지한다. 그리고 이웃집 마나님이 되어 행복하게 살고 있는 캐서린을 찾아온다.

캐서린은 히스클리프를 보자 옛 사랑이 다시 타오른다.  남편 에드가는 원래부터 히스클리프를 싫어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 둘이 부딫치는 것은 필연.  싸움이 붙는다. 문제는 히스클리프가 문약한 에드가보다 훨씬 체력적으로 강하다는 것. 이 싸움의 한 복판에서 캐서린은 히스클리프 편을 든다.  남편이 하인들을 데리고 들어오려하자 문을 잠가버리고 남편을 비웃는다.  “쌈은 느들끼리 해.”

히스클리프의 사랑은 서서히 복수로 변한다.  캐서린의 시누이 이사벨라를 유혹한다. 그리고 둘이 달아나서 결혼을 한다. 이사벨라를 폭풍의 언덕으로 데려온 후에도 이웃에 있는 친정집, 캐서린과 에드가가 사는 집을 못가게 한다.   캐서린의 남편, 에드가의 마음을 후벼놓는다. 이사벨라는 그 감옥과 같은 폭풍의 언덕을 탈출 런던으로  도망간다.

캐서린의 병이 깊어간다. 에드가의 극진한 간호에도 불구하고.  에드가가 교회에 간 사이 히스클리프가 찾아온다.  그가 오기전에 캐서린은 히스클리프와 황야에서 새를 잡던 행복한 기억을 한다. 히스클리프가 오자 캐서린은 “당신과 에드가가 내 가슴을 찢어 놓았다” 말한다.

히스클리프의 대답 :  “당신의 가슴을 찢어놓은 것은 내가 아니라 바로 당신이다.  당신의 가슴이 터지면서 내 가슴도 찢어졌다.  …  나를 죽인 살인자 [당신]는 용서하고 사랑한다.  그러나 당신을 죽인 살인자 [당신], 내가 어찌 용서할수 있겠나?”

그 날 밤 캐서린은 죽는다.  딸 하나를 낳고 두시간 후에…  그녀의 나이 갓 이십쯤 되었을까.
그 후 16년, 그 다음 이야기는 히스클리프의 복수극.  캐서린이 죽기 전에 낳은 딸, 그 딸이름도 캐서린, 그녀가  히스클리프 복수의 중심에 선다.  그녀의  고모 이사벨라가 죽는다.  이사벨라의 아들, 히스클피프의 아들이기도 한 린튼이 폭풍의 언덕으로 온다.  폭풍의 언덕에는 헤어톤이라는 같은 나이의 남자아이기 있다. 엄마 캐서린의 친 오빠 헨들리의 아들. 히스클리프 밑에서 무식한 하인으로 살고 있다.

히스클리프는 병약한 자기 아들을 딸 캐서린과 결혼시키려한다. 히스클리프는 아들을 미워한다.  점점커가며 외삼촌 에드가, 엄마 캐서린의 남편을 닮아가는 것을 지켜볼수가 없다.  그리고 에드가가 끔직히 사랑하는 딸 캐서린을 린튼과 결혼 시킴으로 에드가의 가슴을 다시한번 찢어놓을 작정이다.  그리고 병든 에드가가 죽으면 그 땅까지 차지하기 위해  딸 캐서린을 며느리로 만들어야 한다.

딸 캐서린의 린튼에 대한 측은지심을 이용하여 폭풍의 언덕 저택으로 유인한 뒤에 못나가게 한다. 그리고 린튼과 강제 결혼을 시킨다.  오일만에 린튼의 도움으로 딸 캐서린이 그 집을 탈출 아버지에게 돌아온다.  병상에서 딸을 만난 아버지는 그 재회의 축복속에 아무말도 남기지 못하고 그날 밤 죽는다.

히스크리프는는 이제 며느리가 된 캐서린을 다시 폭풍의 언덕으로 끌고간다.  아들 린튼이 죽어가는데도 히스크리프는 의사도 못 부르게 한다. 그래서 린튼은 죽고 캐서린은 17살에 미망인이 된다.  그녀의 옛집은 결혼과 동시에 린튼에게 갔다가 린튼이 죽자 히스크리프 차지가 된다.

히스클리프의 복수는 캐서린을 구박하는 것으로 계속된다.  그 때 구원자로 나서는 것이 헤어튼. 캐서린과는 외사촌. 폭풍의 언덕 저택의 적법한 계승자가 되어야했지만 아버지 헨들리의 잘못으로 그 집이 히스클리프에게 넘어가고 그의 하인이 되었던 그 청년. 처음에는 너무 무식해서 캐서린이 싫어 하지만 둘은 서서히 가까워진다. 그는 캐서린에게서 글을 배운다.

헤어톤과 가까워진 캐서린이 히스클리프에게 대든다. “당신은 내 땅 내 돈 모두를 가져간 나쁜 사람. 헤어톤의 돈도 땅도 다 뺏아가고. “ 히스클리프가 화가 나서한 대 갈기려고 손을 든다. 그런데 그녀의 얼굴에서 엄마 캐서린을 본다.  팔을 슬그머니 내린다. 그 후로 히스클리프는 말수가 적어지고 사람들을 피한다.  딸 캐서린과 헤어톤은 점점더 다정해 지고 …

히스클리프는 며칠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굶어죽는다.  죽기전 며칠은 알수없는 환희 속에 지낸다. 그가 남긴 말: “내영혼의 환희가 나의 신체를 죽인다. 그러나 그 환희가 무언가 부족하다. (My soul’s bliss kills my body, but does not satisfy itself).”  그가 죽으면 엄마 캐서린과 그 남편 에드가가 뭍혀있는 곳, 당연히 에드가 반대쪽에 묻어달라고.  묘지 파는 사람에게 미리 손을 써놓았다.  캐서린의 관 한쪽, 자신의 관 한 쪽을 마주보게 열어달라고.

Wuthering Heights, 폭풍의 언던, Emily Bronte, 1847


3.사랑은 왜 비극인가?
남녀간의 사랑은 감정의 절정, 절정의 감정이 만나는 것이다.  별과 별이 부딫치는 광경, 폭풍과 폭풍이 만나는 소리, 백합과 장미의 향기가 어우러지는 냄새, 꿀과 젖이 합쳐지는 맛, 터질 듯한 심장의 만남이다.  사랑중에 최고의 사랑은 같은 시간에 같은 곳에서 같은 양의 감정이 만나는 것이다.

이런 절정의 감정 합일을 경험한 남녀는 일생 동안 그 기억의 설레임과 상실의 두려움속에 산다.  모든 절정은 항상 유지될 수 없다.  절정이란 말 자체가 가장 높은 점이라는 뜻이다.  상대적으로 모든 다른 상황은 절정 아래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의 절정도 유지될 수 없다.  절정에 있는 모든것은 흘러내리게 되어있다. 사랑의 흘러내림이 빨라지면 사랑의 환희를 맛 본 사람들은 불안해지고 불안 때문에 엉뚱한 짓을 한다.

사랑의 본질적인 불안은 상대방이 나를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깨달음이다. 사랑의 절정에선 남녀는 서로 어떤 경우에도 상대가 자신을 선택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있다. 그 믿음에 의심이 기어들기 시작하면 불안해진다. 상대방의 선택이 내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 분명해지면 사랑이란 환의는 모래성처럼 무너진다.

시인의 별에서 나오는 안현은 사랑이 사라지자,  북행을 결심한다.  엉뚱한 짓, 그러나 확신에 차있다. 아내를 만나면 아내가 꼭 안현을 선택할 것이라는 확신.
개경에서 북경으로 북경에서 몽고로 기약없는 여행.  박연폭포 밑에서 연밥을 따던 그 절절한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 때문에 그 긴 여정, 그 깊은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다.  그래도 아내를 만날 수 있는 가능성, 아내가 돌아올 희망이 있을 때는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간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런 작은 희망조차 갖일 수 없는 순간이 온다.  그런 순간이 오면 먼 사랑의 기억만으로 다시 그 환희의 순간을 살아보려 한다.  그리고 곧 영원히 다시 거기에 가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 때 세계가 무너진다.
안현은 그토록 오래 기다리던 아내를 죽인다.  아내가 그 기억속의 환희의 순간으로 부터 떠났다는 것을 알았다.

히스클립은 캐시가 에드가를 택하자 복수의 길로간다. 그의 복수극은 잔인하게 성공한다. 그렇다고 캐서린이 돌아온 것도 아니다. 히스클립은 끝없이 다가가려하지만 캐서린이 훌쩍 돌아올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히스클립은 죽기전에 사람이 달라진다. 복수의 화신에서 무언가 보이지 않는 것에 홀린 것처럼 사람이 편해진다. 그래도 그 환희가 뭔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고,  더이상은 그 환희의 순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것을 깨닫는 순간 그는 죽는다.

시지프스의 신화는 사랑 환희의 순간으로 올라가려는 끝없는 인간의 욕망을 표현한것이다.  카뮤의 말대로 absurd, 이해가 되지않는 노력.  그런 슬픈 노력을 하게 하는 것이 사랑의 기억이다.
소설이나 연극 영화에서 희극과 비극의 차이는 결말이다. 같이 있어야 할 사람들이 헤어지는 것은 비극이고, 헤어저 있던 사람들이 만나는 것은 희극이다. 사랑의 본질은 비극이다.  사랑이야기를 희극으로 끝내는 것은 작품의 상업적 결말이다. 

대표적 사랑이야기의 작가 니콜라스 스파크스 (Nicholas Sparks). 그의 소설은 거의 도식적이다. 남녀가 만나서 사랑을 한다. 그 사랑이 절정에 이르면 부조화가 생긴다. 그리고 절정에서 비극으로의 내리막길. 소설의 대부분은 그 내리막길의 고통과 다시 절정으로 가려는 시지프스적 노력 이야기이다. 그러나 결론은 99% 문제의 해결, 그리고 남자-여자의 행복한 재회. 그는 미국에서 가장 돈을 잘 버는 작가이다.
한국에서 잘 나가는 드라마, 멜로드라마. 그것들도 똑같은 도식이다. 사랑이야기를 팔어 먹으려면 희극으로 끝내야 한다. 그러나 그 희극적 결말 전에 눈물이 퐁퐁 나게 하는 비극이 있어야 한다. 독자나 시청자는 사랑은 비극이라는 것을 안다. 다만 결말은 희극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사랑이 비극이라고, 그래도 사랑밖에. 이 결론에 동의 하는데 3초 이상 걸리는 사람들이 꼭 읽어봐야할 아주 짧은 소설: 무라까미 하루끼의 “100% 완전한 여자를 만나는데 대하여.”
***
위 글은 지난 8월 15일 금요 인문 산책에서 제가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아크로 인문강좌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일반 대중을 위한 쉽고 재미있는 영미문학 이야기, 한시, 한국문학 강의. 기대해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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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14)
  The scene that Ahn-Hyun caught Shin 2014-08-18 16:26:56
Where should I look for to know it? Was she with her lover?
추천0 반대0
(139.XXX.XXX.12)
  안현이 있던 곳은 ... 오달 2014-08-18 19:24:51
텅 빈 자리지요. 사랑이 불태워진 진공의 장소.
안현으로서는 지극히 사랑하는 여인의 겉에 있었지만,
여자의 입장에서 안현이 그때까지도 "lover"였는지는 ????
추천0 반대0
(76.XXX.XXX.207)
  그렇다면... Kong 2014-08-18 13:27:42
가장 높은 산의 절정에 딱 한번 올랐다가 내려오기보다는 그저 동네 뒷산 같은 낮은 곳을 두루 올라갔나 내려왔다 하면서 살면 어떨까요?
내용을 보니 쿠빌라이 칸의 아들이 그런 삶을 살았던 것 같네요.
남의 아내가 맘에 들어 빼앗았다가 싫증나면 바로 남에게 줘버리는...
오르기도 쉽고 내려가기도 쉽고...
이런 사람들에겐 사랑이 희극일까요?
한 편의 영화로 만든 비극 대신 여러 에피소드로 이뤄진 희극 드라마 같은 삶..
추천0 반대1
(38.XXX.XXX.82)
  요새 일본 TV 드라마 [芙蓉の人~富士山頂の妻] 를 보고 있는데 아주 감동적입니다. 변변 2014-08-19 07:14:40
芙蓉の人~富士山頂の妻 는 기상관측을 위해서 후지산 정상에 올라간 남편을 찾아서 어린 아이를 친정에 맡겨두고 후지산 정상을 향하는 부인의 이야기인데 감동 그 자체입니다. 요새는 이런 사랑은 점점 씨가 말라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더 감동적입니다. 사랑은 이제는 [그의 이름만 들어도 가슴 떨리는 과정] 이 아니라 [말초적인 즐거움] 정도로 전락해가고있습니다. 고전적인 사랑을 다시 찾아와야합니다.
추천0 반대0
(75.XXX.XXX.245)
  오호~ Kong 2014-08-19 23:26:33
남편을 찾아서 후지산 정상을 향하는 부인의 이야기라...
저도 한번 봐야겠네요.
좋은 드라마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0 반대0
(162.XXX.XXX.19)
  "그이름만 들어도 가슴 떨리는" 오달 2014-08-19 10:29:46
그런 사랑만 찾다보니,
떨리기만 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없네요.
추천0 반대0
(108.XXX.XXX.241)
  동네 뒷산을 오달 2014-08-18 19:27:08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등산이라고 하지는 않지요.
적어도 해발 만 피트 정도를 공들여 올라가는 것을 등산이라고.
사랑이라 이름 하려면 그정도 마음의 품을 팔아야죠.
저녁먹고 동네 마실 가듯이 정분을 나누는 것은 바람이지요.
추천0 반대0
(76.XXX.XXX.207)
  절정에서 만난 사랑 olf 2014-08-18 10:29:43
산꼭대기는 원래 더 오를 데는 없고 무수한 경우의 내리막길로 에워싸인 곳.
삐끗하면 곧바로 계곡으로 굴러 떨어지는, 절대 이길 수 없는 경기장이겠습니다.
그렇다면 '절저'의 깊은 계곡에서 시작한 사랑은 오갈 데 없는, 백년해로 향한
직선 코스 사랑이겠는데... 문제는 그 사랑, 애시당초 스파크가 튈 수 있겠느냐는.ㅠㅠ
제가 안현이라면, 뭐 죽일 거까지야 있을까 싶습니다.
엉뚱하게 '딴' 여자 죽여서 뭘 하나 싶어서요.
추천0 반대0
(216.XXX.XXX.228)
  애당초 스파크가 오달 2014-08-18 19:29:42
튀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지요.
한 편생을 살아도 그게 사랑이 아닐 수도 있고,
안현이 죽인 "아내"가 엉뚱한 "딴"여자 일 수도 있다는 데는 동의합니다.
사랑, 그 무정함...
추천0 반대0
(76.XXX.XXX.207)
  절저와 절정의 역학 ㅇㄱㅋ 2014-08-19 17:36:59
어느 산의 계곡은 다른 산의 정상으로 가는 유일한 길일 수는 없을까요.
해자에 뛰어들지 않으면 내성에 들어갈 수 없는 것처럼..
추천0 반대0
(198.XXX.XXX.21)
  만 피트 이상의 정상을 오달 2014-08-19 21:05:54
얼마나 자주 올라갈 수 있을까요?
같은 산만 보고 올라가는 순애의 바보도 많아요.
세상을 넓고 산은 많다. 이게 현실적 접근 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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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XXX.XXX.123)
  두길 보기 아닌 ㅇㄱㅋ 2014-08-20 05:34:47
처음부터 카멜레온 눈으로 두 산을 보겠다는 게 아니고,
일단 계곡으로 굴러떨어지고 나면 그때와는 완전히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한 순간, 산 하나에만 오를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구요.
만 피트 이상에서만 볼 수 있는 절정의 절경, 부러운 경지입니다.
추천0 반대0
(216.XXX.XXX.228)
  이 시대 마지막 로맨티스트 워낭 2014-08-18 08:57:09
오달 선생의 인문학 강좌가 무척 기대됩니다. 메마른 한인사회에 촉촉한 감성의 이슬비가 나려올 것 같습니다.
추천0 반대0
(74.XXX.XXX.3)
  아직도 오달 2014-08-18 19:30:31
한 삼십년만 로맨티스트로 남고 싶어요.
추천0 반대0
(76.XXX.XXX.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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