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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대열에서 밀려났다고 해도...
[김학천의 문학서재] 노숙인과 커피 한 잔
2014년 08월 11일 (월) 15:43:43 김학천 기자 acroedito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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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종려주일 저녁 스타벅스에서 차를 한잔 시켜놓고 지인을 기다리고 있는데 노숙자 차림의 한사람이 들어왔다. 무척 남루했지만 그 누구도 개의치 않고 커피 한잔을 시켜서는 밖에 나가 한쪽 벽 구석에 쌓아 놓은 보따리더미 옆에 쭈그리고 앉아 마시는 모습을 따라가다가 그와 눈이 마주쳤다. 무언가 들킨 듯 겸연쩍어 얼굴을 돌린 나는 차가 식는 것도 잊은 채 상념에 젖었다.

석양이 뉘엿뉘엿해 질 때쯤이면 길거리에 나뒹구는 나뭇잎들과 더불어 찌든 보따리를 들은 노숙자들이 잠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며 어디론가 이동을 한다. 개중에는 좀 더 살림살이가 커서 카트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나름대로 정해진 곳이 있는 경우도 있겠으나 또 하루 밤 잘만한 곳을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괜찮겠다 싶으면 달팽이처럼 지고 다니던 보따리를 풀고 때에 찌든 포대기를 꺼내 지쳐 고단한 몸을 덮고 하루를 마감한다.
 
누군들 살면서 나름대로 눈부시게 화려한 날이 없었겠는가. 어렸을 적엔 야무진 꿈도 있었을 거고 비록 커서는 그 꿈을 다 이루진 못했어도 그것을 향한 부단한 도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노숙자가 될 거라고 꿈에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었을까. 살다보니 어떻게 거기까지 추락했을 게다. 실제로 잘 나가던 중견사원이 어느 날 갑자기 일자리에서 밀려나 전전하다 노숙자가 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30년간이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했던 프레드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다. 어느 날 해직당한 그는 더 이상 아파트에 살 형편이 되지 않자 낡은 캠핑카로 거처를 옮겼지만 갈수록 더 어려워진다. 그래도 그나마 그는 다른 이들 보다는 조금은 나은 처지다. 그 역시 자신이 노후에 집도 없이 생활하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어느 날 모든 걸 잃을 수도 있다. 이렇게 살아보기 전까진 이렇게 산다는 게 어떤 건지 모른다.’며‘누구라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요즈음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어려움을 보면 내게도 그런 일이 안 일어난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지금 내가 소유한 것들도 어느 날 내게서 걷혀갈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미치자 두려워지면서 겸손을 생각하게 된다. 따지고 보면 우리네 삶에서 누릴 수 있는 혜택들 중 어느 것 하나 영원한 것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모든 삶의 원리는 변함이 없고 각자가 지닌 존엄성은 물질적인 성과와는 관계없는 인간다운 품격이어서 어쩌다 대열에서 밀려나 쳐졌다 해도 그 가치까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그러고 보면 지금 저 밖에서 커피를 마시는 그도 가끔은 자신을 존중하고 자신 스스로에 대접할 커피를 사기 위해 당당히 남들과 줄을 서서 돈을 내고 스스로를 확인해 보고 싶었는지 누가 알랴. 그것이 설사 자칫 남에겐 사치로 비춰질진 몰라도 그들도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예의를 갖추고 싶어 하는 마음은 똑같을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우린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이해하려 하기 보다는 소유한 것만으로 쉽게 속단하는 편견에 너무도 익숙해서 정작 그들이 느끼는 감정이나 처지엔 눈과 귀를 닫는다. 우리완 전혀 다른 세계의 별다른 사람들인 양. 이제 밤이 더 깊어지면 나는 편히 잠잘 곳이 예약되어 있지만 저들은 또 어디에서 하루 밤을 자고 또 다른 아침을 맞이할는지. 차는 이미 다 식었다.

김학천 (치대 69, 치과의사, 수필가) *출처-김학천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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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8)
  신자유주의의 병폐, 가난의 고착화와 대물림을 심화 할 뿐 심흥근 2014-08-11 17:59:54
전세계적으로 보통사람들이 어쩌면 어느 누구든 겪을 수 있는 지독한 가난을 맞이하게 될 가능성... 사회적인 이해와 인간에 대한 연민이 필요한 시절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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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XXX.XXX.205)
  돌아갈 집이 있다는... 행복 pch 2014-08-11 16:23:50
101 Fwy 다리밑 Alvarado 길에 tent 치고사는 homeless people들이 생각납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돌아갈 집, 가정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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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XXX.XXX.179)
  선배님, 글 잘 읽었습니다. Kong 2014-08-11 09:34:19
커피보다도 더 그윽한 향이 나는 글이네요.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만... 상념에 잠기시는 동안 커피가 다 식었는데, 기다리시던 지인은 결국 오셨는지요? 저는 늘 이런 뒷얘기들이 궁금하더라구요.ㅎㅎ
추천1 반대0
(38.XXX.XXX.82)
  답이 늦었습니다. 미안. 볼사리노 2014-08-15 15:07:00
물론입니다.
추천0 반대0
(173.XXX.XXX.123)
  무어의 마지막 왕 오덜 2014-08-11 09:22:15
알함브라가 있는 그라나다에서 남쪽 지중해 쪽으로 가는 길에 고개가 하나 있습니다. 고개 이름이 the last sigh of the moor, 무어인의 마지막 왕국 마지막 왕이 마지막 왕국을 빼앗기고 이 고개에서 마지막으로 그라나다를 보며 한숨을 지었다는 고개. 세상 살이라는 게 잠시 오타를 치면 엉뚱한 기록이 남죠. 글 잘 읽었습니다.
추천1 반대0
(108.XXX.XXX.241)
  삶이란... 이병철 2014-08-11 07:44:35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네요. 그래서 위스키 얼음 넣고 빡 마시고, 잠을 청합니다. 선배님 덕분에 다시 한번 "삶"의 어려움을 인지하면서..
추천1 반대0
(139.XXX.XXX.197)
  삶이란? 볼사리노 2014-08-15 15:08:05
삶은 달걀이래쟎아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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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XXX.XXX.123)
  따뜻한 커피처럼 김종하 2014-08-10 22:55:15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글입니다. 인터넷에서 본 'suspended coffee' 운동이 떠오르네요. www.suspendedcoffe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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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XXX.XXX.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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