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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억이라도 그의 시 한 줄 값도 안 되리"
[워낭의 진맥세상] 분단시대에 백석을 사랑한다는 것은
2014년 07월 14일 (월) 16:02:42 이원영 기자 acroedito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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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신경림은 백석의 시집 '사슴'을 읽은 저녁, 밥도 반 사발밖에 못 먹고 밤을 꼬박 새웠다고 감격을 고백한 적이 있다. 백석에게는 '현대시 최고의 절창'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남에서 잊혀지고 북에서 버림받은 천재시인으로도 불린다. 소설가 송준은 그를 한국이 낳은 세계 최고의 시인이라고 단언한다.

일반인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시인을 물으면 윤동주와 김소월이 가장 많지만 시인들에게 물으면 주로 백석이 꼽힌다고 한다. 백석의 시세계를 존경하고 배우려는 문인들이 많다는 얘기다. 시인 안도현은 잘 알려진 '백석 키즈(Kids)'다. 안도현은 대학 1학년 때 백석의 시 '모닥불'을 읽고 나서 "백석은 나의 사부다"라고 외친 뒤 지금까지 그를 흠모해왔다.

백석이 사랑한 여인 '자야'에게 바쳤다는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로 시작된다. 안도현은 이 시구를 놓고 "첫눈 내리는 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말은 백석 이후엔 이미 죽은 문장"이라고 극도의 존경심을 보였다.

그렇게 30년 이상 백석을 뜨겁게 숭모해온 안도현이 이번에 400페이지가 넘는 '백석 평전'을 냈다. 안도현의 감각적인 해설로 파란만장한 백석의 일생이 펼쳐진다는 서평이다. 책을 주문해놓고 이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 적 없다.

백석은 평안도 정주 출신이다. 일제 말 신문사 기자를 거쳐 함흥 영생고보에서 영어선생을 하며 작품활동을 했다. 일제의 징집을 피하기 위해 만주를 떠돌다 해방 후 고향으로 내려갔다. 소위 '재북 문인'이 된 것이다. 이런 딱지 때문에 한국 문단에서는 그의 이름이 지워졌다가 1988년 해금조치와 함께 처음 존재가 알려졌다.

북한에서는 조만식 선생을 도왔다는 등의 이유로 우익문인으로 분류돼 창작활동을 금지당했다. 방향을 튼 아동문학이 주체사상과 어긋난다는 비판에 부닥쳐 개마고원 근처 삼수갑산으로 사실상의 '유배'를 당해 염소를 기르며 노후를 보내다 1996년 84세로 쓸쓸한 생을 마감했다.

일제, 해방공간, 전쟁과 분단이라는 현대사의 굴곡을 고스란히 안으면서 한 시대를 풍미한 천재시인이 왕성한 창작욕을 불사르지 못하고 시들어간 그의 삶을 생각할 때 비탄감에 젖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시를 잘 즐기지도 못하고 문학적 감수성도 미천하기에 시인들의 상상력을 예찬할 수준도 못된다. 시를 직접 지어본 적도 손에 꼽을 정도고, 쓰고 싶은 욕망이 생겨난 적도 거의 없다. 그런데 백석의 시를 읽으면, 그것도 소리 내며 낭독하면, 백석 같은 시를 쓰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댄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다만 이래서 사람들이 절창, 절창 하는구나 하는 생각만 들 뿐이다.

백석의 러브스토리도 영화 같다. 사랑한 여인 '자야'(본명 김영한)는 기생이었다. 남북이 갈리는 바람에 자야는 남에, 백석은 북에 남아 영원히 다시 보지 못한다. 자야는 최고의 요정집 '대원각'의 주인이 된다. 90년대 중반 그녀는 당시 시가 1000억 원이 넘는 이 건물을 법정 스님에게 양도해 길상사로 태어나게 한다. 아깝지 않았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이(백석)의 시 한 줄 값도 안 된다"는 말로 평생 품었던 연심을 드러냈다. 백석이 사망한 지 3년 뒤 자야도 세상을 떴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고 노래하며 좌우의 편가르기를 시로써 거부했던 백석. 오늘날 분단시대에 우리가 그를 사랑하는 것은 또다른 통일 염원이 아닐까.

이원영 (정치 81, 언론인, 한의학박사) *LA 중앙일보 칼럼.

   
백석.

본문에 다뤄진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전문, 그리고 아크로에 전에 소개됐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의 전문을 옮겨봅니다. <편집자 주>

나와 나타샤와 힌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홀로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힌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히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는 아니 올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힌 당나귀는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마가리는 오두막집이라는 뜻)

* * * * *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 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새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장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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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5)
  나타샤 오달 2014-07-14 23:19:53
오늘도 나는 나의 나타샤를 찾아본다.
윌셔가에도 없고 올림픽에도 없고,
피노 느와르 한잔, 그리고 한 병.
포도주 빈 병의 부피만한 공기 구멍이
내 쓸데 없는 뇌의 왼쪽에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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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207)
  백석이 지나면 사람들이 쳐다보는 워낙이 2014-07-14 22:20:26
백석이 1930년대에 이미 지금도 소화하기 힘들 정도의 저런 헤어스타일을 하고, 명동 일대를 걸으면 지나던 사람들이 다 쳐다보았다고 할 정도로 미남이었다고 하는군요. 참 이야깃거리가 많은 인물입니다. 안도현이 인터뷰에서 백석더러 아마 서울에서 살라고 했으면 친일파들이 득실거리는 곳에서 무척 괴로워했을 것이라며 못 살았을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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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XXX.XXX.187)
  시를 품은 글 pch 2014-07-14 17:31:52
분단의 슬픔이 다시 멍한 아픔으로 다가오네요..망각의 세월이 아무리 맹골수도의 물살처럼 빠르다해도, 한민족 영혼깊숙히 흐르는 이 애수를 누가 달래주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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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XXX.XXX.179)
  영화같은 김삿갓 2014-07-14 10:19:58
아니 영화보다 더 아련한 러브스토리네요....
추천1 반대0
(38.XXX.XXX.58)
  안도현 시인 말이 맞네요 김종하 2014-07-13 23:22:37
백석 그를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다니, 비극입니다. 백석평전을 꼭 사서 봐야겠습니다.
추천1 반대0
(107.XXX.XXX.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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