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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타기 싫어서 월드컵 안 간 선수는?
[황부연의 월드컵 노가리 2] 요한 크루이프와 ‘토털 사커’
2014년 06월 12일 (목) 16:07:28 황의준 기자 acroeditor@gmail.com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많은 분들이 본 전문가에게 물어본다.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팀 전망을. 크게 기대하지 마시라. 한 가지 힌트를 주겠다. 한국의 홍명보 감독은 이번 월드컵 출전 32개국 중 최저 연봉을 받는 감독이다. 본문을 보시면 감독의 역량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이다.
 
각설하고, 전편에 열거한 월드컵 우승후보 8개국 중 유일하게 우승을 해보지 못한(준우승 3회) 나라가 네덜란드다. 그러나 네덜란드가 축구계에 미친 영향은 그 어느 국가보다 혁명적이었다. 이를 까발려본다.

인간의 진화는 항상 진행 중이다. 너무 속도가 느려 느낄 수 없을 뿐. 그러나 진화는 항상 일정한 속도로 서서히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몇십억년 지질학적 시간으로 보면 한 순간인 몇천년 동안에 급격한 진화가 이뤄지기도 한다.

인간 신체의 경우 직립보행과 함께 손이 한가해 지면서 급격한 변화가 오게 된다. 엄지손가락이 안쪽으로 굽어지며 도구 사용이 가능해지고 원활한 손놀림을 위해 시각도 급 발전한다. 아울러 손의 사용법을 고민하면서 두뇌가 커진다.

이후 십여만년 동안 서서히 진화하다 농경의 발달과 함께 또 진화가 폭발한다. 호모 사피엔스를 오늘날의 인간으로 만들게 한 두뇌 기능의 획기적 변화가 생긴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19세기 영국에서 럭비로 부터 분화된 축구는 그저 그렇게 서서히 진화해왔다. 여기서 전제 조건 하나. 축구에서는 한 팀을 하나의 유기체로 간주해 진화의 관점에서 바라보자. 다른 팀 스포츠와 달리 축구는 팀마다 독특한 DNA를 갖고 있다. 그것이 국가대표팀이던 클럽팀이던.

아주 천천히 진화하던 축구는 마침내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 변화가 폭발한다. 가장 먼저 급격한 진화를 시작한 그 팀은 바로 네덜란드 국가대표팀. 그리고 그 주역은 리누스 미헬스 감독과 네덜란드에서 '지저스 크루이프'로 불리는 '요한 크루이프'다.

여기서 잠깐 축구라는 스포츠의 독특한 특성을 디벼보자. 축구는 묘한 운동이다. 하필 인간 신체 중 가장 컨트롤 능력이 뛰어난 손만 제외하고 다른 모든 부위를 사용한다. 이에 따라 스포츠 중 가장 넓은 골대에 서로 한골도 집어넣지 못하고 무승부를 이루기도 한다. 아무리 훈련해도 기술 발전이 더딘 발과 머리를 사용해야하니까. 이같은 이유로 팀간 실력차가 커도 반드시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세계랭킹 1위 팀이 30위권 밖에 팀에게 지는 이변이 벌어지는 팀 스포츠는 축구가 유일하다.

또 우월한 선수로만 구성됐다고 꼭 승리를 보장하지 않게 하는 독특한 규칙이 바로 오프사이드다. 축구에 오프사이드가 없으면 수비 잘하는 선수 몇 명은 자기 골대 앞에서, 기술 좋은 선수 몇 명은 상대 골대 앞에 포진시켜 놓고 뻥뻥 차는 전술로 고정됐을 것이다. 사실 비록 오프사이드는 있었지만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브라질이 우승할 때까지만 해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세계축구는 이같은 스타일이었다. 최종 수비수가 골키퍼 앞에 있고 양쪽에 수비수, 가운데 미드필더, 앞쪽에 센터포워드를 중심으로 한 공격수. 골키퍼를 제외하고 5명이 수비, 5명이 공격을 담당하는 이른바 MW 포메이션이 그것이다. 펠레 시대 때의 이야기다.

그러나 74년 월드컵에서 36년만에 본선에 진출한 축구 변방국 네덜란드가 파격적인 전술을 선보인다. 도대체 선수의 포지션을 파악할 수 없는 회오리같은 집단 움직임인 것이다. 최근 자주 거론되는 '압박축구'의 원조 격인 '토털축구'의 시작이었다.

이 전술을 앞세워 네덜란드는 예선에서 전 대회 우승팀이자 세계 최강인 브라질을 농락하며 예 선탈락시킨다. 세계 축구계는 경악에 빠진다.

토털축구의 원리는 말로는 간단하다. 당시까지 일반적으로 최종 공격수와 최종 수비수와의 간격은 60~70m(유트브 등에서 당시 중계화면을 봐라) 그러나 네덜란드는 이 간격을 줄이면서 수비수, 공격수를 가리지 않고 가장 효율적인 위치에 있는 선수가 볼을 갖고 패스하거나 드리블하며 공격에 나선다. 그러면 그 자리는 주변에 있는 선수가 메꾼다.

이 전술은 당시 무명 감독으로 하위 클럽팀을 전전하던 리누스 미헬스 감독이 꾸준히 시도해오던 것이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했다. 이 전술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경기장 안에 전술 이해능력이 뛰어난 사령관이 끊임없이 동료들에게 상황에 적절한 지시를 내려야한다. 물론 자신이 해결하기도 하면서. 회오리의 중심이 필요한 것이다.

실현 불가능해 보이던 이 전술은 요한 크루이프라는 천재가 등장하면서 마침내 결실을 맺는다. 센터포워드 포지션으로 출전하는 크루이프는 스스로 공격과 수비를 오가면서 동료를 컨트롤, '전원 공격, 전원 수비'라는 유행어를 탄생시키며 유럽 내 소국인 네덜란드를 세계최강의 팀으로 만든다. 이때 축구의 DNA는 이후 계속 진화하면서 오늘날의 축구강국 네덜란드로 이어지고 있다.

축구계에 '짜장면 짬뽕 논쟁'이 있다. 역대 최고의 선수가 누구냐에 대한 거다. 펠레인가, 마라도나 인가? 물론 맞는 논쟁이다. 선수로서 이들이 최고 기량을 갖췄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축구 전체에 최고의 임팩트를 가한 선수는 바로 요한 크루이프다. 이를 넘어 사회적 메시지도 던졌던 기념비적 레전드다. 그것도 단 한차례의 월드컵 출전밖에 없으면서...

그러나 운명의 1974년 서독 월드컵. 네덜란드가 세계 축구계를 경악시킨다. 당시 대회 출전국수는 16개국(현재의 반이다). 올드팬들은 기억할 것이다. 아시아와 오세아니아에 1장뿐인 본선 티켓을 따기 위해 한국은 예선 결승에서 호주와 격돌한다. 홈앤드 어웨이에서 무승부가 된 한국은 홍콩에서 벌어진 3차전에서 패해 본선 문턱에서 주저앉는다. 그만큼 출전자체가 어려웠던 월드컵이었고 당연히 출전국 모두가 강력한 팀들.

이들 중 유럽 내에서도 축구 소국인 네덜란드가 모두가 우승후보인 남미 출전국 3나라(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를 모두 발라버린다. 네덜란드와 맞붙은 이들 팀들은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들도 당시 유럽 최고선수로 꼽히는 요한 크루이프의 정체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아낼 방도가 없었다.

최전방 공격수로 출전한 크루이프가 갑자기 최종 수비수로 내려가기도 하고 어느 순간 혼자 단독 드리블로 수비진을 초토화 시킨채 동료에게 완벽한 골 찬스를 만들어주니까. 상대팀들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공격에 나서면 미들필더부터 강력한 몸싸움과 태클로 저지, 도무지 적절한 패스나 돌파가 여의치 않았다. 90분 내내 정신없이 허둥거리다 대패를 당한다.

그때까지 볼 수 없었던 전술, 바로 '토털 축구'였다. 사실 이 전술은 영국 등에서 시도되고 있었다. 그러나 완성할 수 없었다. 이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필드 내에 사령탑이 있어야 한다. 자신이 게임을 풀어나가면서 동료들에게 끊임없이 전술과 위치를 지시해야하는(경기 중 선수끼리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스포츠는 축구가 유일하다) 돌풍의 중심이 있어야한다. 드리블, 패스, 슈팅력, 넓은 시야와 함께 상황을 파악하고 지시하는 영악한 '축구 지능'의 소유자가 바로 크루이프였다. 크루이프 별명 중 하나가 ‘필드의 피타고라스’다.

마침내 개최국인 서독과의 결승전. 네덜란드는 5승1무, 서독은 5승1패의 전적으로 올라왔다. 주최국인 서독이 우승하기 위해서는 단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크루이프를 저지하는 것. 독일의 명장 헬무트 쉔 감독은 ‘더러운 전술’을 들고 나온다. 아니, 당시로서는 그 방법 밖에 없었다. 수비수 포그츠에게 지시한다. “넌 포지션이 없어. 어떻게든 크루이프만 잡아”라고. 이후 이 경기에서 포그츠는 ‘격투기 선수’로 변신한다. 영악한 크루이프도 이를 알아챘을까? 경기 시작과 함께 상대가 수비 진영도 잡기 전에 벼락같이 서독 중앙을 혼자 돌파한다. 당황한 포그츠가 파울로 저지하며 페널티킥을 얻어내 순식간에 앞서간다. 월드컵 결승전 사상 최단시간 골이다.

허를 찔린 포그츠는 이후 볼을 차지 않고 크루이프만 찼다. 퇴장을 당했어야 하나 서독은 주최국이었다. 그렇게 회오리의 중심을 무너뜨린 서독은 2대1로 역전승, 우승을 차지한다. 비록 준우승에 그쳤지만 이때 크루이프를 중심으로 한 네덜란드 축구가 가져온 충격은 이후 세계 축구 흐름을 바꾼다. 이제 한 사령관의 지시가 아니라 미리 조직된 방식으로 최전방과 후방의 간격을 최대한 좁히며 진격하는 방식의 축구, 압박축구의 태동이었다.

전통적인 공격수인 윙을 없애고 양쪽 풀백이 이 역할을 하게하는 윙백 시스템. 전방에서 상대 공격의 흐름을 일단 저지하는 볼란테 포지션 등이 이후 발전된 부분 전술 등이다. 모두 공격수와 수비수의 경계를 허물고 동일한 지역에 자신의 팀 선수 숫자를 늘리고자 하는 전술이다.
 
전문가들은 역사상 최고의 팀으로 74년 월드컵 때의 네덜란드와 82년 스페인 월드컵 때의 브라질을 꼽는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이 둘은 당시 우승을 못했다.

아쉽게도 유럽을 제외한 세계축구계는 더 이상 크루이프의 화려한 축구를 보지 못한다.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때 크루이프는 예선전에서 맹활약, 팀을 본선에 올려놓고 정작 자신은 본선에 출전하지 않는다. 당시 독재국가인 아르헨티나가 국가홍보 차원에서 유치한 월드컵에 들러리 서기 싫다는 이유다(전두환 정권 때 88올림픽 유치, 기억나시나?). 당시 역시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이었던 한국에서는 이를 이렇게 전한다. "비행기를 타기 싫어서 남미에 가지 않는다"고. 참 웃기는 시절이었다.

그러나 크루이프가 빠진 네덜란드에는 그 유전자가 이미 파급돼 있었다. 승승장구하며 2대회 연속 결승 진출.

하지만 이번엔 우승을 통해 국민의 불만을 따른 곳으로 돌려보고자 하는 아르헨티나 정부 차원의 로비까지 더해진 더러운 축구가 펼쳐지며 또다시 준우승에 머물고 만다. 온갖 파울이 난무한 이 대회 결승전은 역대 월드컵 결승전 사상 최악의 경기로 꼽힌다.

그래도 이때부터 네덜란드 축구는 90년대 중반 그 유명한 오렌지 3총사를 앞세워 세계최강에 올라섰지만 우승은 하지 못했다. 다시 강조하지만 축구는 국가대표팀이건 클럽팀이건 고유한 유전자를 갖고 있다. 현재 세계최고의 공격수인 메시가 국가대표팀에서 한때 부진했던 건 바르셀로나 유전자에 적응된 스타일이 아르헨티나팀에게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아르헨티나 팀이 메시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진화하면서 메시가 펄펄 날고 있는 것도 다 그런 이유다.

사실 한국축구도 이같은 네덜란드의 축구 유전자가 이식됐었다. 축구협회의 멍청함 때문에 원위치 되어가고 있지만. 히딩크는 토털 풋볼 창시자의 서자 격이다. 아드보가트가 미헬스감독의 적자였고.

히딩크가 한국대표팀을 맡은 후 죽어라고 한 것이 선수들 뺑뺑이 돌리는 것이다. ‘압박축구’를 하기 위해선 당연히 월등한 체력이 요구된다. 히딩크는 말했다.’정신력은 체력에서 나온다’고.
 
다음편은 브라질로 가보자.

ps.1.요한 크루이프는 신념이 확실한 지성인이기도 했다. 월드컵 때 네덜란드 유니폼을 입고 뛰는 첫 번째 사진에서 이상한 점을 찾아보라. 그 유니폼은 독일 회사인 아디다스 제품이다. 그러나 크루이프는 2차대전 때 자신의 조국을 침략했던 독일회사 유니폼을 선택한 축구협회에 항의하는 뜻으로 아디다스 특유의 '3선'을 자신이 직접 '2선'으로 만든 유니폼을 입었다.

   

ps.2. 크루이프는 기술면에서 모든 것이 뛰어났지만 특히 드리블이 경이로웠다. 물론 현대축구보다 수비수 간격이 넓긴 했지만 5~6명을 혼자서 제치는 장면이 다반사였다. 남미 특유의 발재간 스타일의 드리블이 아니라 스피드와 유연한 몸놀림, 완급 조절 등을 통해 수비수를 멍청하게 만드는 스타일이다. 최근 호날두 등이 즐겨 쓰는 발뒷꿈치로 방향을 전환하는 드리블 기술은 크루이프가 최초로 선보인 기술이다. 그래서 명칭이 '크루이프 턴'이다. 다음 사진에서 볼 수 있다.

   

ps.3. 또한 크루이프는 축구역 사상 처음으로 11번 이후 백넘버를 보유한 스타플레이어다. 당시 까지 대부분 유명선수는 11번 이내의 백넘버를 사용한다. 그중 팀의 주축은 대개 10번이다. (이는 현재까지 그렇다. 그 이유 또한 기나긴 역사가 있으나 다음에 기회 되면 소개하겠다). 펠레 마라도나 마테우스 루니 등이 10번이다. 그리고 7번 9번 정도가 스타플레이어들의 몫이었다. 그러나 크루이프는 14번을 고집, 이를 축구계의 인기 백넘버(앙리가 14번이었다)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스타플레이어들이 두 자리수 번호도 선호하는 경향을 만들기도 했다.

황의준 (경영 80, 관악연대 부연대장, 각종문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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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8)
  네덜란드, 디펜딩 챔프 스페인을 5-1로 초박살 2014-06-13 13:45:52
크루이프의 후예들 죽여주네요. 특히 아르언 로벤 정말 쩔었슴. 계속 이렇게만 한다면...
그런데 대진표상 4강에서 브라질 만날 가능성. 그럼 또 주최국 텃세로 결승 문턱서 좌절 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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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131)
  미국 월드컵 준결승에서 황의준 2014-06-13 15:41:57
네덜란드와 브라질이 만났죠. 그 유명한 베베토의 아기요람 흔드는 골 세레머니가 나왔던 경기. 3-2로 브라질이 이겼는데 월드컵 사상 최고의 명승부중 하나로 꼽히죠.
근데 예선전서 훨훨 날면 정작 대회 후반엔 별로. 지난 대회에서도 스페인 첫 경기서 죽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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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XXX.XXX.66)
  내가 읽은 축구 얘기 중에서 곽건용 2014-06-13 08:46:08
가장 재미있는 얘기네요. 그래도 나름 축구 좋아한다고 생각했고 초딩 땐가 장덕진 씨가 축협 회장 했을 때 월간 축구도 많이 봤는데. 이런 재미난 글을 첨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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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XXX.XXX.162)
  아깝다 황부연 양민 2014-06-12 14:56:46
월드컵 축구 해설위원으로는 역대 올림픽 참가 영웅들이 대거 등장하는 가 보다.
SBS-(진행)배성재,(해설)차범근, 차두리, 박지성
KBS-(진행)조우정,(해설)이영표, 김남일,
MBC-(진행)김성주,(해설)안정환, 송종국,
해설자들 만큼, 선수들도 잘 했으면 한다.
그런데, 왜 황의준이는 빠지게 된 건지 매우 궁금하고, 또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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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XXX.XXX.145)
  글빨 JB 2014-06-12 09:31:08
맨날 썰로만 듣던 얘기들을 글로 접하니까 대단히 전문가스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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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XXX.XXX.22)
  네덜란드를 다시 보게 하고 축구를 다시 보게 하는 글, 정말이지 감사합니다. 변변 2014-06-12 07:19:53
요한 크루이프는 한때 저의 영웅이었습니다. 단지 축구인이 아니라 사회와 역사 문제에 대한 인식도 뚜렷한 사람이었다니 정말 그가 다시 자랑스럽습니다. 토탈 사커 한국도 배워서 언젠가 월드컵 우승도 한번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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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XXX.XXX.145)
  캬....단숨에... 이종호 2014-06-12 05:43:08
읽었습니다. 요한 크루이프처럼 종횡무진 토탈사커 같은 글입니다. 재미와 정보와 '썰빨'에 휘둘려 이 긴 글을 언제 읽었는지도 모르게 다 읽었네요.ㅎㅎ.
추천0 반대0
(71.XXX.XXX.53)
  오늘 브라질 월드컵 개막 김종하 2014-06-11 23:21:11
에 맞춘 제대로 된 축구 칼럼... 캬~
(각종문제전문가 치곤 넘 진지한 감이 없진 않지만요 ㅎ)
한국팀은 토털사커는 고사하고 수비나 어떻게 좀 안 될까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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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XXX.XXX.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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