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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래머가 "와, 이 코드 섹시한데~" 할 땐
[공총의 e-세상] ‘플래시 픽션’과 알고리즘
2014년 05월 30일 (금) 15:22:56 공성식 기자 acroedito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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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문학에 하이쿠가 있다면 영어문학에는 플래시 픽션(Flash Fiction)이란 게 있다. 여섯 단어로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Six-Word Memoir 라고도 불린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헤밍웨이가 썼다고 여겨지는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아이 신발 팖. 한 번도 안 신음)이다. 약간의 상상력과 감수성만 있다면 이 짧은 문장만 듣고도 갖가지 이야기가 머릿속을 스친다.

위트 넘치는 하이쿠나 여운을 길게 남기는 플래시 픽션 같은 간결한 문장들이 오히려 위대한 장편소설보다 더 끌릴 때가 많다. 이는 내 문학적 호흡이 짧은 탓도 있겠지만, 프로그래머라는 내 직업도 한몫 하는 것 같다. 프로그래머들 간에 즐기는 유희 중 코드 골프(Code Golf)란 게 있다. 스포츠로서의 골프와 마찬가지로 프로그래밍에서의 골프도 적은 타수(strokes)가 이기는 게임이다. 즉, 똑같은 기능의 프로그램을 가장 짧은 코드로 작성한 프로그래머가 우승하는 것이다.

이렇게 작성된 코드는 길이는 짧지만 대신 아주 난해한 코드가 된다. 기계적으로 해석하는 컴퓨터와 달리 사람에게는 이해하기 쉬운 코드와 어려운 코드가 구별된다. 그래서 현실적으로는 짧은 코드보다는 읽고서 이해하기 쉬운 코드가 더 훌륭하다고 여겨진다.

이와 관련된 여담 하나. 얼마 전 나는 대통령의 사과문에서 '적폐'를 청산하겠다는 표현을 듣고는 잠시 당황했다. 내 어휘가 그다지 풍부하지는 못하더라도 40년 넘게 써온 우리말인데 처음 듣는 단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일왕이 한일 과거사에 대해 '통석의 념'이란 표현을 했는데 그 말을 들었을 때만큼이나 난감한 순간이었다. 이런 경우 '적폐'라는 단어의 간결함을 포기하고 '오래 쌓인 폐단'이라고 이해하기 쉬운 표현을 썼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적어도 프로그래밍에서는 후자의 경우를 더 높이 평가한다.

내가 프로그래밍에 입문한 것은 그 수학적 속성에 매료되었기 때문이었다. 사람과 달리 냉정할 만큼 논리적인 컴퓨터에 끌렸다. 그러나 20년 가까이 프로그래밍을 하고난 지금은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갖게 되었다. 프로그래밍은 수학보다는 언어에 가깝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논리를 바탕으로 하지만 그 논리를 구현하는 데 있어서는 수많은 다양한 방법들이 존재한다. 논리적으로 똑같은 코드라도 표현방식에 따라 그 코드를 읽는 프로그래머의 감성에는 다르게 작용할 수 있다. 심지어 프로그래머들은 종종 "와, 이 코드 섹시한데~"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프로그래머를 Code Artist 라고 부르는 것은 그다지 과장이 아닌 것이다.

요즘의 프로그래머들은 꽤 복 받은 세대인 것 같다. 웬만큼 어려운 알고리즘은 이미 다 구현돼 있어 가져다 사용하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수학적 지식이 많지 않아도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데 큰 지장이 없다. 간단한 대수와 논리연산, 집합론 정도만 이해하면 별 무리가 없다. 나의 경우 미적분이라든가 삼각함수 지식을 써먹을 기회는 여태껏 한 번도 없었다.

반면, 프로그래머에게 글 쓰는 능력은 더욱 중요해졌다.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말이나 글로 잘 표현하는 프로그래머일수록 프로그래밍 능력도 더 뛰어나다. 일차적으로 프로그래밍은 사람과 컴퓨터 간의 의사소통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프로그래밍은 사람과 사람 간의 대화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작성한 코드를 나중에 누군가 다른 프로그래머가 보고 이해할 수 있어야 프로그램이 오래 유지될 수 있다. 때로는 그 사람이 미래의 나일 수도 있다. "과연 내가 이 코드를 1년 후에 보고서 이해할 수 있을까?"라고 자문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결국 프로그래밍은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긴 글을 쓰고도 헤밍웨이의 여섯 단어 소설보다 감동이 없다. 다행히도 난 노벨문학상에는 욕심이 없다.

공성식 (경영 89, 관악연대 전 총무, 디자인 프레미스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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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21)
  6WS 최응환 2014-12-22 16:17:35
Her code still speaks to me.
추천0 반대0
(68.XXX.XXX.219)
  O My God 양민 2014-06-04 10:58:39
O
My
God
This
Seems
Hoopla
추천0 반대0
(108.XXX.XXX.145)
  Wow Kong 2014-06-04 15:18:01
You're a genius!
추천0 반대0
(99.XXX.XXX.185)
  미국식 삼행시, 내가 가장 좋아하는 six-word story 오달 2014-05-30 15:29:15
I still order coffee for two.
추천1 반대0
(108.XXX.XXX.241)
  기다리던 댓글 Kong 2014-05-30 15:57:10
오달님의 멋진 한 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역시 실망시키지 않으시네요.ㅎㅎ

이건 어때요?
Wanna free coffee? Go find Odal.
추천1 반대0
(162.XXX.XXX.23)
  몇개 더 오달 2014-05-30 17:01:23
Song Ends Yesterday, Melody Lingers Tomorrow.
Gone with the Wind, Memory Whispers.
Sam is 空, Kong is 샘.
추천1 반대0
(108.XXX.XXX.241)
  역시~ Kong 2014-05-31 10:25:43
오달님은 영어가 자유로우시다보니 이정도는 그냥 술술 잘 나오네요.
부럽습니다.^^

"Odal is a six-word story generator."
추천0 반대0
(162.XXX.XXX.19)
  너 무 어 렵 구 나. 박변 2014-05-30 14:59:03
난 초 딩 도 못 돼. I do not understand any thing. ㅋㅋㅋ ㅎㅎㅎ
추천1 반대0
(108.XXX.XXX.241)
  새로운 발상 Kong 2014-05-30 15:48:53
선배님께도 여섯 단어의 한계가 너무나 지루하게 느껴지시겠군요.
일부러 늘려쓰시는 역발상!
대단한 내공입니다...
추천1 반대0
(162.XXX.XXX.23)
  나도 초딩도 이해할 수 있는 코딩 OLF 2014-05-30 08:06:54
하이쿠, 플래시 픽션, 그리고 프로그래밍을 마구 하고 싶도록 만드는 글입니다!!
또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육자진언.. "옴마니반메훔" "할렐루야아멘" "잘읽었습니다"
추천2 반대0
(216.XXX.XXX.228)
  이 댓글 누가 쓰셨는지 금방 알겠네요. Kong 2014-05-30 09:30:10
한두 문장만으로도 글의 주인이 드러나게끔 자신만의 색깔을 갖고 계신 분.
저도 위의 기사를 작성하면서 선배님을 많이 떠올렸습니다.^^
추천2 반대0
(38.XXX.XXX.82)
  프로그래머를 위한 육두문자 olf 2014-05-30 09:34:35
Show me your haiku. Bugs there!
추천1 반대0
(216.XXX.XXX.228)
  My six-word response. Kong 2014-05-30 10:31:37
"Here's my haiku. It's bug-free. Cool?"
추천1 반대0
(38.XXX.XXX.82)
  ^^ olf 2014-05-30 12:53:22
Code Artists wish bug-frre world always.
추천1 반대0
(216.XXX.XXX.228)
  공 후배님은 앞으로 계속 글을 쓰세요. 문학적 감수성이 글의 여기저기 보입니다. 변변 2014-05-30 07:58:06
번뜩이는 재치와 감수성을 함께 가진 분이 프로그래밍의 수학적 간결함에 매료되셨다니 공 후배님은 참 여러가지로 연구대상입니다. 그러나 본인의 능력은 어디 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계속해서 글을 써서 언젠가는 책으로 묶어주세요. 저도 독자중의 한사람입니다.
추천1 반대0
(71.XXX.XXX.145)
  과찬의 말씀... Kong 2014-05-30 09:28:45
변선배님,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원래 공부 못하는 학생이 영어공부할 땐 수학 하고 싶고 수학공부할 땐 영어 하고 싶은 건데, 아마 제가 그꼴인 것 같아요.ㅎㅎ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1 반대0
(38.XXX.XXX.82)
  영어 공부 싫고 수학 공부 싫은 박변 2014-05-30 15:01:56
학생은 자퇴해 야만 되겠지요?
추천0 반대0
(108.XXX.XXX.241)
  그럴 땐... Kong 2014-05-30 15:47:24
문과와 이과 외에 예체능계도 있습니다.
선배님의 그림 실력이라면 예체능 지원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추천0 반대0
(162.XXX.XXX.23)
  문/이과 의 선택에 골머리를 앓는 사람은 예/체능계를 연구해보고 그것도 아니면 변변 2014-05-31 06:25:51
요새는 [자유 전공] 이라는 것이 생겨서 전공없이 대학을 다니는 길도 열렸다고 합니다. 참으로 좋은 세상이 왔습니다.
추천0 반대0
(75.XXX.XXX.166)
  프로그래머의 글쓰는 능력 김종하 2014-05-29 22:27:14
이 글솜씨로 미뤄볼 때, 공총은 정말 뛰어난 'code artist'임이 분명!
노벨전산학상은 없나요^^
추천1 반대0
(107.XXX.XXX.123)
  감사합니다. Kong 2014-05-30 09:20:57
기자님들의 제목 뽑는 능력에 매번 감탄하고 있습니다.
중앙일보에서는 '적폐, 소통, 그리고 프로그래밍'이라고 했더라구요.^^
추천1 반대0
(38.XXX.XXX.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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