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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수는 있는데 ‘아오자이’는 없었다
[한신의 세계 출장기] 호치민은 ‘건설중’
2014년 05월 27일 (화) 10:28:34 김한신 기자 acroedito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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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은 더웠다. 남가주의 따뜻한 날씨에 익숙한 필자지만 밤에 도착한 베트남 호치민의 날씨는 후덥지근했다. 그래도 시원한 밤바람이 30여 년 동안 상상 속에서만 그리워하던 ‘사이공’을 처음 방문하는 필자를 반갑게 맞아줬다.

사이공의 기억 – 전쟁, 패망, 이국의 정취, 그리고 베트남 음식

그렇다. 필자는 호치민을 ‘사이공’으로 기억한다. 70년대 태어난 필자 세대에게(혹은 ‘응답하라 1994’ 세대라고 할까?) 어린 시절 베트남의 이미지는 ‘월남전’의 이미지, 다른 한편으로는 야자수와 십자성이 펼쳐진 이국적인 남국의 나라였다. ‘월남 전쟁’, ‘월남 패망’ 특집 다큐멘터리들과 소설 ‘하얀 전쟁’, 그리고 뮤지컬 ‘미스 사이공’으로 기억되는 전쟁의 나라, 사회 내분으로 매일 시위만 하다가 공산화된 불쌍한 나라였다. (교련 선생님들과 같은) 월남 참전 용사들의 무용담. 영화 ‘풀래툰’과 ‘머나먼 정글’에서 베트콩과 싸우는 (우리) 미군들의 모습을 통해 투영된 전쟁터. 그 나라가 베트남이였다. 해마다 4월이면 무시무시한 배경 음악과 함께 공산당에게 멸망한 월남, 그리고 그 패망의 원인에는 극심한 사회 혼란과 분신자살까지 벌어지는 시위대 – 아, 시위를 하면 공산당에게 나라를 빼앗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던 월남. 그 무섭던, 그리고 (공산당에게 나라를 빼앗겨) 불쌍한 패망 월남인들이였다.

다른 한편, 법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았던 시절 유년기를 보낸 필자 세대들에게 베트남에 대한 간접적 경험은 해외에 대한 동경, 우리나라와는 다른 세계가 있다는 로맨틱한 상상을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군인이건 직장으로건 베트남을 다녀온 사람들을 통해 듣는 야자수와 십자성, 열대 과일, 그리고 아오자이 입은 ‘하늘하늘’한 베트남 여성들에 대한 이국적 정취는 한국이라는 좁으면서도 너무나 동일한 공간 속에 갇혀 있던 필자를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 “베트남이라는 곳은 과연 어떤 곳일까” 하는 베트남에 대한 상상 뿐 아니라 우리나라와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가르쳐준 일종의 ‘동방견문록’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베트남에 대한 또 하나의 기대 – 베트남 음식. 미국에 온 후 접하게 된 월남 국수, 월남 쌈 등의 베트남 음식은 베트남이라는 나라에 대한 궁금증을 더했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국수가 (미안하게도) 칼국수가 아닌 월남 쌀국수(Pho)일 정도로 베트남 음식을 즐기고, 보통의 한국 사람들이 잘 시도하지 않는 ‘빙샤오’와 같은 다양한 베트남 음식을 좋아하던 터라, 호치민시에 도착하면 현지 음식을 마음껏 즐기고 싶은 기대에 부풀었다. 더욱이 남가주에서 MSG 듬뿍 담긴 베트남 음식에 힘겨워 하던 차에 그 기대는 한층 더 컸다.

‘월남 패망’이건 ‘월남 해방’이건 간에, 뮤지컬 ‘미스 사이공’의 모티브가 발생한지 40여년이 지난 지금 필자는 ‘야자수’와 ‘아오자이’를 상상하며 베트남 호치민에 도착했다. 필자와 같은 ‘사이공’을 기억하는 세대들을 위한 것인지, 도시 이름은 위대한 지도자 ‘호치민 장군’의 이름을 따 호치민시(Hồ Chí Minh City)로 변경되었지만, 아직도 공항 약자는 과거 사이공 시절의 ‘SGN’을 사용한다. 왠지 무시무시한 공산당(!) 호치민(Hồ Chí Minh/胡志明) 장군님 보다는 사이공이라는 이름이 더 낭만적이라는 생각으로 호치민에 발을 들여놓았다. (비록 베트남 사람들은 ‘호 아저씨’ (Bác Hồ/ 伯胡)라고 부르며 친근하게 생각한다지만.)

호치민시는 ‘건설중’

호치민에 대한 첫 인상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필자는 ‘호치민은 현재 건설중’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80년대 강남 개발 시대에 그곳에 살던 필자는 강남의 참외밭과 비포장도로가 어떻게 변하고 빌딩과 아파트 숲으로 변했는지 목격하며 자랐다. 영동대로와 남부순환도로가 비포장이여서 비가 오면 장화를 신고 다녀야 했던 그 시절이 믿겨지지 않겠지만, 그리고 20년 동안 서울, 적어도 필자가 살던 강남은 끊임없이 건설 공사가 계속된 시기였다. 개포동이 건설되는 것을 목격했고, 그 도로들을 다시 뜯어 지하철을 놓는 공사까지. 그 당시 서울은 쉬지 않는 공사장이엇다. 필자는 호치민에서 그 데자뷰를 보는 듯 했다. 포장도로가 이어지다가 어느 순간 비포장 (완전 비포장이라고 하기도 어정쩡한, 포장하다 만듯 어찌 보면 포장 하려고 하는) 도로로 바뀌더니 다시 포장도로가 나온다. 새롭게 정리된 나대지에 새로운 건축물들이 들어서고 있고, 곳곳에 현대식 고층 빌딩들이 들어서고 있다.

   
고층빌딩 전망대에서 본 호치민 시티.

호치민 시내 고층빌딩 전망대에서 둘러보면, 유럽풍의 구시가, 새롭게 건설되는 신시가, 그리고 새롭게 개발될 지역까지 한 눈에 들어왔다. 호치민시 근처 빈탄성에서 레미콘 공장을 경영하는 윤장희 선배(경영 83)을 만나러 가는 길에도 곳곳이 건설 중이였다. 어쩌면 나라 전체가 공사 중인지도 모르겠다. 베트남 나라 전체가 역동적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오토바이 행렬, 그러나 아오자이는 없었다!

베트남 여행을 기록한 여행기들을 보면 정신없는 오토바이 행렬을 언급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마도 그 수많은 오토바이들의 행렬에 정신이 어질했던 필자의 느낌과 비슷한 느낌을 많은 사람들이 가졌나보다. 호치민시의 오토바이들. 정말 많다. 그리고 어지럽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양방향으로 몰려가는 어지러운 오토바이 행렬들이 어떻게 부딪히지도 않고 교통이 소통되는지 놀라울 뿐 이였다. 그냥 길 뿐 아니라, 사거리와 같은 교차로나 로타리 교차로에서 사방팔방에서 쏟아지는 오토바이의 무리들이 정면충돌할 것처럼 섞였다가 스르륵 풀리는 모습을 보면서 어지러움을 넘어 감탄을 할 정도에 이르렀다. 이 정도면 서커스나 묘기 대행진에 나가도 될 수준이었다.

   
오토바이들. 너무 어지러워 움직이는 오토바이들 사진은 찍을 수 없어서 대신 주차된 오토바이 사진들만 올린다.

그런데 필자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수많은 오토바이를 탄 사람들 중에 아오자이가, 하얀 아오자이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런 나의 어린 시절 흑백 사진으로 머리에 맴돌던, 베트남을 무대로 한 소설들에 낭만적으로 묘사되던 그 아오자이가 보이지 않다니. 내가 잘못 온 건가? 여기가 베트남이 아니었던가? 혹시 베트남 여자들은 오토바이를 타지 못하나?

자세히 살펴보니 수많은 베트남 오토바이족들 사이로 헬멧을 쓴 젊은 여성들이 많았다. 그 많은 여성들이 아오자이를 입은 것이 아니고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렇다. 이제 베트남에서 여성들이 아오자이를 입지 않고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는 세태가 되었나 보다.  마치 한국에서 한복을 입은 사람을 보기 어렵고 일본에서 기모노를 입은 사람 찾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이것도 베트남 경제 성장의 한 모습인가? 베트남 경제가 발전하면서 베트남에서 아오자이를 찾기 더 어려워질 것 같다.

베트남 음식 – 실망시키지 않는!

한국 음식을 제외하고 어느 나라 음식을 좋아하느냐라는 질문에 필자는 베트남 음식과 타이 음식 사이에서 상당히 고민할 것 같다. 하지만 중국 음식의 영향을 많이 받아 기름을 많이 사용하는 타이 음식에 비해 베트남 음식은 소위 ‘웰빙’ 음식에 가깝다. 원 재료의 식감을 많이 살리고 조리를 할 때에도 살짝 데치거나 삶는 등의 조리 방식이 많이 사용된다. 그리고 신선한 야채와 과일들을 주식에 많이 사용하는 것도 특이하다. 그리고 베트남 간장. 생선을 삭혀 발효시킨 베트남 간장은 콩으로 만든 한국 간장과는 사뭇 다른 맛이다. 코끝에 생선 비린내가 날듯 말듯 하면서 약간은 달콤한 느낌마저 나는 베트남 생선 간장은 베트남 음식에 없어서는 않될 소스다.

   

베트남에서 먹은 베트남 정통 요리 정찬은 아무리 먹어도 배부르지 않았다. 베트남의 한국 교포들에게 들은 공통적인 이야기는, 베트남 음식은 먹고 뒤돌아서면 배가 꺼진다는 것이다. 필자의 관찰로는 첫째, 베트남 음식의 ‘양’ 자체가 적다. 점심으로 이것저것 시켜 먹으니 종업원이 누구 한명 더 오냐고 물어볼 정도다. 그렇게 많이 시켰는데도 미국 기준으로는 거하게 먹은 것과는 거리가 있는, ‘보통’ 수준이라고 느낄 정도니 말이다. 둘째, 베트남 식재료가 소화에 부담이 덜한 것 같다. 기름을 많이 사용하지 않고 신선한 야채와 과일들을 많이 사용하다 보니 소화에 부담이 덜하고 따라서 빨리 배가 ‘꺼지는’ 느낌이 드는 것 아닐까?  더불어 한국 사람이 주식으로 먹는 찰기가 강한 쌀(Short Rice)에 비해 베트남 사람들이 먹는 소위 ‘안남미’(Long Rice)가 위에 부담을 덜 한다는 것을 새롭게 배웠다.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며 10년 넘게 거주한 지인에 따르면 한국에서 늘 달고 다니던 위장병이 베트남에 와서 얼마 만에 사라졌다고. 비단 쌀만의 문제가 아닐 수 있지만, 여행 후 간단한 검색으로 조사해 보니 상당히 신빙성 있는 위장병 치료의 이유라는 생각이 든다.

베트남 음식의 또 하나 강점은 풍부하고 신선한 해산물이다. 베트남에서 만난 윤장희 선배가 풍성한 해산물 파티를 열어줬다.

   

   
윤장희(왼쪽) 선배와 함께.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새우, 큰 조개 등 신선한 재료들을 간단하게 구워 먹거나 삶아 먹는 저녁 식사 파티. 물론 신선하고 맛있는 해산물처럼 멀리서 온 후배를 살갑게 맞아준 윤장희 선배의 따뜻한 마음에 더 더욱 저녁 해산물 파티가 맛있고 성대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이 글로 선배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전쟁의 역사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필자 어린 시절 베트남이란 나라는 해마다 4월쯤이면 방송국마다 다큐멘터리를 틀어줘서, 불쌍한 나라 그리고 ‘우리는 월남처럼 공산화 되지 말아야지’ 하는 공포심과 경각심을 갖게 해준 나라였다. 통일궁과 구찌 터널은 그 무시무시한 ‘공산당’의 입장에서 바라본 역사를 볼 수 있는 흥미로운 기회였다. 

통일궁에서 본 ‘사이공 최후의 날’ – 월남패망 vs. 통일

   
통일 궁전 전경

통일궁(Dinh Thống Nhất/營統一)은 남 베트남 정부의 대통령궁이 이름을 바꾼 것으로, 남 베트남 정부의 최고 권력이 숨 쉬던 곳이다. 이 통일 궁전에는 월남전 종식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사진인 북베트남 탱크가 (당시) 대통령궁 문을 부수고 들어가는 모습을 포함해 여러 기록들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역사적인 탱크가 자랑스럽게 통일 궁전 앞마당에 전시되어 있었다. 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승전한 거의 유일한 나라이니, 베트남 사람들의 긍지와 자존심을 느낄 수 있었다.

   
통일궁 앞에 전시된 탱크.

   
통일궁 내부.

통일궁의 지하벙커는 전쟁 당시 사용하던 것이라고 하는데 각종 통신 장비들이 보존되고 있다. 특이하게 눈에 띄는 점은 전쟁 당시 외국 군대 파병 숫자 현황을 적어 놓은 판으로, 한국군(Dai Han) 50,355명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미군이 54만여명인 것에 비하면 약 1/10에 해당하는 꽤 많은 숫자인 셈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당시 전쟁에 참여한 나라들에 대해 ‘미군과 그 용병들’이라고 표현하니, 그 표현대로 하자면 우리나라는 참 많은 수의 용병을 파병한 셈이다. 이유야 어쨌건, 그리고 정당성이 어쨌건 간에 사실 많은 수의 한국 젊은이들이 먼 이국에 와서 목숨을 걸고 싸웠고, 돈을 벌기 위해 전쟁터를 찾은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은 언제 전쟁을 했었냐는 듯이 서로 사이좋게 지내고 있으니 역사란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든다.

   
외국 군대 파병 현황표.

구찌터널 (Địa đạo Củ Chi: Cu Chi Tunnels) – 인민의 인고를 담아 낸 최고의 명품 터널

호치민 시내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교외에 위치한 ‘구찌터널’에는 명품 구찌는 없다. 하지만 그곳에는 독립을 염원하며 항전했던 베트남 민족의 (심지어 섬뜩하기까지 한) 끈기와 노력이 그대로 보여지는, 베트남 인민들의 인고를 보여주는 세계 최고의 명품 터널이라고 말하고 싶다. 20여년간 2,500Km의 터널을 팠다니! 그것도 중장비 없이, 들키지 않게 몰래 말이다!

   
구찌 터널은 지하 3개 층으로 나눠져 있다.

구찌 터널을 방문하기 전 호치민 시내에 있는 통일 궁전(월남 패망전 대통령궁)을 둘러볼 때에도 미국과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쟁취했다는 베트남인들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구찌 터널을 보는 순간 ‘덜덜덜~’하는 ‘살벌한’ 공포가 느껴지면서 그간 고통스러웠을 베트남 민족에 대한 측은한 마음과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존경심마저 느껴졌다.

흔히들 베트남 전쟁을 전선 없는 전쟁이라고 부른다. 공산국가인 북 베트남, 혹은 베트남 민주공화국(Việt Nam Dân Chủ Cộng Hòa-비엣 남 전 쭈 꽁 호아)과 남 베트남인 베트남 공화국(Việt Nam Cộng Hòa-비엣 남 꽁호아)간의 정규전은 북위 17도선상의 남북 대치 지역에서 벌어졌다. 하지만 실제 격전지는 소위 ‘베트콩’ (Việt Cộng-비엣꽁/越共)이라 불리며 정식 명칭은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인 게릴라들과 미군(그리고 그 용병들)과의 전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전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호치민 시내와 그 외곽 지역에서도 치열한 전투를 치렀으니 전선과 후방이 구분된 개념의 전쟁은 아니었던 셈이다.

구찌 터널은 유사한 여러 지하 터널 중 하나로 호치민 근교에 위치해 있으며 그 규모가 가장 크다고 하며 호치민시 근처에 있기에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게릴라들인 베트콩들이 신출귀몰하게 전투를 벌일 수 있도록 아주 좁은 터널을 만들었고, 그 층을 3개 층으로 하여 생활, 주거, 학습 공간까지 만든 일종의 ‘지하도시’인 셈이다. 그리고 그 총연장 길이는 2,500km에 달한다고 한다. 그래도 설명만으로는 이해가 안 되었다. 어떻게 그렇게 긴 터널이 미군 코앞에 있는데(호치민 시내에서 1시간 거리) 어떻게 발견되지 않고 20여년간 미군을 농락할 수 있었을까? 그에 대한 대답은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가서 보면 이해가 된다.

   
터널 입구.

우선 그 입구들이 너무 좁고 위장되어 있어 발견하기도 힘들지만 발견한다고 해서 (날씬한 베트남 사람에 비해 체구가 큰 미군들이) 들어갈 수가 없다. 그리고 한 입구를 발견한다고 해도 쉽게 다른 곳, 전체로 연결되기가 어렵도록 곳곳에 병목(Bottleneck)을 만들었다. 유명한 공산당 조직 형태인 ‘세포’가 연상되는 대목이다. 일부가 발각돼도 전체는 건제하도록 만든 세포 조직 말이다.

   
부비 트랩.

그리고 곳곳에 부비 트랩을 만들었다. 입구를 찾아도 죽창이 살벌하게 깔린 부비트랩에 걸려들도록 만들었다. 참 무서운 사람들이다. 그 외에도 온갖 ‘잔머리’들은 혀를 두르게 한다. 가령 신발 모양을 거꾸로 만들어서 추격하는 미군들을 반대 방향으로 따돌린다던지, 지하도시에서 식사 준비를 하면서 나오는 연기를 2-3km 떨어진 여러 개의 연기 구멍으로 분산해서 내보낸다는 지 하는 눈물겨운 노력들이 있었다.

베트남 전쟁은 미국이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었다고들 베트남 사람들은 이야기 한다. 미국은 ‘반공’을 위해 공산당과 싸웠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베트남 독립을 위해 외세와 싸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미국, 프랑스 그리고 서구 세계가 지원하는 남베트남 정부가 민심과 이반되어 있었기 때문에 민심을 거스르며 승리하는 전쟁은 없다는 것이다. 

베트남을 떠나며 - 역사와 오늘에 대한 단상

베트남을 떠나는 길에, 그 역사나 사회를 공부한 전문가도 아니고 베트남에 오래 산 실제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고, 오히려 철저한 나그네로써 베트남의 역사와 현재 모습에 대해 몇 가지 생각들을 나열해 본다.

베트남 역사는 ‘참 힘들었겠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역사다. 938년 중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중국 왕조들과 끊임없이 싸우고, 역사학자 에릭 홉스보움(Eric Hobsbawm)이 ‘제국의 시대’라 명명한 시기에 들어서는 프랑스 식민지가 되고, 프랑스와의 승전 이후에는 다시 미국과의 전쟁을 했던 어려운 역사를 가진 나라다. 하지만 그 강대국들 사이에서 자신을 지켜낸 ‘독한 민족’인 베트남 사람들은 또 다른 ‘독한 민족’인 한국인들처럼 경제 성장을 잘 이뤄낼 수 있을지 기대된다.

과거 총구를 겨누며 피를 흘리며 싸웠던 베트남과 한국, 그리고 베트남과 미국. 지금은 언제 그 전쟁이 있었느냐는 듯이 자유롭게 거래하고 자유롭게 사람과 물건이 오간다. 40년, 50년 전에는 무엇때문에 그리 지긋지긋하게 싸워댄 건지. 그 전쟁 당시 ‘대의’와 ‘명분’을 위해 사라져간 영혼들이 지금의 모습을 본다면 허탈해 하지 않을지. 지금 당장에는 그렇게 크게 보이고 대단해 보이는 것들도 긴 역사의 흐름을 지나고 보면 그 또한 하나의 ‘점’이 아닐까.

호치민 시내 곳곳이 공사장이고 건설 현장이었다. 산업화가 진행 중인 나라다. 그 산업화의 흐름에서 하늘하늘한 아오자이를 입은, 가냘퍼 보이는 여인들은 사라지고 있다. 대신 페스트푸드로 비대해진 몸으로 자전거 대신 오토바이(그리고 다시 ‘마이카’가 되겠지)를 타고 가는 ‘자본주의형’ 베트남인들을 점점 더 많이 보게 될 것이다.

김한신 (서양사 92,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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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14)
  아오자이를 찾아서 간 여행 오달 2014-05-29 13:58:12
멋 있어요. 꼭 아오자이가 없더라도 반겨주는 엘에이 동문, 그리고 여여한 야자수.
비지니스 여행을 하며 그 만한 여유를 가지기 힘들어요.
두가지 다 잘하는 김변, 박수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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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XXX.XXX.241)
  어쩌면 두가지 다... 김한신 2014-05-31 08:04:29
못하고 있는것일 수도.....
추천0 반대0
(108.XXX.XXX.151)
  한신님의 철두철미한 글 워낭 2014-05-29 07:02:30
뭘 해도 야무딱진 그의 성격을 반영하듯 글도 완전 종합판이군요. 체험이 어우러진 베트남 완결판 보고서. 국제무대를 누비는 님의 활동이 멋져요.ㅡ구찌 터널 모르던 것도 새로 배웠네요. 정말 대단한 민족입니다.
추천0 반대0
(24.XXX.XXX.187)
  구찌터널 - 어둠의 공포 김한신 2014-05-31 08:03:52
구지터널 일화 하나 소개 - 터널 '체험' 부분에서 완전히 빛이 끊긴 구간이 있어요. 분명히 광광코스니 길지 않을테고 사람들 소리가 앞에서 들리고 하나로 난 통로인데도 그 짧은 순간 (한 3분?) 빛이 완전히 차단되니 공포가 장난 아니더군요. 사람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느끼는 경험이였습니다.
추천0 반대0
(108.XXX.XXX.151)
  대학때... 이종호 2014-05-28 17:11:50
유인선 교수의 월남사를 들었던 기억이....가물가물...그중 월남은 동남아에서 늘 맹주로 군림했던(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 등의 조공을 받던) 나라였다는 말이 어렴풋이 기억나네요. 그래서 자존심이 대쪽인 나라였다는 것도...그런 나라가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던 것은 의문이고...나중에 미국을 이긴 것은 당연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호치민시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게 만드는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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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XXX.XXX.3)
  공자 앞에서 문자쓴 느낌이라.... 김한신 2014-05-29 06:55:28
뻘쭘하네요. ^^ 전공자 앞에서 감히 '월남 역사'를 들먹여서....일천한 지식이 들어난것이 아닌가 두렵습니다. 베트남 '민족'과 '국가'의 형성,주변국들과의 다이나믹 모두 흥미진진한 주제여서 더 공부하고 싶습니다. 혹 도움이 될 가이드를 주실 수 있으시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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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XXX.XXX.151)
  동양사학과... 이종호 2014-05-29 13:09:10
81학번 동기 중에 월남사 전공해 교수가 된 친구가 있는데..최병욱이라고 지금 인하대 교수임. 그가 쓴 '동남아시아사 -전통시대 (2006, 대한교과서 발행)'가 요즘 동남아 진출하는 한국 기업인들이 많이 보는 좋은 개론서라고 들었습니다. 월남,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태국, 버마 등 동남아 각국의 역사와 사람 이야기를 알기 쉽게 정리한 것인데 동남아 출장 다닐때 한 번 읽어보시면 도움될 듯. 원하면 빌려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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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XXX.XXX.3)
  그런 좋은 책이? 김한신 2014-05-31 08:00:46
그럼 사서 봐야죠...보통 서점에서는 팔지 않는것 같아요. 그렇지 않아도 작은 서점에 들려서 동남아 역사책 찾아봤거든요. 역사 코너에는 요즘엔 '정도전' 말고는 없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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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XXX.XXX.151)
  베트남 이병철 2014-05-28 08:47:27
글 잘 썼네. 인니와 가깝게 있고, 동종 업종을 취급하는 공장들이 많아 이 곳과 많이 비교가 되기도 하는데, 최근에 중국과의 마찰문제로 다소 시끄럽더구만. 한국이나 미국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라 한번 가고 싶었는데, 한신 후배 덕분에 미리 맛을 봤구만. 장희 후배도 전화 통화만 하다 사진 보니 반갑고... 잘 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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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XXX.XXX.150)
  병철이형... 김한신 2014-05-28 10:45:30
다음 편엔 형이 찬조 출연하실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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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XXX.XXX.58)
  김변 세상을 아주 재밌게 사시는군요. 직업과 취미를 결합시킬 줄 아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믿는데 김변이 그런 사람입니다. 변변 2014-05-27 08:39:37
역시 역사 공부하신 분 답습니다. 자카르타 편도 몹시 기대됩니다. 여행을 하면서 professional horizon 도 넓히시는 김변의 삶에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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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XXX.XXX.145)
  여행은 김한신` 2014-05-27 22:45:41
제가 어릴적부터의 꿈이였습니다. '출장'으로 그 꿈이 이뤄지는것 같아서 요즘 감사하게 살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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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XXX.XXX.151)
  월남의 진수 김종하 2014-05-26 17:59:01
캬~ 역사를 공부한 변호사답게 베트남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네요. 윤장희님도 반갑고요.
베트남 가고싶게 만드는 출장기. 다음 장소는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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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131)
  병철이형을 김한신 2014-05-26 19:30:27
찬조 출연시키는 자카르타 출장기 기획중입니다~ ^^
추천0 반대0
(108.XXX.XXX.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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