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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없는 길, 사람도 물처럼 흐르더라
[상실의 '클래스 2' 체험기] 산악회 월례 산행 따라갔다가...
2014년 05월 15일 (목) 15:48:04 이상실 기자 acroedito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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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간 만에 서울대 산악회 월례 산행에 따라갔다. 부드러운 황토길, 가벼운 꽃길을 꿈꾸었는데. 김동근 대장님께서 보낸 모임 장소까지의 안내에 “Class 2 hiking”이란 말이 있어 약간은 꺼림찍.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클래스 2 하이킹이란 “가끔씩 네발로 기어갈 수도 있고, 추락의 위험이 있는데, 대단한 것은 아니고 끽해야 중상(severe injury)”이란다.
 
그래도 깊은 산 높은 하늘이 땡기는 날이다. 로스안젤레스 뒷산 앤젤레스 포리스트로 차를 몰았다. 그런데 트레일 초입부터 자꾸 “클래스 2”라는 말이 마음에 걸리기 시작한다. 아니나 다를까 앞에는 바위, 옆에는 낭떠러지, 대체로 그런 길이다. 내려가는 길이지만 오금이 저릴 수밖에.  김동근 대장님, 그리고 사모님은 길 없는 곳에서 길을 찾아내는 천재적 감각을 가지고 계시다. 헐레벌떡, 혼비백산 그렇게 어렵게 계곡까지 내려갔다.
 
계곡에서 클래스 2 하이킹 무용담, 그리고 점심까지 먹었다. 계곡 물길을 따라 내려가다 올라오는 트레일을 만나야 한다는 김대장님 말씀. 내려온 바위길을 올라갈 자신은 없고, 물길 따라 내려가는 수밖에.
 
그런데 물길은 물이 흐르도록 설계된 것이다.  물길을 따라 사람이 흐르자니 이건 클래스 2가 아니고 클래스 10쯤 되 보인다. 하이킹 클래스는 클래스 5가 최고라니 더 엄살을 떨 수도 없고 따라 나설 수밖에. 문제는 가끔씩 나타나는 폭포. 나이아가라 급은 아니지만 내 키로는 세배쯤 낙차가 있다.
 
발랑 넘어진 거북이처럼 등을 대고 사지를 이리 저리 비틀어서 바위 물길을 내려온다. 때로는 다시 등을 바깥으로 뒤집고 바위틈에 손을 넣고, 보이지 않는 발걸이를 찾는 묘기도 필요하다. 미끈한 바위에 발을 걸 자리가 없는 때는 김 대장님 어깨, 다음은 무릎을 발판 삼아 겨우 폭포를 내려오기도 했다.
 
길이 없어도 길은 있다. 존재는 그 순간이다. 바위 끝에 매달려 발 디딜 틈을 찾는 그 순간은 엄지발가락을 올려놓을 그 곳이 우주다. 물이 흐르듯 사람도 흐른다. 사람이 흐르는 그 길에는 아찔, 캄캄한 절벽도 있고, 작은 바위 모서리가 하나님일 때도 있다. 그래도 먼저 가서 손 잡아주고 어깨로 받쳐 주는 사람들이 있어, 인생은 서걱, 삐걱 흘러간다.
 
-어떤 때: 2014년 5월 2일.
-어떤 사람: 서울대 산악회 여러분.
-어느 곳: 보안상 밝힐 수 없음. (그 계곡에 들어가지 말라는 표지가 있다는 설이 있음, 우리는 못 보았음).

   
절벽 사이를 이렇게 내려옵니다.

   
구원은 항상 높은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밑에 계신 김대장님이 저를 구원해주십니다.

   
마른 폭포, 등으로 기고, 네 발로 기고, 마지막에는 김대장님 어깨, 무릎을 밟고 내려왔습니다.

   
세상 둥글둥글 사세요. 물 길 그리고 세월의 흐름 속에 제대로 참선을 한 원형 바위.


이상실 (간호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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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4)
  처음보는 상실 동문 글 최용완 2014-06-11 04:26:37
재주가 매주입니다. 글재주 사진재주 마음재주 몸재주
다음에 재주넘는 날엔 장꾼들 함께 구경하고 싶습니다.
추천0 반대0
(68.XXX.XXX.125)
  상실님 워낭 2014-05-15 15:20:56
이렇게 뮤쟈게 놀면 소는 누가 키우노 소는? 그 마음의 여유가 부럽당
추천0 반대0
(74.XXX.XXX.3)
  등산을 하면 명문장이 나온다?? 곽건용 2014-05-15 09:32:13
죽을 고비를 넘기면 문장이 이렇게 유려해지는구려. 캬!! 그 산에 가보고 싶게 만드네여. ㅋㅋ
추천0 반대0
(99.XXX.XXX.162)
  캬~ 짧은 산행기에 김종하 2014-05-14 23:00:13
인생의 통찰이 담겨 있네요.
"존재는 그 순간이다. 바위 끝에 매달려 발 디딜 틈을 찾는 그 순간은 엄지발가락을 올려놓을 그 곳이 우주다."
"사람이 흐르는 그 길에는... 작은 바위 모서리가 하나님일 때도 있다."
"그래도 먼저 가서 손 잡아주고 어깨로 받쳐 주는 사람들이 있어, 인생은 서걱, 삐걱 흘러간다."
멋쪄요.
추천0 반대0
(107.XXX.XXX.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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