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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수양산 그늘’ 의미를 알았네
[이종호의 풍향계] 어머니날 찾는 삶은 달걀은
2014년 05월 08일 (목) 16:38:13 이종호 기자 acroedito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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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70년대, 한국은 발전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가난이 일상인 시절이었다. 많은 어머니들은 고단하게 일을 해야 했고 그런 어머니를 기다리며 아이들은 자랐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幼年)의 윗목.

기형도 시인의 시 '엄마생각'이다. 오래 전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울었다. 열무 삼십단만 빼면 모두가 내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일 나간 엄마를 혼자서 기다려 본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리라. 그 간절함과 두려움의 시간이 얼마나 더디게 가는가를.

어머니는 마흔이 넘어 나를 낳으셨다. 늦게 본 막내였는데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어머니는 늘 내가 장성하기 전에 당신이 어떻게 될까봐 걱정하셨다. "수양산 그늘이 강동 800리를 덮는다"며 "헌 거적때기 같은 에미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도 하셨다. 그 때는 그 말뜻을 알지 못했다.

중학교 때였다. 내 도시락은 빈궁했다. 방출미로 지은 밥은 푸르르 날렸고 반찬은 허여멀건 김치 아니면 콩장이었다. 계란말이나 소시지 반찬을 싸오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한 번은 어머니께 나도 달걀 반찬 좀 싸주면 안 되겠느냐고 말했다. 뻔히 사정을 아는 터라 기대는 안했다. 그런데 어느 날 도시락을 연 나는 깜짝 놀랐다. 밥 속에 삶은 달걀이 하나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달걀 하나일지언정 마음껏 먹을 수 있던 형편이 아니었다. 많은 식구에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 주고 할 수도 없었던 귀한 달걀. 어머니는 막내를 위해 몰래 도시락 깊이 묻어준 것이다.

어머니는 옛날 사람이었다. 달걀이라면 그저 종지에 풀어 밥 위에 찌는 것 아니면 물 붓고 삶는 것이 할 줄 아는 요리의 전부였다. 도시락 반찬으로 삶은 달걀을 통째로 싸오는 친구는 없었다. 민망했다. 그날 난 그 달걀을 학교에서 먹지 않았다. 바.보.같.이….

그 때 이후 어머니는 가끔 그렇게 삶은 달걀을 도시락 밥 속에 넣어주셨다. 어쩌면 그 달걀 힘으로 고등학교 입시전쟁을 이겨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습관은 무섭다. 지금도 달걀하면 나는 삶은 달걀을 최고로 친다.

어머니는 학교 문턱에도 못 가본 분이셨지만 독학으로 한글을 깨쳤다. 내가 대학 공부하러 서울로 올라가자 어머니는 수시로 편지를 보내셨다. 찢겨진 공책 쪼가리에 삐뚤빼뚤 써 내려간 어머니 편지는 늘 '오매불망 보고 싶은 우리 아들 보거라'로 시작했다. 가난과 결핍을 미안해 하는 마음을 4.4조 가사체에 담아 적고는 항상 이렇게 끝을 맺었다. '에미 걱정일랑 말고 우짜든동 몸조심 하거라. 이만 총총.' 표기법도 맞춤법도 전혀 맞지 않았지만 세상 어떤 편지보다 귀하고 소중한 편지였다. 지금은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는….

어머니는 당신의 염려와는 달리 내가 대학 가고, 직장 잡고, 결혼하고 7년 만에 낳은 손자까지 보고 나서 돌아가셨다. 14년 전이다. 어머니를 여의고 난 뒤 나는 비로소 '수양산 그늘'의 의미를 깨달았다. 그것은 잘났든 못났든 세상 모든 어머니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 자식들에게 힘이 된다는 것이다. 이 땅의 부모는 단 한 명 예외 없이 모두가 위대하다는 것이다.

5월, 다시 어머니 날이 온다. 투정이라도 부리고 싶어도 더 이상 그럴 수가 없다. 못난 자식은 괜히 삶은 달걀만 또 찾는다.

   
옛날 도시락. '오늘은 속이 불편하구나'라는 제목의 쌍용그룹 이미지 광고에 나왔던 사진.

이종호 (동양사 81, 언론인) *LA 중앙일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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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12)
  어머니가 가까운 데 계셔서 곽건용 2014-05-15 09:38:12
매주 적어도 한 번은 뵙는 저는 행복한 아들입니다. 그래도 한 주에 한 번이나 전화할까 말까 하니 원...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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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XXX.XXX.162)
  최루성 글 Kong 2014-05-12 10:17:40
저는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 전화통화를 할 때면 자꾸 눈물이 나와 가급적 다른 사람이 없는 곳에서 몰래 통화를 합니다.
그것도 가만히 있으면 감정이 약해질까봐 제자리에서 마구 뛰면서...

부모님 말씀은 늘 똑같습니다.
"우리는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말고 너희 잘 지내라."라는 말씀.

이종호 선배님의 글을 읽고 나니 부모님 생각에 또 목이 멥니다.
추천0 반대0
(38.XXX.XXX.82)
  종호 이병철 2014-05-09 07:50:00
어머니의 소박한 자식 사랑으로 종호가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했구만. 항상 잔잔한 인간미로 남을 감동시키는 종호가 한번씩 보고 싶으네... 잘 지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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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XXX.XXX.150)
  잘있지. 종호 2014-05-10 06:34:29
지금도 병철 어록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아. 무슨 모임때마다 너의 빈자리가 커다는 것을 새삼 느끼는 요즘이네. 잘 지내시게.
추천0 반대0
(71.XXX.XXX.53)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글 정말이지 감사합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도 모르고 지나칠뻔 했는데 파수꾼처럼 오늘의 의미를 알려주셨습니다. 변변 2014-05-09 06:42:46
수양산음강동팔십리 (首陽山陰 江東八十里) 는 다소 과장된 것 같습니다. 팔십리는 32 km 정도이고 20 mile 입니다. 로스엔젤레스 다운타운에서 산타모니카 정도 되는 거리입니다. 산의 그림자가 엘에이에서 산타모니카까지 걸친다고 하니 과연 중국인다운 과장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어버이의 은혜는 하늘만큼 높고 바다만큼 깊다] 했으니 한국 동요의 과장도 만만치 않습니다. 오늘 부모님께 전화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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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XXX.XXX.145)
  중국인의 과장법이야... 종호 2014-05-10 06:37:17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고...변변님의 해학과 위트넘치는 글도 올라올 때가 됐는데....
추천0 반대0
(71.XXX.XXX.53)
  어머니 날 오달 2014-05-09 01:05:24
한국 시간으로 어머니 날 다음날을 엄마와 함께 지냈습니다. 요양원에서 모시고 나와서 시골 산길 호숫가 식당에서 점심도 사드리고... 기형도의 시에 나오는 어머니 우리 엄마 젋은 시절의 모습입니다. 저도 엄마가 돌아오시기를 혼자 서 기다린 적이 많이 있습니다. 종호님의 담담한 글 속에서 기형도의 시를 보니 새롭네요. 엄마의 기억은 모든 이에게 다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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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XXX.XXX.223)
  또 한국에... 이종호 2014-05-10 06:41:10
가 계시는군요. 효자 아들이십니다.전 효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만년의 어머님 뵈러 거의 매달 부산 내려갔던 기억은 납니다. 연세가 많이 드시니 뵈러 가도 말 수는 극히 줄어들고....그냥 선한 웃음에 그저 '왔나?"라고만 말씀하시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뭐라 말좀 해 보세요 하면 "할 말 이 뭐있노?" 라고 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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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XXX.XXX.53)
  원글의 제목은... 이종호 2014-05-08 12:37:15
'삶은 달걀은 왜 맛있을까' 였습니다. 어렵게 자란 분들은 이 얘기 공감하시겠죠. 과거 우리 어머니들은 다들 고난과 헌신과 희생으로 기억되는데 모든 게 풍족해진 요즘 시대 어머니들은 자식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지...자식보다 더 잘나고 더 똑똑한 엄마들이 너무 많은 세상이라서...마마보이, 타이거맘, 헬리콥터맘, 치맛바람...이런 이야기들이 낯설지 않은 시대이니 이젠 전통적인 어머니상도 바뀌지 않을까 싶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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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XXX.XXX.3)
  다. ...신문에 이 글이 실리던 날.. 종호 2014-05-10 06:48:04
많은 독자분들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대개 연세가 드신 분들이었는데...어려웠던 시절 다들 내 이야기라고 하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우리 모두 다 그런 어머님들 밑에서 자랐습니다. 돌이켜보면 힘들었지만 행복한 시절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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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XXX.XXX.53)
  세상 모든 어머니는 김종하 2014-05-07 23:45:47
존재 그 자체만으로 자식들에게 힘이 된다는 말씀 새깁니다.
미국에 떨어져 사는 아들이라 더욱 그렇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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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XXX.XXX.123)
  전화라도... 종호 2014-05-10 06:44:10
돌리세요. 노인은 자식 손자 얼굴 자주 보여주고 목소리 들려주고...그게 제일 효도랍니다.
추천0 반대0
(71.XXX.XXX.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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