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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의 아버지였다, 이다!
[어버이날 부르는 오달의 사부곡(思父曲)] 초혼(招魂)
2014년 05월 08일 (목) 16:17:51 김지영 기자 acroedito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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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이 가을에는 감만 따서는 안 될 터이다. 정진사댁 작은 손녀의 마음도 얻어야 한다. 아직 나무에 달린 감들이 소담하다. 탱탱하게 살찐 감들, 그 사이로 하늘이 시원하다. 빨간 감잎, 노란 감, 파란 하늘 -- 늦가을이 화려하다. 화려한 만큼 그에게는 심란하기도 하다. 감나무를 돌아보는 그의 눈에는 소녀의 그림자만 보인다. 솜털 소롯이 덮인 풋복숭아 같은 모습.
 
그는 땡감장수이다. 갓 스물, 먹고 사는 일이 항상 고달프다. 남의 논, 남의 밭에 한 해 전부를 쏟아 부어도, 굶지 않고 일 년 나기가 버겁다. 그래서 한여름 농사일과 가을걷이철 그 사이 그는 감 장사를 시작한다. 아직 감이 앵두만 할 때 감들을 나무 떼기로 사들이는 일이다. 그리고 늦가을 감들을 딴다. 땡감이다. 떫어서 그냥 먹을 수 없다. 뜨거운 소금물에 담그고 하루밤을 우려내어 떫은 맛을 없앤 후에 장에 내다 판다. 솔찬이 돈이 되는 일이다.

지름재, 그가 사는 삼바실에서 삼십리. 장정의 바쁜 걸음으로도 세 시간 족히 걸리는 산길이다. 동서남북 사방이 산으로 꽉막힌 골짜기, 그 안에 있는 제법 큰 마을이다. 정진사댁, 정씨 문중의 종가다. 종갓집답게 사랑채, 안채, 바깥마당, 안마당 구별이 있는 큰 집이다. 그리고 감나무가 다섯그루나 있다. 바깥마당 창고 곁에 두 그루, 사랑채 뒤쪽 잿간 앞에 한 그루, 그리고 안채 부엌 뒤쪽에 두 그루.

그는 정진사 집에 있는 다섯그루 뿐만 아니라 지름재 여기저기 있는 감나무 50여그루에 열린 감을 따서 판다. 그가 아직 어린나이에 남의 동네 땡감을 나무째 살 수 있는 것은 정진사 덕분이다.

말이 진사지, 그 할아버지가 진사 벼슬을 했는지 아무도 묻지 않는다. 사람들은 아직도 진사라는 벼슬이 있기나 한지, 그런 것에도 관심이 없다. 해방 직후 한국 충청도 궁벽한 산골에서는 살아가는 일이 더 급하다. 정진사는 근동에 아직도 남아 있는 유일한 서당 훈장님이다. 그래서 진사라는 호칭이 그럴법하다. 학동들을 가르칠 때 빼고는 똥장군도 지고, 돼지접도 부치는 농사꾼이다.

그래도 정진사는 반상구별이 엄했던 옛날을 기억한다. 근동의 양반 집안을 소상히 알고 있다. 그의 집안도 정진사가 훤히 꿰고 있는 양반 집안이다. 그가 정진사를 찾아가 넌지시 감 이야기를 했을 때 정진사는 두 말 없이 그 동네 감나무를 전부 그에게 맡긴다. 정진사는 그가 주위 동네 최고 반가 종손이라는 것을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정진사의 말은 그 동네의 법이기도 하다.

첫 방문은 나무째 감을 사기 위해서 왔을 때다. 그해 그는 지름재에 세 번 더 온다. 여름 장마철 지나선 큰 비에 낙과가 없었는지 나무 상태를 보기 위해 오고, 추석 무렵 감이 얼마나 익어가는지 가늠을 하기 위해 들려야 한다. 그리고 늦가을 새 이엉으로 지붕을 덮을 때쯤 감을 따기 위해서.

추석 지난 후에 지름재에 들렸을 때 정진사는 그를 사랑채에 재운다. 그때 저녁 밥상을 들고 온 소녀를 본다. 정진사 둘째 아들의 큰 딸. 내외가 법도라고 배운터라 말 한마디 못하고 멋쩍은 미소만 흘린다. 늦가을 감을 따러 왔을 때는 닷새를 묵는다. 가을 한철 그녀가 부쩍 웃자라 보인다. 아직도 애기 티가 더 많기는 하지만. 그는 감을 따면서도 눈이 시도록 그녀의 그림자만 본다. 이 가을에는 감만 딸 게 아니다.

겨울.

겨울은 춥기만 한 것은 아니다. 기다림으로 들떠 있는 마음에는 언제나 뜨거운 불씨가 있다. 고드름 끝에 비친 햇살 속에도 그녀가 반짝 보인다. 매파로부터는 아직 기별이 없다. 눈까지 내린다. 산 고갯길이 막힐 텐데.

감을 사는 일이야 정진사에게 직접 말할 수 있지만, 사람을 얻는 일은 그럴 수가 없다. 근동에서 보따리 장사를 하는 아줌마를 통하여 뜻을 전한 지가 벌써 한 달, 아직도 소식이 없다. 안채 사람들이 마음을 정하고 정진사가 마지막 결정을 할 터였다. 시간이 걸리겠지.

섣달 그믐께가 되어서야 연락이 왔다. 정진사가 두 말 없이 승낙을 했다고.

스무살 인생, 살아온 날중의 가장 기쁜 날이다. 당장 산고개를 넘어 지름재로 가고 싶다. 그러나 환희가 전부는 아니다. 신부를 맞아야 하는 준비, 그 엄연한 현실도 그의 몫이다. 그의 아버지는 몰락한 양반집 외아들, 현실의 짐을 지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다. 철이 들면서 그가 살림을 꾸려온 처지이다. 자신의 혼례도 맡길 데가 없는 스무살의 신랑. 그래도 그 어려움조차 그에게는 기쁨이다.

봄.

봄은 배고픈 계절이다. 삼바실에는 아직 해동을 하기도 전부터 곡기가 끊어지는 집도 있다. 햇보리가 팰 때쯤 되면 배를 곯는 것이 예사로운 일이다. 이 봄은 그에게 더 어려운 봄이다. 낮이 밤보다 길어지기 시작하고, 길어진 하루만큼 배고픔이 더해가는 사월, 그는 장가를 간다.

정진사댁 바깥 마당 초례청에서 다시 만난 그녀, 이제는 그의 새색시이다. 첫날밤, 처음으로 서로 얼굴을 마주 본다. 그리고 수줍고 어색한 짧은 대화 몇 마디. 그냥 설레일 뿐, 무슨 말이 나오는지 자신도 알수 없는 그런 밤이다.

그는 새색시를 데리고 삼바실로 돌아온다. 열다섯 살 신부, 고리짝하나, 조촐한 신행길이다. 신부는 산길을 타박타박 걷는다. 그도 그녀도 마음만은 하늘을 나는 듯.

그러나 기다리는 건 현실이다. 고모집 사랑채, 방 두 개짜리 오두막, 그 웃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한다. 까탈스러운 고모가 요트집 저트집으로 새색시를 타박한다. 농사일이 바빠지는 계절,  생각만큼 아내를 살뜻하게 보살필 틈조차 없다.

여름.

이 여름 좌절의 유혹을 이겨야 한다. 꿇어앉아서 꺾어질 수는 없다. 선녀를 얻은 나무꾼 마음이다. 그녀를 돌아가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모내기가 끝나고 한 달 쯤, 옮겨 심은 모들이 자리를 잡는다. 볏잎이 진 초록. 그때쯤 초벌 김을 매주어야 한다. 뿌리 힘을 돋우고 땅에 기운을 넣어주는 일이다. 그때가 되면 새벽부터 물논에 살고 논두렁에서 아침, 새참, 점심, 또 새참을 해결해야 한다.

광주리에 아침 새참을 내온 그녀가 스쳐가듯 한 마디 한다.

“오늘 지름재로 돌아가요. 집이 다 되면 데릴러 오세요.”

최후통첩이다. 고모집 곁방살이 더 이상 못 참겠다는 이야기. 오두막집이라도 내 집을 지으면 다시 오겠다는 것이다.

점심, 저녁참은 그녀 대신 이웃 아주머니가 이고 나온다.

그는 밤마다 흙을 이기고 벽돌을 찍어낸다. 한 달 만에 방 세칸, 아랫방, 웃방, 골방이 있는 초가집을 짓는다. 그리고 한달음에 지름재로 간다.

그의 새색시는 다시 돌아오고, 그의 집에서 신접살림이 이어진다. 비록 남의 땅에 지은 집이지만 스스로 문패를 단 내집, 그와 그의 각시는 행복하다. 골방이 그의 보금자리이다. 뒷동산 밤꽃 향기가 진동하는 방이다.

다섯 번의 겨울, 봄, 여름, 가을...

새색시는 새댁이 되고 누구 엄마가 된다. 결혼 1년 만에 낳은 첫 아들, 세 살 때 홍역으로 간다. 그리고 육이오. 그 소용돌이 속에 둘째를 낳는다. 그러나 그 아들도 백일을 못 넘기고 죽는다. 피난길에 셋째 아들이 생긴다.
 
또 다시 여름.

초여름, 도리깨질도 힘이 든다. 풋보리에 쑥버무림으로 끼니를 때운다. 기운 차릴 먹거리가 귀한 때다. 인민군이 지나가고 국군이 들어오고.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변변한 가축조차 남지 않는다.

보리타작을 하던 중에 편지 한 장이 날아온다. 징집영장. 그는 군대에 가게 된다. 하나 남은 아들 첫 돌이 아직 한 달이나 남았다. 그는 논산훈련소로 떠나야 한다.

아들 첫 돌이 지나서 아내가 면회를 온다. 아들을 안고. 고작 한 시간, 그게 이생에서 세 식구가 마지막으로 보낸 시간이다.

집 떠난지 육년 후 그는 돌아온다. 작은 나무상자에 담긴 잿빛 뼛가루. 1953년 3월 17일 부산제5육군병원에서 사망했다는 통지와 함께. 죽어서조차 곧바로 고향에 올 수 없었다. 그의 사인은 영양실조. 그가 눈을 감을 때 그의 눈동자에는 갓 스물을 넘긴 아내와 한 살 반의 아들이 있었을 터이다.

또 가을, 육십년후.

사람들은 “땡감"이란 말조차 잊어버리고 있다.

그리고...

   “붉은 해는 서산(西山)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운다.
    떨어져나가 앉은 산(山)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 초혼, 김소월

아버지, 참 낯선 이름이다.

그는 나의 아버지였다, 이다.

   
삼바실에서 바라본 숫돌봉. 그 산너머, 또 고개를 넘으면 지름재. 20살의 그가 저 산을 볼 때 분홍빛 초록빛으로 보였으리라.

오달 김지영 (영어교육 69, 변호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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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16)
  아버지의 존재가 부담이된 사연-2 정읍거사 2014-05-22 09:58:42
그때는 LA직행이 없었으니까 도쿄행비행기를 타면서 아버지없는 설음으로 산세월보다 아버지의 사망추정이 다행이었다는 한심한 팔자에 눈물을 흘렸다. 우연히도 지난주일에 조정래작 한강을 읽고 아버지때문에 겪은 더큰고초를본 주인공에 동정. 저와 유사한 사람들에게는 사라진 아버지에대한 센치멘탈감각이 아직 살아있는 오달샘이 부러울뿐입니다.
추천0 반대0
(71.XXX.XXX.161)
  선배님께도 오달 2014-05-24 21:32:53
그런 아픔이 있었군요. 우리 주위에서 많이 보던 상황이었습니다. 시대의 비극
추천0 반대0
(76.XXX.XXX.207)
  아버지의 존재가 부담이된 사연 -1 정읍거사 2014-05-22 09:45:25
부친도 조선일보기자였는데 6.25발발다음날 종군취재나간다고 떠나신게 마지막 6살때였으니 기억에도 없어졌고, 불행히도 정부기록에는 자진월북으로 남아 홀어머니 막장사로 자식키우고 70년 은행LA지점으로 발령은 났는데 신원조사에서 걸려 여권이안나와 발을 동동. 중정에 손을넣어알아보니 북에서 활동기록이 남아있으면 대통령아들도 안된다고 기다리라고.한달후에 '다행히'사망추정이라고하여 여권을받아 미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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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XXX.XXX.161)
  아버지 생각날까봐 안 읽다가... 곽건용 2014-05-15 09:36:23
드디어 읽었습니다. 안 읽을껄... 했습니다. ㅠㅠ
추천0 반대0
(99.XXX.XXX.162)
  오달님, 종호님, 정화의 글 워낭 2014-05-11 22:50:43
그렇지 않아도 한국의 비극 때문에 울적한 마음이 가시지 않고 있는데 두 편의 사모, 사부곡이 정화의 슬픔을 안겨줍니다. 슬퍼서, 아파서, 씻겨지는 정화. 오달님, 드디어 직업을 바꿀 준비가 되신 것 같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추천0 반대0
(24.XXX.XXX.187)
  쌤,지영, 허갱년 2014-05-11 19:10:59
꺼이 꺼이.꺼억거리며 한참울었다. 너어 빨리 보고싶다. 그리고 안아주고싶다.또 울고있다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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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XXX.XXX.195)
  대단한 이야기입니다.... 이경훈 2014-05-11 02:09:46
이런 이야기가 있었군요...이렇게 함부로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그래서 이런 선배님이 탄생하신거군요....하....
추천0 반대0
(175.XXX.XXX.131)
  아버지의 부재 오달 2014-05-10 11:33:33
아버지의 경험이 없어도 부재를 통한 존재감이 커지는 군요.
나이 탓이겠죠. 나이 탓에 눈물도 많아지고. 누구나 아버지를 생각하며 울어본 경험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랫 동안 묻어 두었던 이야기 입니다. 같이 읽어 주시고, 댓글 달아주시고, 전화 주신 친구들 고맙습니다. 어제 현충원에 계신 아버님 묘소를 찾아갔습니다. 계룡산 산 바람이 참 시원했습니다.
추천0 반대0
(220.XXX.XXX.222)
  부모님 쌤김 2014-05-09 08:50:40
이렇게 짧은글이 이렇게 큰감동을 주다니.... 3살때 아버지를 보내고 어머님이 저희다섯형제를 길렀고 저는 막내이지요. 저도 울컥입니다.
추천0 반대0
(205.XXX.XXX.12)
  오달님 얘기 아닌가 했더니 박변 2014-05-08 22:05:08
역시였네요. 울컥하고 눈물이 나는건 제가 술마신 탓만은 아닌듯. 어버이 날이라고 이런 절절한 얘기들만...
추천0 반대0
(24.XXX.XXX.69)
  아부지 이병철 2014-05-08 21:02:20
좋은 글 읽고, 아버지께 전화 함 해봅니다. 아버지의 첫마디, "병철이 잘 지내제? 식구들 애들 다 건강하제?" 평범하게 주고 받는 인사라도 항상 정겹다.
추천0 반대0
(27.XXX.XXX.14)
  걸작입니다. 양민 2014-05-08 20:26:31
낯선,

아버지의 이야기

그러나,

폐부에,

이미 지니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
추천0 반대0
(172.XXX.XXX.169)
  아버지.... 이종호 2014-05-08 12:29:24
그러고보니....저는 여태 한 번도 아버지 이야기를 글로 써 본 적이 없네요. 7살때 아버지를 여읜 저는 그래도 이런 저런 기억의 조각들이 떠오르는데도요. 오달님이 이렇게도 쓰신 걸 보니 언젠간 저도.... 한편의 소설같은 옛 이야기,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이야기....잘 읽었습니다.
추천0 반대0
(74.XXX.XXX.3)
  땡감 엉겅퀴 2014-05-08 09:36:42
땡감의 감물로 그린 아름다운 수채화,
전쟁, 어머니, 아버지, ...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눈물만 그렁그렁..
추천0 반대0
(216.XXX.XXX.228)
  아, 아버지! Kong 2014-05-08 07:23:58
한달음에 읽게 만드는, 아주 기막힌 문장들이네요.
세 식구가 보낸 마지막 순간, 오달님은 기억에도 없겠지만, 얼마나 많이 떠올리셨을까요.

단편인데 이상하게도 열 권짜리 대하소설을 읽고난 느낌입니다.
추천0 반대0
(162.XXX.XXX.19)
  절절한 이야기 김종하 2014-05-07 23:28:06
5월8일. 어버이날이네요.(한국은 이미 지났나요?)
먹먹한 가슴으로, 잘 읽었습니다.
추천0 반대0
(107.XXX.XXX.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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