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2.10 토 11:07
> 뉴스 > 인문 / 역사
       
세상사가 시들해지거든 여길 가보라
[민경훈 특별기고] 잉카를 생각한다
2014년 04월 15일 (화) 15:43:24 민경훈 기자 acroeditor@gmail.com
민경훈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클릭!  

철벅지 전사들의 마추피추 정복기가 단 3회로 끝난 것이 아쉽던 차에 민경훈님께서 잉카와 맞추피추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될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이 글은 잉카 문명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2010년 발간돼 관광부 선정 ‘이 달의 우수도서’로 뽑힌 킴 맥커리 작 ‘잉카 최후의 날’ 한글판 추천사라고 합니다.
(사진은 이번에 잉카 원정을 다녀오신 김지영님이 찍으신 것입니다.) <편집자 주>

* * * * *

   

바로 아래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다. 600미터 밑으로 안데스 산맥의 눈 녹은 물을 싣고 아마존으로 흐르는 우루밤바 강의 모습이 보인다. 저 멀리 화이누 픽추(잉카족의 퀘추아 말로 ‘젊은 봉우리’라는 뜻) 영봉이 구름에 싸여 우뚝 솟아 있다. 바로 발밑에는 어마어마한 돌들로 칼날 하나 들어갈 틈이 없이 정교하게 지어진 석조 건물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한가하게 풀을 뜯는 남미 토종 야마들의 모습도 보인다. 유네스코 세계 유적지이자 신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마추픽추(‘늙은 봉우리’라는 뜻)의 모습이다.

   

‘세상 사는 일이 시들해지면 마추픽추에 가보라’는 말이 있다. 한라산보다 높은 해발 8,000피트(약 2,400미터)의 산꼭대기에다 도대체 왜, 어떻게 이런 거대한 도시를 건설했을까. 지금부터 거의 100년 전 탐험가로 이름을 날리기 위해 하와이에서 무작정 배를 탄 가출 경력이 있던 하이럼 빙험이 잉카 후예인 한 소년의 도움을 받아 발견한 이 도시의 기원은 군사적 요새라는 설부터 종교적 성지라는 설, 잉카 황제의 별장이라는 설 등 설만 분분할 뿐 정확한 실체는 아직까지 규명되지 않고 있다. 수 백 명의 병력으로 인구 1,000만의 잉카 제국을 정복한 스페인 사람들도 이 도시의 존재는 몰랐다.

도시의 정체는 불분명하지만 어떻게 사람들이 이곳에 이런 집을 짓고 살았는지는 밝혀지고 있다. 잉카인들은 돌을 다루는데 천재적인 재질이 있는 사람들이다. 잉카의 수도 쿠스코 인근 삭사이와망에 가보면 개 당 수 톤짜리의 거대한 바위로 지은 요새가 아직도 남아 있다. 마추픽추 인근에는 이런 돌을 구할 수 있는 채석장이 있다. 산꼭대기지만 샘이 흐르고 때를 가리지 않고 수시로 오는 비 덕분에 물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씨만 뿌리면 옥수수가 자라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준다.

   

한 가지 의문은 산 정상에 이런 도시를 건설할 능력이 있는 잉카가 어떻게 불과 수 백 명의 스페인 군대에 무너졌는가 하는 점이다. 그 대답은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였던 자렛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보면 나와 있다. 남미에는 불행하게도 소와 말 같이 구대륙에는 흔한 동물이 없었다. 기껏해야 길들이기 힘든 야마와 고급 의류 제품의 원료인 비큐냐, 알파카 등이 전부였다. 오래 가축들과 함께 생활해 온 구대륙인들은 이들에게서 옮겨온 병균에 대한 면역력이 생겼다. 구대륙 사람과 접촉으로 죽은 신대륙인의 절대 다수는 병에 걸려 사망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결국 길들일 짐승이 별로 없었던 것이 아메리카 원주민의 운명을 결정한 것이다.

   

잉카가 망한 또 하나이자 보다 직접적인 원인은 강철과 총의 부재다. 은광과 금광은 많았지만 정작 무기를 만드는데 필요한 철광은 드물었고 그 결과 무기는 석기 시대 수준을 넘지 못했다. 아무리 숫자가 많다 하더라도 화력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은 조선 말기 우리가 일제와의 싸움에서 경험한 바와 같다.

1532년 160명의 스페인 군대와 8만 명의 잉카 군이 맞붙은 카하마르카 전투는 사실상 잉카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생전 처음 보는 동물인 말을 타고 총칼을 휘두르는 스페인 군 앞에 잉카는 추풍낙엽이었다. 황제 아타우알파가 잡히고 방 하나를 황금으로 가득 채워가며 목숨을 애원했으나 그 다음해 이용만 당하고 목 졸라 살해된다. 수도 쿠스코가 함락되고 꼭두각시 황제를 좌지우지하며 잉카 제국을 호령하던 스페인 군에게 위기가 닥친다. 허수아비인 줄 알았던 황제 망코가 탈출해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다시 수만 명과 싸우게 된 스페인 군은 전멸당하기 직전 필사의 반격으로 전세를 뒤집는다. 그 후 잉카는 수도를 아마존 정글 속 빌카밤바로 옮겨가며 투쟁을 하지만 대세는 이미 이 때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수만으로 수 백 명의 스페인 군을 이기지 못한다면 계속 밀려오는 스페인과 대적해 승산은 없었던 것이다. 1572년 페루 총독 프란시스코 톨레도는 빌카밤바를 공격, 마지막 황제 투팍 아마루를 잡아 처형함으로써 잉카를 멸망시키고 만다.

   

잉카 정복자인 프란시스코 피사로와 그 형제들은 한 때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그 말로는 비참했다. 그의 동생 후안은 쿠스코 전투에서 돌에 맞아 죽고 도 다른 동생 에르난도는 동업자 알마그로를 죽였다가 본국으로 송환당해 20년 징역형을 살고 77살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프란시스코도 알마그로 추종자들에게 암살되며 또 다른 동생 곤살로는 형의 자리를 이어받아 총독이 되지 못한 것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다 잡혀 처형된다. 잉카를 망하게 한 죄 값을 톡톡히 치른 셈이다.

스페인에 의해 멸망당한 잉카의 처지는 딱하지만 잉카 제국이 쉽게 무너진 데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스페인 정복 100여년 전까지도 잉카는 안데스 산맥 기슭에 살던 조그만 부족의 하나였다. 그러던 것이 15세기 초 파차쿠티 대에 와서 주변 부족을 정복, 에콰도르에서 칠레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한 것이다. 잉카에 무릎 꿇고 조공을 바쳐야 했던 수많은 부족들은 스페인 군대가 오자 이들의 폭정에 반발, 반 잉카의 선봉에 섰고 이것이 잉카 몰락을 앞당긴 것이다.

   

피사로에 의한 잉카 멸망은 에르난 코르테스에 의한 아스텍 제국 패망과 너무나 비슷하다. 잉카를 뺨치는 광대한 영토와 인구를 자랑하던 아스텍도 불과 수 백 명 스페인 군대에 의해 무너졌다. 아스텍의 횡포에 신음하던 피지배 부족이 길잡이 노릇을 한 것이나 아스텍 황제 목테주마가 인질로 잡힌 것, 아스텍의 반란으로 스페인 군이 수도 테노치티틀란에서 전멸 당할 뻔하다 극적인 반격으로 살아남은 것까지 똑같다.

아메리카 두 제국을 멸망시킨 피사로와 코르테스는 여러모로 닮아 있다. 둘 다 포르투갈 접경지대로 스페인에서 가장 척박한 엑스트레마두라 출신으로 먼 친척이기까지 하다. 컬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곳 젊은이들 사이에는 “이런 깡촌에서 평생 고생만 하다 죽을 바에야 신대륙에 가 한 밑천 잡자”는 바람이 불게 됐다. 명문 살라망카 법대 출신으로 따분한 법률 문서를 만들어 도장 찍는데 신물이 난 코르테스와 귀족의 사생아로 스페인 땅에 머물러 있어야 아무런 낙이 없던 피사로는 이 바람에 휘말려 신대륙에 날아오게 된 것이다.

역사는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일까 아니면 자유의지를 지닌 인간이 만들어 가는 것일까. 출세욕에 불타고 강철 같은 의지를 가진 두 사람이 그 시기에 스페인의 박토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아스텍과 잉카의 운명은 조금 달라졌을 것이다. 교통수단이 이처럼 발달한 현대에도 쿠스코는 가기 힘든 곳이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 10명 중 몇 명은 꼭 고산증에 시달리다 구경도 못하고 그냥 돌아가야 한다. 놀러오기도 힘든 곳을 대포를 끌고 울창하게 우거진 숲 속에 길을 내가며 올라와 오랜 내전으로 단련된 수 만 군대에 싸워 이긴다는 것은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반면 항해술을 비롯한 기술이 발달하다 보면 언젠가는 누군가 신대륙을 발견했을 것이고 신대륙 발견 소식이 전해지면 야심 있는 누군가가 정복에 나섰을 것이다. 현실주의 정치학의 고정으로 꼽히는 투키디데스의 ‘펠로포네서스 전쟁사’를 보면 ‘멜로스 인과의 대화’라는 부분이 나온다.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의 싸움에 말려들기 싫어 중립을 표방하고 있던 멜로스 섬에 아테네로부터 사자가 온다. 그는 아테네를 지원할 것을 요구한 뒤 섬사람들이 이를 거부하자 “강자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고 약자는 당해야 할 것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명언을 남기고 돌아간다. 곧 이어 멜로스는 아테네의 침공을 받아 무너지고 남자는 살해되며 여자는 노예로 팔려가고 섬 전체는 아테네 이주민의 차지가 된다. 힘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냉엄한 현실은 기원전 400년 아테네나 기원후 1500년의 쿠스코나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 후 500년이 지난 지금도 아마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잉카 문명에 관한한 독보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킴 맥커리가 쓴 ‘잉카 최후의 날’은 잉카 멸망사 가운데 고전이다. 어떤 소설보다 흥미롭고 감동적인 이 책이 지구상에서 한국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한 잉카 문명에 대한 이해를 돕게 되기를 희망한다.

*마추픽추(Machu Picchu): ‘마추피추’가 원주민 발음에 가까우나 한글 맞춤법 표기법은 ‘마추픽추’를 표준어로 정하고 있음.

글=민경훈 (법대 78, 언론인)

사진=오달 김지영

   

 

ⓒ 아크로폴리스타임스(http://www.acropolistime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의견쓰기
이름 비밀번호
제목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현재 0 byte/최대 400byte)
전체기사의견(3)
  가자, 마추픽추로. 독자 2017-02-26 08:13:19
사는 일이 시들해지거든 잉카 마추픽추로....흠. 슬슬 마음이 동하네요. 아크로 옛글 찾아 읽는 재모도 좋습니다. 글 사진 감사합니다.
추천0 반대0
(24.XXX.XXX.19)
  우루밤바 강 오달 2014-04-16 03:02:56
우루밤바, 이름부터 실감나는 강이었습니다. 마추피추 근처는 강 상류에 해당하는 듯 폭이 좁았지만 그 흐름은 장엄, 소리는 우루릉. 기사중 두 번째 사진이 내려오는 기차 창밖으로 보이는 우루밤바 강입니다. 다섯 번째 동상은 쿠스코 옛 왕궁앞 광장에 있는 상입니다. 설명이 없어서 누군지는 모르지만 잉카의 왕이겠지요. 지금은 왕궁터에 세워진 쿠스코 대성당을 노려보고 서있습니다.
추천0 반대0
(24.XXX.XXX.123)
  마추피추 마추픽추 쫑편집 2014-04-15 23:06:05
철벅지 원정대의 현장 증언에 이어 잉카에 대해 많이 배웁니다.
오달님 사진들도 예술.
추천0 반대0
(107.XXX.XXX.123)
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3600 Wilshire Blvd., #1214 LA, CA, 90010, USA|Tel 1-818-744-100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경훈
Copyright since 2009 by The Acropolis Times. All rights reserved. mail to Editor@acropolis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