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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를 짓는 일이 삶을 살아가는 일임을
[송호찬의 시사랑] 2014년 새해 아침에
2014년 01월 02일 (목) 11:03:23 송호찬 기자 acroedito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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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를 짓는 것들은 모두 살아 있는 것들입니다. 아프리카 누 떼가 그러하듯, 얼룩말 무리가 그러하듯, 코끼리 족속이 그러하듯. 대양을 헤엄치는 정어리 떼가,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 떼가 그러하듯. 하늘을 휘감아 오르며 군무를 추는 가창오리가 그러하듯, 살아 있는 것들이 무리를 짓습니다.  


- 문태준

송사리들이
송글송글 떼 지어 헤엄치고 있다
우루루 몰려다니는데
바람이 일지도 않는다
축축한 그림자를 끌고 다니고 있다
그림자들은
우수수 빗방울처럼 떨어져
열 지은 기차를 닮았다가
열여덟 량 장대열차가 되었다가
대통처럼 직선으로 내뻗었다가
등뼈가 휜 곡선이었다가
주먹밥처럼
돌 밑
한 군데 모여들기도 한다
송사리들이 떼를 지어 다니고 있다
일상日常으로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 역驛에서 저 역驛으로
봇짐 장사치들처럼
사무원들처럼
주점에 모인 사람들처럼
가난한 가족의 저녁 밥상처럼
수많은 눈알들이 몰려다니고 있다
 

떼를 짓는 것은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열지은 장대 열차처럼 모여 대통처럼 직선으로 내 뻗었다가 등뼈처럼 휘여지다가 주먹밥처럼 모이는 송사리 떼가 그러하듯, 사람들은 “일상日常으로/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 역驛에서 저 역驛으로” 모였다 흩어지며 살아갑니다. “봇짐 장사치들처럼/ 사무원들처럼/ 주점에 모인 사람들처럼” 바로 떼를 짓는 일이 삶을 살아가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우르르 몰려다니는 곳에는 늘 축축한 삶의 그림자가 있습니다.
 
지난 해 도자기 잔 하나를 얻었습니다. 도자기 바깥에 있는 송사리 문양을 보자마자 이 시를 떠올렸습니다. 물론 도예가 자신이 어떤 생각으로 문양을 넣었는지는 모릅니다만, 제 마음 속에서는 이 시와 이 도자기가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리하여 가장 애용하는 도자기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때때로 따뜻한 차를 내려 마십니다.
 
새해를 맞았습니다. 올해는 또 어떤 한 해를 보낼지 어떤 사람들과 무리를 이룰지 생각해봅니다. 차 한 잔 하면서 말입니다. 물을 끓여 알맞게 식혀서 도자기 잔에 붓고, 세 손가락을 모아 세작을 집어서 넣습니다. 그리고는 잠시 기다립니다. 도자기 잔 깊은 곳에 담겨 있는 축축한 삶의 그림자에서 차 향기가 올라오기를.
 
이 시는 한국의 대표적인 서정시인 문태준의 세 번째 시집 <가재미>에 수록된 작품입니다.  도자기는 손인숙 동문(가정대 85)의 작품입니다.
 
송호찬 (기계설계80, 변리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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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12)
  어시배 엉겅퀴 2014-01-03 15:45:55
계영배는 들어봤어도,
시도 나오고 송사리도 나오는 잔은 첨 봅니다!
보이진 않지만 시 나오는 걸 볼 때,
잔엔 술 가득일 것 같습니다.
송사리들, 잔 뚫고 밖으로 피신한 걸 보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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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XXX.XXX.228)
  차 대신에 술인데 송호찬 2014-01-04 10:15:04
어떤 술일까요? 아마도 숙성하여 걸러낸 동동주 아닐까요. 감사합니다.
추천0 반대0
(173.XXX.XXX.69)
  워낭 2014-01-03 07:59:29
새해 첫날에 참 좋은 시어를 떠올리셨군요. 모든 아크로인들이 말떼처럼 힘차게 달려보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합니다.
추천0 반대0
(71.XXX.XXX.178)
  갑오년에는 송호찬 2014-01-04 10:12:26
힘차게 달려서 갑오세 가보세...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추천0 반대0
(173.XXX.XXX.69)
  떼 잔차질 서갱년 2014-01-02 16:42:30
빼놓을 수 없지요. 새 해에도 무리를지어 기인떼를지어 철벅지의 살을 올려봅시다. 아크로 독자여러분 모두를 철벅지떼거리에 초대합니다.
추천0 반대0
(66.XXX.XXX.49)
  네 달려 갑니다!!! 송호찬 2014-01-02 21:09:06
올해도 떼잔차질로 산을 누벼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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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XXX.XXX.143)
  우리 마음 깊이 자연스레 들어오는 글입니다. 박찬민 2014-01-02 08:30:34
송호찬, 손인숙 두 작가님께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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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XXX.XXX.114)
  요즘 송호찬 2014-01-02 21:04:56
잘 지내죠? ㅎㅎ 고맙습니다.
추천0 반대0
(68.XXX.XXX.143)
  떼지어 살다보면 오달 2014-01-01 22:34:03
무리지어 사는 일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도 떼를 짓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것도 배운다.
떼지어 살면서도 같이 살 줄 모르는 이 중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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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XXX.XXX.0)
  맞습니다. 송호찬 2014-01-02 21:03:02
무리지어 사는 것에 더하여 더불어 살아야 할 텐데요. 지난 해에도 선배님의 글들을 즐겼지만 하나하나 고맙다는 말씀 못드렸습니다. 고맙습니다.
추천0 반대0
(68.XXX.XXX.143)
  시와 도자기 김종하 2014-01-01 18:21:28
올해도 송 시인님의 따뜻하면서도 통찰을 담은 시사랑 글로 아크로를 시작합니다.
손인숙님 작품과 시의 인연이 멋있습니다.
이처럼 올해도 아크로가 따뜻한 인연들이 함께 하는 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크로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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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XXX.XXX.123)
  지난 한 해 편집장님 송호찬 2014-01-02 20:58:10
고생이 많으셨죠. 감사합니다. 새해 첫 출근부터 정신 없이 보내다 보니 이제야 자리에 앉아 인사를 하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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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XXX.XXX.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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