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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인간되게 하는 ‘호형호제’
[이상희의 인류학 산책] 가족의 DNA
2013년 11월 11일 (월) 07:18:17 이상희 기자 acroedito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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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촐한 모임인 줄 알고 찾아간 조개구이집에는 열 명 남짓 모여 있었다. 모두들 발그레 화색이 만연했다. 숯불이 덥긴 덥구나, 앉으면서 코트를 벗었다. 앉고 나서야 보니까 그제서야 탁자위에 줄줄이 놓여 있는 소주병이 눈에 들어왔다. 화기애애하면서도 왁자지껄, 가족적인 분위기 속에서 가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둘러앉은 사람들은 다양한 가족을 대표했다. 최근에 만들어진 가족은 신접살림 차린지 100일이 채 안 넘은 부부였다. 애써 너무 좋은 티를 내지 않으려고 용을 쓰면서 귀에까지 걸려 있는 입을 다물려고 입술에 경련이 일고 있는 남자와, 그의 모습이 못내 사랑스러운 여자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20년 전에 가족이 되어 이제는 아들을 장가보내고 손주 생각하는 부부는 나란히 앉아 있던 신혼부부와는 달리 긴 테이블 반대편에 따로 앉아 있었다. 그러나 가끔씩 서로 바라보지 않고서도 쿵짝을 맞추어 입담이 오가는 것을 보니 확실히 연륜은 남달랐다.

그러나 며느리를 맞이한 부부가 아들을 떠나보냈다는 느낌은 딸을 시집보낸 서운함보다는 덜한 모양이다. 딸에 대한 그립고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남자는 오히려 마누라는 여행가서 좀더 천천히 돌아왔으면 좋을 텐데, 한국에 다니러 가도 갔다가 금새 돌아온다고 아쉬워했다.

며느리를 본 동년배 친구의 옆에 앉아서 자신의 열 살짜리 아들을 생각하며 한숨 쉬는 남자도 있었고, 방년 열일곱의 딸을 결혼시킬 계획을 세우는 남자도 있었지만 단연코 화제는 싱글의 삶을 잘 살고 있는 여자에게 쏠렸다. 좋은 남자 만나서 시집가라는 말이었다. 그 말을 받아서 한 대답은 곧 화두가 되었다: "좋은 남자까지 찾을 필요도 없어요. 소일거리 정도면 됩니다."

쉽게 생각해서 가족은 같이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다. 가족은 경제 공동체요, 운명 공동체라고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읽으면서 줄 쳤던 기억이 있다. 자원을 함께 하고 운명을 함께 하니까 당연히 애증이 거미줄처럼 얽혀있을 것이다. (‘가족이 웬수지, 웬수.’) 인간의 가족은 특이하다. 첫째는 성인 남자가 끼어 있다는 점이다. 영장류의 경우, 암컷과 새끼가 공동체를 이루는 경우는 흔하다. 암컷은 새끼를 낳아 그 새끼가 성인이 되어 제 앞가림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돌본다. 이 때 다른 암컷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새끼 키우는 일의 대부분은 그 엄마의 몫이다. 그에 비해 인간의 가족에는 엄마 외의 존재가 꼭 필요하다. 시간을 같이 보내든, 아이를 키우는 데에 필요한 돈을 제공하든 말이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는 그 엄마 외의 존재가 아빠이다. 다른 수컷들 끼리와의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는 길만이 새끼를 칠 수 있는 방법이기에 그 경쟁에 모두 올인하고 막상 태어난 새끼에게는 별반 관심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비해 예외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의 가족 구성에 대해서는 이미 글을 쓴 적이 있다. ('수컷에서 아버지로')

그리고 가족은 내 것을 양보하고 포기하더라도 상대의 복지를 챙겨주는 첫 번째 상대이다. 가족은 자신의 이해를 포기해도 되는 단위이다. 자신의 유전자를 위한 삶을 살아가는 진화적인 존재들이 이기적인 삶을 잠깐이라도 포기하고 사회생활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해답을 윌슨은 이기적인 삶을 평생 포기하고 남을 위해서 살아가는 개미에게서 찾았다. 개미는 여왕개미 하나가 집단의 생식을 도맡는다. 그리고 집단 성원 전체는 여왕개미가 낳은 아기들의 양육을 비롯한 집단생활의 영위에 전생을 바친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개미집단의 구성원들이 서로 똑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서로의 복제품(클론)이기 때문이다. 개인이 죽어도 그 유전자는 계속 살아있기 때문에 여왕개미의 후손은 모두 자신이다. 개인은 간데없고 오로지 유전자만 센다면, 개미의 살신성인과 같은 사회-협동 생활은 근원적으로는 극히 이기적인 행위이다. 내가 죽어도 내 유전자는 온전히, 고스란히 내 동료들안에서 보전되어져간다. 윌슨의 "사회생물학",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와 같은 책은 인기리에 판매되었다.

   
윌슨의 “사회생물학”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

그런데 인간 사회의 협동은 그렇게 설명될 수는 없었다. 인간 개개인은 개미와 같이 클론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사회생물학의 발전과 더불어 강세를 떨치기 시작한 해밀턴의 법칙은 바로 그 문제를 해결했다. 해밀턴의 유명한 공식은 다음과 같다:

rB > C

수혜자가 받는 이익(B)과 수여자와 수혜자 간의 촌수(r)가 곱해진 값이 수여자가 치루는 댓가(C)보다 클 때 이타주의적인 행위가 나타난다는 공식이다. 그러니까 같은 값의 댓가와 이익이 개입되어있다면 한 명의 동기와 두 명의 사촌이 맞먹는다는 뜻이다. 실제로 값어치가 어떻게 매겨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여기서 생각할 것은 개인은 유전자를 담는 그릇에 불과하다는, 유전자 제일주의가 기세를 떨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성인 남자가 가족의 일원이 된 것도 그 유전자를 물려받은 아이의 복지를 위해서, 결국은 남자 자신의 유전자를 위한 행위로 설명할 수도 있었다. 불특정 타인을 위한 자기희생 행위는 어떻게 설명되는가? 이는 최근까지 기나긴 세월동안 친족 사회에서 살아온 인류가 습관적으로 해 오는 행위일 뿐이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인류의 가족은 실제로 유전자로 맺어져 있는 것만은 아니다. 아니, 우리가 귀하게 여기는 사회관계들은 '가족처럼' 여기는 남들과 맺는다. 많은 민족지 집단에서 '아빠'는 남자와 같이 사는 여자가 낳은 아이들과의 관계를 일컫는 호칭이다. 꼭 일대일 부부관계를 고집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유전자를 나누는 지 어떤지는 확인하기 힘들다. 그런데 현대식 핵가족에서 중요한 성인 남자 역시 아이들에게 문화적으로 아빠인 경우가 많다. 엄마 역시 마찬가지이다.

인간 가족은 혈연을 벗어났다. 가지각색의 사회관계가 모두 ‘가족’의 틀 안에서 차곡차곡 쌓여져 간다. 호칭도 인척 보다는 친척 호칭을 쓴다. 어머니 나이뻘의 여자를 '이모' 혹은 '고모'라고 부르는 경우는 많지만 '숙모'나 '외숙모'라고 부르지 않는다. 혈연으로 맺어지지 않은 남남을 혈연처럼 엮어서 가족 안으로 끌어당긴다. 혈연이 그만큼 중요하다기 보다는 친구가 혈연만큼 중요한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친척 같은, 가족 같은 이웃은 혈연 사회에서 더 이상 살지 않게 된 우리들의 막연한 향수 혹은 습관적인 행위라기보다는 오랫동안 이루어져 온 사회관계가 아닐까? 가족이 이제 없어서 동창들과 같이 먹고 마시고 챙겨주는 것이 아니라 동창이 바로 가족인 것이다.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아무런 혈연관계가 아닌 사람들끼리 호형호제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간 특유의 행위이다. 이것이 우리를 인간되게 한다.

이상희 (고고미술사 85, 인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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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20)
  책은 나왔나요? 이종호 2013-11-13 15:18:44
작년에 나온다고 얼핏 들었던 것 같은데....동아 연재는 잘 되고 있는지요?
추천0 반대0
(74.XXX.XXX.3)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이상희 2013-11-14 10:23:56
예,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연재는 이제 마무리 지었고요,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책 만들기 작업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추천0 반대0
(138.XXX.XXX.176)
  '작은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는 것' -- 모두가 가족엔 대탐소실^^ 하시길. 이상대 2013-11-12 12:22:58
한국 EBS 다큐 화해 프로젝트 '용서'라는 프로를 종종봅니다. 대부분의 깨어진 친구/가족 관계는 자신의 이익과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에서 기인하더군요. 마음이 가난한자에게 천국이 임하리하는 말은 그런 집착에서 벗어나 상대가 들어올 공간은 남겨둬야 한다는 뜻 같은데, 그렇게 하는 것이 잠시 잃은 듯 하지만 결국은 이땅에서 천국을 누리는 역설적으로 이기적인 삶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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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XXX.XXX.31)
  다 맞는 말씀입니다. 특히... 이상희 2013-11-12 16:34:42
모두 다 맞는 말씀입니다. 특히 "상.대.가 들어올 공간은 남겨둬야 한다"는 부분을 강조해서 읽게 됩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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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XXX.XXX.98)
  관계의 중요성을 영화감독 2013-11-12 06:48:23
인간을 연구하는 분께 듣고 싶었습니다. 기억과 기대를 같이 일깨워준 이상희 훈장님께 감사!
추천0 반대0
(162.XXX.XXX.114)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희 2013-11-12 16:35:30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0 반대0
(71.XXX.XXX.98)
  첨 가본 조개구이 집에서 만난 반가운 사람들 곽건용 2013-11-11 18:04:22
이 모임은 어느날 독고량 선배님의 "소주 한 잔 합시다"란 메일에서 시작됐습니다. 그래서 몇 동문에게 연락을 했고 그러다보니 모임이 약간 커졌습니다. 반가운 얼굴 많이 봤고 재밋는 얘기도 많이 오갔습니다. 그날 독고 선배님과 서정화 후배가 이 시부모가 됐다는 얘기도 첨 들었고 두 분 싼티아고 순례하고 온 얘기도 들었습니다. 모두들 반가웠어요. 그날 모임이 열매가 있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추천0 반대0
(99.XXX.XXX.13)
  느닷없는 모임 이상희 2013-11-12 16:37:30
느닷없는 모임, 참 좋았습니다. 벌써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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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XXX.XXX.228)
  패총과 고고학 김종하 2013-11-11 21:08:05
조개구이집에서 인류학 산책이 시작되고...
근데 담부터는 저를 안 부른 모임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아크로에 싣지 않겠습니다! ㅋ
추천0 반대0
(162.XXX.XXX.37)
  푸핫... 그러고보니... 이상희 2013-11-12 16:39:34
그러고보니 2010년대 중반 코리아타운을 휩쓴 조개구이 열풍이 먼훗날 패총으로 고스란히 전달될 수도 있겠군요! 담에는 반장이 호출하면 꼭 달려가겠습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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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XXX.XXX.228)
  개미가 기가 막혀 엉겅퀴 2013-11-11 12:19:19
혈연, 가족 관계를 확장해가고 있는
우리 인간들의, 관악연대의 모습, 따뜻합니다.
개미는 이미 알고 있었던 일, 우리는 이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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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XXX.XXX.228)
  도사님 이상희 2013-11-11 15:54:51
도사님 뵌지도 한참 되었습니다. ㅠㅠ
추천0 반대0
(138.XXX.XXX.32)
  조개 구이에서 오달 2013-11-11 09:00:27
가족 이야기까지, 참 재미있는 전개.
심오한 학문 이야기를 쉽게 전해주십니다.
나처럼 이촌간 형제 자매가 없는 사람은
나를 위해 이타행위를 해줄 사람을 찾으려면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야기네요.
추천0 반대0
(108.XXX.XXX.241)
  조개구이에서 가족으로... 이상희 2013-11-11 15:52:20
사실 저는 그 날 맘 편하게 조개만 열심히 구어 먹고 있었는데 요즘 아크로에서 보기 드물다면서 남자-여자 얘기는 이전에 썼으니까 이번에는 가족 이야기를 쓰라고 귀아프게 말씀해 주신 선배님이 계셨습니다.
추천0 반대0
(138.XXX.XXX.32)
  "비용" 오달 2013-11-11 09:06:43
즉 내가 상대에게 주어야 하는 benefit이 많아야 한다는
수학적 결론 --- 좀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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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XXX.XXX.241)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이상희 2013-11-11 15:50:00
이촌이 없으면 사촌이면 되구요, 사촌보다 좋은 것은 친구입니다.
추천0 반대0
(138.XXX.XXX.32)
  유전자도 여러가지 이병철 2013-11-11 08:13:22
지금 살고 있는 인도네시아에는 과부가 유독 많아요. 그 이유는 아내와 애들을 버리고 무책임하게 가정을 떠나는 가장들이 많다는 이유인데, 이런 남자 가장들의 유전자는 어떻게 설명을 해야할지... 오랜만에 상희 후배의 반가운 글 읽어봤네요.
추천0 반대0
(139.XXX.XXX.150)
  유전자와 자유의지... 이상희 2013-11-11 15:48:24
앗, 언제 인도네시아로 가셨는지요? 무책임하게 가정을 떠나는 남자 가장들의 유전자보다는 자유의지에 책임을 물어야할 것 같습니다...
추천0 반대0
(138.XXX.XXX.32)
  관악연대는 한 가족 김종하 2013-11-10 23:17:20
그렇게 들리네요^^
반가운 인류학 산책!
추천0 반대0
(107.XXX.XXX.123)
  관악가족 이상희 2013-11-11 15:46:51
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족 모임에 빠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ㅋ
추천0 반대0
(138.XXX.XXX.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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