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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라도, 어디로라도 상승 준비 끝”
[이충섭 SF 수요 연재소설-‘상승’ 6부] 마지막회: 가이아
2013년 08월 21일 (수) 12:14:36 이충섭 기자 acroedito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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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리엄-3은 투명한 어둠 속에 홀로 서 있었다. 몸을 느낄 수는 있었지만 그의 눈부신 의식에 이미 통합되어 있어 구태여 따로 분리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는 한 점에 머물며 우주의 과거-현재-미래의 삼세 시간축에 퍼져 있는 빛의 점이었고, 한 순간에 머물며 우주의 무한 허공 공간축 전체에 스며 있는 존재의 바늘 끝이었다. 바르도체! 투명한 의식답게 답은 즉시 주어졌다.

"왔는가!"

그는 스물 세 쌍의 오색 빛무리에 휩싸인 자신을 발견했다. 투명한 어둠은 어느새 무한개의 별들이 떠올라 지구의 모든 위도 모든 경도 방방곡곡에 일시에 찾아온 대낮의 눈부심으로 바뀌어 있었다. 예언자들이 마중 나온 것이었다.

예언자들이 그를 처음 데려간 곳은 지각과 바다와 맨틀과 외핵과 내핵이었다. 땅과 물과 지구의 내핵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은 경이로웠다. 그 모든 곳에 '그들'이 깃들어 있었던 것이다. 차원이 조금 다르긴 했지만 본질적으로는 자신과 별 다를 게 없는, 온 우주를 관통하는 거대 의식의 일부들. 그 거대한 그림이 그를 압도하려 했다.

"경이롭지만 그런 경외는 필요 없다네."

우린 모두 하나이니까. 그는 예언자들의 말을 즉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칠천 살이 넘은 삼나무와도 태평양을 헤엄치는 흰 수염 고래 떼와도 대평원을 달리는 야생마 무리와도 그리고 어느 호수 속 플랑크톤과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들과도 의식의 밧줄과 끈과 실이 하나하나 이어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동물들을 조종했던 거군요."

그의 바르도체는 그의 육신이 가졌던 아픈 기억과 감정까지도 고스란히 가져온 모양이었다. 격렬한 슬픔과 분노도 그대로였다. 예언자들의 바르도체가 북극광처럼 천천히 일렁였다. 

"우리가 한 것은 아니었다네. 인간의 몸을 입고서야 그런 능력을 가질 순 없는 노릇이지."

예언자들을 내세우고 또 동식물들을 움직여 인류를 지상에서 몰아낸 직접적인 당사자는 막 바르도체를 입은 그들보다 훨씬 높은 차원의 의식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을 탓할 수는 없지. 우리 모두는 지구의 자식들, 어머니 지구를 돌이킬 수 없게 망가뜨리게 둘 수는 없는 일 아니겠나."

"우리 인간들도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진화할 타이밍이었지만 결국 우리는 '상승'을 자력으로 해낼 수는 없었던 것이고."

"자력 아닌 타력 상승.. 어쩌면 그건 우리 모두의 운명인지도 몰라."

"그렇지. 그들 또한 타력 상승의 피해자 또는 수혜자들이니까."

"우리에게 3만년의 세월이 더 주어졌다 해도 아마 결론은 마찬가지였을 거란 얘기겠지."

"아니, 어머니 지구를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괴해나간 속도에서 우리가 그들을 압도했다는 거지."

예언자들의 수다는 끝이 없을 것 같았다.

"도대체 '그들'이란 누굽니까?"

공중도시 이주의 참혹한 과거에 사로잡혀 자신이 지금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 잠깐 잊고 있었던 그는 곧 바르도체의 고양된 의식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답은 즉시 주어졌다.

"네안데르탈!"

그의 오도송 같은 외침에 예언자들이 무지개처럼 빛을 뿜어냈다.

"호모 사피엔스의 선주민,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이제야 알아차렸군. 그들이야말로 지구 중심에서 대기권까지 깃들지 않은 곳이 없는 존재.."

"대지의 여신, 가이아!" 힐리엄-3은 외쳤다. 네안데르탈인들도 그 옛날 우리 인간들처럼 폭주했을까? 환경을 파괴하고 생명을 죽이고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환장한 악귀 같은 존재. 그들 또한 타력 상승으로 지상을 비워 주어야 했고,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그 빈자리를 채우게 된 것이었으리라.

"이제 우리가 네안데르탈로부터 가이아의 자리를 물려받게 되는 거지."

"인수인계는 물론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성질의 것은 아니지만."

"1만년쯤."

   

<삽화=이충섭>

더 이상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우주의 거대 의식에 접속된 상태인 그의 바르도체는 순간순간 그 거대 의식과 하나가 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안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었다.

네안데르탈은 천신만고 끝에 공룡의 빈자리를 채웠고, 때가 되어 그들 자신이 지금으로부터 불과 3만년 전에 가이아의 일부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공룡 가이아에 의한 타력 상승이었다. 물론 가이아는 인간 정도의 지능으로 진화할 수 있었던 일부 공룡이나 네안데르탈 등의 의식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가이아는 지상에서 살다 간 모든 생명체의 크고 작은 의식들의 집합체였다. 미생물 등은 개체 하나로는 비록 아주 적은 분량의 의식밖에 갖고 있지 않았지만 전체로는 그 엄청난 바이오매스에 걸맞는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을 차지했다. 인간 뇌세포의 개수는 1조. 따라서 1조 마리의 아메바는 대략 한 사람 분량의 의식으로 가이아에 기여했다.

네안데르탈 가이아도 인류가 최근에 겪은 것과 비슷한 과정을 통해 상승했다. 오랜 세월 동안 어머니 가이아를 파괴하고 홀대했던 카르마를 해소하느라 그들은 열과 압력의 지옥인 지구 중심에서 대기권까지 그 모든 것에 깃든 채 지구를 보호하는 수호신이 되어 있었다.

지상에 이어 가이아 자리까지 네안데르탈에게 물려준 공룡 가이아는 그럼 어떻게 되었는가. 공룡 가이아는 지자기장에 공명하며 대기권 밖으로 더욱 상승하여 태양에서 날아온 대전 입자 다발에서 극광을 쥐어짜내기도 하고, 밴 앤런 벨트가 되어 지구의 보호막이 되기도 하고, 아예 태양풍의 일부가 되어 태양의 초강력 자기력선에 몸을 싣고 머나먼 성간 공간으로 뻗어나가며 은하계 전체와의 교신을 꾀하기도 했다.

이미 오래 전에 태양계와 은하계를 떠난 공룡 이전의 가이아에 대한 기억은 희미했다. 그들은 어쩌면 명왕성 밖 쿠이퍼 벨트의 운석에 깃들어 태양계 밖에서 몰래 침입하는 비우호적인 외계 문명으로부터 지구를 수호하는 조기경보 시스템 구실을 자임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다가 태양 중심에 있는 초거대 핵융합로에서 발생하자마자 우주의 끝을 향해 일제히 광속으로 날아가는 뉴트리노에 올라타고 아름다운 지구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그 노래가 되어, 시공의 끝까지 날아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힐리엄-3은 자신이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임종의 순간에 머리맡에 두었던 취옥 속에 들어와 있을 것이었다. 그가 죽는 순간, 그의 에너지는 취옥의 양자공명 흡수 장치에 빨려 들어가 원석의 일부를 취옥 분자 몇 개로 바꾸어 거기에 깃들었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는 취옥이 구현하고 있는 가상현실 세계로 입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공중도시-1을 가상현실로 구현한 세계 취옥-1. 틀림없었다.

결국 네안데르탈 가이아에게서 지구의 수호신 자리를 온전히 물려받기까지 1만년이 다 가기 전에 모든 인류는 일단 취옥 1만개 속으로 이주하게 될 것이었다. 만약 중간 기착지인 취옥에 있는 동안에 태양의 신성 폭발 같은 우주적인 비상사태가 발생한다면? 아마도 네안데르탈 가이아는 공룡 가이아의 도움을 받아 1만개의 취옥을 태양계 밖 시리우스 자리께로 피난시킬 수 있을 것이었다.

"지상에서 사라진 것들은 모두 달에 가 있나니." 갑자기 떠오른 시구 하나에 그의 의식이 얼어붙어 버렸다. 

힐리엄-3은 바르도체에도 심장이, 적어도 심장의 두근거림이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 그는 두 손을 가슴에 얹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렇다면!"

한참 동안이나 그렇게 홀로 서 있던 그는 마침내 천천히 뒤로 돌아섰다.

"아빠!"

어린 딸이 그의 품에 안겼다. 성간 자기력선류에 태양풍 돛배를 띄울 수 있게 된 것이다. 언제라도 어디로라도 상승 준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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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12)
  네안데르탈과 가이아... 이상희 2013-08-22 08:56:55
얼마전에 가이아에 대한 강의를 들으러 간 이후로 두번째 듣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네안데르탈인과 엮여서 등장하는군요! 그 연결고리에는 세포분열이 있고, 그 가운데에는 농구공이 있더란 말씀입니까??!! ㅋㅋ 그동안 잘 읽었습니다. (뭐라고 댓글을 남길 수 없이 4차원적이어서 그냥 묵묵히 읽기만 했습니다만...) 반갑고 감사합니다!
추천1 반대0
(138.XXX.XXX.62)
  문자쓴다는 게 쓴이 2013-08-24 13:36:44
공자님 앞이었습니다.ㅠㅠ
네안데르탈 선조, 마구 모셔다 썼습니다.
상희님 조언도 안 구하고.ㅋㅋ 감사.
추천0 반대0
(166.XXX.XXX.154)
  감사했습니다. Kong 2013-08-21 15:40:07
솔직히 제 머리로 이해되는 소설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이충섭님이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를 듣는다는 기분으로 읽었습니다.
현란한 용어들이 난무하지만, 달나라의 옥토끼 얘기마냥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고, 다음 작품 기대하겠습니다.
추천0 반대0
(99.XXX.XXX.225)
  압축 쓴이 2013-08-21 21:30:16
긴 세월의 긴 얘기를 광속으로 짧게 쓰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ㅋㅋ
눈길이 한번 스쳐 지나간 낱말이나 문장이나 단락은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으면서 주우욱 읽어버리셔도 됩니다. 나중에 에머럴드 보고 이 이야기
잠깐 생각나면.. 성공이죠.
추천0 반대0
(71.XXX.XXX.19)
  차원높은 그러나 따뜻한 양민 2013-08-21 21:27:16
아름다운 그러나 슬픈 글.
이해와 난해 그리고
공감과 허무 사이에서 헤매며
잘 읽었습니다.
추천0 반대0
(24.XXX.XXX.51)
  댓글 쫑 쓴이 2013-08-21 21:32:05
ㅋㅋ 양민 선배님과 한 호흡에 댓글을 올렸네요!
여러가지를 함께 보셨다면 쓴이보다 읽은이의
내공이 깊고 높은 것이랍니다. 고맙습니다.
추천0 반대0
(71.XXX.XXX.19)
  1만 년 걸리는 인수인계, 1만 개의 취옥, 감을 잡기 힘든 개념들입니다만, 미래에 충분히 있을 법한 일입니다. 변변 2013-08-21 05:10:28
언젠가 NOVA 에서 보았는데 오늘날 인류가 밤하늘에 보고 있는 별들 중에는 약 3 만 년 전에 빛을 발하고 사라져버린 것들도 있다고 합니다. 즉, 빛을 쏘고 장엄하게 죽어버린 별의 시신은 온데간데 없는데 우리는 3 만 년 후에나 그 빛을 접수하면서 [아, 아름답다] 정도의 감상에 그친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결국 인류에게 마지막 남는 것은 [사랑] 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추천0 반대0
(174.XXX.XXX.253)
  파인만 쓴이 2013-08-21 12:50:29
미국이 사랑+자랑해마지 않는 토종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그랬습니다.
원자 하나에 인간의 지식 모두를 저장할 수 있을 거라고..
원자가 크다는 건지 인간의 지식이 작다는 건지 헷갈리지만요.ㅋㅋ
변변님 말씀하신 사랑은 영원을 가능케 하는 순환, 재생, 안정 등등을
총칭한다 할 수 있겠네요.
추천0 반대0
(216.XXX.XXX.228)
  가이아 오달 2013-08-20 22:19:13
야뢰야식과 비슷한 모든 의식의 저장고 ?
바르도, 티벳 사자의 서에서 나오는 이야기 인가요 ?
연기의 장이 바뀌어도 아빠는 딸을 품안에 안아주는 군요.
대미가 신령스럽습니다.
추천0 반대0
(97.XXX.XXX.0)
  과학의 크기 쓴이 2013-08-21 12:45:36
과학은 과학자들이 지금까지 알아낸 것들을 이르는 말이라면,
과학자들이 아직 알아내지 못하는 것들을 뭐라고 부를까요?
또 과학적인 방법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것들은요?
아뢰야식, 바르도.. 모두 제가 좋아하는 것들입니다.^^
오달님 말씀대로 티벳 사자의 서에 나오기도 하구요.
추천0 반대0
(216.XXX.XXX.228)
  우린 모두 하나이니까 김종하 2013-08-20 19:23:26
섭 작가님의 이야기를 따라오다 보니 어느덧...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근데 마지막회에야 등장하는 삽화의 칼라^^
추천0 반대0
(76.XXX.XXX.131)
  편집장님의 압력 쓴이 2013-08-21 12:39:43
퀸 "언더 프레셔" 도 있지만, 뭔가 생산해내는 데는
역시 쫓기는 입장이 도움이 됩니다. 마감의 무서움.
가만 두면 가만히 숨 쉬다가 결국 멈추겠죠.ㅋㅋ
압력과 편집, 모두 고맙습니다.
추천0 반대0
(216.XXX.XXX.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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