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2.10 토 11:07
> 뉴스 > 소설 / 시
       
“공중 도시에서 우주식민지로”
[이충섭 SF 수요 연재소설 - ‘상승’] 제5부: 힐리엄-3의 죽음
2013년 08월 14일 (수) 16:36:24 이충섭 기자 acroeditor@gmail.com
이충섭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클릭!  

공중도시-1 맨 꼭대기에 볼록 튀어나온 전망대에 선 힐리엄-3의 눈 아래에는 여전히 황량한 사하라 사막이 펼쳐져 있었다. 예언자들의 공중도시 설계는 거의 완벽하게 사막의 원래 생태계마저 그 모습 그대로 보존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사막에는 사막 나름의 독특한 생태계가 있고, 그 척박한 환경을 이겨낸, 흉측하리만치 강인한 사막의 동식물들 또한 보석 같은 지구 생태계의 엄연한, 중요한 요소였으니까 그 또한 당연한 것.
 
인간의 흔적을 지우기에 충분하다는 반백년까지는 아니지만 인류가 공중도시로 이주한 지 한 세대가 지난 시점의 지구는 다시 충분히 아름다운 초록 행성으로 되살아났다. 털 없는 원숭이가 없어도, 없어서 행복했던 옛 모습으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이젠 인간이 사막의 동식물 같은 존재군요." 신임 인류조화위원회 위원장이 된 스태넘-120이 말했다. 그는 힐리엄-3의 오랜 비서였다.
 
"그렇지. 흉측하리만치 파괴적인 우리 ㅋㅋㅋ" 힐리엄-3는 삼십년 만에 이렇게 홀가분한 기분은 처음이었다. 앉아서도 누워서도 벗을 수 없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는 이제 인류조화위원회 위원장으로서 10억의 인류를 어떻게 건사할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된 것이다. 그건 에너지가 넘치는 스태넘-120이 어련히 잘 해나갈 일이었다.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려가시죠." 스태넘-120은 역시 자기처럼 감상에만 젖어 있지 않았다. 오늘은 역사에 기록될 또 하나의 중요한 날, 한가롭게 사막의 풍경이나 내려다보며 시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학자도 아닌 그런 놀음을 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맨 아래층에 천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와 스태넘-120이 나타나자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딱 그쳤다. 역사적인 이날, 한 마디의 연설이 없을 수 없었지만, 그는 두 팔을 크게 벌려 스태넘-120을 그냥 한번 껴안고 돌아섰다. 스태넘-120의 얼굴은 엄숙하다 못해 울상이 되고 말았다. 여든 넘은 노인이라고 하기엔 너무 격정적인 포옹. 공중도시로 이주하기 직전에 벌써 아버지를 잃은 그에게 힐리엄-3은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지상으로 열린 공중도시-1의 문 앞 벌판에는 짐들을 잔뜩 실은 투박한 수레들이 즐비했다. 수레를 끌거나 짐을 싣고 갈 소, 말, 낙타 그리고 양, 염소가 떼로 대기하고 있었다. 돼지나 닭과 같은 다른 가축들도 어느 수레엔가 잔뜩 실려 있을 거였다.

탄소강으로 만든 손 도구 몇 가지와 투박한 무쇠 연장을 빼고는, 지난 삼백년 과학기술의 마법 같은, 마약 같은, 독약 같은 선악과는 단 한 가지도 갖고 내려올 수 없었다.
 
"만약에 누군가 이를테면 총은 말할 것도 없고 비디오카메라 같은 거 몰래 갖고 나온다 해도, 아마 우리는 또 다시 공공의 표적이 될 걸. 지구의 온 생태계가 우리 인간만 왕따 시키고 자기들끼리 무슨 '자비의 네트워크' 같은 것으로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봐. 아마도 공중도시 이주 직전 생지옥은 그렇게 작동했을 거 같아." 떠나오기 전, 그는 자꾸만 고성능 장비를 주려는 스태넘-120에게 그렇게 말했다.
 
"스태넘..." 그의 눈이 젖어 들었다. 그에게는 정말 아들이나 마찬가지였다. 딸이 죽고 난 뒤, 유일하게 정을 붙일 수 있었던 사람, 딸의 동갑내기 친구.
 
그는 무리를 이끌고 천천히 북상했다. 사흘 뒤에 예언자들이 합류했다. 백 살도 넘은 그들을 수레에 태우고 다시 한 달을 이동했다. 흑해 연안에 그렇게 도착하였다.

다른 공중도시에서 내려온 무리들도 각자 배정된 곳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제2의 에덴동산이 이식된 것이었다. 천만 명의 인간이 지구 생태계에 얌전한 손님의 자격으로 스며들어 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석유 같은 것으로 사기 치지 않는 삶, 재생 가능한 자원과 에너지에 기초한 삶의 방식을 그들이 허공 속에서 새로 만들어내야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선조 가운데 이미 그렇게 살았던 사람들이 꽤 있었던 것이다. 미주대륙 토착민, 호주 토착민, 아미쉬 공동체, 아름다운 티벳 사람들, 산업화 이전의 유목민 공동체, 소농 공동체 문명 등이 재발견되어 지금 재이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스태넘-120이 찾았을 때, 힐리엄-3은 임종의 순간을 맞고 있었다. 예언자들은 이미 다 돌아갔고 마침내 예언자들의 막내라고 할 수 있는 힐리엄-3의 차례가 된 것이었다.
 
"애쓰셨습니다."
 
스태넘-120은 그 한 마디밖에 할 수가 없었다. 힐리엄-3의 머리맡에 주먹만 한 취옥 원석이 놓여 있었다. 아이 머리통만 한 돌덩이에 박혀 있는 취옥은 예언자들의 임종 순간에도 그들의 머리맡을 지켰던 바로 그 보석이었다. 힐리엄-3은 그 보석을 통해 지상에 남아 있는 모든 사람들이 예언자들의 나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지만, 적어도 그 순간 스태넘-120의 슬픔을 줄여주지는 못했다.

   

<삽화=이충섭>

힐리엄-3이 지상을 떠난 날, 스태넘-120은 모든 인류를 이끌고 지구를 떠났다. 각 공중도시의 인구는 만 명 정도로 줄어 있었다. 공중도시에서 빠져나온 가락지 모양 우주선은 지구 궤도에 올라 인공위성이 되었고 자전을 시작 하면서 우주식민지가 되었다. 지상에 남은 공중도시는 인간들이 남긴 온갖 쓰레기를 안은 채 핵 쓰레기의 독성이 사라질 때까지 수백만 년의 기나긴 동면에 들어갔다. 비록 인간의 손을 통해 만들어졌지만, 공중도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계 밖에서 온 선물이었다. 예언자가 인터페이스였던 것은 맞는데, 인류가 예언자들을 통해 접속한 상대는 누구였을까. 스태넘-120은 그에 대해 힐리엄-3으로부터 어떤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때가 되면 다 알게 될 것... 그게 다였다.
 
또 한 번의 상승을 마친 인류는 지상에서 그리고 지구 궤도에서 안정을 되찾게 되었다. 인구 폭발이나 자신의 존재 기반을 무너뜨리는 소위 '발전'은 원천 봉쇄되었다. 백억 가운데 1억 1천만이 남은 것, 나머지 99억은 어디로 간 것일까? 스태넘-120은 그 역시 알지 못했다.
 
"많은 부분, 우리가 접근할 수 없습니다. 산도 있고 강도 있고 호수도 있고 숲도 있고 하다못해 석회동굴까지 있습니다만, 그 모든 것을 하나하나 찾아낼 수밖에 없습니다. 우주식민지의 전체 구조도나 설계도는 없습니다." 우주식민지-923의 유일의 엔지니어가 그에게 보고했다. 그 우주식민지도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하기야.. 우리도 공중도시 안에 이런 우주식민지 도우넛이 들어 있으리라고 꿈에라도 상상할 수 있었겠느냐구." 스태넘-120은 말고삐를 한 손으로 쥐고 그 젊은 엔지니어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인류가 지구와 자신을 망가뜨리면서 지난 수만 년 동안 축적한 과학기술 가운데 파괴에 이용될 수 있는 대부분은 처음에는 응용 없는 지식의 형태로만 남았다가 결국 사람들의 뇌와 손에서 차츰 잊혀지면서 신화와 전설의 형태로만 남았다. 각 우주식민지마다 딱 하나의 가문만이 엔지니어의 대를 이어갈 뿐이었다.
 
우주식민지는 거주민의 간섭을 원천적으로 봉쇄한 채 거대한 바퀴 마냥 완전 자동으로 굴러가고 있었다. 유일한 엔지니어 가문조차 할 일도 없었고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별이 뜨고 지고 달이 차고 기울며 계절이 바뀌고 동식물이 오가는 신비를, 동굴에서 고개만 살짝 빼고 그저 관찰만 했던 인류의 먼 조상들이 했던 그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우주식민지 안에서의 삶은 지구에 남은 자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땅과 하늘이 속빈 옥가락지 마냥 반대로 휘어져 있다는 것 빼고는.
 
우주식민지 사이를 연결해주는 작은 공 모양 연락선 스페이스-팟 역시 완전 자동이었고 스태넘-120만이 탈 수 있었다. 하지만 우주식민지-1에서 우주식민지-10000까지 하나하나 방문해서 하루만 묵는다 해도 28년이 걸릴 참이니, 인류조화위원회 위원장 노릇이 쉬울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일은 일반 대중에게는 그 또한 신탁 받는 신전 취급을 당하고 있는 엔지니어의 거처에 설치되어 있는 무선통신기를 통해 처리하였다. 물론 유목 또는 소농 공동체 끼리 주고받을 물건은 고사하고 정보도 별로 없기는 했다.
 
"벌써 궁금해지는군. 동굴에서 찾았다고 그랬던가?"
 
"다 왔습니다. 바로 저기입니다."
 
스테넘-120은 엔지니어를 따라 깊은 숲속 수풀 속에 숨어 있는 작은 동굴 입구에 말을 멈췄다. 커다란 바위와 나무가 있는데다 잡목이 우거져 동굴 입구는 얼른 눈에 띄지 않았다. 그것은 지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자연 동굴 같았다. 하지만 여기는 지구가 아니지 않는가. 그들의 과학기술 그리고 공학의 수준은 도대체 그 끝이 어디란 말인가. 스태넘-120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시원한 바람이 불어나오는 동굴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동굴 속은 어둡지 않았다. 무슨 전등 같은 인공적인 조명 장치가 있을 리 없었는데 그랬다. 대신 동굴 벽과 천정 군데군데에 밝게 빛나는 곳들이 있었다. 무슨 석영 광맥 같은 것으로 바깥과 연결이라도 되어 있다는 건가? 하고 스태넘-120은 넘어갔다. 막다른 공간에 다다랐고, 벽 중간쯤에 튀어나와 있는 바위 선반 위에 초록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것은 취옥이었다. 그것도 힐리엄-3의 머리맡에 있었던 것과 비슷한 크기와 모양의 취옥 원석이었다. 우주식민지에서는 처음 발견된 그것은 1만개의 취옥 원석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그 영롱한 초록빛을 홀린 듯 쳐다볼 뿐이었다. ( * )

ⓒ 아크로폴리스타임스(http://www.acropolistime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의견쓰기
이름 비밀번호
제목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현재 0 byte/최대 400byte)
전체기사의견(12)
  시간이 지나면 오달 2013-08-15 02:24:40
거기가서 또 그 짓들을 하지 않을까?
가끔씩 쌀쓸이 청소를 해야 하겠지.

취옥이 -- 댓글 제목만 보고 기생 이름인 줄로 잠시 착각.
추천0 반대0
(97.XXX.XXX.0)
  그 버릇 쓴이 2013-08-15 08:36:01
털없는 원숭이들의 그 버릇 어디 가겠습니까.ㅋㅋ
다만, 원천징수, 원천봉쇄에는 속수무책인 그들의
소심함을 믿어보렵니다.

홍옥(루비), 청옥(사파이어), 취옥(에머럴드)..
보석계, 미인대회의 진선미 정도가 되려나요?
그들의 살결은 백옥이요 목소리는 옥구슬이라는.ㅋㅋ
추천0 반대0
(216.XXX.XXX.228)
  털없는 원숭이 하니까 대학 때 철학개론 시간에 배운 재미있는 일화가 생각나네요. 변변 2013-08-15 13:10:50
어느날 로마의 원로원에서 (요새로 치면 한림원 내지는 학술원) [인간이란 무엇인가?] 로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여러가지 정의와 주장이 나왔는데 그중 한 철학자가 [인간은 털이 없고 두 다리로 서서 움직이는 동물이다] 라고 정의를 했습니다. 그러자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갑자기 집에 가서 뒷마당의 닭을 한마리 잡아서 털을 다 뽑고 다시 원로원에 등장하여 [그럼 이것도 인간이란 말이오?] 라고 반문을 했다고 합니다.
추천0 반대0
(75.XXX.XXX.222)
  반대로 쓴이 2013-08-15 14:13:11
털 붙이고 입술 좀 잡아빼면 사람으로 닭 만들 수도 있겠습니다.
철학적인 고찰이 정치로 비화하는 듯한 순간입니다.ㅋㅋㅋ
추천1 반대0
(216.XXX.XXX.228)
  취옥이.... 애독자 2013-08-14 08:54:01
무슨 보석인가보다 했는데 사전 찾아보니 한자로 (翠玉)이고...흔히 말하는 에메랄드이더군요.
나이 50 넘어서도 몰랐던 단어가 이렇게 많습니다. 덕분에 하나 배웠고요...상상력 넘치는 글 잘 읽었습니다. 다음을 기대하며...
추천0 반대0
(66.XXX.XXX.3)
  애독자 선배님 쓴이 2013-08-14 14:30:30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보석과 아름다운 사람들은 다 알기 힘든 것 같습니다.^^
추천0 반대0
(216.XXX.XXX.228)
  이야~ Kong 2013-08-14 07:10:35
이번 삽화는 ㅇㅊㅅ 의 위치가 아주 교묘하네요. ^^
이번 글을 읽으니 어제 들었던 TED의 The Hackers 편이 생각납니다.
생물학의 발달로 이미 멸종해 버린 동물들을 복원할 수 있을 거라고 하네요.
그렇다고 먼 옛날에 존재하던 공룡은 아니구요, 우리 인류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사라진 것들만.
일종의 보상 같은 거랄까...ㅎㅎ
추천0 반대0
(50.XXX.XXX.105)
  쥬라기 공원 쓴이 2013-08-14 14:28:09
진짜 만드는 날이 오겠군요. 쥬라기 공원의 감동이 아직 생생합니다.
우리가 멸종시킨 동물들을 되살릴 뿐 아니라 그들의 서식지 또한
돌려주어야겠습니다. 역시 인구는 줄이는 수밖에 없겠습니다.ㅠㅠ
추천0 반대0
(216.XXX.XXX.228)
  나머지 99억도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은 아니지 않을까요? 물론 도사님은 전지전능하시니 답을 알고 계시겠지만... 변변 2013-08-14 07:04:49
2차대전 때 나치가 유태인을 [박멸] 하려고 덤볐지만 결국 살아남았습니다. [쉰들러 리스트] 처럼 인간의 도움을 받기도 했고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도 했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살아남았습니다. 아마도 99 억명의 인간들 중에도 살아남은 인구가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추천0 반대0
(75.XXX.XXX.222)
  변변님의 감 쓴이 2013-08-14 14:25:26
놀랍습니다.
나치와 쉰들러, 그리고 예언자.. 흐음!!ㅋㅋ
샐까요?
추천0 반대0
(216.XXX.XXX.228)
  때가 되면 다 알게 될 것을 김종하 2013-08-13 23:43:20
정말 충섭 도사님의 상상력이 어디까지인지는 끝까지 가 봐야...
다행이 이번이 마지막회가 아니랍니다. 상승은 계속됩니다, 담 주에도^^
추천0 반대0
(107.XXX.XXX.123)
  위아래 쓴이 2013-08-14 14:23:05
지구궤도에서는 딱히 위아래가 없어 다음에 어디로 튀어야 할지 고민중입니다.ㅋㅋ
횟수를 딱딱 맞추지 못해 편집장님께 죄송하죠.
추천0 반대0
(216.XXX.XXX.228)
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3600 Wilshire Blvd., #1214 LA, CA, 90010, USA|Tel 1-818-744-100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경훈
Copyright since 2009 by The Acropolis Times. All rights reserved. mail to Editor@acropolis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