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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가장 기묘하게 공포스러운 날
[이충섭 단편 연재소설] ‘상승’ 2부
2013년 07월 24일 (수) 15:22:37 이충섭 기자 acroedito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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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치고도 몹시 무더운 날이었다. 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면서도 그는 어떻게 하면 연구실에 저녁 될 만한 음식을 몰래 들여갈까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국방성 건물 주차장 한 곳에 급조한 깡통 모양의 식당 안은 맹렬히 돌아가고 있는 냉방기 소음에 묻히지 않으려는 듯 목청껏 외쳐대는 사람들도 떠들썩했다.

귓속에서 웅~ 소리가 나더니, 그 모든 잡음들이 한 데 비벼지더니 갑자기 음악이 되어 들렸다. 냉방기 소음을 베이스로 해서, 사람들 입 속에 들어 있는 음식의 양에 따라 달라지는 목소리의 음색, 스테인레스, 도자기, 플라스틱 등등의 접시에 부딪히고 긁히는 숟가락과 삼지창의 흐느적거림이 만들어 내는 멜로디. 재즈? 근데 무겁고 어둡다. 거미줄 호로병에 갇힌 귀뚜라미의 마지막 날개마찰음 같은.

그는 준비해온 비닐봉지를 세 겹으로 싸서 냄새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조심조심 저녁 도시락을 쌌다. 마늘빵과 달걀부침과 소세지는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수육에 곁들일 새우젓과 보쌈김치가 끝까지 신경 쓰였다. 하필이면 이렇게 바쁠 때 구내식당 문을 닫을 게 뭐람. 그는 다시 한 겹을 더 싼 도시락을 배낭에 넣으며 속으로 몇 가지 저주의 말을 삼켰다.

금속 탐지기에 이어 음식물 탐지기까지 무사히 통과해서 연구실로 되돌아온 그는 배낭을 의자 등받이에 걸어 놓고 안도의 한숨과 함께 곧바로 일을 시작했다. 최소한 저녁을 굶으며 일해야 하는 개 같은 경우는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루에 한 끼만 주어야 제대로 큰다는 개? 그 순간 그는 별 생각을 다 떠올리는 자신을 신기하게 다시 보았다. 식당의 소음에서 재즈를 뽑아내질 않나, 저녁 도시락에서 굶주리는 강아지를 연상하질 않나...

"일을 빨리 끝낼 수 있으려나?" 그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백억이나 되는 사람들이 지난 일주일 동안 생산해낸 데이터를 가공하는 작업은 고성능 컴퓨터의 빠른 계산능력 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종류의 문제가 아니었다. 상상력이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끈이론을 찜 쪄 먹을 15차원을 넘나드는 절정의 감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식당 소음을 재즈 음악으로 해독했던 건 좋은 징조라고 할 만 했다. 그의 감각이 예리하게 벼려져 있다는 뜻일 테니까.

역시 일의 진도는 빨랐다. 퇴근 시간이 되어 사람들이 빠져나갈 때쯤 2할이 넘는 데이터가 벌써 그의 분석을 거쳐 간 뒤였다. 이대로라면 날이 밝기 전에 일을 다 끝낼 수도 있을 터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고는, 크고 작은 화면이 네 벽면을 가득 메운 그의 연구실을 둘러보았다. 화면에는 그가 분석을 마친 데이터가 수십 가지 그래프, 위상 다이어그램, 홀로그램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커피 한 잔을 들고 그의 뇌와 컴퓨터 사이의 접속이 끊기지나 않을까 조심하며 화면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인류조화위원회는 미국의 손아귀에 있었다. 중국과 러시아가 준동하고 있으나 역부족. 월스트릿에서 뻗어나간 질긴 금융의 오라는 수만 수백만 가닥이 되어 모든 국가 모든 시장 모든 조직을 옥죄고 있었다. 한 개인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영상, 음성, 전자 데이터까지 모두 수집하여 분석하고 있다. 물론 그 혼자 그 많은 일을 다 할 수는 없었다. 십만 명은 족히 넘는 인원과 백만 대도 넘는 수퍼컴이 동원된 초벌, 두벌, 세벌 분석과 가공을 거친 고급 정보를 바탕으로 해서 가장 큰 그림을 그리는 게 바로 그의 일이었다. 제국을 운영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장난이 아니었다.

그가 시장기를 느낀 것은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각이었다. 백억 개의 뇌가 뱉어내는 천문학적인 전자기 정보를 물감 삼아 그려낸 그림은 과연 오묘하기 이를 데 없어, 그의 뇌는 환각 비슷한 상태에 점점 더 깊게 빠져 들었던 것이다. 배고픔도 목마름도 잊게 만든다는 마약 그대로였다.

컴퓨터 입력장치로 꽉 찬 탁자 위에 음식을 벌여 놓고 그는 먹기 시작했다. 시선은 여전히 화면에 둔 채였다. 그리고 그 일이 시작된 것은, 아니 그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처음으로 인식한 것은 음식을 절반이나 먹었을 때였다. 어디에선가 날아온 커다란 바퀴벌레가 그의 수육 한 조각 위에 내려앉은 거였다.

"아직 바퀴벌레가 남아 있었나?" 그는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지난 한 달 동안 국무성 건물 안에서 벌였던 바퀴벌레와의 전쟁 끝이라, 한두 마리 정도는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대대적인 소탕 작전 끝에 구내식당까지 폐쇄하고 외부와 통하는 작은 구멍 하나까지 모조리 막거나 철망을 씌운 소동에서도 살아남은 바퀴벌레라니!

   

<삽화=이충섭>

바퀴벌레를 잡을 수 있는 도구는 많았다. 그 가운데 하나로 처리할 생각으로 의자에서 일어난 그는 돌아서자마자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바닥에도 화면에도 천정에도 온통 바퀴벌레로 뒤덮여 있었던 것이다. 닫아 두었던 연구실 문은 비죽이 열려 있었다. 바퀴벌레의 물결 가운데 쥐가 한 마리 보였다. 바퀴벌레 한 마리를 보았다는 것은 어딘가에 삼백 마리의 바퀴벌레가 숨어 있다는 것. 그렇다면 한 마리의 쥐가 뜻하는 것은?

바닥은 바퀴벌레와 쥐로 뒤덮여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을 참지 못하고 눈을 감고 말았다. 그제야 떠오르는 무서운 진실. 그는 그 커다란 국방성의 지하 공간에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것. 그의 경련하는 몸과 공포에 질린 마음을, 지난 한달 동안 굶주린 수십만 마리의 바퀴벌레와 수만 마리의 쥐들이 나누어 가질 때조차, 그는 알지 못했다. 그 모든 일련의 사건들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그의 연구실에서 유기물이란 유기물은 단 한 조각도 남기지 않은 그 바퀴벌레와 쥐들이 한 덩어리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2023년 7월 19일. 이 날은 인류역사상 가장 기묘하게 공포스러운 날로 기억될 것이었다. 그 날 하루 동안 지구에서는 백만 명이 넘는 인간들이 동물들의 공격을 받고 죽었다. 사람을 공격한 동물들은 전통적인 맹수라고 할 수 있는 대형 포유류나 파충류에 국한되지 않았다. 인간의 그림자만 봐도 도망치던 작은 초식동물은 물론이고 하다못해 하루살이 같은 곤충들마저 어찌된 일인지 사람들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고 덤벼들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공격받은 인간은 살아남지 못했다.

지구 생태계의 절대 강자이자 영원한 갑으로 지난 수천 년 동안 군림했던, 자칭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지위가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린 것이었다. 불과 이백 년 만에 동물 종의 수를 절반 이하로 급격히 줄어들게 만든 절대 권력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털 없는 원숭이, 생태계의 폭군의 지배에 대해 일어난 최초의 전면적인 동물들의 반란.

그 공포스러운 밤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의 수는 마흔 여섯이었고, 이제 거기에 한 사람이 추가되었다. 인류조화위원회 위원장 과학담당보좌관, 힐리엄-3.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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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17)
  kafka의 Metamorphosis 정읍거사 2013-07-31 16:49:17
바퀴벌레 그림을 보니까 얼마전에 읽은 Frantz Kafka 의 Metamorphosis 가 생각이 나네요. 물론 그글에서는 바퀴벌레가 주인공을 죽음으로 끌어가는 매체의 역할을 하였지만.
추천0 반대0
(76.XXX.XXX.171)
  보면 볼수록 이병철 2013-07-25 20:55:01
알면 알수록 대단한 사람이야. 아니면 사람이 아닐 수도...
추천2 반대0
(27.XXX.XXX.14)
  선배님 오랜만입니다 쓴이 2013-07-25 21:53:39
십 년 동안 거의 날마다 본 사이,
오시면 꼭 연락 주십시오.
추천1 반대0
(71.XXX.XXX.19)
  작가 이름을 보고 클릭했는데 공마 2013-07-24 22:15:28
1편까지 찾아서 한꺼번에 읽었습니다. 글/그림 무한상상력. 역시 섭도사님 차원이 다르시네요. 훌륭하십니다.
추천0 반대0
(96.XXX.XXX.67)
  AOCC 쓴이 2013-07-25 08:08:07
대세 AOCC 공마님이 댓글에 뜨시다니! 고맙습니다.
동료 (묻어가기^^) 소설가의 말씀이라 더욱요.
아크로 오피셜 실레브러티 커플..
추천0 반대0
(216.XXX.XXX.228)
  바퀴벌레님께서 오달 2013-07-24 08:57:24
사람놈들에게 시키실 일 뮐까?
밥지어 쎀히기,
쓰레기 양산,
바퀴어천가부르기.
추천1 반대0
(125.XXX.XXX.223)
  아니 벌써.. 쓴이 2013-07-24 12:10:46
그들은 이미 우리의 주인이었던 것인가요?ㅠㅠ
어째 버리는 음식쓰레기가 그리 많다 했습니다.
추천0 반대0
(216.XXX.XXX.228)
  권력교체 엉겅퀴 2013-07-24 08:16:13
지구의 다음 패자, 바퀴벌레가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군요.
"바퀴벌레, 털없는 원숭이 보듯.." 이란 말이 곧 유행할런지 궁금.
추천1 반대0
(216.XXX.XXX.228)
  흐음... 엉겅퀴... 쓴이 2013-07-24 12:08:48
다행히 탈없는 원숭이들에게 별 쓸모 없는 덕에
모진 몬산토 같은 악마 만나서 유전자 조작 당할 리도 없으니
바퀴벌레의 지구정복을 목격할 가능성이 크군요.ㅋㅋ
추천0 반대0
(216.XXX.XXX.228)
  우리가 곤충이나 설치류들을 우습게 보아서는 안되는 이유를 이제서야 좀 알겠습니다. 변변 2013-07-24 07:31:48
인류가 확 줄어드는 과정에도 곤충이나 설치류는 여전히 설쳐대는군요. 이 미물들의 생명력이 정말 소름끼칠 정도로 존경스럽습니다. 다음편이 몹시 기대됩니다.
추천1 반대0
(71.XXX.XXX.67)
  미물들의 생명력 쓴이 2013-07-24 12:06:49
변변님께서 제대로 짚으셨네요. 그들처럼 강인한 생명력으로 살아남았지만
어느새 온실 속 화초가 되어버린 우리 입장에서 보면 그들은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게다가 인간들은 핵발전이니 유전자조작이니 화학물질 오염등으로
헛발질을 하고 있으니 곧 왕좌를 내줘야 할 것 같기도 합니다.ㅠㅠ
추천0 반대0
(216.XXX.XXX.228)
  헉~ Kong 2013-07-23 23:37:13
섭도사님, 이제는 그림까지...
스토리도 박진감이 더해가네요.
좀 오싹한 면도 있고.
빨랑 다음 얘기 올려주삼.
추천1 반대0
(96.XXX.XXX.67)
  자라나는 오싹 쓴이 2013-07-24 12:04:56
오싹의 새싹도 자르지 않아야겠지만,
바퀴벌레를 저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퇴장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ㅋㅋ
추천0 반대0
(216.XXX.XXX.228)
  ㅇㅊㅅ 작가/화백 김종하 2013-07-23 22:28:09
님의 작품이 점점 빠져들게 만드네요.
스토리면 스토리, 삽화면 삽화.
박변 화백님 긴장하셔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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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XXX.XXX.123)
  박화백의 작품에 쓴이 2013-07-24 12:03:29
감히 도전하지 않구요.^^
색깔 넣을 자신도 없고,,
더군다나 고난도의 사람 그림..
저에겐 무리입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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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XXX.XXX.228)
  박 화백은 그림을 내려 놓으렵니다 박화백 2013-07-25 19:39:51
벌써 동창회보 시사만평에선 퇴출당했구요, ㅋㅋ 이젠 ㅊㅅ 화백 별명까지....흐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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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XXX.XXX.69)
  백부당 십부당 쓴이 2013-07-25 20:26:32
박변님이 화백이시면, 저는 화십에 지나지 않습니다.^^
추천0 반대0
(71.XXX.XXX.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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