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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자가 꼭 딱딱 맞아야 맛인가
[김학천의 문학서재] 시간의 탄력성과 삶의 여유
2013년 05월 24일 (금) 15:58:24 김학천 기자 acroedito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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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천님의 블로그 '문학서재'의 글입니다. <편집자 주>

오랜만에 집안을 정리하다가 리빙룸 한 쪽 구석에 세워 놓은 앤틱 시계를 발견했다. 배터리가 없어서도 그랬겠지만 철제로 되어있어서 무척 무겁기 때문에 걸려있던 벽의 못이 느슨해져서 떨어지면 위험할 까봐 내려놓고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 같다.

못을 새로 박고 배터리도 새로 끼워주고 말끔히 닦아 달아 보니 보기에 좋다. 황금빛의 동그란 아날로그시계의 물 흐르듯 돌아가는 초침은 나와 함께 숨 쉬고 시계 머리 위에 매달려있는 재래식 모양의 조그만 종이 매시와 반경이 될 때마다 쳐주는 종소리는 내 심장의 박동과 맞물려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그리곤 디지털이 대세인 요즈음에 이 아날로그시계가 먼 옛 향수를 다시 불러일으켜 주기도 했지만 그것은 잠시일 뿐 지금 이 순간에도 뒤를 돌아다보지 않은 채 앞으로만 달려가는 시간의 냉정함이 얼마나 얄미운지.

허나 시간은 무심한 듯하지만 정확해서 한 치의 타협도 없이 움직이며 우리 삶에 누가 옳았는지 누가 틀렸는지 모르는 채 질책이나 판단 없이 오로지 자신의 임무에만 충실하다. 그래서 흔히 우리는 시간만큼은 어느 누구에게나 공평하다고 하는 게 아닐까.

   

이런 저런 상념에 젖는데 땡땡- 하는 종소리에 얼마 전 갔었던 청소년으로 구성된 기금마련 오케스트라 음악회가 생각이 났다. 지휘자가 나와 멤버 아이들을 하나하나 소개하고 연주곡목을 간단히 설명하면서 음악에 대한 이런 저런 얘기도 해주었는데 그 중에 메트로놈은 음악에 있어서 박자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음악기기이지만 때론 거추장스러워 오히려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보는 것이 창작세계에 도움이 된다던 말. 그러면서 프렌치 호른을 든 학생에게 메트로놈이 정해준 박자대로가 아닌 마음대로 음을 늘리고 줄여 불어보게 하면서 느낌이 서로 다르지 않느냐고 하던 말. 확실히 그랬다.

룰이란 질서를 위해 있는 것이긴 하지만 거기에 너무 얽매이기 보다는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여유도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메트로놈이 똑딱 똑딱 소리를 내며 좌우로 왔다갔다 알려주는 박자는 시간만큼이나 정확하고 규칙적인 고집쟁이이다. 그렇지만 그 고집불통 같은 박자도 가변성이 있어서 한 박자가 반 박자가 되기도 하고 때론 두 박자가 되기도 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고 보면 시간 또한 결코 규칙적인 것만은 아니다. 모래시계를 보자. 처음 모래시계의 윗부분에 모래가 가득 차 있을 때는 잘록한 허리를 통해 아래 부분으로 빠져나가는 모래의 속도가 매우 느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얼마 후 윗부분이 거의 다 비어질 때쯤이면 아래로 빠져나가는 모래의 속도가 매우 빨라 보인다.

그것은 시간을 우리가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가 있어서‘아름다운 여인과 함께 있는 1시간은 마치 1분처럼 느껴지지만 뜨거운 스토브 위에 손을 올려놓은 1분은 몇 시간처럼 길게 느껴질 것이다’라고 아인슈타인이 말한 것처럼 시간 역시 매우 탄력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탄력 있는 불규칙성이 질서를 허물어뜨리기커녕 오히려 여유를 만들어낼 수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즉 박자가 유연성을 가질 때 새로운 세계의 느낌을 맛보듯 우리의 삶도 여유를 가질 때 더 탄력을 받을 것이다. 마치 심장 박동이 우리의 감정과 컨디션에 따라 조금 달라진다고 해서 병든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래야 더 건강에 도움이 되고 삶이 더 감칠맛이 나듯이.

다시 땡땡-하고 자정을 알린다.

김학천 (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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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5)
  시간을 의식한다는것은 허갱년 2013-05-24 11:08:00
시간을 본다는것이고 본다는 것은 구별한다느것 일테지요.한곳에 머문다는 뜻이고요. 삶은 늘 그 경계에 (edge) 있지 않나요?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면 늘 살고있지 않을까요? ㅎ ㅋ
추천0 반대0
(66.XXX.XXX.49)
  음악도 인생도 엉겅퀴 2013-05-24 09:51:39
다 시간문제이군요.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주어진 시간을 무슨 사건들로 채울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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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XXX.XXX.228)
  선배님 글을 보고 오늘 디지탈 시계 차고나온 것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시간은 앞으로만 가는 것 같고 나무는 위로만 자라는 것 같습니다. 변변 2013-05-24 05:24:22
그러나 시간이 앞으로 가면 갈수록 마치 와인이 깊은 맛을 더해가듯 우리의 추억과 우정은 연륜이 쌓이고 깊어집니다. 나무는 위로만 자라는 것 같지만 사실은 세월과 함께 뿌리를 깊이 내립니다. 디지탈이 우리의 눈을 위해서 만든 칸셉이라면 아날로그는 우리의 가슴을 위해서 아직도 그 자리에 있습니다. 오늘 어디 엔틱 가게에 가서 허름한 옛날 시계를 하나 사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선배님, 정말 감사합니다!
추천0 반대0
(71.XXX.XXX.192)
  시간의 깨뜨릴 수 없는 질서, 오달 2013-05-24 02:59:00
그것은 앞으로만 간다는 거지요.
모든 사람은 그 질서를 깨보고 싶어하고.
예전에 시간이 나는 간다, "똑딱"
이렇게 말이라도 해주었는데,
요새는 간다는 말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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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XXX.XXX.0)
  시계와 메트로놈 김종하 2013-05-23 23:25:36
요즘 메트로놈하고 가까이 지내면서 비트를 딱딱 맞추는 연습을 하고 있는 저로서는 필자 말씀이 정말 남다르게 와닿네요. 저도 경지에 오르면 메트로놈 이놈 내쳐버리고 유연한 박자와 시간의 새로운 세계의 느낌을 가질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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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XXX.XXX.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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