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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에 고춧가루 뿌려 마셔도...
이원택의 세상만사/고춧가루의 미학
2013년 05월 09일 (목) 16:38:34 이원택 Editor@Acropoli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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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춧가루

이원택<의대 65>

오랜만에 곱창전골을 먹고 왔다. 그동안 먹어왔던 것보다 맛이 좋기에 자세히 보았더니 고추장 국물에다 고추가루를 솔솔 뿌려놓았기 때문이었다. 춘천에 있는 유명한 닭도리탕집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요리를 했던 것 같다. 그 다음부터 나도 한수 배워가지고 고추가루를 쏠쏠치 않게 사용한다. 김치찌개에다가도 고추가루를 뿌리고 고추장을 풀어 넣은 생선 매운탕에도 고추가루를 치면 매콤하면서도 상큼한 맛이 나는 것을 발견했다.

고추장이나 고추가루나 원료도 그게 그것이고 둘 다 매운 맛을 내기위해 쓰기 때문에 고추장을 풀 때는 고추장만 풀고 고추가루를 쓸 때는 고추가루만 써왔다. 홀아비 생활을 삼년쯤 하고나니 고추장과 고추가루를 같이 쓰는 것이 금상첨화 격으로 입맛을 돋우어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음식마다 다르지만 대부분 고추장과 고추가루를 9:1 정도로 섞어 쓰면 얼큰하면서도 쌉싸름한 맛이 우러난다.

고추가루를 쓰는 목적은 맛뿐만이 아니다. 풋고추나 늙은 고추나 맵기는 매일반이나 풋고추로 고추가루를 빻지는 않는다. 제상에 올라가는 맑은 무국은 무와 쇠고기와 소금에다가 다시마 한 조각만 넣고 끓이는데 여기다가 고추가루를 살짝 뿌리면 마치 본처와 후처만큼이나 차이가 난다. 생태 해장국은 생태 콩나물국에다 고추가루만 살짝 털어 넣은 것이다. 잔칫집에 가서 먹는 국수에는 고명이라고 해서 계란말이를 얇게 썰어놓고 그 위에 굵은 고추가루를 올려놓아서 모양새를 내고 있다.

고추가루의 용도도 다양하다. 곱게 빤 것으로는 고추장을 담그고 중간치는 김치나 깍두기를 버무릴 때 쓰며 굵은 고추가루는 풋김치나 열무김치에 섞어서 사용한다. 보통 막고추가루라고 하는 거친 고추가루는 꼭지도 따지 않고 씨도 안 뺀 붉은 고추를 통째로 갈아서 만든 것인데 주로 돼지 삼겹살 구울 때 발라먹는다, 내가 좋아하는 나박김치는 고추가루를 베나 모시로 된 천으로 걸러서 국물을 내야하는데 나는 매운기가 다 빠져버린 민(맹)고추가루는 물김치 담글 때 써먹는다.

고춧가루는 주식이 아니라 부식이다. 부식 중에서도 양념이다.
여러 마리 닭이 있는 중에 두루미 한 마리가 있으면 군계일학이라고 하고 여러 마리 수컷이 있는 중에 암컷이 하나 있으면 홍일점이라고 해서 귀하고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 내가 의과대학에 다닐 때 100명의 동기생중 4명만 여학생이었다. 별 미인들이 아니었지만 남학생들한테 인기 짱이었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넥타이는 마치 고추장에 고춧가루처럼 주홍색 바탕에 선홍색 점무늬가 박힌 것이다. 예전에는 고추가루가 표준어였었는데 그동안 멋쟁이 국문학자들이 ‘고춧가루’ 로 표기를 바꿔놓고 발음도 ‘고춛까루’로 해야 한다니 한국이 현대화, 세계화를 하면서 이제는 맛보다 멋에 더 중점을 두는 세상이 된 모양이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melting pot’ 이라고 한다. 고대 한국어로는 ‘전골’이고 현대한국어로는 ‘탕’이다. 그리고 대중용어로는 ‘찌개’라고 한다. 바로 ‘해물 전골’ ‘민물매운탕’ ‘부대찌개’ 와 같은 나라가 미국이다. 그동안 원주민들은 맹물이 되고 유럽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고추장 역할을 했다면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은 간장, 남미에서 온 사람들은 된장, 그리고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이 고춧가루가 됐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이민 역사가 제일 짧은데도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연예계에서도 제법 잘 나가는 사람들은 한국아가씨들이고 인종대비 하바드 대학 입학률도 한국인이 제일 높다. 프로 골프 선수도 오페라 가수도 한국인이 두드러지고 의사도 한국의사가 인기가 좋다. 비록 숫자는 작지만 작은 고추가 더 맵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한국인은 맛보다도 멋을 아는 인종이기 때문이리라.

한국인만큼 고추에 인이 박힌, 또는 한이 맺힌 민족도 없다. 아주 사생결단을 낸다. 풋고추를 고추장에 찍어먹는 일은 그렇다 치더라도 밥에 고추장을 비벼먹는지 고추장에 밥을 비벼먹는지 모를 정도이다. 어떤 이는 물에다 밥 말아먹을 때도 고춧가루를 풀거나 심지어는 소주에다가 고춧가루를 뿌려 마시기도 한다. 그래서 한국인은 화끈하다고 한다. 또는 별종이라고 한다.

오늘도 민어 매운탕을 끓여놓고 어떤 고춧가루를 언제 어떻게 얼마나 뿌릴까 심사숙고하고 있다. 행여나 너무 가는 고춧가루를 너무 일찍 너무 많이 섞으면 멋대가리 없는 고추장에 뒤섞여서 맛대가리도 베리고 말겠기에--- 고추와 가루 사이에 ‘ㅅ’ 하나를 끼워 넣어서 ‘accent’를 돋군 우리의 국문학자들의 깊은 뜻을 길이 받들어 모셔야 하겠다.

뭐니 뭐니 해도 이민의 진수는 희귀성에 있다고 본다. 대부분의 사람들과 다른 모양, 다른 생각, 다른 accent를 가졌다는 것은 얼마나 신통한 매력인가. 얼마나 신선한 충격인가. 그리고 얼마나 신성한 축복인가. 고추장은 얼얼하고 고춧가루는 알알하다. 모름지기 백만의 재미동포 신사숙녀 여러분! 우리 대한민국의 ACCENT를 살려서 고추장의 맛에 고춧가루의 멋을 더하는 멋쟁이가 됩시다.

그러나 너무 멋을 부려서 행여나 고춧가루가 이빨 사이에 낀 ‘꼬추까리’가 되는 꼴값은 떨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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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4)
  고추가루의 깊은맛 김뽀샵 2013-05-15 14:27:51
니 들이 고추맛을 아냐? 먹어본 놈만이 아는거여...
난 전처, 후처가 있거든...그래도 본처가 (고추장) 진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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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XXX.XXX.142)
  본처가 낫다는 것인지 후처가 낫다는 것인지 본처 우월론자 2013-05-13 22:33:03
헷갈립니다. 우열을 따질 필요없는 싱거운 논의지만. 고추 이야기 하면서 싱겁다니...말하면서도 우습네요...
추천0 반대0
(24.XXX.XXX.69)
  정말 재미있는 글입니다. 변변 2013-05-09 08:02:48
본처와 후처의 차이. 아직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표현 자체는 정말 재미있습니다.
추천0 반대0
(174.XXX.XXX.217)
  재밌는 수필 워낭 2013-05-08 23:43:06
재밌고 미국 사회의 다양한 정보가 녹아 있는 이원택님의 글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추천0 반대0
(24.XXX.XXX.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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