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2.10 토 11:07
> 뉴스 > 여행 / 나들이
       
‘천지창조’ 같은 환상 뒤엔 농부들의 피땀이...
[곽샘의 오지탐험기 2탄] 중국 운남성 시솽반나, 라오스, 태국-1
2012년 10월 26일 (금) 15:20:45 곽영을 기자 acroeditor@gmail.com
곽영을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클릭!  

쿤밍에서 위엔양으로 가는 버스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3월 9일 밤늦게 쿤밍의 험프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한 우리는 곧바로 방 배정을 받고, 취침에 들어갔다. 다음날 즉 10일 일찍 위엔양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쿤밍 남부 터미널에 도착했다. 가자마자 버스가 대기하고 있어서 바로 버스에 탈 수 있었다.

그런데 아기를 데리고 탄 아주머니가 문제였다. 우리의 좌석을 차지하고 자기의 좌석으로 돌아가지를 않는 것이다. 우리의 가이드인 KC의 말에 따르면 아무리 표를 보여주고 설득을 해도 꿈쩍도 않는다는 것이다. 아기가 있으니 거기까지는 이해가 되는 일이다. 문제는 아기가 계속 울어댄다는 것이다. 거기까지도 이해할 수 있다. 이 여인은 계속 토하고 침을 뱉고 기침을 해댔다. 우리야 그러려니 했지만 중국인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한 마디로 이해는 하나 참기는 힘들다는 표정이 중국인들의 얼굴에 가득했다. 멀미에 좋다는 "귀밑에"를 주려고 했으나 읽어보니 차에 타기 전에 붙여야한다고 적혀 있었다. 중간에 내려서 쉴 기회가 있었다. 결국 그녀 옆에 앉아 있던 나의 아내가 아기를 팔에 안고 달래고 있었고, 그녀는 계속 토하고 있는 장면이 목격되었다. 이 가련한 여인은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먹지 않았으며, 하루 종일 화장실에 한 번 가지 않았으며, 아기가 울면 아무 때나 아기에게 젖을 물렸으며, 하루 종일 피곤한 눈과 허기진 모습으로 멀미를 해댔다. 그녀가 목적지인 위엔양의 신지에에 도착하여 아기를 안고 버스 밖으로 나왔을 때,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와 만나는 광경을 먼발치에서 보면서, 여기에서도 왜 여자는 저렇게 고생을 해야 하는지 나도 모르게 또 "승질"이 났다.

   

위엔양은 둘로 나누어진다. 처음 도착하는 곳이 신 위엔양인 난샤라는 곳이다. 이 지점부터 버스는 굉음을 내면서 한 시간을 꼬불대는 길을 따라 올라간다.  도착한 곳이 바로 신지에라는 곳으로 구 위엔양인 셈이다. 계단식 논을 보려는 사람은 버스가 종점에 닿을 때까지 꼼짝 않고 앉아 있어야 한다.

얼마나 올라왔는지 날은 저물고 광장에서 아주머니들이 스피커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춘다. 아마 운동인지도 모르겠다. 남자들은 꿔다 놓은 보리 자루 마냥 구경이나 하면서 잡담이나 하고 서 있다. 어디를 가나 남자들은 왜 항상 외곽으로 돌면서 어울리지 못하고 건드렁거리는지 모르겠다. 나 같으면 구경 안하고 방에 가서 누워 TV나 보겠구만, 왜들 저러는지 모르겠다.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에 전세 봉고차를 탔다. 몇 시인지 모르지만 운전사 아주머니는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달렸다. 25킬로 정도 가야만이 일출을 볼 수 있는 뚜어이슈에 도착할 수 있다.  우리가 빠르면 다른 사람은 더 빠른 법,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고, 나는 놈 위에 얹혀가는 놈도 있다. 이미 길은 다른 차로 만원이었다. 길이 막혀서 승강이가 벌어지자, 우리의 용감한 아주머니 기사는 차에서 내려 근사하게 한 바탕 해부치고 돌아온다. 강력한 멋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안개는 꼬리에 꼬리를 몰고 오른쪽 산을 넘어 바람 타고 습격한다. 바로 눈앞에서 연신 뭉클뭉클 쏟아져 들어오는 안개를 본다. 계단식 논을 가득 채웠던 안개는 눈 깜짝할 사이에 살짝 비켜서더니, 발가벗을까 두려워 수줍어하는 여인처럼 또 수많은 논두렁을 흰 비단으로 감싼다. 오른쪽 산 밑 마을에서 이따금 할 일 없는 닭 우는 소리가 들리고, 그 넘어 먼 산의 실루엣이 보일 듯 말 듯 애간장을 녹인다. 

   

아야, 정신을 차리고 눈을 들어보니 웬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이 이리도 많으냐? 앞자리 일수록 사진사들로 복닥거린다. 몇 층인지 모를 촬영대에 전문 사진사로 보이는 이들은 중국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 대다수가 중국인인 듯이 보였다. 바로 내 옆에는 광조우에서 왔다는 부부가 있었다. 지금 일주일 째 이곳에서 있는 중인데, 단 하루만 좋은 날이었고 나머지 날은 계속 안개가 끼었다고 한탄한다. 하기야 일 년 중 두 달 정도만 맑은 날이고 나머지는 항상 이렇게 안개가 낀다고 하니, 그 사람도 평균 타작은 한 셈이다. 나는 운전사에게 물었다. "안개가 끼는 달은 언제입니까?" "시도 때도 없이 아무 때나 낍니다." 그녀의 대답이다.

   

드디어 아침 해가 떠오른다. 대지를 동여매는 안개는 단지 한 줄기 어슴푸레한 햇빛만을 허락할 뿐, 여전히 고집을 꺾지 않고 논 위를 감싼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나체의 여인보다 실오라기를 걸친 여인이 더 감칠맛이 나듯, 은은한 향기를 내뿜으며 대지를 사뿐사뿐 휘젓고 다니는 안개가 더욱 매력적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기독교 신자도 아닌 내 입에서 나온 말이다.

   

돌아오는 길은 돼지가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먼발치에서 회초리를 들고 오는 주인의 눈치를 보면서 긴뿔 소가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한 무리의 다른 노란 소 떼가 길을 활보하다가 자동차의 경적 소리를 듣고 오히려 더 중앙으로 몰려드는 진풍경도 목격된다. 신랑 신부가 촬영을 위해 소 뒤를 따라 걷고, 만족해하지 못하는 사진사를 싣고, 버스 행렬이 꼬리를 물고 자기 갈 길로 가느라 바쁘다. 

   

어둠이 몰려간 위엔양은 전체가 계단식 논이다. 단지 일출, 일몰 장면이 멋있는 곳이 있을 뿐, 발길 닿는 곳은 어디나 계단식 논이다. 한창 환상에 빠져 즐거웠던 나는 갑자기 이 논을 만들기 위해 뼈마디가 부서지고, 허리가 끊어지듯 아팠을 위엔양 농부들의 땀과 눈물이 생각났다. 모든 것을 망각하고 단지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왔던 바로 이곳이, 수백 년 또는 수천 년 한숨과 피눈물로 얼룩졌을 치열한 삶의 터전이었다는 생각에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사자와 싸워 이겨야 살아남는 로마의 장수들을 흥에 겨워 바라보듯, 피투성이 되는 것을 즐겨보며 희희낙락하는 K1 관람자처럼, 내가 그런 사람이 되었음을 보고 나는 나 자신이 무서웠다. 수많은 사람이 죽어간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를 보는 것 같은 상념에 빠져 있다가 나는 고개를 몇 번 흔들고 다시 대 자연 속으로 몸을 맡겼다.

   

한 아이가 있었다. 사진을 찍는 우리에게 다가 오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따라 다녔다. 내가 무슨 말을 하면 항상 "부스(아닙니다)"라고만 말했다. 그러다가 포즈를 취해달라면 포즈를 취해주고 또 따라 다녔다. 나는 아주 적은 돈을 주었다. 그 아이는 자연스럽게 돈을 받았다. 그리고서는 또 포즈를 취해 주었다. 한 참 생각해보니, 사진사가 오면 포즈를 취해주고 돈을 받는 모델이 안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있다가 깡충깡충 뛰어가더니, 물속을 한 참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또 다시 뛰어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갑자기 황순원의 소나기가 생각났다. "소녀는 개울에다 손을 잠그고 물장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서는 이런 개울물을 보지 못하기나 한 듯이. 벌써 며칠째 소녀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물장난이었다. 그런데, 어제까지 개울 기슭에서 하더니, 오늘은 징검다리 한가운데 앉아서 하고 있다. 소년은 개울둑에 앉아 버렸다. 소녀가 비키기를 기다리자는 것이다. .......이 날은 소녀가 징검다리 한가운데 앉아 세수를 하고 있었다. 분홍 스웨터 소매를 걷어 올린 목덜미 마냥 희었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한 여학생을 마음속으로 사랑했던 추억에 빠져 잠시 눈을 감았다.

   

오후가 되어서 찾아간 곳은 일몰로 유명하다는 라오후쭈이(老虎嘴: 호랑이 입이라는 뜻)다. 한참을 서성거리는데, 동네로 내려가면 좋은 곳이 있다고 말을 한다. 아주머니를 따라서 내려가 보니 이미 약 20명의 사진사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계단식 논을 멀찌감치 옆에서 볼 수 있는 곳이다. 좋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렇다고 나쁘다고는 할 수 없는, 다시 말하면 아주머니가 데려다 준 값은 할 수 있는 그런 곳이다. 그러나 정식으로 돈을 내고 갈 사람이라면 구태여 이런 곳은 와볼 필요가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경을 하고 올라오는데, 오리 한 마리가 닭 한 마리를 물고 놓아주질 않는다. 도망가면 쫒아 와서 계속 물어댄다. 닭은 도망가지도 못하고 계속 고초를 당하고 있다. 나는 오리를 발길로 한 번 세계 차 주었다. 오리는 데굴데굴 굴러서 "십리"는 못되어도 "오리"는 굴러 나가 떨어졌다.  오년 묵은 체증이 오장육부에서 사라지는 듯 통쾌한 기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휘파람을 불면서 위로 올라왔다.

어제 저녁에 술을 들면서 간단히 자기소개를 했던 우리 일행은 오늘은 허리띠를 풀고 술을 먹어보기로 했다. 이 후의 일이지만, 20일 동안 첫 날을 제외하고는 나는 매일 술을 마셨다. 우리 일행 8명 중 내가 아마도 3번째로 술이 강한 사람이었나 보다. 나는 처음에는 좀 몸을 사리다가 어느 정도 들어가면 주체하지 못하고 술을 마시는 버릇이 있다. 아마 이 여행기가 계속 되는 한, 술 이야기는 빠지지 않을 듯싶다. (계속)

ⓒ 아크로폴리스타임스(http://www.acropolistime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의견쓰기
이름 비밀번호
제목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현재 0 byte/최대 400byte)
전체기사의견(3)
  모델료 엉겅퀴 2012-10-27 12:01:34
'승질' 부리시는 장면,
춤판에서도 뻘쭘한 남자들 장면,
마음이 따뜻해지면서도 심란합니다.
저 또한 분명 춤 따라 하지 못하는,
'승질'과 연민의 대상이 될 것 같네요.ㅠㅠ

다락논 찍는 저 많은 사진사들 관광객들..
정작 농부님네들은 무심하실지 몰라도,
엘에이에서 오염된 저로서는 그들로부터
모델료, 다락논 제작료 등을 듬뿍
받아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추천0 반대0
(71.XXX.XXX.48)
  글도 멋지지만 박봉현 2012-10-26 13:57:58
오리를 혼내 준, 약자의 아픔을 헤아리는 마음이 더 멋집니다.
추천0 반대0
(198.XXX.XXX.159)
  아~ 정말 말이 필요없네요 김종하 2012-10-25 22:33:29
사진만 봐도 감동이... 곽샘의 기행문은 뭔가가 가슴 깊은 곳까지 비집고 들어옴을 느끼게 합니다.
추천0 반대0
(107.XXX.XXX.123)
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3600 Wilshire Blvd., #1214 LA, CA, 90010, USA|Tel 1-818-744-100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경훈
Copyright since 2009 by The Acropolis Times. All rights reserved. mail to Editor@acropolis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