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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가주 훌러동 쎄시봉방'에선 지금...
[송호찬의 시사랑] 백석을 패러디하다
2012년 09월 06일 (목) 16:08:22 송호찬 기자 acroedito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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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송호찬님이 보내오신 시 한 편을 감상하시겠습니다. <편집자 주>

* * * * *

남가주(南加州) 훌러동(屹路洞) 쎄시봉방(貰時逢方) 1) 3)

                                                              백성 2)

어느 사이 나는 집도 없고, 또,
집이 있던 고향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이웃들이며, 불알친구들과도 멀어져서,
수 만 리 떨어진 이 사막 도시 끝을 헤매이었다.
온화한 봄날은 금방 지나가서,
메마른 바람은 더욱 불고, 태양은 불볕을 내리쏟는데,
나는 크레이그 리스트에서 찾은 어느 낡은,
산악 자전거 한 대 흥정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녹이 슬고 쇳소리 나는 자전거를 끼고
낮이나 밤이나 나는 이 한 대도 너무 많은 것처럼 생각하며,
타이어를 때우고, 볼트를 죄고, 기름을 칠하고,
또 문밖으로 나가 뒷산 흙길에 들어서서,
흙 위에 바퀴 자국을 남기기도 하고
핸들을 헐겁게 손에 쥐고, 페달을 밟으며,
나는 언덕길 같은 세상의 오르막 내리막을 달려가는 것이었다. 가끔,
가파른 능선 길을 만나,
내 가슴이 꽉 막혀 숨이 찰 적이며,
내 허벅지가 터질 듯 굳어질 적이며
내 얼굴이 뜨거워져 단내가 날 적이며,
나는 세상의 구석 같은 이 산길에서 스러질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가까스로 마루에 올라, 나는,
산비탈을 구불구불 돌아 나가는 길을 바라보든가, 높은 하늘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힘으로 페달이며 바퀴만을 굴려가는 것만은 아닐 것이라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큰 세상이라는 둥근 공을 조금씩 조금씩 굴려가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등성이를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이며 얼굴에는 바람에 마른 소금기만 버석해지고
외줄기 산길에서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코요테가 길을 내주고 까마귀가 높이 날아 오를 때도 있는데,
이런 모퉁이에서는 더욱 무릎을 꺾어 페달에 힘을 주며,
뜨거워져 오는 사막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불볕을 맞고 있을,
서걱서걱 거치른 비늘로 건기의 바람을 견딜,
그 더디 자란다는 가지가 굳은 조슈아트리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1) 훌러동(屹路洞)은 Fullerton, 쎄시봉(貰時逢)은 C'est si bon의 음차임
2) 이역만리 타국에 사는 백성
3) 백석 시인의 "남신의주(南新義州) 유동(柳洞) 박시봉방(朴時逢方)"에서 아주 많은 것을 빌려옴.

-송호찬 (기계설계 80, 변리사, 시인)

* * * * *

필자가 함께 보내온 백석의 시 원본을 참고하세요. <편집자 주>

남신의주(南新義州) 유동(柳洞) 박시봉방(朴時逢方)

                                                            백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위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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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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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8)
  와~~~패러디 시의 종결편 워낭 2012-09-06 14:39:06
백석의 이 시는 송 시인이 아크로에 소개해서 알게된 후 읽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한 감동을 느끼는 절창으로 애송하고 있는데, 이렇게 완벽한 패러디 시를 만들어내시다니 기가 막힙니다. 백석이 살아 있다면 분명히 대작을 원했을 것 같네요. 앞으로 패러디 시를 더 많이 소개해주실 것을 믿&#49817;니다.
추천1 반대0
(70.XXX.XXX.50)
  워낙 송호찬 2012-09-06 19:53:25
백석의 시를 좋아합니다. 뒤쳐진 감각에 도움이 될까 하고 썼는데 읽어주시니 고맙습니다.
추천1 반대0
(68.XXX.XXX.8)
  송호찬은 오달 2012-09-06 10:08:56
시인이다.
추천1 반대0
(108.XXX.XXX.72)
  저는 잠깐 송호찬 2012-09-06 19:36:34
백석의 절창에 기댔을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오달님.
추천0 반대0
(68.XXX.XXX.8)
  '주석'마저 의미가 있고 아름답습니다 심흥근 2012-09-06 10:18:35
시인은 사실 고대 그리스 문명사로 소급해 보면 본래 하늘에 제를 올리는 경건한 제사장 이었다고 듣고 있습니다.
추천0 반대0
(75.XXX.XXX.182)
  그랬었군요. 그 때도 지금도 송호찬 2012-09-06 19:49:39
시와 포도주는 밀접한 관련이 있지 않을까요? 감사합니다. 페북에 남기신 말씀도 잘 읽었습니다.
추천1 반대0
(68.XXX.XXX.8)
  이역만리 김종하 2012-09-05 23:41:43
남가주 훌러동 세시봉방 이민의 땅, 잔차 타고 나선 외줄 산길 불볕 아래 숨차오르는 외로움...
오랜만의 호찬님 시 정말 반갑습니다. 아~ 저도 왠지 산악잔차 타고 싶네요^^
추천0 반대0
(107.XXX.XXX.123)
  산잔차의 좋은 점은 송호찬 2012-09-06 19:33:29
타는 동안 아무 생각도 안나게 하는 것입니다. 함께 하시죠! 고맙습니다.
추천0 반대0
(68.XXX.XXX.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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