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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특별하고 소중하게 느끼는 마음
[삶과 영성]급하게 꺼내 먹은 포도주맛, 설익은 사랑입니다
2012년 08월 24일 (금) 15:57:49 곽건용 기자 Editor@Acropoli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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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아픈 사랑은...

저는 심리학에 문외한이었습니다. 지금도 역시 문외한이긴 하지만 그래도 몇 권의 책을 읽은 다음에는 생각이 조금은 달라졌습니다. 그 동안 이 분야에 약간 의구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정말 사람의 심리를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가 하는 의구심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많이 없어졌습니다. 의구심이나 의심은 많은 경우에 무지에서 비롯됨을 이번에 알았습니다. 오늘은 얕은 지식이지만 심리학 얘기와 성서 얘기를 섞어서 해보겠습니다. 주제는 ‘사랑’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넓게 정의하면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을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로 인식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그 다양한 방법은 누군가를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로 여기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는 겁니다. 처음에는 이 말이 너무 평범해서 사랑의 정의로서는 부족하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읽어볼수록 좋은 정의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도 이 정의를 열 번만 소리 내서 읽어보십시오. 읽을수록 맛깔 나는 정의입니다. 여기에 비춰서 생각해보니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서 생기는 불행은 두 가지 때문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랑받는 내가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 그 이상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그 하나이고,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다르다는 게 다른 하나입니다.

사랑은 어떤 사람을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로 인식하는 ‘과정’이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한 순간에 번쩍 불꽃이 튀는 스파크 같은 게 아니라 포도주가 익는 것 같이 기나긴 과정이라는 겁니다. 이 통찰은 사랑을 주고받는 관계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포도주는 아무리 마시고 싶다고 해도 잘 익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맛있는 포도주를 마실 수 없습니다. 성질이 급해서 일찍 꺼내 마시면 최고의 맛을 즐길 수 없지요. 익을수록 맛이 깊어지기 때문입니다. 사랑도 이와 비슷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이런 생각에 더 공감하게 됩니다.
   

의존하든지 자기를 사랑하든지?

사람은 두 가지 기준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한다고 합니다. ‘의존적 대상선택’과 ‘자기애적 대상선택’이 그것입니다. 용어가 낯설어서 그렇지 내용은 별로 어렵지 않으니 겁먹을 필요 없습니다. 의존적 대상선택이란 말은 의존할 수 있는 대상을 사랑하기로 선택한다는 말입니다. 대표적인 예는 아기가 엄마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기는 엄마가 안 보이면 웁니다. 아기가 엄마에게 이토록 강한 애착을 갖는 이유는 전적으로 엄마에게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먹여주고 입혀주고 보살펴주고 정서적으로 교류하고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책임지고 돌봐주기 때문이란 얘기입니다.

그런데 아기 때뿐 아니라 어른이 돼서도 의존할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극단적인 경우가 ‘마마보이’지만 사실 모든 사람이 어느 정도는 의존할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합니다. 시각장애를 갖고 있는 남자와 걷지 못하는 여자가 만나서 사랑한다면 이것이 사랑의 상호의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람마다 의존하고 싶은 면이 다르기 때문에 의존적인 사랑의 대상을 선택하는 기준도 다르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는 서로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자기애적 대상선택은 자신의 이미지와 닮은 사람에게 사랑을 느낀다는 뜻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하는데 잘 살펴보면 그 사람을 사랑한다기보다는 그 사람에게 비쳐진 자기 자신의 이미지를 사랑한다는 얘기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기애를 갖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이 자기애라는 것이 어느 정도는 실제보다 미화되어 있답니다.

자기를 실제보다 낫게 여긴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애로 선택된 대상 역시 실제보다 미화되고 이상화되기 십상입니다. 이렇게 실제보다 미화된 상대방의 이미지가 잘 유지되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그것이 깨져버리면 사랑의 관계에도 어려움이 닥치고 깨져버릴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랑은 어느 정도는 자기애적입니다. 상대방에 비쳐진 자기 모습을 사랑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정도가 지나치면 문제되듯이 이것도 지나치면 문제가 됩니다.

자기애의 가장 큰 문제는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공감과 배려가 부족하기 쉽다는 점입니다. 사랑의 대상이 상대방이 아니라 거기 비쳐진 자기 이미지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의견이나 감정은 고려하지 않고 제 멋대로 사랑을 쏟아 붓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입니다. 상대방이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면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라고 하며 공격하게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도 짝사랑 한 번쯤 다 해봤을 텐데 짝사랑이 자기애의 대표적인 경우랍니다. 그리고 자기애가 극단적으로 치달으면 스토커가 되는 것이랍니다.

신앙의 대상에 대한 사랑은 어떤 사랑이어야 할까?

종교도 결국은 ‘사랑’입니다. 종교도 궁극적으로는 사랑하는 것이란 얘기입니다. 절대자와 내가 나누는 사랑 이야기가 바로 종교입니다. 그런데 절대자와 나는 위치가 같을 수 없습니다. 절대자는 저 위에 있고 나는 이 아래 있으니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둘 사이에 사랑이 없다면, 다시 말해서 둘 사이가 서로 사랑하는 관계가 아니라면 그 것은 주인과 종의 관계일 수밖에 없습니다. 한 편은 명령하고 다른 편은 복종하는 관계 말입니다.

바울은 율법과 복음의 차이를 종과 자녀의 차이로 풀어 말한 적이 있습니다. 종도 주인의 말에 복종하고 자녀도 아버지 말에 복종하지만 둘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가 무엇이고 어디서 오는 것인지를 바울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종은 주인의 명령을 받아 실행하지만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무슨 목적으로 그렇게 하는지 모르는 채 그저 주인이 시키니까 합니다. 반면 아들은 왜 아버지가 그렇게 하라고 하는지, 무엇을 위해서 그러는지를 이해하고 실행합니다. 종과 자녀의 차이는 여기에 있다는 겁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과 나 사이에 사랑이 있는가, 없는가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다고 봅니다. 신앙에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의 말씀처럼 말입니다. 신앙에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신앙생활이 아니라 노예 살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본래부터 같은 위치에 있을 수 없는 절대자와 내가 사랑으로 맺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주인과 종이나 다를 게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한용운 시인의 ‘복종’이란 시를 이런 눈으로 읽습니다.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는 없는 까닭입니다.

왜 시인은 자유보다 당신에 대한 복종이 더 좋다고 노래할까요? 그가 굴종적인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까? 천만에! 이 시는 한용운의 시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가 당신에게 복종하려는 까닭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사람에게 복종할 수 없는 겁니다. 사랑하는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고 말해도 그 말만은 복종할 수 없습니다. 당신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2장에는 나사로의 누이이며 마르다의 동생인 마리아가 예수님 일행이 식사하는 도중에 들어와서 매우 값진 순 나드 향유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았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온 집 안이 향유 냄새로 가득 찼답니다. 똑같은 얘기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도 전해지는데 거기서는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가 아니라 그냥 한 여인이 그랬다고 했습니다. 마가복음은 이 여인이 옥합을 ‘깨뜨렸다’고 전합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얘기지요. 그리고 누가복음은 이와는 다른 상황에서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전하는데 이 행동을 한 여인이 ‘죄인’이었다고 밝히고 사람들은 예수님이 어떻게 반응할지를 지켜봤다고 합니다(6:40). 여기서 이 여인이 창녀라느니 막달라 마리아라느니 하는 근거 없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이 여인은 그저 ‘여인’일뿐이고 요한복음에 의하면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일 따름입니다. 창녀나 막달라 마리아는 아니란 얘기입니다.

한편 마가복음 12장에는 자기가 갖고 있는 돈 전부를 헌금한 과부 얘기가 나옵니다. 그녀는 동전 두 닢을 헌금했는데 그것이 그녀의 전 재산이었다는 겁니다. 이를 보고 예수께서는 그녀가 다른 어떤 부자보다 많이 헌금했다고 칭찬하셨습니다. 가진 돈 모두를 바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두 얘기는 ‘헌신’ 그것도 ‘전적인 헌신’에 관한 얘기입니다. 헌신을 하려면 이렇게 전적으로, 완전히 해야 한다는 겁니다. 저도 아직까지는 그렇게 이해하고 두 사람의 행동을 바람직하다고 여겨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좀 달라졌습니다. 꼭 전부를 바쳐야 사랑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라는 게 꼭 이렇게 전부를 바쳐야 하는 걸까? 그렇다면 사랑 받는 쪽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전적으로 자기를 바치는 사랑은 받는 편에서는 너무 부담스럽지 않을까요? 왜 이 여인들은 이토록 전적으로 헌신했을까? 정말 아무런 기대 없이, 단지 바치고 싶었기 때문에 그랬나? 그렇다면 받는 쪽에서는 이 사랑을 어떻게 받아야 하나? 이 사랑은 의존적 대상에 대한 사랑은 아닐까? 자기애적 사랑은 아닐까?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분이 의존적 대상이기 때문은 아닐까? 아니면 혹시 예수님 안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그 이미지를 사랑하는 것은 아닐까?

합류적 사랑

심리학적으로는 사랑이란 일종의 신경증이라고 보기도 한답니다. 사랑은 어떤 대상을 선택해서 병적으로, 곧 비정상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정말 그럴까 싶기도 하지만 반대로 이게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기만 할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앤소니 기든스라고 하면 영국의 사회학자로서 토니 블레어 총리 시절에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이른바 ‘제3의 길’을 주장한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가 《현대사회의 성•사랑•에로티시즘》이란 책을 썼다고 하네요. 저는 이 책은 읽어보지 않았지만 다른 책에서 그 내용을 소개하는 글을 봤습니다. 거기에 근거해서 책 내용을 잠시 소개하겠습니다.

책에서 기든스는 현대인에게 사랑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것이 건강한 사랑이 아니라 병리적이고 중독적인 사랑이기 때문이랍니다. 그는 이런 사랑 대신에 친밀성(intimacy)을 근간으로 하는 합류적인 사랑을 제시했습니다. ‘합류적’이라는 말은 여러 개의 물줄기가 모여 하나가 되어 흘러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어로는 ‘confluent love’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합류적 사랑이란 상대방에게 사로잡히지 않고 자아발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사랑, 즉각적인 희열을 욕망하지 않고 단계적으로 발전하는 관계를 지향하는 사랑, 헌신을 요구하며 상대방을 압박하지 않고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사랑, 관계 안에서 지배하고 지배당하지 않고 상호성을 이루는 사랑을 가리킨다고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상대방과 하나가 되려는 융합의 욕망을 벗어버리고 상대방의 안녕과 성장에 관심을 쏟으며 상대방을 그냥 내버려두는 초연함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두 개의 물줄기가 하나로 합쳐져서 호수처럼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으로 흘러야 한다는 뜻으로 ‘합류적’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 같습니다.

사람도 합류적인 사랑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의존하는 사랑에 머물지 않고, 또 자기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사랑에도 머물지 않고 서로 존중하면서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사랑 말입니다. 저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종교적 사랑도 합류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마주보고 눈을 맞추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의 목표를 바라보고 거기를 향해서 같이 나아가는 사랑 말입니다.

오늘 제목이 ‘너무 아픈 사랑은’ 하고 말줄임표를 넣었습니다. 이 말줄임표 안에는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란 말이 들어갑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이 너무 아프게 되는 까닭은 한쪽이 일방적으로 쏟아 붓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랑은 건강하지도 않고 오래 지속되지도 않습니다. 기든스의 말처럼 서로 융합하려는 욕망을 버리고 그냥 내버려둬야 할 때는 내버려두는 것이 진정한 사랑일 수 있습니다. ♣
곽건용<사회 78,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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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9)
  참된 사랑 과 거짓 사랑이 무엇인가를 김석두 2012-08-24 19:01:43
가르처 주신 감동의글을 읽으며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할아버지로서 아내에게 결혼한 자식과 미혼인 자식 에게 그리고 자라나는 손주들에게육신의사랑과 영혼의사랑이 무엇인가를 올바르게 가르처야 할
사명감을 심어 주시어 감사드립니다.그러나 깨달음과 실천이 없는 신앙생활로 치닫고 있으며,< 현대사회의성.사랑.에로티시즘> 의책제목 만보아도 1.2.3세대 공히 사랑찾기와 지키기가 쉽지않음을 &#48065;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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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163)
  선배님을 뵐 때마다 곽건용 2012-08-25 11:01:23
느낍니다. 너무 보기 좋아서 부럽습니다. 요즘은 사랑이 지나치게 성과 에로티시즘 쪽으로만 기우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멋진' 사랑이 보고 싶습니다. 과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고 가슴 가득 담기는 사랑 말입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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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74)
  오히려 곽목사님의 부부일심동체의 참사랑을 김석두 2012-08-25 21:20:16
을 보여주심에 놀라운 감동을 받았습니다. 1년전 향린교회에서 "예수와함께본 본영화" 출판기념예배와행사때효성어린 어머님소개와나의반쪽인나의아내로사모님소개 하셨던때가 회상됩니다. 동방예의지국이었던우리조국의 아름다운 전통을지켜 나아가려면 천효,효도계명을 지키며 부창부수,가화만사성.동고동락,백년해로의가르침을자식들과 손자들에게 정신적유산으로 남기고싶습니다만영적사랑과육적사랑의분별력과실천이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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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163)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 오달 2012-08-24 09:24:32
애인일 수도 있고 신일 수도 있고.
사랑에서의 시간 요소가 문제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이기를 원하고
애인은 "영원히" 그러기를 바라고.
100년을 사는 사람 사이에서는 이거저거 다 빼면 "영원"은 잘해야 50년 정도,
그나마 남녀간의 사랑에는 "순간의 진실"이라는 탈출구가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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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XXX.XXX.72)
  사랑이란 게 그 자체가 대상이 누구냐보다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곽건용 2012-08-25 10:55:43
사랑의 시간이 얼마나 긴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게 진실했는가 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는 분은 아내가 불치병에 걸려 곧 죽을 줄 알면서도 결혼하더군요. 결혼하고 몇 달만에 죽었습니다. 그 분이 지금은 어떻게 사는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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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74)
  사랑과 영혼에 관한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아크로 시민들의 영혼을 순화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프랑스 작가 생떽쥐베리는 사랑을 변변 2012-08-24 08:40:52
"Perhaps love is the process of my leading you gently back to yourself.”으로 정의한 적이 있습니다. 강압, 완력, 주입 등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인간의 태어난 속성과 잠재력을 깨우쳐주어서 그 사람이 이 세상을 자신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과정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가정, 학교, 종교 단체, 직장, 지역 사회 등등에서 [사랑] 에 기초를 둔 인성교육을 해야하는 이유를 잘 설명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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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XXX.XXX.26)
  변변 님이 가져오신 정의가 더 좋아보이네요. 곽건용 2012-08-25 10:52:36
이것도 한 열 번 읽어볼까 합니다. 영어라서 스무 번쯤 읽어야 외울 수 있을까요? 사랑이란 게 부담없이, 되받을 욕심 없이 그냥 주고 그것만으로 흐뭇했으면 좋겠습니다.
추천0 반대0
(76.XXX.XXX.74)
  사랑의 정의가 워낭 2012-08-23 23:06:12
참으로 와닿습니다. 상대방을 특별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 그런 마음이 변치 않는다면 사랑이 시간에 관계없이 강건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필자의 말씀대로 열번 정도 소리내어서 외우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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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XXX.XXX.232)
  이 멋진 정의는 곽건용 2012-08-25 10:48:16
당근 제 것이 아니구요, 어디선가 가져온 것입니다. 저도 이 글을 쓰면서 한 열 번 반복해서 읽었더니 딱 맘에 와 닿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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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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