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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 오면 빛으로 노 저어 가리
[곽건용의 삶과 영성] 고중청님 장례식에 부쳐
2012년 05월 11일 (금) 14:32:39 곽건용 기자 Editor@Acropoli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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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은 필자가 지난 8일 엄수된 고중청님(고정범 동문 부친)의 장례식에서 행한 조사를 아크로와 나누기 위해 보내오신 것입니다. <편집자 주>

* * * * *

한 사람의 생은 불확실한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 한 가지는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뿐 아니라 생명 있는 모든 것은 태어나서 살다가 죽게 되어 있습니다. 죽음은 이렇듯 생명 있는 모든 존재가 거치는 자연스런 과정입니다. 이름 모를 들꽃도 땅에 씨가 뿌려져 싹이 나고 이슬과 비와 햇빛의 기운으로 꽃을 피웠다가 시간이 지나면 조용히 시들어 사라집니다. 사람도 어머니 태중에서 아홉 달 채우고 세상에 나와서 세상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살다가 흙으로 돌아갑니다. 생명 있는 모든 존재에게는 주어진 시간이 있습니다. 그 길이만큼의 시간을 살다가 흙으로 돌아갑니다.

이렇듯 모든 생명에게 가장 확실한 죽음은 또한 가장 불확실한 것이기도 합니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언제, 어떤 모양으로 닥칠지 모르기 때문에 가장 확실한 죽음은 또한 가장 불확실하기도 합니다. 하루살이에게 내일이란 시간은 없습니다. 그 사실을 모르고 분주하게 날아다니는 하루살이를 보면 측은한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사람은 하루살이와 얼마나 다를까요? 사람도 죽을 줄 알지만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마치 천 년 만 년 살 것처럼 오만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반대로 죽을까봐 늘 불안하고 두려워합니다.

천년만년 살 것처럼 오만한 태도로 사는 것도 문제지만 언제 올지 모르는 죽음을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며 사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은 삶의 태도이겠습니다. 사람은 사는 모습대로 죽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죽는 모습을 보면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제가 목사이기 때문에 다른 분들보다는 죽음을 많이 봅니다. 그때마다 느끼는 것은, 죽음 앞에 마주섰을 때 그 사람의 참모습이 드러난다는 사실입니다. 때가 이르러 결국 다가온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를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만일 종교인이라면 그가 어떤 종교인인지를 어렴풋이나마 엿보게 됩니다. 한 사람의 총체적인 모습이 축약되어 드러나는 순간이 죽음과 대면하는 순간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해인 시인의 ‘마지막 기도’라는 시를 좋아합니다.

이제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두고 갈 것도 없고
가져 갈 것도 없는
가벼운 충만함이여

헛되고 헛된 욕심이
나를 다시 휘감기 전
어서 떠날 준비를 해야지

땅 밑으로 흐르는
한 방울의 물이기보다
하늘에 숨어가는
한 송이의 흰 구름이고 싶은
마지막 소망도 접어두리

숨이 멎어가는
마지막 고통 속에서도
눈을 감으면 희미한 빗속에 길이 열리고
등불을 든 나의 사랑은
흰옷을 입고 마중 나오리라

어떻게 웃으실까
고통 속에서도 설레이는
나의 마지막 기도를
그 이는 들으실까

대부분의 종교는 ‘죽음’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거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물론 예외는 있고 개인차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종교는 ‘죽음은 끝이 아니다’라고 믿습니다. 어떤 종교는 그것을 ‘영원한 생명’ 곧 ‘영생’이라고 부르고 어떤 종교는 ‘영혼의 불멸’이라고 부르며 또 다른 종교는 ‘윤회’와 ‘열반’이라고 부릅니다. 이렇듯 조금씩 다르지만 죽음이 생명의 최종 종착역이
아니라고 보는 점은 공통적입니다.

사람은 하루살이 같은 존재일까, 아니면 개구리나 나비 같은 존재일까를 생각해봅니다. 하루살이는 하루를 살다가 죽지만 개구리나 나비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해서 새로운 삶을 삽니다. 또 저는 혼자서 이런 생각도 해봤습니다. 개구리는 자기가 올챙이였던 적이 있음을 기억할까? 나비는 자기가 번데기였던 적이 있었음을 알까?

예수는 죽은 지 사흘이나 지나 이미 몸이 썩어 들어가는 나사로를 가리켜 “그는 자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우리는) 썩을 몸으로 묻히지만 썩지 않을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천한 것으로 묻히지만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육체적인 몸으로 묻히지만 영적인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제 종교와 상관없이 사람의 생명은 죽음으로 소멸되지 않는다고 믿고 있습니다. 사람은  육적인 존재일 뿐 아니라 ‘영적’인 존재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육신의 종착역이지만 영혼에게는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순간이라고 믿습니다. 그것은 올챙이가 개구리가 되는 순간이고 번데기가 나비가 되는 순간이라고 믿습니다.

농어촌 풍경을 주로 그리는 한 화가가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꾸부정한 허리에 백발이 성성한 화가는 두 팔을 가지런히 지팡이에 의해서 서서 손님을 맞았습니다. 그림을 감상하던 사람들이 한 그림 앞에 서서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꺄우뚱거리고 있었습니다. 가을색이 만연한 바닷가에 낡은 어선 한 척이 버려져 갯벌에 기우뚱하게 놓여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그렇게 쓸쓸함이 묻어 있는 그림에 붙어 있는 제목이 ‘희망’이었기에 감상하는 사람들이 의아해 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왜 그림 제목이 희망이냐고 화가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화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제 곧 밀물이 몰려들 것입니다. 그러면 저 낡은 배는 다시 바다로 나아갈 것입니다.”

저는 고정범님의 아버님을 한 번도 뵙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순서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아버님에 대한 소개 글과 사진 몇 장을 보내달라고 청했습니다. 저는 아버님을 소개하는 글을 읽기 전에 먼저 네 장의 사진들을 오랫동안 바라봤습니다. 제게 무슨 비상한 능력은 없지만 사진들을 보면서 아버님이 어떤 분이셨는지를 생각해봤습니다. 제 눈에 아버님은 뭔가를 깊이 갈망하고 찾고 추구하셨던 분으로 보였습니다.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갖고 계셨던 것들에 만족하기보다는 평생을 두고 뭔가 소중한 정신적인 가치, 또는 영적인 가치를 찾아 영혼의 순례를 하셨던 분처럼 느껴졌습니다.

이제 아버님은 다음 생에서 나비가 되어 이생에서 추구하셨지만 얻지 못했던 바로 그것을 찾아 높이 날아가실 것입니다. 그러니 이 자리는 새로운 삶을 살려고 모험적으로 새롭게 날갯짓하는 아버님의 도약을 축하하는 자리입니다. 이제 밀물이 몰려옵니다. 아버님의 배는 곧 균형을 잡고 둥실 떠올라 저 넓은 바다로 나아갈  것입니다. 배는 빛을 향해 노 저어 갈 것입니다. 아버님이 원하셨던 것을 이제는 찾으시기를 기원하십시다.

곽건용 (사회 78, 향린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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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19)
  마감과 다음의 축하 이상희 2012-05-14 10:08:22
요 몇년동안 어렸을 적에는 생각하지 않았던 자신의 장례식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마감을 축하하고 다음을 축하하는 자리가 되면 좋겠다, 생각해 왔습니다. 이렇게 깔끔한 정리, 슬퍼하는 가족들에게 위로가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오늘을 꽉 차게 살 수 있는 격려가 되었겠네요. 감사합니다.
추천0 반대0
(138.XXX.XXX.191)
  왜 벌써 장례식 생각을.... 곽건용 2012-05-15 09:18:33
어디 아픈데라도 있는겨? 나는 유서나 한 장 써놓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추천0 반대0
(76.XXX.XXX.102)
  깔끔한 말씀 박변 2012-05-12 08:43:56
깔끔한 장례식이었습니다. 글구 그런 아버님이면 당근 존경이 갑니다. 다시 한번 애도하며. 곽 선배님 군더더기없고 진부하지 않은 말씀 감사.
추천0 반대0
(174.XXX.XXX.92)
  살아 있을 때 장례식 하는 사람도 있던데... 곽건용 2012-05-12 13:34:02
의식 있을 때, 서로 사랑했고 고마웠다는 인사를 나눌 수 있을 때 예식을 치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내 아버지와 그걸 못 해서 그런지....
추천0 반대0
(76.XXX.XXX.42)
  슬픔을 가라 앉히는 말씀 홍선례 2012-05-12 02:46:42
이렇게 멋있는 조사는 처음입니다.
밀물이 밀려 오고, 배는 저 넓은 바다로...
많은 사람들의 슬픔을 가라 앉히는 편안한 말씀이 되었으리라 믿습니다.
추천1 반대0
(76.XXX.XXX.149)
  홍선례 선배님 곽건용 2012-05-12 13:32:22
장례식이 슬퍼하는 자리가 아니라 아버님의 생을 축하하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는 고정범 동문의 얘기를 듣고 평소에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장례식 모습이라고 여겨져서 저도 좋았습니다. 아버님은 충분히 그럴만한 분이셨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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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42)
  삶과죽음을 바라보며 하루하루 살아갈 지혜를 김석두 2012-05-11 21:14:54
일깨워 주신 조사의글을 감명깊게 읽었습니다.아버지를 자랑스러워 하는 아들이 그리 많지 않을것이라는 말씀깊이 공감합니다.육적인삶 을 추구하는 獸性(수성)에서 靈性(영성)으로 거듭난 삶을 살아오심을 고인의사진을 보고 쓰신 조사의글을 깊이묵상하였습니다.다시한번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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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163)
  김 석두 선배님이야말로 곽건용 2012-05-12 13:29:34
행사가 있는 곳에 오셔서 힘이 되어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선배님을 뵈면 열심히 운동하고 건강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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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42)
  감사합니다 고정범 2012-05-11 14:33:40
아버지를 한번도 뵌적이 없는 선배님께 무리한 부탁을 드렸나 살짝 걱정했드랬습니다. 저희 어머님도 형님들도 곽선배님께 너무 고맙다는 인사 전해 달라 하십니다. 이렇게 좋은 말씀을 해 주실것 같았기에 떼를 썼었습니다.^^ 다시한번 온 가족을 대표하여 감사드립니다. 꾸~벅~
추천0 반대0
(68.XXX.XXX.111)
  고인을 보내드리는 의식이 박찬민 2012-05-11 22:53:52
가슴이 뭉클하게 슬프고 아름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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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234)
  아버지를 이렇게 자랑하고 싶어하는 아들이 곽건용 2012-05-11 14:44:49
그리 많지는 않을 겁니다. 내 어버지 장례식도 이렇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부모남, 형제들, 가족들 모두 멋집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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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29)
  아멘입니다. 양민 2012-05-11 13:28:08
멋진 예식에 걸맞는 말씀이었습니다.
추천0 반대0
(108.XXX.XXX.145)
  저 역시 곽건용 2012-05-11 14:43:24
아멘입니다. 가족 잃은 슬픔이 오죽하겠냐마는 그래도 맘 평안한 예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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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29)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박현욱 2012-05-11 11:45:13
이렇게 편안하고 희망적인 조사도 있군요. 고인께도 그 자리에 모인 많은 분들께도 좋은 말씀이었으리라 생각해봅니다.
추천1 반대0
(128.XXX.XXX.21)
  현욱 씨도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곽건용 2012-05-11 14:42:17
얼굴 한 번 보는 건데 그랬습니다. 꽃미남이란 소문은 진작부터 들어 잘 아는데 아직 대면할 기회가.... 곧 그런 날이 오겠죠. 페북에도 열심이 댓글 달아주어 쌩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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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29)
  참 듣기 좋은 오달 2012-05-11 09:51:08
순한 말씀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떠나는 길에 이렇게 편안한 말씀,
큰 베품이었습니다.
추천1 반대0
(108.XXX.XXX.72)
  듣기 좋은 말이 곽건용 2012-05-11 14:40:47
말하기도 좋지요. 저도 얘기하면서 맘에 편안했습니다.
추천0 반대0
(76.XXX.XXX.29)
  장례식에 많이 가보았지만 이원영 2012-05-11 09:47:54
이번 곽 목사님의 말씀은 한편의 수필처럼 아름다웠습니다. 장례식에 모인 사람들에게 "당신들도 예수 안 믿으면 천국 못간다"고 윽박지르는 목사들도 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추천1 반대0
(70.XXX.XXX.50)
  그대로 나보다 장례식에 더 많이 가보진 못했을 터이니 곽건용 2012-05-11 14:39:35
그대는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꼴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ㅎㅎ 편집장께서 많이 보신 그 장면은 내가 봐도 꼴불견인줄 아뢰오. ㅋ
추천0 반대0
(76.XXX.XXX.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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