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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를 베푸사 범죄한 바를 사하소서”
[김학천 연재소설] ‘두 나무’ - 마지막 회
2012년 04월 25일 (수) 12:52:28 김학천 기자 Editor@Acropoli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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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줄거리> 배다른 남매지간인 신래원 신부와 나혜림의 아버지 이만석은 섬 국화도에서 태어나 자란 배우 지망생. 대학 시절 성당에서 수녀지망생 신희애를 만나 한 눈에 마음이 끌린 이만석은 고향 국화도로 피정을 갔다 그만 그녀를 범하게 되고, 그녀는 종적을 감춘다. 이세림으로 개명하고 영화판에서 단역으로 전전하던 그는 모델 활동을 하다 에로 모델 나정자와 사랑에 빠져 살림을 차렸지만 그녀는 마약 중독에 빠져 5살 딸을 데리고 일본으로 떠나버린다. 이후 방송사에 들어가 승진을 한 이세림은 무용가 정은수를 만나 결혼했으나 그녀마저 떠나버리자 신앙생활에 몰두한다. 유럽으로 건너갔던 신희애는 아들을 낳아 이름을 신래원으로 짓고, 이세림은 일본 취재길에 어린 밤무대 가수 레이나를 만나 이상한 끌림을 느끼는데...

* * * * *

 방송일이 바빠서 한 달을 꼼짝 못하던 중에 레이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센세, 우리 한잔 하러 가요.” 둘이는 우에노고엔(上野公園) 뒤편에 있는 코리안요코초(코리안橫丁)로 갔다.
  “이 집에 엄마랑 가끔 왔었어요.”
술이 약간 취하자 레이나가 굵은 눈물을 떨어뜨리더니, “센세, 오늘이 엄마 1주기였어요. 묘지에 다녀왔어요.”
  “어이구, 미안해요. 묘지는 어디에?”
  “엄마가 재활원과 교도소에 들어갈 때마다 친절하게 해 주시던 섀퍼롱 신부님이 도와주셔서 좋은 곳에 안치했어요. 도쿄 타워에서 내려다 보여요. 엄마가 항상 좋아하는 하얀 봉오리 장미꽃 사진을 붙여 놓아서 금방 찾아요.”
  “재활원?”
  “네, 내가 어려서 엄마랑 둘이서 이곳에 왔는데 아무 연고가 없었어요. 엄마는 모델일로 돈도 꽤 벌었는데 마약으로 교도소에 몇 번 들어갔다 오시고 하면서 점점 더 나빠지고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게다가 같이 살던 일본인 계부가....” 는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껴 운다,
  “말해요, 레이나. 무슨 일인데 그러죠?”
  “계부가 저를....”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어깨를 들먹였지만 이내 냉정을 애써 찾는다.
  “아! 이 아이에게...”
  “그리곤 그 사람이 우리를 버리고 도망갔어요. 엄마는 그리고 나서 얼마 후 결국 약 중독으로 돌아가시고 저는 연고가 없어 한국에도 못가고 이곳에서도 힘들고. 말이 좋아 모델이지 별 활동도 없어요. 겨우 노래로 살아가요. 간혹 원조교제도 했었구요.”
(아! 슬픈 벌레 먹은 선악과)

  갑자기 레이나는 “오 사케가 노미타이 곤나요와아~(술이 먹고 싶네. 오늘 밤엔~)...” 노래를 흥얼거린다.
  “불쌍한 우리 엄마, 불쌍한 레이나” 연거푸 폭음을 하더니 테이블에 머리를 푹 수그린다.
  “갑시다. 집으로. 너무 취했어요.” 택시를 잡아타고 그녀의 집으로 갔다. 집에 도착하자 레이나는 이세림의 팔을 붙잡고는 “센세, 가지 말아요. 오늘 나하고 같이 있어줘요. 난 아무도 없어요.” 하며 눈물을 흘린다. 거절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도 많이 취했다. 객지에 와서 일도 분주했지만 피곤도 한데다 이국땅에서 마신 술이 더 그를 취하게 했다.
  간신히 침대에 눕히고 거실에 나와 스카치 몇 잔을 더 걸쳤다. 얼마를 잤을까? 무언가 가슴을 누르는 답답함에 눈을 떠보니 레이나가 이세림의 몸에 포개져왔다. 순간 망설임도 있었지만 그만 그녀를 받아들이고 말았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난 이세림은 레이나가 외출 준비를 하고 있는 동안 거실 벽 여기저기를 무심코 둘러보다가 침실 옆에 있는 조그만 덴 사이즈의 방문에 ‘마사꼬の’란 팻말이 있는 것을 보았다. (마사꼬?)
  문을 비끗 밀어보았다. 열렸다. 안에 들어서자 그림과 사진 그리고 물건들이 빼곡했다. 두리번거리다 돌아서려는 데 레이나가 들어왔다. “이 방은 엄마가 아끼던 물건들을 두던 방이에요. 저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던 방인데 돌아가시고 나서 아직 정돈도 못하고 또 정신도 없었고 해서 이제나 저제나 정리하려고 하던 참 이었어요. 아, 저기 엄마사진이 있네요.”
  “이 그림이 엄마사진...” 잠시 말을 끊는 듯 돌아다보면서 “인데...” 하며 말을 잇다가 그림 속의 엄마 옆에 있는 남자와 이세림을 번갈아보더니,
  “헌데? 여기 이 사람은... 센세? 왜, 여기에...?”
순간 이세림도 (아니? 이 마사꼬가 그 나정자?)
그의 머리가 핑 돌고 다리가 휘청거렸다.
레이나는 거듭 묻는다. “이 사람이 아빠? 그럼 센세가 울 아...빠? 아니야, 아니야“
고개를 내 저으며 주저앉아 꺼억꺼억 운다.
이세림도 어찌 할 바를 몰라 쩔쩔 매다가 먼저 휙 밖으로 뛰쳐나갔다.

  눈을 떠 보니 병실 안이었다. 팔에 링거를 꽂고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간호사를 불러 물었다.
  “제가 어떻게 여기에. 그리고 지금 몇 시입니까?”
  “술에 너무 취해 길에 쓰러져 있는 걸 경찰이 이리로 모셔왔습니다. 지금 새벽 5시입니다.” 혼미한 중에도 퍼뜩 생각나는 일이 있어 말리는 간호사를 밀치고 부랴부랴 바늘을 빼고는 레이나에게로 달려갔다. 현관을 열고 방에 들어선 순간 온 몸이 굳어짐을 느꼈다. 침대에는 레이나의 몸이 반듯이 누워있었다. 옆에는 약병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고.
(아,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급히 전화기를 잡았다. 앰뷸런스 사이렌소리가 새벽 공기를 가르고 달려간다.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너희가 죽으리라’ 하시던 그 말씀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울려왔다.

  한국으로 돌아 온 이세림은 제 정신이 아니었다. 거의 몇 달을 매일 폐인이다시피 술과 약으로 지샜다. 그리곤 그는 ‘애절양(哀切陽)’을 기억해냈다. 조선시대에 갓 태어난 아이에게조차 군포를 부과하여 그 값으로 하나밖에 없는 전 재산인 소를 차출해가자 그만 ‘이놈의 남근 때문에 아이를 갖게 되었다’고 탄식하며 스스로 자신의 양물을 잘랐다는 소문에 정약용이 지었다는 슬픈 서민의 노래 ‘애절양’.
헌데 나는 이놈의 양물 때문에 내 딸을 범하고 패륜을 저질렀으니 이놈이 웬수로다!

  장대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 자정이 훨씬 넘어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어귀에서 택시에서 내린 이세림은 비 맞는 것도 아랑곳없이 술이 잔뜩 취해 비틀거리며 언덕위에 있는 집을 향해 걸었다. 간신히 집에 도착한 그는 문에 열쇠를 못 맞춰 몇 번이고 떨어뜨리다가 겨우 열고 들어갔다.
  옷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져 집안 바닥을 온통 적시는 것도 모르고 벌겋게 충혈된 눈에 일그러진 얼굴로 냉장고에서 소주병을 꺼내더니 이로 병마개를 따내곤 그대로 서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는 안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한참을 머리를 쥐어짜고 가슴을 치며 흐느끼더니 무언가 비장한 각오를 한 듯 뒷방으로 가 선반에서 해군 때부터 갖고 있던 등산장비 안에서 작고 날카로운 칼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곤 하의를 벗어 내린 다음 남성에 대고 큰 숨을 한번 몰아쉬고는 그대로 그었다.
천둥번개가 우르릉 꽝! 치는 것과 동시에 그의 입에서는 외마디가 흘러 나왔다.
  ‘으윽-!’
비명소리와 함께 피범벅이 된 손으로 전화 수화기를 움켜잡았다.
병원 응급실에서 깨어난 그는 한 번 신음을 하고는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곤 어지럽게 꿈과 생시를 오락가락했다.

  병원 수술실에서 마취로부터 간신히 깨어난 이세림은 숨이 막혔다. (레이나는 그 후 어찌된 것인가?)
  그리고 한 달 만에 퇴원한 그는 다시 거의 매일을 독주로 날을 지새웠다. 그리곤 지병이었던 고혈압으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되더니 간병변이 악화되어 시한부를 선고받자 아산으로 내려가기를 원했다.
  그 곳 요양원에서 한 달쯤 견딘 그는 공세리 성당의 신부에게 종부성사를 받고 싶다고 청했다. 본당신부가 출타중이어서 마침 프랑스에서 안식년 손님 신부로 와 있던 세베리아노 신부가 요청에 응했다.

  깨끗이 정리된 조그만 방 커튼사이로 드는 햇빛을 향해 누워있는 이세림에게 다가간 신부는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어깨에 영대를 걸치고는 잠시 기도를 올린 뒤 조용히 그를 바라본다.
  “신 세베리아노 신부입니다. 고해하시겠습니까?” (세베리아노?)
  “예에, 신-부-니임.”
  “성부와 성자의 이름으로. 아멘. 알고 저지른 죄, 모르고 저지른 죄 모두를 고하십시오.”
이세림은 지난날들의 일들에 참회를 한다.
  “저는 사람으로서 못할 짓을 저질렀습니다. 나의 딸을 죽였습니다.”
깊이 흐느낀다. 말을 잇지 못한다. 멀리서 성당 종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 전 또 다른 큰 죄도 지었습니다.” 또 잠시 말을 잃는다.
  “말씀하십시오.” 신부는 온화한 말로 다독여 준다.
  “하느님의 딸이 되려는 한 여인의 꿈을 짓밟았습니다. 어디로 갔는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녀에게 죄를 빌고 싶습니다.”
  “주님께 용서를 비시고 고통에서 벗어나십시오.”
  “이 모든 대죄들은 감히 사함 받을 수 없겠죠.”
  “주님께서는 모든 이들을 용서하십니다.”

  별안간 이세림은 신부의 손을 꼭 잡더니 “신부님, 저의 원래 속명으로 용서를 받고 싶습니다. 내 원래 이름은 이만석입니다. 이 세베리아노”
  (?...)
잠시 신 신부가 흠칫 놀라는 기색을 보인다.
그리고는 목이 잠긴 목소리로 천천히 조용히 묻는다.
  “그럼 혹시 신희애씨를 아십니까?”
  “아니 그걸 어떻게?”
이마에 가슴에 성호를 긋는다.
(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제 어머니이십니다.” 신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어머니가 왜 입버릇처럼 이 성당에서 안식년을 지내야 한다고 간절히 바라셨는지를 이제야 알았다.
  “제가 아들 신래원입니다.”
이세림은 갑자기 현기증이 느꼈다.
  “그럼 어머니는?”
  “지금 프랑스에 계십니다.”
  (신희애 그리고 신래원, 나의 아들)
  (아! 생명나무!)

  신부는 흐느끼며 떨리는 손으로 아버지의 종부성사의식을 행했다. 성체를 영해주고 그의 눈과 귀, 콧구멍과 입술, 그리고 손과 발에 성유를 가지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이 성유를 바름으로써 주(主)는 자비를 베푸사, 보고 듣고 행함으로써 범죄한 바를 사하소서. 아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드립니다.”  “아멘”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그는 “아버지!.....”하고 불러보았다.
이세림은 아들의 손을 꼭 잡더니 “네 누이동생 레이나 혜린이를 부탁한다.” 하고 눈을 감는다.
  그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를 띤 채.

  신 신부와 나혜린 둘이는 벤치에서 일어나 다시 사제관으로 향해 내려온다.
  “아버님을 이곳에 모시고난 후 나는 다시 프랑스로 갔다가 교황청에 청원해서 이곳의 상주신부로 임명받았다. 그 후 널 얼마나 찾았는지 모른다.”
  “아버지가 다시 저를 찾아오셨을 때 마주치기 싫어서 도망갔었어요. 오랫동안 방황했었지요. 다행히 섀퍼롱 신부님의 도움으로 재활원과 교도사목 일을 해오면서 제자신도 치유를 받았어요. 어느 날 엄마 납골묘에 갔더니 메모쪽지가 다섯 장이나 붙어있더군요. 오봉(お盆)절에 제가 혹시 올까 해서 매년 한 번씩 와서 붙여 놓았더군요. 나중에 알고 보니 오라버니가 보낸 사람이었어요.”
  신 신부가 한 손으로 혜린이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나는 보았다. 아버지의 마지막 행복한 미소를. 그리고 그 분이 얼마나 너를 가슴에 품고 사셨는지도 안다.”
  “저도 아버지를 그리워했어요, 오라버니.”
  나혜린의 양 뺨에 흘러내리는 두 줄기의 뜨거운 눈물을 조심스럽데 닦아주는 신부의 눈에도 이슬이 맺혔다가 한 방울 뚝 떨어졌다.

  멀리서 뎅그렁~ 성당의 종소리와 함께 Ave Verum Corpus(거룩한 성체) 성가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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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10)
  글발 이병철 2012-05-04 18:06:42
죽이는 글발에 잠시 죽는 것 같았습니다. 어제 "결혼은 미친 짓이다" 영화 봤는데, 역시 자연스럽게 감동을 주는 작품이 최고라 생각되고, 그런면에서 감동 많이 받았습니다. 감사.아리가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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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XXX.XXX.225)
  땡큐! 김학천 2012-05-05 10:43:00
도이따 시마시떼.
ㅎㅎㅎ
추천0 반대0
(71.XXX.XXX.133)
  진짜 멍~~하게 만드는 스토리군요 워낭 2012-04-25 17:48:07
장편,영화 갑시다. 가자구요.
추천0 반대0
(173.XXX.XXX.18)
  제작자 착고 있어요. 김학천 2012-04-26 09:34:00
헌데 '올드보이'를 이길 수 있을런지?
아크로 연극부터 어떨까 몰라. ㅎㅎㅎ
암튼 부족한 글 읽어주신 모든분께 감사드립니다.
추천0 반대0
(75.XXX.XXX.202)
  네 편으로 쓰기에는 오달 2012-04-25 10:01:30
너무 큰 얘기네요. 장편으로 만들어서 영화까지 미세요.
추천0 반대0
(108.XXX.XXX.72)
  장편? 김학천 2012-04-26 09:25:41
어휴~~
손바닥 장(掌)편이면 몰라도.
추천0 반대0
(75.XXX.XXX.202)
  충격적인 영화를 보고 나면 잠시 멍하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수가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바로 그런 순간입니다. 변변 2012-04-25 06:57:28
영화 [칼리귤라] 나 [올드 보이] 를 본 후에 받은 느낌에 필적하는 [뒤통수의 띵함] 이 오늘 하루 종일 갈 것 같은 이 예감. 영화화될 것 같은 원고를 읽은 강렬한 느낌!
추천0 반대0
(97.XXX.XXX.164)
  incest 김학천 2012-04-26 09:22:01
안티꼬느는 대학 때 치대연극반에서 보았던 감동의 작품.
서울공대 작가의 '회전목마'도 incest(한글로 치면 금지단어?)가 소재였죠, 아마.
열열한 팬이자 아크로 후원자인 변변께도 감사.
추천0 반대0
(75.XXX.XXX.202)
  정말 충격적인 김종하 2012-04-24 20:04:22
결말이군요. 후아~ (숨 고르는 소리)
오랫만에 소설 읽는 재미를 찾게 해주신 필자께 감사드려요. 조만간 다른 작품도 아크로에서 기대하겠습니다^^
추천0 반대0
(76.XXX.XXX.131)
  소설 읽는 재미? 김학천 2012-04-26 09:06:05
과찬의 말씀.
암튼 감사.
추천0 반대0
(75.XXX.XXX.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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