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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딸아이가 바로 너였던 거지”
[김학천 연재소설 '두 나무' - 2] 오! 탐욕스런 선악과여
2012년 04월 11일 (수) 12:08:40 김학천 기자 Editor@Acropoli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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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당 공동체에서는 그녀의 갑작스런 사라짐에 대해 아무 이유를 모른 채 의아하고 걱정하는 눈치였지만 그것도 잠시 그냥 잊은 채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이만석은 처음엔 당혹스럽고 그 일이 알려질까 봐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별일이야 있으려나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달래기도 했는데 막상 그녀가 사라지고 나자 안타깝지만 오히려 잘 된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는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일을 잊어버리고 평상시의 일로 돌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성당에 들어설 때마다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죄책감이 간혹 고개를 들며 그를 괴롭혀서 편치 않았다. 해서 그는 그곳을 떠나기로 작정하고 학교에 휴학계를 내곤 해군에 입대를 했다. 

  3년의 해군생활을 무사히 다 마치고 돌아오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어 할머니를 도와 가게를 돌보며 지내다가 복학을 했다. 그리고 다시 두 해가 지나 학교를 마칠 때쯤 할머니마저 세상을 뜨시자 가게를 정리하고 그 참에 아예 서울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곤 본격적으로 배우가 되기 위해 동네 강씨를 한사코 쫓아다녔다. 허나 나중에 알고 보니 강씨도 이렇다 할 소속사나 제대로 된 자리가 있는 게 아니라 아는 조연급 배우 집에서 허접 일을 도와주며 엑스트라 정도의 일을 하는 처지였지만 아쉬운 대로 줄을 댈 곳이라곤 그밖에 없었으니 달리 방도가 없었다.

  그는 성격이 활달하고 잘 웃는 얼굴에 무엇보다 틈나는 대로 앞집 이발소 집에 가서 책을 많이 읽고 주워들은 게 많은 탓인지 그럴듯하게 대화를 끌어가는 말재주는 있어 남의 호감을 잘 사는 편이었는데 그런 점이 일급 조연배우 마정수의 눈에 들은 것이 행운이라면 행운이었다. 그의 뒤 보살핌으로 그나마 조금씩 영화감독들에게 줄을 댈 수가 있었으니까.

  이제 그는 멋지고 인기 있는 연기자가 되기 위해선 구차스럽거나 촌스런 것들을 버리고 좀 더 세련된 이미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제일 먼저 이름부터 바꾸기로 했다. 그 당시 유명하다던 백도사에게 갔다. 문간 서기를 통해 이름을 밀어 넣고 얼마를 기다리니 차례가 되었는지 안으로 들어가란다. 그가 방에 들어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백도사는 그를 한번 힐끗 올려다보고는, “이 이름은 획이 안 좋아. 헌데 당신 얼굴에선 문패가 둘이 보여. 서로 다른 이름이 새겨진” (문패가 둘? 집을 두 채나 갖는 부자가 된단 말인가?)
  “한 개는 빛이고 다른 한 개는 어둠이야. 빛이 어둠을 뚫고 나오려면 이름을 바꿔야해.”
두 개의 나무숲에서 세상으로 나와 빛을 얻으라는 듯으로 이세림(李世林)이란 새 이름을 얻었다. 이세림 세베리노, 근사하게 들렸다.

  그런 다음 그는 이미 앞서 성공한 이들의 부류에 섞이기 위해 그들의 취향이나 버릇들을 흉내 내기에 바빴다. 의상은 물론 은팔찌며 멋져 보이는 파이프 담배까지 물고 다녔는데 특별한 향내 나는 담배가루를 사기위해 비밀 가게에 가는 등 그들이 가는 곳이나 모이는 곳  어디든 무엇이든 열심히 따라다니며 보고 배웠다. 

  그럭저럭 여기저기 강씨와 마정수를 따라다닌 보람이 있었는지 한 1년 지나 단역을 하나 맡았다. 앞집 이발소에 내려와서 동네 손님들 모아놓고 온통 자랑을 늘어놓으면서 공짜표까지 나누어 주고 모두들 자기가 나오는 영화를 꼭 보라고 채근했다. 헌데 어찌된 영문인지 영화를 보고 온 동네사람들 말로는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그의 모습은 어느 한 장면에서도 보이지 않았다고 이구동성이었다.

  그랬더니 그는 언제나 그렇듯이 수줍은 듯 ‘히힝’ 웃으면서 “그 왜, 형사들이 어느 2층집에서 잠복을 하고 창문 밖을 감시하며 범인을 기다리는 장면 있잖아요. 새벽녘이 되면서 그 창밖에  ‘찹쌀~떡!’ 하고 소리치고 지나가는 장사꾼이 바로 나예요.”
  뒷모습으로 비치긴 했지만 그게 바로 자기였다면서 “처음부터 큰 역 맡는 사람이 어디 있어? 이제 시작이지.” 하며 오히려 신나했다. 그리고 싱글벙글이었다.

  그는 항상 그랬다. 한마디로 뻥이 좀 심한 편이긴 했지만 참 낙천적이었다. 무슨 일에건 ‘히힝’ 한번 웃고 눈을 아래위로 한번 굴리고는 겸연쩍은 듯 씨-익 웃음으로 마무리를 하면 그게 다였다. 뒤끝은 없었다. 어떻게 보면 단순하고 순진한 구석이 있어서 모두들 그를 싫어할 수 없는 게 그의 매력이라면 매력이랄까.

  그러나 그것 뿐. 시간이 지나도 그의 배우 생활엔 어떤 진전의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았다. 아무리 저녁마다 이발소 거울 앞에서 연기 연습을 해도 그의 표정 연기는 형편이 없어 배우로는 성공할 수가 없다는 게 모든 이의 평이었다. 배우학원이라도 가야하는데 그게 또 여의치가 않았다. 힘도 들고 경제적으로도 넉넉지 못한 처지에 그 쪽 정서에 적응이 어려워지면서 희망도 줄어들었다.

  배우로 별 재미를 못 보고 고심하던 참에 마침 새로 생긴 민영 방송국에서 신인연기자 탤런트를 구한다는 공모에 응했는데 천만 다행스럽게 합격을 했다. 배우로 돌아다니기 보다는 일정한 직장을 갖고 소속감을 갖는다는 게 훨씬 나았고 제법 작은 배역이라도 이것저것 심심치 않게 얻다보니 재미도 솔솔 붙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를 대신해서 일류모델의 옷을 찾으러 명동에 있는 간판을 내걸지 않은 어느 양복점을 가게 되었다. 그곳은 유명 양복지의 직속 재단 하청지로 주로 모델이나 상류층들의 옷만을 만들어 주는 곳이었는데 이를 계기로 열심히 드나들면서 얼굴 도장을 찍은 덕인지 톱모델 차도신의 눈에 들었다. 그의 천거로 드디어 양복 모델에 등장하게 되면서 얼굴도 알려지고 제법 사람들 입에 그의 이름도 오르내리게 되었다.

  이제 좀 나은 사교계에 명함을 내밀 수 있게도 되고 한 단계 높게 발돋움을 한 그는 어느 날 영화배우들과 모델들 모임에 따라 나갔다가 새로 떠오르는 별 애로 모델 나정자를 만났다. (오!, 탐욕스런 선악과)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그는 여자를 보면 선악과나무를 떠올렸다. 먹음직스럽고 보암직스럽고 탐스런 선악과. 하느님이 먹지 말라고 했지만 그건 우리를 그냥 시험하기 위한 것일 뿐 우리를 위해 만드신 것이니 우리가 못 먹을 이유가 하등 없는 것이라 여겼다. 또한 남자가 홀로 있는 것이 보기에 안 좋아 거들짝을 만드셨다는 이유만 보더라도 연약한 여자들을 외톨이로 만드는 것은 비성서적이기도 하고 신사도에도 어긋난다는 야릇한 지론도 있었다. 

  그는 그녀가 참여하는 모델 회합마다 빠지지 않고 나갔다. 남들과는 무언가 다른 차별 선언이라도 하는 듯 항상 특이한 금빛 나는 작업복형 오버롤을 입고 가죽 숄더백을 걸치고 향내 나는 파이프 담배를 물고 오스트레일리아 산 캥거루 가죽으로 된 투박한 구두를 신고 뒷주머니에는 영문 잡지를 구겨 넣고는 나타나 씨-익 웃는 여유를 부리면서 시키지도 않는 일이라도 이것저것 참견도하고 돕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차를 대리운전하게 되는 기회를 잡게 되었다. 책을 읽은 게 많아서 그런지 이런 때 써먹기는 안성맞춤이었다. 운전을 하는 내내 백미러로 그녀를 힐끔힐끔 훔쳐보면서 간간이 문학전집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을 읊어가며 신나게 이야기를 이어가는 그에게 나정자는 내심 재미난 사람이라고 느끼면서 호감이 갔다. 운전해준 수고에 감사한다는 보답으로 다음에 저녁을 사겠다는 그녀의 제의를 흔쾌히 승낙한 그는 콧노래를 불렀다.

  북악 스카이웨이 언덕에 자리 잡은 고급 이태리 레스토랑의 고즈넉한 방에서 “당신이 칼멘이라면 저는 동호세가 되지요.”라며 너스레를 떠는 그의 모습에서 나정자는 좀 서툴기는 하지만 친절하고 문학적인 감각이 있는 그에게서 영화계의 다른 사람들과는 색다른 신선감을 느껴 둘 사이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문제는 비록 별거 중이긴 하지만 그녀는 엄연한 기혼자였기 때문에 세간에 좋지 않은 스캔들에 휩싸이게 된 것인데 그는 엘리자베스와 리차드 버튼이나 김지미와 최무룡의 예를 들어가면서 이것은 일시적 장난의 불륜이 아니라 운명적 사랑이라며 항변하고 흥분하였다.

  급기야 나정자는 남편과 정식으로 헤어지고 이세림과 살림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세계가 그렇듯이 살면서 문제가 하나 둘씩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소유욕과 야심이 컸던 그는 점차 의처증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게다가 나정자가 마약중독에 깊이 빠지면서 허구한 날 싸움이 잦아지고 그들 사이는 크게 벌어져 갔다.

  둘 사이에 다섯 살 난 계집아이 하나를 두었지만 결국 그들은 파경을 이루고 나정자는 모든 재산을 남몰래 처리하고는 어느 날 밤 치료차 일본으로 간다는 메모지 한 장만을 달랑 남겨놓고 딸아이를 데리고 그를 떠났다.  

  신 신부는 먼 바다 쪽을 바라보면서 “그러니까 그 딸아이가 바로 너였던 거지.”
  “엄마는 마약 때문에 재활원과 교도소를 여러 번 들어갔었어요. 그러다가 그만...”
나혜린의 눈에는 눈물이 다시 그렁거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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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6)
  이 만석 = 이 세림 오달 2012-04-11 13:09:47
거기서 가계가 분파를 하는 군요.
신 부인쪽과 나 부인쪽,
이야기가 되려면 이렇게 삼각이 되어야지요.
신씨쪽과 나씨쪽 핏줄이 만나서 어디로 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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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XXX.XXX.72)
  삼각이라기 보다 김학천 2012-04-13 08:54:22
공집합 그러나 여집합이 되는...
추천0 반대0
(71.XXX.XXX.133)
  사랑이라는 게 오달 2012-04-13 16:43:29
공집합가지고 되겠어요. 아예 하나가 될라고 하니, 비극도 나오고, 소설도 나오고.
추천0 반대0
(108.XXX.XXX.72)
  '통' 자가 빠졌네? 김학천 2012-04-16 08:11:54
맞아요. '통'자가 삐졌어.
추천0 반대0
(71.XXX.XXX.133)
  아~ 그러니까 김종하 2012-04-10 19:36:49
외동딸 나혜린, 신 신부가 혜린의 오빠, 1편 무인도 장면에서 그냥 껴안기만 했었는데...^^
두 개의 나무숲에서 나와 빛을 얻는 이름 이세림...
점점 긴장이 고조되는군요. 담주 수요일이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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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XXX.XXX.131)
  아주 오래전 영화 김학천 2012-04-13 08:52:39
바바레라를 기덕하시는 분들은 아실 걸요?
제인 폰다 나오는 영화.
손을 둘이 마주치고 있어도 가능한 장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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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XXX.XXX.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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